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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73화 (173/1,303)

173화 역시 네가 의국장이다 (1)

짝.

살모넬라 파라타이피 에이란 말을 듣고 손뼉을 친 것이 비단 수혁뿐만은 아니었다.

내내 뒤에 있던, 그러니까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던 신현태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

“어, 수혁아. 나다.”

신현태 과장은 놀란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수혁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늘에 맹세코 펠로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아마 진짜 자식 정도는 돼야 이런 반응을 보여 주지 않을까.

제아무리 신현태가 인격자로 유명하다고 해도.

모든 제자에게 이럴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소 뒷걸음질 치다 잡은 주제에.’

저절로 이가 갈렸다.

주변에서, 심지어 신현태에게마저 펠로우 지원받을 때 자리는 보장해 주지 못한단 말을 듣고 들어온 참 아니던가.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군의관 가서도 논문을 쓸 정도로 열의도 있었고.

또 레지던트 때도 나름 훌륭한 편에 속했으니까.

솔직히 동기 중 교수가 하나 나온다면 그건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고작 3년 의국 비운 사이에 듣도 보도 못한 놈이 교수들 마음을 꽉 잡고 있을 줄이야.

“환자분, 방금 들은 대로……. 식품 매개 전염 배양 실험을 했다면 그 과정에서 감염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장티푸스는 일반적인 해열제에 잘 듣지 않거든요.”

“아…….”

신현태는 실로 복잡한 얼굴로 우두커니 선 펠로우에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환자에게 향했다.

인자한 미소 못지않게 목소리도 중후한 신현태이지 않은가.

환자는 그냥 말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낫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유명한 ‘닥터프렌즈’에서 본 것도 같았다.

‘거기 나오는 선생님들은 다 명의긴 하지.’

이런 생각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신현태가 계속 말을 이었다.

“경험적으로 들어간 세파 계열 항생제가 잘 듣지 않았던 것도 설명이 됩니다. 우선 이쪽으로 초점을 맞춰서 치료해 보면 좋을 것 같군요.”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확진이 된 건 아니라, 몇 가지 검사가 더 필요할 수는 있겠습니다.”

“네네.”

“우선은 여기 이수혁 선생이 백을 보고……. 다른 주치의 선생님 붙여 드리겠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내과 의국이 자랑하는 인재예요. 좀 어려 보여도 어지간한 교수 뺨 때리게 실력이 좋으니까 믿어도 좋습니다.”

만약 이런 말을 수혁이 직접 했다면 참 그랬을 터였다.

원래 유명하다는 말도 ‘저 유명한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그것만큼 볼품없는 일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게 신현태 입에서 나가니까 느낌이 달랐다.

환자로서는 수혁에 대해 없던 존경심마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자, 그건 그렇고.”

신현태는 그렇게 환자에게 대강의 설명을 해 줌으로써 안심을 시켜 놓고 나서야 다시 수혁을 바라보았다.

[또 이러네, 이 양반.]

이 표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이뻐 죽겠다?

최고다?

적당한 표현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뭔가 기대를 품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두 번이 아닌 지경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수혁아. 너 왜 다시 문진한 거야? 뭘 어떻게 의심한 거지?”

아마 다른 레지던트 녀석이 이랬다면 그냥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고 넘어갔을 터였다.

뭐 나름 근거야 있겠지만.

신현태가 듣고 싶어 할 정도로 그럴싸하진 않을 게 분명할 테니까.

그런 걸 굳이 물어볼 이유가 전혀 없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수혁이지 않은가.

이놈 얘기는 들어 봐야 했다.

모르긴 해도 펠로우에게도 들려줄 가치가 있을 테니까.

“아……. 우선 환자분 검사 결과 중에 특이했던 것부터 말씀드릴까요?”

“어, 그래 봐.”

반면 펠로우는 이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편애도 이런 편애가 없지 않은가.

‘이제 2년 차 아냐?’

펠로우 때까지만 해도 내과는 4년제였다.

3년제가 아니라.

고작해야 3년 차가 치프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꼴 같잖은데.

뭐?

2년 차가 환자도 있고, 펠로우도 있는 자리에서 즉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해?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렇다고 또 대놓고 한숨 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수혁이 더없이 여유로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선 1주일 넘게 지속된 발열이 있고. 범혈구 감소증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적어도 입원 당시엔 별거 없었습니다. 간 수치가 조금 떠 있는 거 정도?”

“응, 그래. 어세스를 준다면……. 나 같으면 일단 음.”

신현태는 백혈병을 얘기하려다 환자 눈치를 살폈다.

괜히 불안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아예 입을 다물 필요도 없었다.

다 방법이 있었다.

“태진이네 분과 질환을 1번에 둘 거 같은데.”

조태진이 혈액종양내과 중에서도 혈액암을 주로 보지 않는가.

적어도 내과 사람 중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대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네. 게다가 CT에서도 림프절 비대가 있어서……. 저도 그걸 1번에 두고 있었습니다.”

“근데 왜 생각을 바꿨지?”

“활력징후 때문입니다. 범혈구 감소증도 사실 좀 애매했고요.”

“활력징후?”

범혈구 감소증이 애매하다는 거야 뭐, 수치 한 번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감염내과 교수인 신현태가 이 환자에 관심을 둔 것도 그 때문이기도 했고.

수혁이 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이유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후자는 별 의미 없는 얘기란 뜻이었다.

하지만 활력징후는 좀 생소했다.

“네. 오늘 환자분 활력징후를 보면 혈압이 92에 54로 떨어졌습니다. 실제로 환자분도 좀 어지럼증을 호소했고요.”

간호 기록을 보면 정확히 침대에서 일어날 때 핑 돌았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저혈압으로 인해 기립성 저혈압 증세가 발생한 셈이었다.

원래 있던 게 심해진 것일 수도 있었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환자에게 익숙한 혈압은 아니란 것이었다.

“으음…….”

하지만 그게 뭐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원래 열나고 아프면 혈압이 떨어지기도 하니까.

그게 감염 때문이건, 악성 질환 때문이건 마찬가지였다.

[대강 봤구만, 이 양반.]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신현태를 보며 바루다가 낄낄거렸다.

녀석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의사가 이러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마 바루다의 말대로 대강 봤을 가능성이 클 터였다.

어차피 자기 환자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심장박동 수는 오히려 입원 당시보다 떨어졌습니다. 다른 기저 질환……. 즉 환자의 심장박동 수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은 없으니, 상대적 서맥이 발생한 겁니다.”

“아……. 상대적 서맥! 그렇구나. 그걸 캐치했어?”

한때는 이런 게 기본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엑스레이를 기본으로 깔고, 그것도 모자라 초음파에 CT, MRI 심지어 PET 같은 진단 기기들이 나오면서부터는 아무래도 관심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신현태 본인만 하더라도 활력징후는 딱히 위험한 거 아니면 신경을 끄고 사니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그걸 잡아내는 놈이 있을 줄이야.

역시 수혁은 알면 알수록 대단한 놈이었다.

“네. 상대적 서맥의 원인 중엔…… 장티푸스나 말라리아, Q열, 뎅기열, 황열과 같은 해외 유래 감염병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니까 여행력과 직업만 물어보고 실제로 그 직업상 어떤 일을 하는진 묻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왔습니다. 마침 CT에서 회맹판(Ileocecal valve)에 팽만도 관찰됐고요.”

“그거야 비특이적인 소견이잖아?”

“하지만 장염의 원인이기도 하죠. 마침 장티푸스 같은 건 장염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간 수치도 올릴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조태진 교수님 분과 질환보단 이게 낫겠다 싶어서 왔습니다.”

“다행히 그게 맞았고? 그렇지?”

“네, 교수님.”

“거참.”

신현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다가, 이내 웃었다.

‘내 제자…… 라고 해도 되는 거겠지?’

뭔가 많이 가르치기는 했다.

가르치기는 했는데.

솔직히 가르친 거에 비해 너무 우수하지 않은가.

이래 가지고서야 어디 가서 내 제자요 하고 떳떳하게 웃기도 어려울 거 같았다.

그래서 그런가 표정이 좀 복잡해져 있었는데, 그래 봐야 뒤에 있던 펠로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운이…… 운이 아니었구나.’

짤막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다 합쳐 봐야 뭐 한 5분이나 될까?

하지만 여운은 며칠 갈 거 같은 기분이었다.

레지던트가 아니라 어떤 대가의 얘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뭐…… 나중에 따로 얘기해야 할 텐데.”

신현태는 미처 펠로우의 기이한 표정에는 신경 쓰지 못한 채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시선은 온전히 수혁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리 봐도 너 말고는 이번에 의국장 할 사람이 없어.”

“네? 의국장이요?”

“그렇잖아. 제일 성적 좋고 평판 좋은 애가 하는 게 의국장인데. 너 말고 더 있어?”

“그…….”

영광이기는 했다.

방금 신현태가 말해 준 것처럼 의국장은 보통 그 연차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맡았으니까.

심지어 역대 교수들 중에서도 의국장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무래도 교수들과 접촉이 많기 때문에 논문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쓰게 되고, 또 능력을 보이기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혁은 웃기가 어려웠다.

[오, 아싸 그 자체인 수혁에게는 좀 가혹한 형벌인데요?]

‘아, 아싸 아냐.’

[연락하고 지내는 동기 몇 명?]

‘0명…… 아, 지상이?’

[최근 1주일 말고.]

‘0명.’

마치 저 혼자 군대라도 간 듯, 외딴 섬처럼 지내고 있지 않은가.

근데 매번 당직 회의를 비롯한 거의 내과 의국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주최해야 하는 의국장을 해야 한다고?

바루다 말마따나 상이 아니라 형벌이었다.

“뭐, 알아서 잘하겠지. 하하. 나는 우리 수혁이 믿어요.”

하지만 어떻게 이 얼굴을 하고 이런 어조로 말을 하는데 못하겠다고 한단 말인가.

설마 의국장 안 한다고 교수 자리 안 줄 양반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기다 대고 ‘No’는 좀 아니었다.

“그럼 갈까?”

게다가 뭔 바쁜 일이라도 있는지 펠로우를 대동하고는 휭 사라졌다.

그렇게 환자와 지상 이렇게 둘과 함께 남게 된 수혁은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의국장을…… 하라고?”

[어, 지금 혼잣말 아니고 진짜 말하는데? 그렇게 멘탈이 바사삭 될 일인가, 이게?]

“막말로 애들 전화번호도 없는데 뭔 의국장을 해……. 안 돼……. 못 해, 나는…….”

[어어, 수혁. 지금 다들 미친놈 보듯 하거든요? 아니지, 미친 건가? 그런 건가? 안 되는데.]

어지간히 충격이긴 한 모양이었다.

바루다는 수혁이 혼잣말로 해야 적절할 만한 발화를 입으로 하는 걸 정확히 421일 11시간 만에 보고 있었다.

[삐삐삐삐삐.]

급한 마음에 제일 싫어하는 경보음까지 내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으아, 시끄러워.”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

“야, 수혁아.”

그런 수혁을 진정시킨 건, 의외로 지상이었다.

바루다의 평가에 따르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내지는 잉여 정도나 되었을까 하는 인물이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응?”

“뭔 걱정이여. 의대 같이 나온 사인데. 말 나온 김에 자리 한번 만들까?”

“어?”

“만들게. 내가 원래도 총무 잘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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