소설리스트

A.I 닥터-226화 (226/1,303)

226화 집단 감염 (1)

감염관리실에 도착한 신현태는 우선 증발기부터 내려놓았다.

예전보다는 시설들이 좋아진 덕에 무게가 어마어마하게 나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쿵.

신현태는 잠시 데스크 위에 놓인 물건을 한숨과 함께 바라보다가 이내 전화기를 들었다.

“집단 감염……. 집단 감염…….”

아까까지만 해도 내심 들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일생을 감염학에 바친 사람으로서, 이렇게 빨리 집단 감염의 징후를 알아차렸다는 것은 충분히 설레도 될 만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공의 태반은 수혁과 수혁이 의뢰한 프로그램에 있긴 했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기에는 기분이 너무 좋았더랬다.

지금이라고 해서 딱히 그쪽으로 사고가 돌아가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심각한 얼굴이었다.

“빨리 받지, 왜 안 받아?”

세상에 집단 감염이라니.

3차를 넘어 4차 의료 기관을 표방하는 곳에서 이 무슨 재앙이란 말인가.

“여보세요?”

속이 타들어 가는 듯한 신현태와는 달리 수화기 너머 상대의 반응은 평온하기만 했다.

아니, 1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런가. 약간 짜증이 난 것 같기도 했다.

평소의 신현태라면 이 시간에 전화를 걸 일도 없었을 것이고, 또 상대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미안하다는 말부터 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 장 교수. 일단 병원으로 좀 와야겠는데.”

“네? 병원으로요? 무슨, 무슨 일 생겼습니까?”

상대, 그러니까 신현태 직속 후배라 할 수 있는 감염내과 장덕수 교수는 병원 얘기가 나오자마자 우선 자세를 바로 했다.

그또한 신현태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남의 개인 시간을 침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집단 감염이야. 패혈증 의심되는 환자만 스무 명에 가까워.”

“어……. 이, 일단 가겠습니다. 혹시 뭐라도 좀 보면서 갈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음.”

신현태는 대답 대신 수혁을 돌아보았다.

이심전심이라던가.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부자지간처럼 가까운 둘은 뜻이 통했다.

“아까 제가 작성한 엑셀 파일에 몇 가지만 정리해서 첨부하겠습니다.”

“오케이, 고마워. 장 교수, 들었어? 일단 보내 둘 테니까……. 감염관리실로 와.’

“네, 과장님!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장덕수 교수는 전화를 끊자마자 일단 택시부터 불렀다.

복장이 개판인 게 마음에 좀 걸리긴 했는데, 이거야 뭐 일단 병원에 가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긴 할 터였다.

“어……. 김 교수? 맞나?

그사이 이현종 또한 다른 이에게 부리나케 전화를 걸었다.

당연하게도 태도는 신현태와 많이 달랐다.

“아, 네. 원장님.”

“그래, 일단 병원으로 와야겠는데.”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일단 막무가내였다.

그 덕에 옆에 있던 수혁은 나지막한 한숨 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다.

다행한 일이라면 이현종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수혁만큼 들을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왜 답이 없어?”

“아, 아뇨. 원장님. 혹시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어제야, 그제야. 감염내과 협진 낸 거 알아, 몰라.”

“어……. 알죠. 호, 혹시 그 환자들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 어떻게 된 건 아니고. 아니네, 한 분은 중환자실 가셨네. 아무튼, 일단 와. 집단 감염 환자래. 그 사람들.”

“네?”

서효석이 날아가고 새로 임용된 내분비내과 교수 김태우는 그제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록 이제는 감염을 다루는 사람은 아니지만, 집단 감염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거움을 모르진 않았다.

게다가 이게 무슨 지역 사회 감염도 아니지 않은가.

원내 감염은 일단 균의 종류부터가 괴이하기 짝이 없기 마련이었다.

온갖 항생제를 쓰는 곳이니만큼 우선 내성균들이 득시글했다.

“아,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어. 아니, 선배고 원장인데 오라면 와야지. 내가 설마 밥 먹자고 부르겠어? 급하니까 오래지.”

“네네. 죄송합니다.”

“이럴 시간에 옷부터 입겠다, 나 같으면.”

“어……. 네. 가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시비인지 뭔지 모를 통화가 종료될 무렵, 수혁도 또 다른 통화를 시작했다.

상대는 레지던트였다.

아직 펠로우도 아닌데 어떻게 교수에게 걸 수 있겠는가.

다 짬에 맞는 노티를 해야 하는 법이었다.

“어, 나 수혁이. 그 그제부터 감염내과에 협진 낸 환자들 있지?”

“네? 아, 아, 네. 제 환자들……. 입니다.”

교수들과는 달리 아직 잠에 들지 못한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피곤에 절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졸음이 묻어 있진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비인후과 레지던트인데 폐렴 환자가 열 명도 넘게 생긴 마당이었으니까.

태화 의료원 시스템이 잘되어 있는 만큼 협진을 받은 호흡기내과, 즉 수혁이 잘 봐주고 있긴 하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1차 콜은 주치의에게 가기 마련이었다.

아는 것도 없는데 심각한 얘기가 자꾸 들리는 것만큼 머리 아프게 하는 일도 없었다.

“응, 그 환자들 다 암센터 3번 방에서 수술한 환자잖아. 지금 암센터 3번 방 오염을 인지했거든. 아직 원인균은 모르지만 아마 거기서 감염됐을 거야. 집단 감염이야. 감염관리실에서 통합 처방 내리긴 할 텐데, 일단 환자들부터 중환자 감염 처치실 또는 1인실로 격리하자.”

“어……. 그…….”

이비인후과는 기본적으로 외과였다.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감기를 전문으로 보는 과로 되어 있기는 한데, 그것 또한 내막을 살펴보면 감기의 최종 형태인 중이염과 부비동염을 수술하기 때문이었다.

하루 온종일 수술실에서 사는 주치의에게는 중환자 감염처치실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다.

“분류 네가 할 필요는 없어, 내가 부르는 환자들을 중환자실로 내려. 그럼 알아서 조치할 거야.”

다행히 수혁은 바루다 덕분에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내과 의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쉽게 말해 같은 의사라 해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가 모를 수 있고, 반대로 상대가 알고 있는 것을 내가 모를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 네.”

수화기 너머로 안도의 한숨 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바루다에게 나 잘했지? 등등의 자랑을 늘어놓았을 테지만.

지금은 애석하게도 별로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고은영, 정경욱, 신예희, 문일융. 이 네 사람은 이미 패혈증입니다. 나머지는 아직 폐렴이고요.]

바루다도 장난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수혁에게 노티했다.

간호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환자들의 활력징후 변화가 워낙에 급박했다.

“고은영, 정경욱, 신예희, 문일융. 이 네 사람은 중환자실로 내리고. 나머지는 1인실로 보내. 지금 원장님이 원무과에 지시 내렸으니까 감염 발생한 해당과는 자유롭게 이뤄질 거야. 알아들었지?”

“네, 네!”

“그리고 미안한데, 오늘은 자지 말고 전화기 붙잡고 있어. 필요하면 계속 통화하거나 할게. 처방도 좀 봐주고.”

“다,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교수님께도 노티드릴게요.”

“어어. 놀라시겠다. 너무 세게 말씀드리진 말고. 다행히 이비인후과 소속 환자들은 나이가 젊어서 그나마 괜찮아.”

“네, 선생님!”

마지막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젊은 환자라고 해 봐야 균을 폐 안에 슥슥 밀어 넣은 상황에서 시간이 더 지나게 되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은 매한가지겠지만.

지금은 워낙에 빨리 상황을 인지하지 않았는가.

치료의 골든아워를 놓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정형외과는 내가 했어.”

“성형외과도 온대.”

전화를 끊고 보니, 신현태와 이현종도 제 할 일을 다 한 모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지 신현태는 잠시 책상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우당탕.

곧 연락받은 직원들이 감염관리실 내부로 들이닥쳤다.

완전 무방비 상태라 할 수 있는 신현태, 이현종, 수혁과는 달리 레벨 D 방호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신 보호복에 후드, 고글, 마스크, 덧신, 장갑을 끼고 있었다.

“검체는 어디에 있죠?”

“어, 저기.”

“공기 감염이 의심되진 않는 겁니까?”

“잠깐만.”

확인해야 될 것이 비단 환자뿐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암센터 3번 수술실을 들락거린 모든 인원에 대한 검사와 통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선은 급한 대로 마취과 김세희 과장에게 부탁해 수술에 들어간 레지던트, 교수 그리고 간호사들을 확인한 참이었다.

도착해 있는 문자를 보니, 다행히 그들 중에서는 어느 누구도 호흡기 증상을 보이고 있진 않았다.

“우선은 그래. 아마 증발기 때문일 거야. 유출이 거의 없을 거고……. 있어 봐야 공조 시스템으로 날아갔을 테니 관계없겠지.”

아니, 설령 그걸 들이마셨다 해도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마취된 상황에서 그것만 수십 분 들이마셨을 환자와는 달리 이건 아주 일시적인 일이었을 테니까.

정상 면역을 지니고 있다면 무시해도 좋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조심은 해야지. 우선 접촉자들 싹 확인해서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는 격리 조치하고. 방문할 때는 무조건 레벨 D 착용하고 가서 검체 채취해.”

“네, 그렇게 조처하겠습니다, 교수님. 질본에는 보고 안 해도 될까요?”

“질본……. 아직은 법정 감염병 여부 안 나왔으니까 약식으로 하지. 보건소 통해서.”

“네, 교수님.”

다만 조심하는 건 필요했다.

하필 이상한 바이러스 같은 거라도 나오면 큰일 아니겠는가.

물론 말을 하고 있는 신현태나, 듣고 있는 이현종, 수혁이나 딱히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눈앞에서 레벨 D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데 반해 자신들은 꼴랑 마스크 하나 끼고 있음에도 그랬다.

“일단 항생제부터 다 바꿔야지? 마취 가스통이나 증발기 감염에서 호발 하는 놈들, 통계에 나와 있지 않아?”

방금 현종이 말한 것처럼 대강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평소에도 줄줄 꿰어야 할 만큼 중요한 건 아니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정상 면역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접촉에서는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 지금 기억나는 건 일단 응고 효소 음성 포도상구균(CNS, coagulase-negative staphylococcus) 정도인데…….”

“마이크로코쿠스(micrococcus)도 호발 합니다. 슈도모나스 같은 호기성 세균들도 있고요. 드물게 대장균이 검출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어……. 너 그거 어디서 본 거야?”

“2011년 란셋에 실린 논문에서 봤습니다.”

“아, 아. 그거 기억난다. 맞아……. 그랬던 거 같아. 좋아, 역시 수혁이야. 항생제 일단 싹 바꾸자.”

“네. 응고 효소 음성 포도상구균은 대부분 메치실린 내성을 보이니까 항생제 반코마이신 쓰겠습니다. 괜찮을까요?”

반코마이신은 내성균, 즉 MRSA라는 소위 슈퍼 박테리아에 쓰는 약이었다.

이거 잘못 쓰다가는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보이는 VRE를 만들 수도 있기에 냅다 써서는 안 되는 약이기도 했다.

때문에 태화에서는 약을 쓸지 말지 여부를 결정할 때 감염내과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협진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태화 감염내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신현태가 함께 있지 않은가.

그냥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당연히 써야지! 마이크로코쿠스도 의심할 수 있으니까, 일단 검사 결과 나오기까지는 테트라싸이클린 커버하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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