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원인이 없어? 배에 물이 차는데? (2)
수혁은 환자가 있는 병실로 가면서도 내내 원인에 대해 생각했다.
‘술은 아냐. 매일도 아니고……. 주당 2, 3병으로는 그렇게 될 수는 없지.’
[윌슨병이 아닌 게 좀 충격이네요.]
‘그러게.’
보통 이럴 땐 윌슨병이던데.
비록 수혁이 뭐 경험이 아주 많은 의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보통’이라든지, ‘대개’라든지 하는 단어를 쓸 정도는 된 참 아니던가.
‘그래서 내과가 재밌는 거지.’
덕분에 의외의 상황을 접할 때가 간혹 생겼다.
다행인 점은 이게 충격으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재미로 다가간다는 점이었다.
[벌써 맨날 다 맞히면 이상하긴 하죠. 의학은 방대하고 수혁은 아직 공부를 x도 안 했으니까.]
‘시꺄…….’
물론 이럴 때마다 바루다의 갈굼이 뒤따르긴 했지만.
이 정도야 뭐 웃어넘길 수 있는 내공이 생긴 지도 한참 된 마당이었다.
“환자분,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이수혁 선생님 오셨습니다.”
수혁이 병실 앞에서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대훈은 안으로 조르르 들어갔다.
그리곤 수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벌써 학회 발표도 여러 번 하시고, 논문도 내신 우수한 선생님이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아무래도 아직 교수가 된 건 아니라 뭔가 좀 자랑이 옹색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일반인이 듣기엔 학회 발표나 논문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그럴싸하지 않겠는가.
해서 환자는 흐음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네, 선생님. 들어오시죠.”
“음?”
다만 수혁은 아직 너무 어려 보이는 게 흠이었다.
학회니 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을 땐 그래도 중년의 의사를 떠올렸는데.
막상 들어온 건 대훈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사람이어서 환자는 조금 언짢은 얼굴이 되었다.
퇴원하고 1주일도 안 돼서 같은 증상으로 입원한 것도 짜증 나고.
또 6인실이 아니라 1인실에 입원한 것도 짜증 나는데 이런 애가 오다니.
그나마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하지 않은 것은 대훈의 태도 때문이었다.
“선생님, 아까 말씀드린 환자분입니다. 원인 불명의 간 기능 이상 및 복수 증세로 입원했습니다.”
말투도 공손하기 짝이 없는데, 자세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러다 머리가 바닥에 닿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보통 비슷한 연배에서 저렇게까지 굽신거리던가?
응급실에 있을 때도 인턴이니, 레지던트니 하는 사람들을 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았다.
‘모르긴 해도……. 생긴 것보다는 연배가 위인가 보다. 하긴…… 이 선생님은 머리가 좀 없잖아. 들어 보이는 편이지.’
해서 환자는 곧 언짢은 기색을 풀고 수혁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이수혁입니다.”
“아, 네.”
수혁은 그런 환자에게 영업 미소를 띠며 인사했고.
동시에 환자의 안색을 살폈다.
[황달은 없군요.]
‘복수는 꽤 많아. 입원 당시 찍은 CT 정도는 되겠어.’
[입원 당시 줄었다고 하던데 그만큼 다시 찼다고 봐야겠군요.]
호전된 이유도 모르고, 악화된 이유도 모르는 셈이었다.
그야말로 환장해 돌아가시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환자분, 몇 가지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네.”
계속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거면 굳이 환자를 찾아올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퇴원하고 음주하신 적이 있나요? 기분 나빠하시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주 중요한 절차라서요.”
“아뇨, 안 마셨어요. 그리고 괜찮아요. 저도 빨리 낫고 싶거든요.”
“네. 음, 금주했는데 안 좋아졌군요.”
그렇다면 역시나 알코올에 의한 간 병변은 배제해야 할 터였다.
이게 꽤 정직한 질환이라 술을 먹으면 심해지고, 끊으면 좋아지거나 적어도 나빠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질환을 배제하긴 했지만, 딱히 기쁘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가능성은 적은 질환이었으니까.
“퇴원 당시 몸무게 기억하시죠?”
“아……. 네. 그때 55kg였어요.”
“그게 바로 늘던가요?”
“아뇨, 53kg까지는 줄었었어요.”
“거의 평상시 몸무게였네요?”
“네.”
수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방금 본 입원 차트를 떠올렸다.
[지금은 다시 63kg입니다.]
‘10kg이 늘었구만.’
사람이 제아무리 폭식을 한다고 해도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10kg을 살로 찌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 말은 곧 이번에 늘어난 10kg은 전부 복수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뜻이었다.
“이뇨제도 꾸준히 드셨는데, 이런 거죠?”
“네? 아……. 네. 아무튼, 처방받은 약은 계속 먹었어요.”
“그렇군요.”
도대체 뭘까.
수혁으로서는 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갑갑함이었다.
이걸 타개하려면 뭘 어째야 될까.
[CT를 다시 찍어 보죠.]
‘CT를 뭐 하러 다시 찍어? 1주일 만에 소견에서 얼마나 변한다고?’
그때 바루다가 의견을 개진해 왔다.
평소와는 달리 아주 혹할 만한 의견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가.
이미 찍었던 CT를 또 찍자니.
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더니, 이내 바루다는 거의 무슨 걸레짝 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단 생각이 들 때쯤이 돼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설마 같은 CT를 또 찍자고 하겠습니까?]
‘그럼 뭔데. 내가 모르는 CT가 또 나왔냐?’
[어휴.]
그리곤 얼마 말을 섞지도 않고선 한숨을 쉬어 댔다.
슬슬 또 선 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게 결국, 오늘 치킨은 없던 일로 하자가 되자 바루다도 급해졌다.
[아니, 이 양반이 왜 이래. 왜 이렇게 승질이 급해.]
‘네가 빡치게 하잖아.’
[그렇다고 치킨으로 협박을 해요? 사람이 인성이 덜 됐네?]
‘너한테 내가 인성 운운하는 소리를 들어야겠냐? 그리고 우리 환자 앞에 있다. 아무리 가속해서 대화한다고 해도 이제 이상하게 여길 때쯤 됐어.’
아닌 게 아니라, 침묵이 벌써 5초를 넘어가고 있었다.
짧은 시간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한창 대화 중에, 그것도 의사와 환자의 대화 중에 발생하는 5초간의 정적은 꽤나 길었다.
“정말로 다 드신 거죠? 간혹 빼 먹는 분도 계셔서.”
“다 먹었다니까요?”
다행히 대훈은 간혹 수혁이 이런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을 끌었다.
물론 대훈이 딱히 이쪽으로 전문적인 학위를 가지고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에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시도일 뿐이었다.
이 애처로운 시간이 너무 오래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뭔데.’
[Liver dynamic CT는 안 찍었잖아요. 이미 알코올성 간 병변은 배제했으니……. 진짜 뭐가 문제가 있는지 봐야죠.]
‘아.’
Liver dynamic CT.
간이라는 장기가 가진 특성 때문에 존재하는 방식의 촬영 기법이었다.
총 세 개의 페이즈로 나뉘는데, 각각 동맥, 간문맥 그리고 지연 페이즈 이렇게 불렸다.
보통 동맥 페이즈에서는 동맥을 자세히 볼 수 있고, 지연 페이즈에서는 정맥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일반적인 CT에 비해서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훨씬 많았다.
‘그래, 그게……. 감별점을 줄 수 있겠네.’
[그렇죠? 뭐 판독이 좀 어려운 게 단점이기는 한데.]
아마 바루다의 말을 다른 내과 의사가 들었다면 어이가 없어서 웃었을 터였다.
복부 영상 검사는 그게 초음파가 됐건 CT가 됐건 MRI가 됐건 간에 다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히 숙달된 소화기 내과 전문의가 아니고서는 쉬이 판독할 수가 없었다.
아니, 숙달된 소화기 내과 전문의라 해도 영상의학과 전문의와의 토의가 아주 자주 필요했다.
‘모르겠으면 김진실 교수님한테 여쭤보지, 뭐.’
[인맥이 있어 좋군요.]
다행히 수혁은 아는 사람이 좀 있는 편이었다.
그것도 아주 우수한 사람으로.
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검사 하나만 더 해 봤으면 좋겠네요.”
“검사요? 저번에 어지간한 건 다 했는데요?”
자신 있다고 해서 항상 환영받는 건 아니었다.
특히 꺼낸 것이 검사 더 해 보자는 말이면 그랬다.
“네, 그러시긴 한데. 그때보다는 지금 더 많은 정보가 있으니까요. 더욱 필요한 검사를 해 볼 수 있습니다.”
“음…….”
물론 수혁 정도 되면 아주 다양한 환자들과 지지고 볶고를 많이 해 온 덕에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CT를 찍어 볼 거예요. 전에 찍은 거랑은 좀 다릅니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음…….”
“기록에 보면 찍는 당시에 별로 부작용은 없었던 거 같은데, 맞나요?”
“네, 뭐. 조금 뜨끈한 정도?”
“이것도 크게 다르진 않아요. 약간 검사 시간이 긴 게 단점인데. MRI처럼 길지는 않습니다. 대훈아, 언제 가능한지 알아볼래? 새벽에라도 가능하면 찍고 보자.”
수혁은 아주 자연스럽게 대훈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훈이야 바라던 바였기에 급하게 그의 지시에 따랐고.
환자는 내가 한다고 했나? 하면서도 그냥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움직이는 대훈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될 거 같았다.
“오, 선생님! 한 20분 뒤에 내려보내라는데요? 빈다고.”
“그래? 야, 그럼 이송 요원 부를 시간이 있나?”
“제가 인턴 샘이랑 다녀오겠습니다!”
“아……. 그래, 그래. 그래라.”
게다가 막 지금 찍을 수 있다고 기뻐 날뛰는 걸 본 후에는 이러다 못 찍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자, 환자분 갈게요.”
“어……. 네. 감사합니다.”
결국에는 감사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죄송합니다, 저는 다리가 이래 놔서.”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빨리 찍고 올게요!”
사과하는 수혁을 향해서는 상당히 열정적으로 손까지 내저어 주었다.
복수만 안 차 있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아니라고 했을지도 몰랐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바루다가 한마디 툭 꺼냈다.
[역시 세상에 나쁜 사람은 별로 없네요.]
‘환자들이야 아파서 그렇지. 낫게만 해 주면 다 착해져.’
[뭐……. 아닌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그랬죠.]
바루다는 병원 데이터를 쓱 하고 훑으며 대꾸했다.
개중에는 다 났는데, 왜 보험에서 커버 안 되는 치료를 했냐고 하면서 담당 의사 명치를 후려 깐 환자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듣기만 해서는 진짜 특이한 케이스 같겠지만.
의외로 왕왕 있는 일이었다.
태화 의료원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거의 매달 있었다.
‘슬슬 영상 올라오네.’
20분 안에 오라더니.
내려가자마자 냅다 찍고 있는 모양이었다.
실시간으로 영상이 넘어오고 있었다.
옛날에는 이것도 한세월 걸렸다고 하던데.
이현종이 원장 된 후로 돈 들여 망을 깔고 난 후에는 거의 몇 배는 빨라져 있었다.
[돈지랄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죠.]
평소에는 별로 체감이 안 나는데, 이럴 때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일단 보기나 해. 일반 CT에서 안 보였던 게 보여야 되는데…….’
[우리 눈에 안 보여도 의미가 있을 수 있어요. 이건 영상 전문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보라고, 혹시 모르잖아? 나 너 때문에 리뷰한 복부 CT가 벌써 수천 건이야.’
[하라고 할 땐 그렇게 싫다고 내빼더니. 보세요, 다 도움이 되죠?]
‘찾아내면 그런 거로 하자. 근데 못 찾아내면 다 헛짓이니까 고만하고. 너 왜 답이 없냐?’
수혁은 이쯤 되면 뭐라 대꾸해야 할 녀석이 조용하니 좀 이상했다.
해서 물어보는데 어지러운 느낌이 일었다.
누군가 내 뇌 기능의 일부를 더 훔쳐 가는 느낌.
그 누군가가 바루다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너 설마…….’
[풀가동합니다. 제가 맞았다는 걸 증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