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누가 같이 있느냐에 따라 (1)
드르륵.
수술이 결정되고 얼마 안 있어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수술실로 옮겨졌다.
당연히 표면적 주치의를 맡고 있는 안대훈과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미안.”
“네? 아뇨, 아뇨. 선생님. 이건 제 일이죠, 당연히.”
몸이 불편한 수혁으로서는 아무래도 침대를 끌기가 어려웠다.
또한 이동하는 환자의 앰부를 짜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제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쁘단 얘기였다.
해서 수혁은 그냥 지팡이만 짚은 채 뒤따르고 있었다.
나머지 업무는 안대훈과 이송 요원의 몫이었다.
“아, 왔다.”
그렇게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준비하고 있던 마취과 의사가 다가왔다.
수술모는 썼지만, 마스크는 턱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어차피 수술실 들어간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아무튼, 덕분에 표정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당연하게도 바루다의 분석이 뒤따랐다.
[레지던트가 왔군요.]
‘레지던트야? 나이 꽤 있어 보이시는데?’
[액면가로 치면 안대훈이 더 위로 보입니다만.]
‘아.’
수혁은 아주 빠르게 바루다의 의견을 수용했다.
바로 옆에 있는 안대훈만 해도 얼굴만 보면 30대 끝자락처럼 보이지 않은가.
아직 서른도 채 안 된 아니, 현역 1년 차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마취과 의사도 얼굴로는 관록 있는 마취과 교수가 떠오르지만.
실은 레지던트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질문 리스트 보니까, 딱 바로 전에 인수·인계받고 온 거 같은데요? 적어도 흉부외과 마취 경험이 많은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나가린데.’
일반인들이야 마취과가 그냥 마취만 거는 줄 알 터였다.
아니, 마취과 전문의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게 분명했다.
어느 매체에서도 마취 자체를 비중 있게 다루진 않으니까.
하지만 집도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특히 그 집도가 바이털이 흔들리는 종류의 수술이라면.
마취과 의사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번 수술은 그 난도가 거의 극악에 해당하지 않던가.
당연히 마취과 의사의 중요성도 확 올라간 상황이었다.
[뭐 그거 보조하려고 들어온 거 아니겠습니까?]
‘막상 진짜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떨리는데.’
수술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낯선 곳이지 않은가.
적어도 인턴을 끝마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수술실에 와 본 적이 없었으니.
단지 그 안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콩닥거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환자 바이털까지 책임져야 한다니.
그것도 마취하고 수술하는 동안에.
[걱정 마십쇼. 제가 누굽니까, 수혁. 찬찬히 떠올려 보세요. 쉬지 않고 공부해 온 지가 벌써 2년째입니다.]
바루다와 함께한 지난 2년이라.
찬찬히 떠올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당장 어젯밤도 공부하다 잠이 들었으니까.
솔직히 레지던트 하면서 밤잠 아껴 가며 공부하는 의사는 거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얘기였다.
주에 하루 이틀이야 다들 할 수 있는 일이긴 하겠지만.
수혁처럼 매일같이, 그것도 하루 2시간 가까이 공부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란 얘기였다.
다들 일하다 죽게 생겼는데 공부는 무슨 놈의 공부란 말인가.
하지만 수혁은 그걸 기어코 해내고 있었다.
‘하. 시발.’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아니, 절로 욕이 나왔어.’
정말이지 욕이 저절로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제가 공부시킨 것 중에는 마취에 관한 것도 있긴 합니다. 데이터 불러오겠습니다.]
그렇게 잠시 욕을 더 주워 넘기고 있으려니, 바루다가 제멋대로 수혁의 머릿속을 헤집고는 해묵은 기억을 끄집어 올려냈다.
‘억……. 나 이거 언제 공부한 거야.’
[이현종 논문같이 쓰면서요. 아무래도 심혈관 다루려면 흉부외과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아, 이현종 교수님이 흉부외과랑 사이 나빠서 나보고 알아서 서론 쓰라고 했지.’
보통 해당 과 내용은 해당 과 교수님한테 부탁드리는 것이 일반적인 법이었다.
흉부외과가 없는 병원도 아닌데 뭐하러 사서 고생을 한단 말인가.
이쪽은 양이 많든 적든 공부를 해야 하고, 저쪽은 툭 치면 자판기처럼 지식이 튀어나올 텐데.
하지만 이현종은 내과계 의사들에게는 무한한 존경을 받고 있는 반면에 흉부외과 쪽과는 거의 담을 쌓고 지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관련 논문 쓰는데 상당한 애로 사항이 있었는데, 그걸 수혁이 해결한 적이 있었다.
[네, 그게 어떻게든 또 도움이 되긴 하네요.]
‘레퍼런스로 읽은 것도 이렇게 기억이 또렷이 나다니. 역시 난 천재…….’
[그게 아니라 그냥 제가 데이터베이스화해 둔 덕입니다.]
‘그걸 견디는 거 아냐, 내 머리가.’
[음.]
바루다는 덮어놓고 아니라고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사람 뇌에 인공지능이 자리 잡은 사례가 딱 바루다 하나뿐이지 않은가.
다른 사례를 보거나 혹은 다른 사람 뇌에 들어가 보면 원래 뇌 용적이 어떤지 딱 나올 텐데.
현시점에서 그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오케이……. 들어갑시다.”
그사이 환자 차트 및 활력징후 점검을 마지막으로 하고, 주치의인 대훈에게 이것저것을 캐물은 마취과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 거의 절망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야, 너무 걱정 마. 교수님 곧 오신다며. 인덕션만 제대로 해. 우리가 나머지는 알아서 할게.”
그런 마취과 의사의 옆구리를 누군가 푹 하고 찔렀다.
전에 수혁과 얘기 나눈 바 있던 흉부외과 3년 차였다.
어마어마한 수술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아무래도 태화 의료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다른 병원이라면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수술이 여긴 매주 있다시피 하지 않던가.
큰 수술 앞뒀다고 벌벌 떨고 있으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교수님 지금 수술 들어갔는데 언제 올지 어떻게 알아.”
“뭐……. 어차피…… 체외 순환기만 달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이, 인마……. 일이 그렇게 간단하면…….”
“아무튼, 수술하는 동안에만 좀 살려줘. 환자 너무 어리잖아.”
“하.”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이 어째 부담감만 팍팍 주는 느낌이었다.
해서 한숨을 푹 쉬고 있으려니, 또 다른 이가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웬 지팡이를 짚고 있는 어린 의사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내과 2년 차 이수혁입니다.”
“아, 아.”
지팡이를 짚은 내과 의사 이수혁.
지금 태화 의료원에 다니면서 이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아마 간첩도 이수혁 정도는 알고 있을 터였다.
섭외 또는 납치 순위 일 순위일 테니까.
“근데 어쩐 일로…… 전 수술 들어가 봐야 해서 바쁜데요.”
“아, 네. 저도 그 수술 들어갑니다. 제가 백 봐주고 있는 환자라서요.”
“아……. 그거, 그거 잘됐네요.”
집도의 측에도 주치의의 존재는 큰 도움일 테지만.
당연히 마취과 쪽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갑자기 활력징후가 흔들릴 때 주치의가 있으면 적어도 지금 쓰던 약이나 기저 질환 등을 지체 없이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얘……. 실력 좋다던데.’
게다가 내과 의사 아닌가.
활력징후 다루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란 뜻이었다.
물론 2년 차라 중환자 의학에 얼마나 조예가 깊을지는 알 수 없긴 하지만.
이수혁에 관한 소문은 워낙에 무성한지라 기대가 안 되기가 어려웠다.
“그럼 방에서 뵙겠습니다.”
수혁은 마취과 의사가 머릿속으로 이것저것을 셈해 보는 동안 고개를 숙인 후, 탈의실로 향했다.
아무리 주치의 자격으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이라 해도 수술복은 입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들어가면 대체 언제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대훈아, 넌 나가 있어. 오늘 백당 누구냐?”
해서 옷을 갈아입던 수혁은 여기까지 와 있는 대훈을 향해 물었다.
“아……. 네. 유지상 선생님입니다.”
“아, 지상이구나.”
솔직히 말하면 소문이 그렇게까지 좋지는 못한 녀석이었다.
개판 친다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성심성의껏 환자를 보는 녀석은 아니라는 얘기.
그나마 다행한 건 프라이머리가 안대훈이라는 점이었다.
매일 같이 공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주 하는 콘퍼런스에는 빠지지 않고 오고 있었으니까.
“일단 꼼꼼히 봐. 꼼꼼히 보고 노티 잘하고.”
“네, 선생님.”
“도저히 환자 진행 안 되면 전화하고. 내가 여기 한…… 8시간은 있을 거 같거든? 직접은 못 가도 전화는 받을게.”
“아,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안대훈은 이 말이 제일 반가웠는지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그리곤 수혁이 옷 다 갈아입고 수술실 쪽 입구로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갔다.
[하여간 쟤는 예의가 발라서 좋습니다.]
‘어, 애 괜찮지.’
[환자만 더 잘 보면 좋겠는데요.]
‘쟤 정도면 지금 1년 차 중에서는 발군이지, 뭐.’
[아무튼, 수술방으로 갑시다. 이미 삽관이 되어 있어서 아마 인덕션은 거의 바로 될 거예요. 서둘러요. 빨리!]
‘알았어, 알았어!’
비행기가 언제 제일 위험할까.
바로 이 착륙 때 아니던가.
마취도 비슷해서 대개 사고가 난다면 마취를 시작하는 시점, 즉 인덕션에서 나기 마련이었다.
갑자기 혈압이 떨어진다든지, 그로 인한 쇼크가 발생한다든지 하는 사고는 대개 그러했다.
해서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부지런히 움직였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몸놀림 좀 느리게 했다가 환자를 잃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니터 다 옮겼어?”
“네!”
“그럼 셋에 옮긴다. 하나, 둘, 셋!”
“셋!”
그렇게 도달한 수술실에서는 한창 환자를 수술대 위로 옮기는 와중이었다.
워낙에 상태가 안 좋았었기에 이것저것 몸에 달고 있는 게 많았다.
이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린 모양이었다.
[다행이군요. 아직 인덕션 전입니다.]
‘약간 부정맥이 있는데…….’
[흔들려서…… 아니, 진짜 좀 있네요. 뭐, 심장이 망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바루다는 수혁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려다가 말고 동의했다.
처음에는 그저 환자 옮기느라 흔들려서 생긴 노이즈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정말 리듬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치명적인 부정맥은 아니었지만.
단독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역류가 왈칵왈칵 있는 상황 아니던가.
‘진짜 수술 결정 좀만 늦었으면…….’
[심장 문제로 사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름 내과 의사라 감염 질환에 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었거늘.
이제 보니 여전히 얕잡아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심장이 실시간으로 녹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자, 그럼……. 마취 시작하겠습니다.”
마취과 의사는 옮겨진 환자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바루다의 말대로 이미 삽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곧장 인덕션 시작이었다.
“잠깐! 잠깐만요!”
그리고 수혁은 그 시작을 바로 말려야만 했다.
가뜩이나 큰 수술을 앞두고 있던 터라 신경이 예민해진 흉부외과 측 의사들이 수혁을 돌아보았다.
“뭐야?”
그중 몇몇은 눈을 부라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수혁은 이미 이보다 더한 눈총도 받아 본 몸 아니던가.
게다가 지금은 환자의 목숨이 걸려 있었다.
해서 꺼내려던 말을 그대로 읊어 댔다.
“지금 그대로 인덕션 걸면…… 환자 혈압 떨어져서 죽어요. 지금 심방에 부하가 너무 심한데……. 부정맥까지 있잖아요. 일단 부정맥부터 잡고. 잡은 다음에 인덕션 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