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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208화 (208/1,303)

208화 야, 그럼 소화기도 (4)

“우우읍.”

애초부터 탈수가 아니라 다른 것을 의심하고 있던 수혁이 아니던가.

환자가 구토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아까 한 30분 전?”

“그때 콜 하시지…….”

“토하고 좀 좋아지셨다고 해서요. 한 번이었고.”

“하긴…… 랩은 나갔나요?”

“네. 바로 나갔습니다.”

“음.”

수혁은 씁쓸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 결과를 띄우면서였는데, 역시나 빨간 것들이 확 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수혁의 눈을 확 끄는 것이 있었다.

BUN, cr이라는 지표.

신장 기능을 가늠할 수 있는 녀석인데, 그게 슬금슬금 올라 있었다.

[이건 출혈과 설사로 인한 탈수로 생각됩니다.]

‘그럼 이것 때문에 토하는 건가? 결국, 탈수가 심해서 그래?’

[그렇다고 보기엔…… 지금 로페라마이드 쓰고 있는 데도 안 좋아지는 게 좀 이상합니다.]

‘음. 그래, 그게 정말 이상하지.’

점점 설사는 심해지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차트를 보아하니, 처치실로 옮긴 게 6시간 전인데 벌써 4번도 더 설사를 한 참이었다.

하루로 따지면 열 번도 넘는단 얘긴데 양상은 계속 감염으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 이 환자로 하여금 설사를 하게 만드는 원인이 따로 있단 얘기였다.

“바이털…… 바이털은 어떻죠?”

“혈압이 좀 내려갑니다. 110에 80입니다.”

“그건…… 유의하지 않은데. 심장박동 수는요?”

“1…… 130입니다.”

“130? 약 들어갔는데?”

“네.”

이건 유의한 수준을 넘어 위급하게까지 느껴졌다.

‘탈수가 아냐, 확신할 수 있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설사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이유일까요?]

‘아마도. 그거 변수에 넣어야 될 거 같아.’

[다른 정보를 더 넣어서 분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지금까지의 출력값과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알았어.’

수혁은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이고는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간호사는 아주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담당 의사이자 유능하기로 소문난 수혁이 긴장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머지는요? 열은 안 나요?”

“열…… 계속 37.1에서 3도였는데, 다시 재 보겠습니다.”

“네.”

37.1도나 37.3가 정상 체온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 그냥 두고 봤던 것은 탈수가 있으면 흔히 동반되는 증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

간호사가 열을 재다 말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아뇨, 잠시만…….”

“네.”

“아……. 맞네. 38.4도입니다. 열이…… 왜 열이 나지?”

간호사의 말에 환자가 반응했다.

계속 설사하다가 이제는 헛구역질까지 하고 있었기에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으……. 너무 힘들…… 너무 힘들어요.”

“어떤 증상이 가장 힘들죠?”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는 몰골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이제 그런 것에만 휘둘릴 애송이 의사는 아니었다.

공감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환자를 좋게 만드는 건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였다.

“어떤 증상이 가장 힘들죠? 대답해 주셔야 빨리 치료할 수 있어요.”

“가슴이…… 너무 두근거리고…….”

“그냥 빨리 뛰는 느낌이에요?”

“아뇨. 쿵쾅거리는 듯한…… 으…….”

쿵쾅거린다라.

단순히 심장이 빨리만 뛰어서는 저런 표현이 잘 나오지 않았다.

실제 심박출량 자체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리해 보자. 체온이 올라갔고, 심장박동 수가 올라가 있어.’

[아주 불안해 보이기도 합니다. 저거 보세요,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요.]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환자는 지금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야말로 불안 그 자체로 보일 지경이었다.

‘구토와 설사도 동반되어 있고…….’

수혁은 환자의 불안은 문제 목록에 넣으면서 동시에 그의 정강이 부위를 짚었다.

아까 BUN/cr 올라가 있어서 한번 짚어 본 것이었는데, 손을 뗀 이후에도 잠시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 말은 이쪽에 부종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환자는 지금 미약한 신장 부전 또는 심기능의 저하가 있었다.

모든 문제 목록을 환자의 이전 상황과 종합해 볼 때, 의심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싸이로이드 스톰…….”

[갑상샘 폭풍…….]

수혁과 바루다는 거의 동시에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예전 같았으면 바루다는 수혁이 같은 의견을 냈다고 해서 전혀 안도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수혁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어지간한 교수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말은 곧 이 진단명을 신뢰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갑상샘 폭풍 기준으로 보면 점수가 무려 60점이야. 100% 확신할 수 있을 정도야.’

[게다가 원래도 갑상샘 기능 항진증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출혈하고 A형 간염 모두 원래 갑상샘 기능 항진증이 있는 환자에서…… 갑상샘 폭풍의 가능성을 크게 올릴 수 있어. 왜 몰랐지?’

[너무 많은 것이 중첩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부 안 했다고?’

수혁은 뻔하지라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바루다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치 네 잘못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였다.

[아뇨,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지 않습니까? 데이터를 적용하는 능력이 부족했다고 판단됩니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수혁의 뇌 기능을 배려하는 거 같습니다.]

‘어…….’

그렇다고 결론이 수혁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진 않았다.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운동도 필요하겠습니다. 뇌 기능 향상에 규칙적인 운동, 특히 근육 운동이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연구가 있더군요.]

‘여기서 운동을 더 어떻게 해……. 난 몸도 불편한데.’

[그래서 더 해야죠. 죄송합니다. 제가 안일했어요.]

‘아니……. 안일해. 안일하라고, 더.’

[이럴 때가 아닙니다. 갑상샘 폭풍은 아차 하면 환자 훅 가요.]

‘아, 하긴.’

병명에 폭풍이라는 이름이 붙는 경우가 어디 흔하다던가.

이름 붙인 의사가 중2병 걸린 사람이라 폭풍을 유난히 좋아했다면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게 아니었다.

이 병은 말 그대로 폭풍 같은 경과를 보였다.

제때 진단되지 않으면 환자는 마치 폭풍우 치는 바람에 휩쓸린 돛단배처럼 침몰하기 일쑤였다.

“프로필티오우라실 투약 시작하고…… 루골 솔루션도 줄게요. 프로프라놀롤도 증량합니다.”

다행인 것은 진단만 되면 치료할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해서 수혁은 환자의 팔과 다리를 침대에 묶으면서 동시에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수혁의 오더를 들은 간호사가 바로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증상은 듣고 보니 비슷하긴 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갑상샘 호르몬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랩 안 보고 바로 주나요?”

“네? 아, 그거. 새벽에나 나오지 않아요? 일단 바로 줍시다. 이러다 환자…… 잘못될 수 있어요.”

“담당 교수님 노티 없이요?”

“일단 주세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책임은 제가 집니다.”

“어…….”

“불안하면 차트 남기셔도 좋아요. 빨리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뭐 어쩌겠는가.

주치의가 책임지겠다는데.

게다가 환자는 아까부터 정말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저 두근거려서도, 설사가 나와서도, 구토가 나와서도 아니었다.

그 정도로는 이만큼 괴로워하기 쉽지 않았다.

갑상샘 폭풍의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심리적인 고통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환자는 이제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몰아치는 불안감과 환각 및 망상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마 방금 수혁이 그의 팔다리를 묶지 않았더라면 몸에 있는 모든 수액 라인을 뽑는 것과 동시에 침대에서 떨어졌을 터였다.

“지금…… 지금 바로 들어갑니다!”

간호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환자의 고통에 압도되어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햇다.

딱히 담당 간호사만 급해진 것이 아니라, 스테이션에 있던 모두가 나와 돕고 있었다.

“네, 교수님.”

수혁은 처방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전화를 걸었다.

원래 펠로우 또는 김유나 교수에게 노티하라는 명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이렉트로 장강명 교수에게 건 상황이었다.

단순 출혈이라면 김유나 교수가 와도 해결이 되겠지만.

이건 갑상샘 폭풍이었다.

그 누구도 머릿속에 떠올리지 못했을 질환이었고, 동시에 결단을 빨리 내리지 않으면 환자를 잃을 수 있었다.

“어? 어…… 웬일이야, 새벽에?”

장강명 교수의 목소리에서는 졸음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각이 새벽 3시였다.

사람이 제일 피곤할 시간인 동시에 나이 든 사람이라면 다시 잠들기도 애매한 시간.

이런 시간에 깨웠는데도 당장 화를 내지 않은건 상대가 수혁이기 때문이었다.

‘별거 아닌 게 아니길 바란다……. 정말…….’

뒤늦게 시계를 본 장강명 교수는 참을 인 자를 그리며 수혁의 답변을 기다렸다.

“오늘 회진 보고 처치실로 뺐던 환자…… 현재 갑상샘 폭풍 증세 보여서 루골 솔루션, 프로필티오우라실 투약 시작했고, 경구약 투여 가능한 상황되면 프로프라놀롤 증량하려고 합니다. 워낙 급한 상황이라 선조치 후 보고드립니다.”

“어……. 뭐라고?”

별거이길 바란 건 사실이었지만.

이렇게까지 큰 건이길 바란 적은 없었는데.

장강명은 어느새 훅 달아난 잠을 다시 잡을 생각도 못하고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네, 교수님. 환자 현재 심장박동 수 130 이상, 체온 38.4도, 경미한 싸이코시스에 설사, 구토 및 구역감을 동반하고 있으며 정강이에 오목부종(pitting edema) 소견 보입니다. 이를 갑상샘 폭풍 기준으로 환산했을 시 점수는 70입니다. 아까 약 주려고 할 때만 해도 60이었으니, 오히려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 어, 어…….”

장강명 교수는 필사적으로 수혁이 말한 바를 따라잡으려 애썼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갑상샘 폭풍은 소화기내과에서 보는 질환은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태화의료원 교수쯤 되면 지속적인 컨퍼런스 참여 때문에라도 다른 분야를 완전히 잊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이제는 쫓겨난 서효석 교수라면야 또 모르는 일이었지만.

장강명은 소화기 분과장을 맡을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었다.

“어, 그래, 그…… 어. 알았어. 그럼 지금 가야겠다. 환자 상태는…….”

“우선 중환자실로 내리겠습니다. 처치실로 뺼 때 혹시 몰라서 병실 하나 확보해 놨습니다.”

“어……. 잘했다. 그…….”

“보호자도 불렀습니다. 오면 제가 설명 먼저 드리겠습니다.”

“어, 그래. 어……. 나 차 타면 20분이면 갈 거야. 어, 환자 내리고…… 그, 잘 보고 좀 있어 줘.”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서 상황의 위급함을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수혁이 내리고 있는 판단이 얼마나 정확하고 또 적절하며 신속한지도 알 수 있었다.

‘애가…… 애가 당황하질 않네?’

그것만 해도 대단한데,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멘탈이었다.

폭풍 앞에서 이렇게까지 침착할 수 있다니.

이현종이 애 데리고 어려운 케이스 많이 겪게 해 줬대서 그냥 그런갑다, 경험 쌓게 해 주나 보다 했는데.

이제 보니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현종은 자기 아들을 숫제 괴물로 키우고 있었다.

‘너무…… 너무 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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