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79화 (179/1,303)

179화 원인이 없어? 배에 물이 차는데? (4)

“어……. 그래. 일단 당장 인터벤션 할 필요는 없어 보이거든? 안티 코아귤런트(Anti coagulant : 항응고제) 써 보면 될 거 같아. 그래, 수혁아.”

김진실 교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었지만.

끊고 나서도 웃지는 못했다.

수혁의 노티 아닌 노티를 듣고 나니 머리가 복잡해진 탓이었다.

‘레지던트가 Liver dynamic CT 찍을 생각을 단독으로 할 수 있던가?’

글쎄.

영상의학과와 상의하고서는 가능할 법도 했다.

다른 분과야 어떨지 몰라도 이하언 교수를 분과장으로 해서 무려 열 명도 넘는 우수한 교수진이 포진하고 있는 복부영상의학과는 임상과와 아주 활발히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그냥 내과 레지던트가 단독으로 평가하고 또 판독까지 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아…….”

김진실 교수는 심지어 그 판독이 정확하기 짝이 없었단 것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치료 계획까지 완벽하게 수립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 그나마 수혁을 인간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근거였다.

‘누구는 자기 전문 분야 아닌 것도 전문과 뺨치게 잘하는데, 누구는…….’

생각할수록 열이 뻗쳤다.

왜 이렇게 다를까.

같은 병원에서 수련받는 처진데.

심지어 요새 영상의학과는 1등만 오는 과 아니었나?

나는 1등이었는데.

“이혜영 선생…….”

김 교수는 누군가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사나운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모습에 이혜영 선생, 그러니까 영상의학과 레지던트 3년 차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면서였다.

‘와, 개무섭다.’

화만 안 나게 하면 참 좋은 선생님이라더니.

왜 그런 말이 나도는지 알 거 같았다.

화가 나면 나쁜 선생님이었다.

“어디 보니?”

“네? 아니, 네. 죄송합니다.”

“너 여기 왜 왔는지는 알고 있어?”

“그…….”

이혜영은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빨리 오라고 해서 왔는데, 상대는 화만 내다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인격 바꾸는 스위치라도 있는 건지 뭔지 전화할 땐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너 대단하다’라던지, ‘커피라도 사 줄게’와 같은 칭찬까지 해 댔다.

‘내가 뭘 잘못해서 왔을까.’

통화하는 와중에도 계속 생각했는데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화난 얼굴을 마주한다고 해서 생각날 리가 없었다.

해서 입을 다물고 묵묵히 있으려니, 김진실 교수가 아주 거친 소리를 내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솔직한 얘기로 자판을 치는 건지 때리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이거 봐 봐.”

얼마 후, 김 교수는 화면을 가리켰다.

“아.”

이혜영은 입을 살짝 벌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화면에 뜬 초음파 사진은 바로 오늘 자신이 찍은 것이었으니까.

‘판독을 뭐라고 줬더라.’

그래, 정상으로 줬던 거 같았다.

기억하기로 오늘 이상한 소견은 없었던 거 같았으니까.

“이거 어떤 거 같아?”

하지만 교수가 이 야밤에 당직 레지던트를 불러다 정상 소견의 초음파를 뭐냐고 물을까?

그건 아닐 거 같았다.

‘아씨, 뭘 놓친 거지?’

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부끄러운 얘기였지만, 이혜영은 3년 차치고 초음파 실력이 아주 모자란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복부는 더했다.

이놈의 배는 장기도 많았거니와 윈도우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보이는 게 천차만별이었다.

“빨리 말 안 해? 네가 판독했잖아. 이제 곧 3년 차 되는 거 아냐?”

“그…… 정상으로 줬습니다.”

“정상? 네 눈에는 이게 정상으로 보이니?”

정상이라는 말이 기어코 이혜영 입에서 나오자, 기가 찬다는 반응이 툭 튀어나왔다.

‘저는 레지던트잖아요……. 가르쳐 줘야 알죠…….’

그게 좀 과하다 여겼는지 이혜영은 남몰래 입을 삐죽였다.

아마 이 생각처럼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모르는 것에 불과했다면 김 교수도 이렇게까지 화내진 않았을 터였다.

김 교수가 화가 치솟은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 환자 입원 환자지?”

“아, 네.”

“뭘로 입원한 줄은 알아?”

“어…….”

보통 영상의학과 하면 환자를 안 보는 과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자기 환자가 없는 건 맞는 말이긴 했다.

그렇다고 정말 환자를 안 보면 안 되었다.

그러면 사고를 치게 되어 있었다.

지금 이혜영이 이러는 것처럼.

“몰라? 차트 한번 안 열어 보고 초음파 보겠다고 내렸어?”

“그…….”

“내가 다른 애들이 너 게으르다고 할 때 설마 했어. 다른 건 몰라도 영상의학과 의사가 게으른 게 말이 되니? 우리가 게으르면 환자가 죽는데, 그런 애가 어떻게 영상을 기어들어 와?”

김 교수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혜영을 노려보다가 말을 이었다.

“이 환자 담낭 용종으로 입원한 환자야. 이번에 온 건 팔로우 업 하러 온 거고. 전에 찍은 CT만 봐도 그건 알겠다. 너 설마 CT도 안 봤어?”

“죄송합니다.”

“하……. 이혜영 선생. 그렇게 귀찮으면 초음파라도 잘 보든가. 지금 이게 제대로 된 윈도우니? 모르면 물어봐야 될 거 아냐. 그냥 귀찮다고 이렇게 괜찮다고 넘기면 임상과에서 우릴 어떻게 믿어. 지금도 거기 교수님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고 나한테 연락 온 거 아냐.”

김 교수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어 가며 다른 영상을 띄웠다.

한눈에 봐도 영상 퀄리티가 달랐다.

이건 교과서적인 윈도우에서 제대로 찍힌 뷰였다.

“그쪽 교수님이 안 그랬으면 우리 이 환자 놓치는 거야. 더 커졌다고, 용종이! 당장 내일 들어갈 수술방 잡고 있다고. 알아? 네가 이 환자 죽일 뻔한 거야!”

“아…….”

그제야 이혜영은 자기 잘못을 알 수 있었다.

담낭에 용종이 있는 환자였고, 그 용종의 크기 변화를 보기 위해 입원했을 줄이야.

그런 줄 알았다면 좀 자세히 들여다봤을 텐데.

후회와 자책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불충분했다.

그렇다고 지금 이혜영을 마주하고 있는 김진실 교수가 판단했다.

‘저거 저래 가지고 나가면 병원 개망신이지…….’

아니, 망신은 둘째 치고 환자가 죽을 게 뻔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됐다.

전문의 자격증을 막 나눠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싫어도 4년을 보내고 나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들은 모를래야 모를 수 없게 만들어야만 했다.

“이혜영 선생.”

“네, 네.”

“내일부터 복부 초음파 모든 세션 다 들어와.”

“네……?”

“어차피 복부 파트 아냐? 이번 달. 맞지?”

김 교수의 말에 이혜영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초음파를 하기 싫은 것도 싫은 거니와, 이미 계획된 커리큘럼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 네. 근데 저 이하언 교수님이 판독…….”

“이하언 교수님 얘기를 네가 왜 해? 분과장님한테는 내가 따로 말씀드릴 거야.”

물론 곧 그 생각이 주제넘었단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하긴 김 교수님이…… 이하언 교수님 직계 제자지.’

레지던트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다고 하지 않던가.

그때 이미 콕 집어서 대학원 지도 학생으로 들이고, 논문도 같이 쓰고, 펠로우 자리도 태화 의료원에서 딱 모자란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병원으로 보내서 수련받게 하고는 돌아오자마자 전임으로 발령내 버렸다.

지금 당장 실세라고 할 수는 없어도 곧 실세가 될 사람이었다.

“그리고 협진 초음파도 네가 다 해. 모르겠으면 위 연차 펠로우한테 물어봐. 여의치 않으면 나라도 부르고.”

“아…….”

“아?”

“아뇨,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너 내가 이번 일 하나 때문에만 하는 말 아닌 거 알고 있지? 그냥 우리 과에서만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라, 임상과에서도 말이 나와. 너 협조 잘 안 한다고.”

“그…….”

“변명할 필요 없어. 나는 그냥 보여 주면 돼. 네가 그런 애 아니라는 거. 알았어?”

“네, 네. 죄송합니다.”

이혜영 선생이 신나게 털리는 동안 수혁은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온 환자를 바라보면서였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CT보다는 촬영 시간 자체가 길어서인지 홀가분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내가 뭐에 홀렸었나.’

천천히 라포를 쌓은 후 처방받은 게 아니라 그냥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찍어 버린 탓이기도 했다.

하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 별 관계 없었다.

뭐가 버드 키아리 신드롬을 일으켰는지 또 알아봐야겠지만.

아무튼, 당장 있는 문제는 알아냈으니까.

“환자분 좀 어떠셨나요?”

그 당당함이 전달되어서일까.

아니면 아깐 미처 몰랐던 지팡이를 봐서일까.

환자는 미처 불만을 토로하진 못했다.

“그냥 좀…….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대훈은 우선 수혁을 지나쳐 가기 위해 침대를 훅 하고 물었다.

설마하니 방금 찍은 CT에서 뭘 확인했을 거라 생각진 못한 탓이었다.

“아, 잠깐만.”

수혁은 그런 대훈의 앞에 지팡이를 짚었다.

“엇. 네, 선생님. 어떤…….”

“CT 설명 드려야지.”

“아……. 벌써 보셨어요?”

“어. 너도 같이 들어. 영상 보면서.”

“아, 네. 선생님.”

수혁은 능숙하게 스테이션에 있는 탭 하나를 환자 쪽으로 돌렸다.

태화 전자에서 설치한 거라는데 꽤 쓸 만했다.

실제로 환자 중에 여기서 쓰는 걸 보고 산 사람도 있다고 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요. 치킨 네 가지 맛 언제 먹냐고.]

‘알았어, 알았어.’

수혁은 바루다의 성화에 못 이겨 서둘러 CT 소견에 대해 설명했다.

대상이 환자뿐 아니라 대훈도 있었기 때문에 꽤나 자세했다.

그러면서도 명확했고 또 쉬운 단어로 이루어져 있어서 환자도 알아먹을 수 있었다.

즉 이제야 겨우 자기 간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망가졌는지 알게 되었단 뜻이었다.

“이게 정맥이 막히면 간 전체에 저류가 생기면서 부어요. 그래서 간이 커졌던 거고……. 압력이 올라가니까 간으로 들어가는 혈관들도 붓게 된 거죠. 특히 동맥보다는 간문맥이 부으면서 복수가 생긴 거고요. 아마 입원했을 땐 이뇨제를 경구뿐 아니라 주사로도 써서 잠깐 좋아졌던 거 같아요. 이거 치료 중의 하나가 이뇨제이긴 하거든요. 핵심 치료는 아니지만.”

수혁은 대훈과 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전에도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간 경화가 좀 있어요. 특히 여기 간 주변으로 해서 죽은 부분이 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다 나빠진 건 아니에요. 치료가 되면 간 기능은 돌아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게 생긴 지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닌 것으로 보이거든요.”

“아……. 나아질 수 있는 거예요?”

“네, 그런데.”

“그런데요?”

이제 환자는 완전히 수혁에게 몰입하고 있었다.

전에 입원했을 때를 포함해서 지금처럼 명확하게 설명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수혁의 입에서 그런데가 나왔을 때 긴장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피가 응고하게 된 원인까지는 아직 몰라요. 여러 가지 원인 질환이 있을 수 있는데…….”

“아……. 그걸 모르면 어떻게 되나요?”

“지금은 항응고제로 어찌어찌 뚫린다 해도 또 생길 수 있죠. 그리고 그 원인 질환 중에서도 위험한 것들이 있어서요. 뭐……. 몇 가지는 배제할 수 있기는 했는데.”

“지금 알 수는 없나요?”

“지금은…….”

환자의 말에 바루다가 발작했다.

[그걸 알면 점쟁이지 의사인가. 빨리 치킨 먹읍시다. 어차피 어? 항응고제 와파린 때릴 거잖아요.]

‘잠만 있어 봐. 하나만 물어보자. 하나만.’

수혁은 그런 바루다를 달래며 입을 열었다.

“음……. 가능성이 크진 않은데. 혹시 최근에 경구 피임제를 먹기 시작한 일이 있나요?”

“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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