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59화 (159/1,303)

159화 원인이 뭔데? (2)

뇌출혈이 있는데, 경색도 있다라.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만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의료진들의 입장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출혈과 경색은 정반대되는 기전으로 발생하는 질환이었으니까.

“이런 망할.”

당연하게도 신경과 최준용 교수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물론 방금까지도 계속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뇌출혈 하나라고 생각하면 뭔가 길이 보이지 않는가.

한데 그 길이 일순간에 지워진 느낌이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 뭐지.”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입에서도 탄식 비슷한 것이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이게 뭐야’라는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음.”

반면 수혁은 눈을 감았다.

이 초유의 사태에 대해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뇌출혈과 동시에 경색이라?’

[거기에 발열 및 혼탁한 뇌척수액도 고려해야 합니다.]

발열과 혼탁한 뇌척수액은 두말할 것 없이 감염 소견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다른 부위가 아닌, 머리 부위의 감염, 즉 뇌수막염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뇌수막염이 있다고 해서 뇌출혈과 경색이 동시에 생길 수 있을까?

출혈이라면야 가능한 얘기였으나 경색은 드문 일이었다.

‘뇌출혈도 경색도……. 혼탁한 뇌척수액도 다 결과일 수 있어.’

그렇다는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한 가지 질환일 가능성이 컸다.

젊은 성인 남성에서 갑자기 이런 중차대한 질환을 일으킬 만한 원인 질환이 여러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기는 건 확률상 0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제 의견도 그렇습니다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바루다는 솔직하게 모르겠다는 말을 꺼냈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상대가 자신을 무능하게 여기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어서였다.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개뿔도 모르는 사람이 모른다는 말을 못 하는 법 아니던가.

수혁도 바루다의 능력을 십분 인정하고 있었기에, 굳이 비난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표정을 굳힐 따름이었다.

‘아예 모르겠어?’

[단서가 부족합니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기는 합니다.]

‘뭐?’

[환자 가슴의 흉터요.]

‘아.’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저도 모르게 환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환자는 아직 MRI 촬영 중이었기에 딱히 가슴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혁에게는 바루다가 매번 데이터베이스화해 두는 자료가 있지 않은가.

눈을 감지 않아도 환자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암만 봐도 이건 개흉술 흔적이야.’

[봉합 부위가 좌우로 또 상하로 당겨진 것으로 보아 성장기 전에 이루어진 수술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린 시절 개흉술까지 해야 할 만한 질환이 뭐가 있겠는가.

둘의 머릿속에는 선천성 심질환이 떠올랐다.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떤 식으로든 심장 수술을 했다는 거 정도는 알 수 있었단 얘기.

‘그럼 이거……. 심내막염일 가능성이 제일 크겠는데?’

심내막염.

말 그대로 심장 내막 즉 안쪽 벽에 생기는 염증을 의미했다.

정상 심장 조직을 가진 사람에게는 극히 드문 질환이라 할 수 있었다.

심장은 피가 어마어마한 기세로 흘러들어 오고 또 흘러나가는 곳이라 균이 붙어 있기 매우 어려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수술력이 있다면 가능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흉터가 있거나 심장의 입구라 할 수 있는 판막 수술을 했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었다.

제아무리 수술이 잘되었더라도 원래 심장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약간의 저류가 발생할 수 있을 테고, 또 균이 들러붙을 수 있는 공간도 있을 터였다.

‘감기 증상이 있었으니……. 가능해. 가능한 얘기야.’

수혁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져 왔다.

내과 의사로서 제일 기쁠 때가 언제겠는가.

바로 환자를 괴롭히던 증상의 원인을 밝혀 나갈 때였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으니 미소가 지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인 질환만 바라보기가 어렵습니다.]

‘그건……. 그건 그래.’

그러나 완전히 밝게 웃지는 못했다.

딱 증상이 생겼을 때 의심했더라면야 그럴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심내막염으로 인한 합병증이 어마어마하게 발생해 버린 상황이었으니까.

“최준용 교수님, 어떻게 할까요?”

해서 수혁은 우선 이 자리에서 제일 높은 사람, 즉 결정권자라 할 수 있는 최준용 교수에게 치료 의견부터 물었다.

다행히 최준용은 태화 의료원 교수를 하고 있는 만큼 상당히 우수한 사람이었다.

“일단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냐. 오히려 뇌압 관리를 위해서 약 쓰는 게 더 중요할 거 같고. 물론 신경외과에서 이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는 줘야 해. 혹시 모르니까.”

“네, 교수님, 노티하겠습니다. 언제든 필요하면 감압술 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래.”

최준용은 일단 신경외과 레지던트와 간단한 의견 교환부터 했다.

뭐가 어찌 되었건 약으로 안 되면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신경외과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뭐……. 사실 경색은 작아서 지금 그렇게까지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거든?”

“네, 교수님.”

그다음으로는 역시나 수혁이었다.

애초에 노티했던 것이 수혁이지 않은가.

그 말은 아직 이 환자를 맡아 보고 있는 주치의가 수혁이라는 뜻이었다.

“뇌압이야 중환자실 가서 관리하면 되고……. 문제는 이게 원인이 뭔지 불명확하다는 거야.”

해서 최준용은 향우 플랜에 관해 수혁과 상의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주치의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었다.

수혁의 실력은 다른 과 교수라도 인정할 만한 수준이었다.

“아……. 저는 환자 흉부에 있는 수술흔을 근거로 심내막염이 원인 질환이 아닌가 합니다.”

“아……. 수술흔이 있었나?”

“네. 가슴골 따라서 일직선으로 그은 흔적이 있습니다.”

“아하.”

이게 일직선이 아니라 방향이 좀 달랐다면.

가슴골이 아니라 다른 곳에 흉터가 남았더라면 수술흔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우연히 가슴골을 따라 일직선으로 그은 흉터가 남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 가능성이 있겠는데……. 그래도 다른 원인 워크 업 하긴 해야지.”

“네. 그 외에 방금 뜬 혈액 검사 보면 혈소판이 떨어져 있습니다. 이것도 심내막염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일단 혈액 질환도 감별하려고 합니다.”

“음, 그래. 좋아. 근데 혈소판이 몇인데?”

“5만4천입니다.”

“어? 그래? 너무 낮은데? 출혈 더 일어날 수도 있겠어. 혈소판 수혈해야겠는데.”

“아, 네. 교수님. 처방하겠습니다.”

철과 철이 만나면 서로 날카로워진단 말이 있지 않은가.

우수한 의사들이 만나자 환자 진단 및 치료 계획이 팍팍팍 진행되었다.

‘야, 이거 재밌다.’

[새롭네요.]

이건 수혁이나 바루다에게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거의 둘이서만 토론해 봤지, 다른 의사랑 그것도 다른 과 의사랑 토의해 보는 건 퍽 오랜만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준용 교수는 자신이 수혁에게 새로운 자극을, 즉 성장할 만한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니, 잠깐만. 근데 혈소판이 떨어졌다는 건…….”

“파종성 혈관 내 응고(Disseminated intravascular coagulation) 여부 확인 위해 처방 냈습니다.”

“오. 역시. 신현태 교수님이 부럽네.”

최준용은 앞서가는 레지던트를 보다 현타라도 왔는지 잠시 헛웃음을 터뜨리다가 이내 진중한 얼굴로 돌아왔다.

땅땅땅땅땅.

여전히 환자는 MRI 촬영 중이었다.

CT와는 달리 촬영에 시간이 좀 걸리는 검사였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콩알만 한 경색들을 잡아내었고, 덕분에 가장 유력한 원인 질환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최준용이 입을 열었다.

“심장 관련 워크 업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토의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아무래도 전문 분야는 아니다 보니, 조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게 보통 레지던트가 아니지 않은가.

헛소리했다간 난리 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네. 일단 심장 초음파 해 보고요. 정상 나오긴 했지만, 아마 변할 테니 심전도 팔로우 업 하고. 아까 심장 효소 검사는 처방 내놨습니다.”

“음. 좋아. 좋네.”

딱히 흠잡을 거 없어 보이는 답변이었다.

해서 최 교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고 재차 입을 열었다.

“아, 근데 그럼 환자는 내과 쪽에서 볼 건가?”

제일 중요한 말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느 과로 가든지 간에 당연히 최선을 다해 진료를 돕겠지만.

진료를 직접 보고 그 책임을 오롯이 지는 사람과 옆에서 돕는 사람의 입장은 천차만별이었다.

지금 이 환자처럼 사정이 너무 안 좋은 환자 같은 경우엔 아무래도 직접 보는 건 좀 부담이지 않겠는가.

‘뭐……. 좀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중환자 의학은 위험하고 돈은 안 되는, 그야말로 과 입장에서만 보면 도움 될 것이 없는 분야이기도 했더랬다.

“아, 감염내과에서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최준용과는 달리, 수혁은 잠시간의 고민도 없었다.

의학 지식이야 여느 교수 못지않은 그였으나.

아직 경험은 적지 않은가.

이 경험이라는 게 비단 환자 보는 경험만 말하는 건 아니었다.

병원 회의에 들어가고, 또 회계 상황을 보는 경험도 뒤섞여 있었다.

“음, 그래.”

물론 최준용 교수는 수혁이 과 돌아가는 걸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대외적으로 원장 아들로 알려져 있는 데다가, 노상 내과 과장 신현태와 돌아다니는 녀석 아니던가.

이미 어떻게든 교수로 키워 낼 것이고 이를 위한 조기 교육에 들어갔다는 말이 파다했다.

‘나도…… 이럴 때가 있었던 거 같은데.’

때문에 최준용 교수는 수혁이 의도치 않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리를 피했다.

“아무튼, 혹시 이상하면 연락해. 뇌압 조절 관해서는 중환자실 알려 주면 바로 레지던트 보낼게.”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어……. 그래.”

최 교수가 가자 신경외과 레지던트도 부리나케 응급실을 떠나갔다.

그사이에 또 어디서 콜이라도 온 건지 발걸음이 아주 급해 보였다.

[확실히 신경외과도 진짜 빡세군요.]

‘당연하지. 한 명이 중환자실 베드를 몇 개를 보는데.’

[저쪽 지식도 흥미로운 게 많던데…….]

‘뭐 나 더블 보드 하라고?’

[가능하면 요구했을 테지만. 안 되죠, 지금 상황으로써는.]

바루다는 수혁의 다리를 상기시켰다.

‘음.’

수혁으로서는 이게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헷갈리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검사 다 끝났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잠시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에 검사가 끝났는지, 방사선사가 수혁을 불렀다.

수혁은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꾸벅 숙인 후, 검사실로 향했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안대훈과 함께였다.

“야, 고생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우선 MRI실에 같이 들어가 앰부를 짜고 있던 하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하윤은 귀에 넣어 두었던 귀마개를 빼며 미소로 답해 주었다.

“괜찮아요. 이거 끼면. 다행히 안에 있는 동안 사고가 안 나서요.”

“응, 아직은 활력징후가 안정적인 거 같아. 아직은. 일단 저기서 영상 다 봤거든? 경색 두 군데가 더 있어서 심내막염으로 인한 뇌수막염 및 색전증이 의심이 돼. 다른 질환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우리가 보기로 했어. 그, 신현태 교수님께는 내가 노티할게.”

수혁은 대강의 소견을 일러 준 후, 신현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환자와 함께 처치실로 돌아오면서였다.

“어, 뇌출혈에 뇌경색. 열나더라도 신경…… 어? 우리가 받았어? 아, 왜.”

“심내막염 오리진이 의심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아……. 알았다…… 나 아직 연구실이었거든. 내려갈게…….”

노티를 받은 신현태는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전화를 끊은 후에는 대상이 최준용인지 수혁인지 욕설까지 내뱉었더랬다.

“이런 망할 놈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