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환자는 봐야지 (1)
우창윤, 그러니까 우하윤의 입에서 나온 계략을 말해 주자 신현태와 이현종 모두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면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계책이었다.
해서 일단은 각자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
수혁의 핸드폰이 거세게 울린 것은 그로부터도 대략 5일이 더 지나고 나서였다.
“어, 대훈아. 웬일?”
수혁은 병동에서 회진 다 돌고 처방을 내리고 있던 참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다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3시였다.
외래가 열려 있는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아……. 그 서효석 교수님 외래에서 입원 처방이 떠서요.”
“입원? 그 사람이?”
뭔 일인가 싶은 일이었다.
그 환자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입원이라니.
“네. 일단 선배랑 같이 보고 적당한 과에 전과하라는데…….”
“아.”
역시는 역시였다.
유일한 입원 계획이 전과라니.
아마 이런 사람은 세상천지에 서효석 교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무튼, 서효석이 개판 친다고 해서 수혁도 개판 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그는 서효석처럼 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교수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믿을 건 오로지 실력뿐이란 얘기였다.
“일단 볼게. 어디 있어, 환자?”
“아 제가 병실에서 보고 있습니다. 오늘 내분비 내과 병실이 없어서 별관에 있습니다.”
“별관? 몇 층?”
“7층입니다.”
“아, 7층.”
7층이라면 이비인후과 병동이었다.
그중에서도 코나 귀 환자들이 주로 입원하는.
내과 환자들은 어지간하면 입원시키지 않는 곳인데.
아마 어지간히 병실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환자는 몰리니까요.]
‘요새 큰 병원들 다 난리라더라.’
[그렇다더라고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수년 전부터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가고 있었다.
정말 심각한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서라면야 납득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그냥 가벼운 질환을 가진 사람들마저 대형 병원 진료를 고집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 때문에 진짜 위험한 환자들의 진료가 뒤로 밀리고 있을 뿐 아니라, 동네 병원들의 역할이 점점 더 희미해져만 가고 있었다.
‘일단은 가자.’
[네.]
하지만 그건 아직 수혁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수혁은 아직 레지던트에 불과한 사람이었으니.
지금 해야 할 일은 환자를 보는 것이었다.
‘아직 별 움직임은 없지?’
물론 가는 길에 서효석에 관한 얘기는 나눠 가면서였다.
지금 수혁이 있는 곳은 본관이니만큼 별관까지는 어차피 거리가 좀 있었다.
바루다 또한 아직 환자에 대해 이렇다 할 얘기를 들은 게 없기에 그저 수혁의 질문에 집중했다.
[네. 뭐……. 회진 돌 때나 오갈 때 봐도 표정에 별반 변화는 없어요. 아.]
‘아, 뭐.’
[하윤한테 좀 조심하는 거 정도?]
‘아, 그거. 그거야 뭐……. 그렇겠지.’
원래 약자에게 한없이 강한 인간일수록 강자에게는 또 숙이는 법 아니겠는가.
서효석은 소인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무튼, 모르는 거 같지?’
[네.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거 같습니다. 아마 선이 닿지도 않을걸요?]
‘하긴. 전자 쪽 인맥이니까.’
[운도 좋지. 하필 치료한 사람이 김다현 전무이사라니.]
‘운이라니, 실력이지.’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요.]
바루다는 얼마 전 신현태의 도움으로 김다현 이사에게 연락했던 것을 떠올렸다.
김다현 이사는 퇴원하자마자 바로 업무에 복귀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목소리에 힘이 넘쳐 흘렀다.
일 잘하는 사람 특유의 자신감도 느껴졌고.
처음엔 연구비 청탁이라 생각했는지 좀 껄끄러워하긴 했지만.
그게 아니라 오히려 투명하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감사 의뢰라는 걸 듣고는 쌍수를 벌려 환영했더랬다.
더불어 은밀히 처리하겠다는 약속도 해 주었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새로운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김다현 이사의 말 아니던가.
‘알아서 잘해 주실 거야.’
[그럴 겁니다. 커리어 보니까 장난 아니더라고요.]
‘아, 저기 엘리베이터.’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뒤뚱거리면서도 어느새 별관 엘리베이터 앞에 도달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막 문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였다.
“자, 잠시만요!”
가운을 입은 데다가 지팡이까지 짚은 그의 외침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휴, 감사합니다.”
해서 수혁은 어렵지 않게 다시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오를 수 있었다.
열림 버튼을 눌러 준 게 누군가 해서 보니, 다름 아닌 하윤이었다.
“어?”
“아, 선배도 안대훈 선배 환자 보러 가세요?”
“어, 어. 연락 와서. 너는?”
“심전도랑 abga(동맥혈 성분 검사) 하러요.”
대표적인 인턴 잡을 하러 간다는 뜻이었다.
인턴인 하윤이 그 일을 한다는 건, 당연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별관 병동 일을 하윤이 하러 가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아아……. 어? 근데 병동 인턴 있을 텐데?”
“그냥 안대훈 선배 환자는 제가 해요. 어차피 저 내과 할 거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 그러다가 아퍼, 너. 알지? 전공의들은 아파도 일 못 빠지는 거.”
“알죠.”
수혁의 말에 하윤은 얼마 전 동기 하나가 수액을 단 채 일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상당히 비극적일 수도 있는 광경이었지만.
사실 대학 병원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전공의들이란 딱 한 명만 빠져도 치명적인 일이 생길 정도로 처참하게 갈아 넣어지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어지간히 아프지 않아 가지고서는 절대 일을 빼 먹을 수가 없었다.
“그니까 조심해.”
“괜찮아요, 선배. 저 진짜 건강해요. 운동도 꾸준히 하는걸요.”
“운동? 인턴이?”
“네. 하루 한 10분, 20분이라도 하고 자요.”
하윤의 말에 수혁은 잠시 자신의 인턴 생활을 돌아보았다.
아니, 인턴 생활까지 돌아볼 이유도 없었다.
그냥 올해를 돌아보면 되었다.
[수혁보다 훨씬 낫네요. 지금까지 10분, 20분은 했나요?]
‘지팡이 짚는 거 인정?’
[의사가 그런 소리 하깁니까? 유산소에 들어가려면 최소 땀이 밸 정도는 해야죠.]
‘그럼 0분인데. 너무 한심해 보이잖아?’
[한심하다는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수혁은 자신에게 상당히 엄격하군요.]
‘아니, 아니.’
정말이지 운동이라고는 안 하는 삶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식습관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닌데.
불현듯 오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곧 바루다에게도 전염되었다.
[안 되겠습니다. 운동도 해야겠어요. 기껏 쓸 만하게 만들었는데 죽으면 어떡해.]
‘너가 체크하고 있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완벽하겠어요?]
‘아니, 이 새꺄. 나는 너만 믿고 있었는데. 뭐, 완벽하겠습니까? 그게 말이냐?’
[왜 이렇게 화를 내요? 아무튼, 다 왔어요. 이제 정신 차려요.]
‘에이.’
수혁은 좀 더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고개를 들어보니, 바루다의 말대로 병실 앞이었다.
게다가 안에 있던 안대훈이 쪼르르 달려 나오고 있었다.
“서, 선생니임!”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듯한 반응이었는데, 이놈은 원래 이래서 별 감흥이 없었다.
“어어, 너무 붙지 마. 뭐야.”
그냥 좀 귀찮을 뿐이었다.
“일단 빨리 들어와서 봐 주세요.”
한데 안대훈은 수혁의 예상과는 달리 더 질척거리지 않았다.
대신 수혁을 그저 안으로 끌어들일 뿐이었다.
“응? 외래에서 온 환잔데. 급해?”
“네, 급해요. 아니……. 이상해요.”
“이상해? 교수님은 뭐 의심했는데?”
“차트에는 그냥 이상하다고만 적혀 있었어요.”
“어?”
교수가 환자의 향후 의견을 이상하다고 했다고?
아무리 서효석이라고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해서 재차 물어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네. 이상하다고…….”
“허…….”
“아무튼, 진짜 이상하긴 해요. 봐 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제일 이상한 건 서효석이었지만.
안대훈이 이제 어지간해서는 호들갑을 떠는 놈은 아니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환자를 딱 보자마자 왜 이놈이고 저놈이고 이상하다란 말을 남발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이가……. 25세. 근데…….’
[피부가 엄청 쭈글쭈글하네요?]
그냥 쭈글쭈글한 게 아니라, 살가죽이 죽죽 늘어나 내려와 있었다.
절대 뚱뚱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피부 탄력이 비정상적으로 유연하게 변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뭐지? 저게 주 증상인가?’
[아니, 아닌 거 같은데.]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고개를 돌려 안대훈이 들고 있던 차트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수년 전부터 지속된 혈변을 주소로 내원했다고 적혀 있었다.
당연히 피부 쪽이 메인인 줄 알았는데 혈변이라니.
벌써부터 뒤통수를 맞은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때 환자가 인사를 건네 왔다.
아차 싶었다.
의사가 돼 가지고선 입원한 환자에게 먼저 인사를 받게 될 줄이야.
수혁은 자책하는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네, 안녕하세요. 이수혁입니다. 여기 안대훈 선생님과 함께 환자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 네.”
“홍연수 님 맞으시죠?”
“네.”
“25살이시고요.”
“아, 네.”
수혁은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넨 후, 원래 알고 있던 정보부터 확인해 들어갔다.
여자, 25세, 4년 전부터 발생한 혈변, 그전에도 있던 피부의 쭈글거림 등등.
일단 진료의 기본은 문진이지 않은가.
뛰어난 의사일수록 문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더 많아지는 법이었다.
‘복통을 동반하는 혈변이었고.’
[그 외에도 출혈 경향이 있었군요. 어릴 때부터 코피도 잘 났고, 멍도 잘 들고.]
‘그럼 혈변 또한 출혈 경향에 의한 거라고 봐야 할까?’
[그건 알 수 없습니다만, 저 피부는……. 지금까지 물어본 거랑은 상당히 동떨어져 있군요.]
아예 다른 독립된 문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같은 원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었다.
둘 중에 어느 것인 것만은 확실한데.
지금으로써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심전도랑 동맥 검사하고……. 나머지 검사도 좀 진행해 볼게요.”
“어……. 근데 선생님.”
“네.”
“저……. 혹시 진단명이 뭔가요? 아무도 설명을 안 해 줘서……. 너무 무서워요.”
피부가 늘어져 있어 나이가 좀 들어 보였지만.
목소리와 말투를 보니 영락없는 25살, 아직 어린 나이의 환자였다.
수혁이나 안대훈 또는 하윤보다도 어린.
그런데도 대학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던.
수혁은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한 후,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해요. 일단 출혈 경향에 대한 검사랑…….”
[대장 내시경. 대장 내시경은 해 봐야지.]
“대장 내시경을 해 봐야 가닥이 잡힐 거 같습니다. 아, 물론 기본적인 피 검사도 해 보고요.”
[좋아. 그렇게 말하면 적절하겠다.]
바루다의 조언을 받아 가면서였다.
아주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었을 테지만, 환자는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나마 입원 과정에서 들은 말 중에서는 제일 그럴싸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 검사하고 좀 뵙겠습니다.”
“네.”
수혁은 환자와 검사를 해야 하는 하윤을 뒤로하고 방을 나왔다.
검사가 어떻게 나올까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해 대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