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걸렸다 (1)
“어……. 어…….”
환자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수혁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른 의사들의 반응도 한몫하고 있었다.
“담배? 아, 설마?”
일단 의학에 한정하면 잡학 다식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아는 게 많은 이현종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담배 급성 중독……. 그게 둘에게서 나타났다고 하면 얼추 아다리가 맞는데 이거?”
과연 원조 천재 소리 드는 사람답지 않는가.
수혁은 정말 순수하게 그를 보며 감탄했다.
‘진짜 똑똑하네. 너도 없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할까?’
[뭐……. 연륜이랄까요?]
예전 같았으면 수혁보다 훨씬 머리가 좋아서일 거라고 말했을 게 뻔한 바루다가 웬일로 수혁의 편을 들어 주었다.
생각해 보니까 어차피 한 몸에 매인 신세 아니던가.
수혁을 까는 게 결국, 자신을 까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된 참이었다.
뛰어난 성능을 가진 인공지능치고는 참 오래도 걸린 편이었는데, 나름의 변명 거리가 있기는 했다.
‘오……. 웬일?’
[이제는 알아서 공부하고 노력하니까요.]
지금까지는 안 그랬다는 뜻인데.
수혁으로서는 차마 아니라고는 말을 하지 못했다.
연기를 잘하는 거지, 양심이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은 그럴 시간도 아니었다.
“네, 방금 원장님이 말씀하셨네요. 담배로 인한 급성 독성 반응. 아마 처음 들어 보셨을 겁니다.”
수혁의 말에 환자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담배를 피운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은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다 확인했다는데 어쩐단 말인가.
덕분에 수혁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드물지만, 가끔 경험할 수 있는 케이스지요. 보통은 담배 피운 사실을 숨기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진단이 안 되는 경우는 없지만.”
게다가 이번 케이스에서는 동시에 둘이 걸린 상황.
그 둘이 하필이면 군인인 데다가 훈련병이라 그 사실을 숨겨야만 했고.
확률로 따져 보면 거의 로또라도 사야 하는 확률인 셈이었다.
“아…….”
“자, 이제 말하세요. 담배 피웠죠? 지금 말해 주지 않으면, 동기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수혁은 엄지를 이용해 뒤편을 가리켰다.
딱히 환자가 보이진 않았지만, 수혁이 누굴 가리키고 있는지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어…….”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환자는 다시금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훈련병 신분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하는 것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이것 봐.”
그때 옆으로 살짝 물러서 있던 홍창기 교수가 나섰다.
얼굴 가득 인자한 표정을 짓고서였다.
“어……. 네.”
“괜찮아, 여기 병원이야. 여기서 하는 말 절대로 밖으로 안 새어 나가. 어차피……. 동기들이 분 거 같긴 하지만. 우리가 거기 훈육관들한테 말하는 경우는 없다 이거야.”
“그럼…….”
“그래, 말해 봐.”
홍창기 그야말로 더없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소 레지던트들 사이에서는 더없이 차가운 사람으로 소문나 있었기에, 수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루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 병원 의사들은 다 연기자여? 왜 다들 연기를 하고 난리야.]
‘그러니까……. 연기는 최고인 줄 알았는데.’
[수혁, 여러모로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둘이 때아닌 자아 성찰에 빠진 사이, 환자가 입을 열었다.
“피웠…… 습니다. 처음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담배에 의한 급성 독성 반응은 아주 당연하게도 알레르기 반응의 일종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러니 매번 담배를 피웠던 사람에게는 증상이 나타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 친구나 저기 누워 있는 저 친구나 평소 담배라고는 입에 대 본 적도 없다는 얘기였다.
“가끔 있어요, 이런 경우가.”
홍창기는 이제 이현종과 신현태 그리고 수혁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중 수혁을 향해서는 조금은 놀랬다는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상황은 레지던트가 진단하기엔 꽤 어려운 상황이지 않은가.
‘사방에서 워낙 칭찬만 해 대서 어떤 놈인가 했는데…….’
이 정도면 그리 호들갑도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티를 내지는 않았다.
“원래는 한 명씩…… 그리고 훈육관이 대강 눈치를 채고 데려와서 이렇게까지 문제 되는 경우는 없었는데.”
중환자실까지 오게 될 줄이야.
홍창기가 볼 때 저기 삽관한 친구는 이미 폐렴이 병발한 상황이었다.
급성 알레르기 반응 때문이건 뭐건 이유와 관계없이 기도가 좁아지게 되면 염증을 일으키는 법이었으니까.
‘이 녀석도 항생제는 당연히 같이 써야 하고.’
진단이 늦어지는 바람에 꼬이고 꼬여서 이 지경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지.’
여기서 또 놓치고 CT에 뭐에 검사만 늘어놓았다면, 어쩌면 환자 중 하나쯤은 놓치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꽃다운 스무 살에 오진 때문에 사망이라니.
상상하기도 싫은 그런 그림 아니던가.
“아무튼, 이렇게 생각하니까 증상이나 병력 등이 딱 맞아요. 스테로이드 저용량으로 스타트 해서 반응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수혁이가 맞힌 거지, 그럼?”
홍창기는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가고자 했지만.
이수혁 바라기인 이현종과 신현태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굳이 수혁의 공을 확인했고, 제일 아랫사람인 홍창기로서는 동조하는 수밖에 없었다.
“네? 네, 뭐 그렇죠.”
“역시 우리 수혁이.”
“그…….”
“환자분, 우리 수혁이가 목숨 살린 겁니다. 쩔죠?”
그중에서도 특히 더 팔불출인 이현종이 홍창기를 뒤로 밀어내고는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하도 원장이라는 직함이 크게 적혀 있어서 환자도 곧장 이현종의 직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원장 맞나?’
보통 드라마에 나오는 원장이라고 하면 일단 무게감이 장난 아니지 않던가?
게다가 태화 의료원이라고 하면 자타 공인 국내 최고였다.
비록 최근 지표만 놓고 보면 후발 주자들인 아선 병원이나 칠성 병원이 앞서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인식은 그랬다.
“쩔죠?”
그런 어마어마한 곳의 원장이 이러고 있다고?
환자는 어쩐지 해명을 원하는 듯한 얼굴로 홍창기를 바라보았다.
뭐 어쩌겠는가.
진짜 원장인데.
이럴 땐 조금 부끄럽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배기였다.
적어도 이현종 나이 또래에 전 세계에 먹히는 국내 의사는 이 사람 하나뿐이었다.
“워, 원장님. 쩐다뇨…….”
“쩔잖아. 네가 진단했냐? 얘가 했잖아. 얘 이제 겨우 28살이야. 10년 뒤에는 어떨지 상상이 안 돼.”
“그…… 알죠, 알죠. 근데 지금 환자분 앞이잖아요…….”
“수혁이가 살린 환자잖아. 이런 자랑도 못 들어 줘? 안 그래요, 환자분?”
환자는 허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다가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병명이 뭔지 알았다는 안도감도 들었거니와, 이현종의 광기 어린 눈빛을 마주하다 보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도 해서였다.
“거봐. 너는 가서 약이나 좀 써. 스테로이드. 너무 팍 때리지 말고. 어디까지나…… 추론의 결과인 건 알고 있지?”
물론 이현종은 아예 자신의 정신을 놓지는 않았다.
적어도 처방에 대한 지시를 내릴 때는 위엄이 넘쳐흘렀다.
그 때문에 홍창기는 ‘역시 우리 선배야’라는 표정으로 처방을 내렸다.
“현태야, 혹시 모르니까 좀 봐. 이거 감염이면……. 알지?”
이현종은 그런 홍창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신현태를 돌아보았다.
‘안 그런 척하면서 엄청 챙긴다니까…….’
신현태는 이현종이 이러고 있는 게, 다 저기 수도 병원 원장으로 가 있는 박기태 때문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아랫사람 잘 챙겨 주는 원장이 또 있을까?
보통 교수만 돼도 소시오패스가 드글거리는 세상인데.
‘이렇게 무른데…… 원장까지 온 게 용하지.’
그만큼 실력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네, 뭐. 안 그래도 제 손 탄 환자라 끝까지 경과는 보려고요.”
“그래, 그 정신 좋아. 수혁아, 너도 끝까지 봐. 끝까지 봐야 배우는 거야. 중간에 깨작거리면 자기 실력이 안 돼요.”
신현태까지는 더없이 위엄 넘치는, 그러니까 원장의 눈으로 바라보던 이현종이 수혁은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좀 부담됩니다.]
‘뭔가 다른 뜻이 있으신 건 아니지? 결혼도 안 하시고……. 약간 불안해, 저럴 때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물론 수혁은 연기의 달인임을 자처하고 있는 사람이니만큼 절대 티를 내지는 않았다.
“네, 원장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감사해야지. 우리 병원에 와 줘서 고마워.”
“아뇨……. 그……. 원장님…….”
왜 멜로드라마에라도 나와야 할 거 같은 표정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솔직히 얼굴은 소도둑놈처럼 생겨 가지고서는.
한창 당황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한마디 덧붙였다.
“다른 병원 갈 생각하면 죽여 버릴 거야.”
“네?”
“어? 농담이야, 농담. 하하하하. 여기 분위기 왜 이래.”
이현종은 절대 농담 같지 않은 말을 내뱉고서는 허허 웃으며 밖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수혁의 손을 신현태가 잡아 주었다.
“손이 왜 그렇게 축축해.”
“네? 아니……. 방금 죽인다고…….”
“하하. 죽이기야 하겠니.”
신현태는 껄껄 웃으며 수혁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어쩐지 좋은 소리 안 나올 거 같은 그런 눈이었다.
“근데 딴 병원 간다고 하면 내가 죽일 거야. 하하.”
예상한 대로 처절한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다들 미쳤네요.]
‘왜들 이래……. 무섭게.’
[생각해 보면……. 그렇게도 생기지 않았습니까? 저번 병원 원보 생각해 보세요. 위기예요, 태화 의료원.]
‘그건……. 그건 그래.’
칠성 그룹에서 미친 건지, 어떤 미래를 본 건지 갑자기 천억 넘게 투자한 것이 컸다.
아예 외래 동 전체가 새로 올라가는 데다가, 이를 위해서 여러 병원에서 스타급 교수들을 초빙해 가더니 바로 병원 경쟁력 1위를 뺏어 가고야 말았다.
그에 반해 태화는 저번 바루다 사건도 있고 해서 그룹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 상황이라 이래저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었다.
그런데 차세대 간판이 되어 줄 수혁이 만약 칠성으로 간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이현종이나 신현태 아니면 조태진이 죽이러 올 가능성이 있었다.
“안 갑니다, 안 가요.”
“정말이지? 내가 조건은 최대한 받아 놓을 거니까, 진짜 딴생각 먹지 마라.”
“네네. 물론이죠.”
“아무튼, 이제 슬슬 반응 올 때 됐는데?”
신현태는 협박을 늘어놓던 주제에 진중한 얼굴이 된 채 환자를 돌아보았다.
급성 독성 반응에 대한 스테로이드의 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법이었다.
그만큼 진단이 틀렸을 경우 감수해야 할 위험도 컸지만.
아무튼, 맞기만 하면 그 위력은 대단했다.
“호흡기 뗐네요?”
고개를 돌린 신현태는 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어……. 네. 숨이 안 차요. 아니, 차긴 찬데…….”
아까까지만 해도 코에 산소 달고 있던 환자가 제 손으로 그걸 떼고 있었다.
그런데도 산소 포화도는 100이었다.
상태가 바로 호전되었다는 뜻이었다.
옳은 진단의 위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