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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93화 (193/1,303)

193화 쉽게 확신하지 마 (3)

어화둥둥 하는 분위기 속에 수혁이 입을 열었다.

[이 양반들은 참 한결같아서 좋네요. 기계 같아.]

바루다의 추임새와 함께였다.

다행한 일은 바루다의 목소리는 이들에게 닿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잠시 움찔했다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 간극이 조금 어색했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감내했다.

‘우리 수혁이…… 신기 있어, 확실히.’

조태진은 신 중에서도 미신을 믿었고.

‘나중에 문제 되기 시작하면 내가 반드시 오진승 선생님한테 연결시켜 줄게…….’

신현태는 정신건강의학과의 역량을 믿었다.

“어떤 케이스야?”

이현종이야 그런 사소한 일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라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환자분 나이는…… 72세입니다. 차트 띄우면서 대강 설명 드릴게요.”

“어어. 그래.”

“이놈의 거는 왜 이렇게 느리냐? 과장 뭐 해?”

“누르자마자 되는 게 어딨어요? 그리고 병동 예산은 원장 일이거든?”

참으로 왁자지껄한 브리핑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레지던트가 환자 노티하는 광경이었다면 이 새끼 뭐 잘못한 거 없나 하고 매의 눈을 하고 있을 양반들인데.

지금은 그저 소풍 나온 애들 같았다.

규선은 그 무리를 살짝 피해 자리를 잡았다.

‘부럽다……. 넌 병원이 참 편하겠구나…….’

아침 댓바람부터 그냥 교수도 아니고 과장에 원장까지 대동하고 웃고 떠들고 있다니.

심지어 손에는 큼지막한 김밥도 하나씩 쥐고 있지 않은가.

규선이 알기로 저건 조태진이 매일 싸 가지고 다닌다는 조태진 표 시그니처 김밥이었다.

‘교수님이 김밥을 싸다 바치는 레지던트가 있다니.’

<세상이 이런 일이>에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따위 생각이 자꾸만 드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본원 검진 센터에서 시행한 위 내시경상 위암이 발견되었고, 워크 업 위해 입원하였습니다. 현재 CT, PET CT 검사를 진행한 상황입니다.”

“으음.”

예전 같았으면 아마 쓸데없는 질문들이 벌써 튀어나왔을 터였다.

위암이 검진에서 발견되어 입원했다면 그냥 일반적인 케이스 아니냐 어쩌냐 하면서.

하지만 지금은 그저 추임새만 있을 뿐 조용했다.

특히 이현종은 이보다 더 경청하는 모습을 또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형……. 회의 때도 이렇게 하면 이사장님이 이뻐할 텐데.’

신현태만 아주 잠시 조금은 나무라는 투로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티를 내지는 않아서 수혁은 곧장 말을 이을 수 있었다.

환자가 입원해서 시행한 CT를 띄우면서였다.

“보시면 CT상 다발성 골 전이가 확인됩니다.”

“어……. 그렇네.”

CT를 보자마자 조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까만 점이 알알이 들어박힌 뼈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원인 질환에 따라 실제 양상이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암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저건 명백한 전이였다.

“그리고 여기 보시면 목에도 임파선 전이가 있습니다. 다른 위치에도 좀 있고요.”

“아……. 그렇네. 쇄골 하 레벨에 있네. 전이가 엄청난데? 조직 검사 됐어?”

쇄골 하 쪽의 경부 임파선 전이는 위암에서 드물지 않게 관찰되는 소견이었다.

다만 다른 임파선 전이는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과했다.

골 전이는 더 이상했고.

위암에서는 어지간히 진행하지 않는 이상 골 전이까지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노인 인구에서는 의료 서비스 접근이 아무래도 중장년층보다 떨어져서 심하게 진행된 후 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검진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이루어진 내시경에서 발견되었을 터였다.

“네, 조직 검사 결과 인환세포 암(Signet ring cell cancer) 소견 보였습니다.”

“특별히 드문 케이스는 아닌데. 크기는 어땠지?”

“내시경 사진 띄우고 설명 드리겠습니다.”

“어, 그래. 그러고 보니까 내시경도 안 봤네.”

주로 떠드는 이는 아무래도 조태진이었다.

신현태는 사실 암 본 지는 오래돼서 구경꾼 심정으로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항암제나 암 자체의 영향 때문에 면역이 억제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을 대 보라고 한다면야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고 한 시간도 넘게 떠들 수 있겠지만.

암 자체는 많이 까먹은 상황이라고 보면 되었다.

‘흐음…….’

반면 이현종은 음흉한 미소만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또한 신현태처럼 암 환자를 직접 보진 않지만.

아니, 아예 심장이라는 장기 자체가 암과는 좀 동떨어진 기관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케이스는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있지 않던가.

골프고 미식이고 다 떠나서 제일 좋아하는 취미가 어려운 케이스 진단하기였으니.

‘그냥 위암은 절대 아닐 거 같은데.’

머릿속에 벌써 떠오르는 상황이 몇 있었다.

이게 그중 하나일지, 아니면 아예 다른 상황일지가 궁금했다.

“내시경 사진을 보면 육안으로 보았을 때 약 1.5cm가량 되는 표면 함몰형 덩이가 위각에 위치합니다.”

“작네? 조기 위암이잖아? 대강…… EGC IIc 정도 되어 보이는데.”

“네. 내시경상에서는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는 추후 ESD도 고려했습니다.”

ESD란, 내시경 점막 하 절제술(Endoscopic submucosal dissection)을 의미했다.

이현종이 속한 순환기 내과에서 시행하고 있는 관상 동맥 스텐트 삽입술이 그랬던 것처럼 조기 위암에 대해 수술 없이 내시경으로 시술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해 아주 빠르게 일반 외과 영역을 침탈하고 있었다.

“흐음……. 근데 CT에서는 저렇게 나왔다. PET도 그렇고. 전이가…… 조기 위암 사이즈에서 너무 많네. 환자 나이랑 성별이 뭐라고?”

“남자 72세입니다.”

“남자 72세. 남자 72세…….”

조태진은 몇 번인가 환자 신상을 중얼거렸다.

‘저거 설마 내 환자 얘기인가?’

그 목소리가 꽤 컸기에 규선 또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검진 결과 위암이 나왔고, CT에서 골 전이가 있는 남자 72세 환자가 이 병원에 지금 또 있을까?

입원 병상이 무슨 만 개씩 있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보면 되었다.

‘야, 수혁아……. 이상하면 나한테 얘기하지…….’

이걸 왜 여기서 공개 처형하고 있니.

어제는 지상이한테 그러더니.

원망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실 수혁은 그냥 얼굴이나 볼 생각으로 왔는데, 반강제적으로 발표하게 된 상황이라는 건 꿈에도 떠올릴 수 없었다.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고 하기엔 발표가 너무도 유려했으니까.

“그럼 전립선암 동반된 거 아닌가?”

규선이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한 사이, 조태진이 입을 열었다.

“오, 그래!”

그런 조태진을 보면서 신현태는 무릎을 딱 쳤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전립선암 동반이라니.

어차피 노인 인구에선 모르고 앓다 가는 경우도 많은 게 전립선암이라 그랬다.

‘글쎄…… 본 스캔을 봐야 더 확실하겠지만…….’

반면 이현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볼 때 전립선암의 골 전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기에 그랬다.

그리고 수혁은 그런 이현종의 고민을 읽기라도 한 듯, 본 스캔 사진을 띄웠다.

“다수의 골 전이를 평가하기 위해 본 스캔을 찍었습니다. 결과 골 형성성 병변(Osteoblastic lesion)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위암이나 전립선암에서 모두 흔히 나타나는 골 용해성 병변(Osteolytic lesion) 소견은 아닙니다.”

“어…….”

“그리고 전립선암의 표지자인 PSA도 정상이었습니다.”

“아, 그럼…… 그럼 그냥 위암인가?”

수혁이 제시한 자료에 조태진은 빠르게 꼬리를 말았다.

신현태는 그런 조태진 뒤로 숨다시피 했다.

‘이제 암 얘기 나오면 그냥 존나 가만히 있어야겠다…….’

아까 나댄 것을 후회하면서였다.

“지금까지 담당 교수님과 주치의 판단은 그렇습니다. 다만…….”

“네가 볼 땐 아닌 거 같다, 이거지?”

“네.”

“음.”

조태진은 감히 교수 판단을 두고 아니라니, 건방지네 마네 하는 소리 따위는 입에 담지도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않았다.

‘뭐지?’

그저 고민할 따름이었다.

우리 수혁이가 그냥 저럴 리는 없으니까.

둘 중에 틀렸다면 그건 나일 테니까.

고작 레지던트를 상대로 이런 생각이 든다면 은퇴를 고려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정상일 텐데.

이상하게 조태진은 웃음만 나왔다.

‘내 심장이 고장 났나…….’

그래도 괜찮을 거 같았다.

옆에 이현종이 있지 않은가.

어지간히 고장 난 거 아니면 고쳐 줄 터였다.

조태진이 쓸데없는 고민에 빠진 동안 수혁은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지금 환자 치료 계획은 전이가 동반된 위암에 준하여 세워져 있습니다. 나이를 고려해서 호스피스…… 즉 완치 목적의 치료가 아닌 완화 치료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말기 위암이면 그럴 수 있지. 수술적 절제는 계획에서 빠질 테니까. 아, 나 또 떠드네. 왜 이러니, 정말. 너무 집중했나 봐.”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주절거리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입이 방정인 경우가 거의 없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수혁만 있으면 이랬다.

“하지만 이게 조기 위암일 가능성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전립선암은 아닌 것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다른 질환이 동반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 그래야지. 계속해 봐.”

내내 조용히 있던 이현종이 침묵을 깬 것은 바로 이때였다.

역시나 조기 위암과 다른 질환이 같이 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였다.

그는 일견 푸근해 보이는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설마 이현종이 우리와 같은 답을 벌써 도출한 걸까요?]

‘그럼 진짜 괴물인데.’

[괴물 맞습니다, 이현종은.]

‘그래도…… 내가 이거…… 이거 의심하려고 어제 본 논문이 몇 갠데?’

[이현종 취미가 논문 보는 거잖아요. 평생을 그리 살았으니, 아직 따라잡으려면 멀었죠.]

‘하……. 미쳤네.’

수혁은 그 미소에 잠깐 흔들렸지만, 일단 준비한 말을 잇기는 했다.

“조기 위암은 그대로 두고, 뼈와 임파선 병변에 더 집중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MRI를 보니까, 전체 척추뼈와 양측 골반뼈에서 이질적 신호 세기(heterogeneous signal intensity)가 관찰되었습니다. 골수 질환이나, 활발히 조혈 작용이 일어나는 곳에서 보이는 소견이죠.”

“그래,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에 뼈에서 검사한 조직 검사 슬라이드를 봤는데…… 리포트는 악성 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더군요. 실망했지만 그때 내과에서 제공한 임상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제가 다시 리뷰했습니다.”

“뭘 의심하면서 리뷰한 거지?”

이현종은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아주 확신에 찬 눈동자는 아니었지만, 가늘게 떨리지도 않았다.

아마 두어 개 정도의 진단명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혁은 그중에 반드시 이 진단명이 있을 거라 확신하며 입을 열었다.

“여포성 림프종(Follicular lymphoma)입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