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약은 아직 무리래 (2)
[보조 용도의 인공지능이라.]
수혁이 신현태의 방을 빠져나오자마자, 바루다가 중얼거렸다.
스스로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는 형태의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거만해 보이는 말투였다.
‘어째 좀 듣기 불쾌한데?’
[아니꼬워도 어쩔 수 없죠. 사실 상용화 됐다는 기술 같은 거……. 저는 이미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건…… 그건 그렇긴 하지.’
아니, 상용화된 것들보다 더한 것들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폐결절 정도 감별하는 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바루다는 수혁이 좀만 도와주면 폐렴조차 감별해 낼 수 있었다.
심지어 영상의학적 어려움에 의해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복부 검사에 대해서도 얼마간의 감별 능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고.
‘근데 그럼 뭐 하냐. 넌 전면에 나설 수가 없는데.’
하지만 수혁의 말에 반박을 할 수는 또 없었다.
[그건 그렇죠.]
‘그리고 너 봤잖아. 왓슨도……. 솔직히 많이 딸려.’
[그렇긴 했습니다.]
어쩌다 맞는 답을 내기도 하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맞는 답이라고 해봐야 5개의 연합체 병원에서 하는 진단이었고, 치료였다.
더군다나 그 과정이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한 마디로 왓슨을 신뢰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젠 좀 시들해지긴 했어도, 한때 세계 최고란 얘기를 들었던 녀석이지 않은가.
그보다도 못한 수준의 인공지능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사실은 당연하게도 바루다의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러니까 그 수준에 맞춰야지. 그리고 보니까 확실히 의미는 있던데.’
[뭐……. 그렇긴 하더군요.]
‘왜 이렇게 시큰둥해?’
[저보다 못한 걸 만들어야 한다는 게 참.]
‘와……. 진짜…….’
[왜요?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수혁은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짜증 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수혁은 나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뇌의 일정 부분은 바루다와 대화를 하는 데 쓰는 데다가, 원래도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걸음걸이는 무척 느렸다.
[아무튼, 현실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죠. 그렇다고 제약을 탁탁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 그렇지.’
이럴 때면 제아무리 우수한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요술 주머니나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보는, 그러니까 지금까지 수혁과 바루다가 꾸준히 훈련을 쌓아 온 임상 영역이라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제약은 바루다에게도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걸 섣불리 건드리느니,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인공지능 영역이 더 나아 보였다.
[나중에는 반드시 시도를 하는 겁니다. 알았죠?]
‘알았어. 알았어.’
[하지만 지금은 일단 신현태 과장의 말을 존중하도록 하죠.]
‘그래, 근데 뭐 아이디어라는 게 한순간에 딱딱 떠오르는 건 또 아니니까. 오늘 스케줄부터 소화하자고.’
수혁은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기면서 스케줄을 떠올렸다.
하지만 먼저 답을 낸 것은 바루다였다.
[협진입니다.]
‘협진……. 교수님 앞으로 난 거 다 봐야 되는 거지?’
[당연하죠. 서효석 교수는 협진을 안 보니까요.]
자기 앞으로 입원한 환자도 잘 보질 않는 사람인데 어디 협진을 보겠는가.
아예 남의 환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어쩌다 그런 놈이 교수가 되어 가지고…….’
[아예 협진을 제끼는 것도 방법입니다. 수혁도 곤란해지긴 하겠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을 걸요? 반면 서효석은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그렇긴 하겠지. 흠.’
하지만 타과 입원 환자 중에 내분비내과적 처치나 검사가 필요한 사람은 정말 많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적절한 치료가 들어가지 않으면 사망하게 될 만한 사람들도 많았다.
서효석 교수를 날리는 목적 하나만 가지고 내깔겨 둘 수는 없단 뜻이었다.
‘일단은 보자. 그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방법이 있긴 할 거야.’
[유약하군요, 수혁.]
‘그런 게 아니라, 인마. 환자가 있으면 봐야지!’
[그렇게 소명 의식이 투철한 의사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직도 수혁의 기억 속에 양주 발언이 선합니다.]
‘그런 건 지워 좀!’
수혁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용케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컴퓨터에 앉았다.
하도 바루다에게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진 탓이었다.
별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질 않았다.
‘어디……. 어이구. 왜 이렇게 많이 쌓였어?’
[주말 동안 쫙 쌓였네요. 아무래도 수혁이 없는 동안에는 아무도 안 챙긴 거 같습니다.]
어찌나 안 봐줬는지 같은 환잔데 협진이 두세 번 난 경우도 있었다.
밖에서, 특히 아선 병원의 우창윤 교수가 태화 의료원의 약점은 내분비라고 말할 만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빠르게 한번 훑자.’
[어렵지 않은 일이죠.]
바루다는 무려 20개 넘게 쌓인 협진을 보면서도 그리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인공지능이 아닌 강혁도 마찬가지였다.
‘오케이……. 이 환자는 혈당 검사를 공복혈당으로 한번 해 봐야겠는데.’
‘이 환자는 갑상선 같은데. 검사 나간 게……. 어유 6년 전. 다시 한번 해 보고 필요하면 약 쓰자고.’
그리고 그러한 반응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빠르게 환자를 처리해 나갔다.
심지어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절반 이상 최종 회신을 남길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렇지 못한 환자들에게도 어떤 검사를 해보라는 식의 회신은 대부분 남길 수 있었다.
그렇게 싹 회신을 남긴 다음 수혁의 손에 남은 것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협진 자체가 흥미로워서는 아니었다.
협진 내용은 그저 당뇨였을 뿐이었으니.
‘1년 6개월 전에 발생한 허리 통증이라.’
[신경외과에 입원해 있군요. 문진 결과가 상당히 이상합니다.]
다만 환자가 신경외과에 입원한 주소 즉 주된 증상이 아주 이상해 보였다.
아니, 증상 자체는 별거 없는 아주 흔항 증상이었으나 그 경과가 이상했다.
[통증을 호소한 부위가 너무 다양하군요.]
‘뭔가 좀 이상하지?’
[꼭 내분비쪽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과적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 보자. 멀지도 않네. 병동이.’
[네.]
그래서 수혁은 해당 환자에 대한 차트를 출력한 후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딸가닥.
딸가닥.
여느 때처럼 지팡이 짚는 소리를 여기저기 울려대면서였다.
처음엔 워낙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은 병원인지라 딱히 주의를 끌지 못했었는데.
수혁이 원장 아들에 병원 설립 사상 가장 천재라는 소문이 퍼지고 나서부터는 이게 일종의 고양이 방울이 되었다.
“어, 이수혁 왔나 보다.”
“왜 왔지?”
“협진 냈잖아. 서효석 교수님한테.”
“아……. 차라리 잘됐네.”
“근데 그냥 당뇨 협진 낸 건데 왜 직접 왔지? 약 바꾸고 하는 건 랩만 봐도 될 텐데?”
“어……. 그러게?”
그래서 신경외과 병동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들은 미처 수혁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그의 출현을 알아차렸다.
덕분에 그중 가장 연차가 낮은 간호사가 병동에서 협진을 낸 환자 차트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협진 오셨죠?”
“어. 네.”
“이쪽이에요, 선생님.”
보통의 레지던트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접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원내 최고 권력자인 이현종 원장의 아들에게라면 이 정도는 해야만 했다.
특히 수간호사가 있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무튼, 수혁은 상당히 편하게 환자 병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2인실 중에서도 문가 쪽에 있는 환자였다.
“진료 볼게요. 감사합니다.”
수혁은 간호사에게 인사를 건넨 후 안으로 들어섰다.
[예의바른 연기는 늘 최고군요.]
‘원래 그렇거든?’
[기억을 살펴 보면…….]
‘그만, 그만.’
바루다의 참견을 털어 내면서였다.
바루다 또한 환자를 대면하고 있는 상황에서까지 깐족거리는 놈은 아니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김다현 환자분 맞으시죠? 내분비내과에서 왔습니다.”
“아……. 네.”
수혁은 살짝은 당황한 얼굴이 된 환자를 부리나케 살폈다.
[나이는 42세, 여성. 담배는 피지 않으며 생리 주기는 아주 규칙적입니다.]
바루다는 그런 수혁을 도와 입원 기록에 쓰여 있던 정보를 줄줄 읊어댔다.
“당뇨는 사실 조절이 잘되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검진차 왔습니다.”
“아, 네네. 감사합니다.”
환자는 수혁이 대강 둘러댄 후에야 몸을 편히 했다.
하지만 얼굴만 다소 편해졌을 뿐, 자세는 여전히 엉거주춤이었다.
[진통제가 들어갔음에도 통증 조절이 아주 잘 되는 거 같지는 않군요.]
‘이상하지? 약을 이중으로 썼던데. 어지간한 통증이라면 조절이 되야 하잖아?’
[반드시 그럴 거라고 보기엔 이제 입원한 지 하루째입니다. 적절한 대응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 하긴. 그럼 아직……. 오전에 낸 검사 처방 결과도 주치의가 모를 수도 있겠네.’
수혁은 뭔가 루틴으로 쭉 긁은 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던 검사 결과를 떠올렸다.
골절을 의심했는지 각종 x[ray 검사가 쭉 나가 있었다.
“환자분, 엑스레이 찍은 건 혹시 결과 들었나요?”
“아, 아뇨. 방금 찍고 왔어요.”
“아……. 그렇구나.”
“결과 아시나요, 혹시?”
“네? 아…….”
수혁은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의 시선은 아주 당연하게도 환자의 지정의, 즉 입원시킨 교수인 최필두에게로 고정되었다.
서효석처럼 자기 환자는 알아서 다 처리하길 바라는 교수들도 있긴 있지만.
대부분은 감히 내 환자한테?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양반……. 환자에게 얼마나 관여해도 되려나?’
[상관 없을 거 같은데요? 이현종 원장한테 완전 깨갱이잖아요.]
‘하긴 나한테 함부로 말하다가 한번 된통 혼났지.’
[게다가 이 환자 적어도 신경외과적인 허리 통증은 아닙니다. 엑스레이가 좀 이상하잖아요.]
‘그래? 자신 있지?’
[그럼요.]
‘오케이. 알았어.’
애초에 최필두에 대한 감정도 좋지 못한데다가, 바루다의 말까지 듣고 나니 결심이 딱 서 버렸다.
그래서 수혁은 상당히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신경외과라……. 선생님들이 다들 너무 바빠서……. 저 여기 입원하고 의사 선생님 이번이 두 번째에요. 오늘은 아예 보지도 못했어요.”
김다현 환자는 긴장이 좀 풀리는지 말이 많아졌다.
수혁으로서는 십분 이해가 가는 얘기였다.
신경외과는 바쁘기로 소문난 대학 병원에서조차 제일 바쁜 과였으니까.
“검사 받으신 걸 보면……. 좌측 골반 하부에 골절설이 있어요.”
“네? 골절이요? 저 어디 부딪친……. 아이고.”
“그리고 갈비뼈에도 약간 골절이 의심되는 부위가 있습니다. 이쪽으로는 통증 없으세요?”
“움직일 때 아프긴 해요. 근데……. 허리만큼은 아니고, 부딪친 적 아예 없는데…….”
“정말 부딪친 적이 없으세요?”
“네. 없어요.”
“흠.”
골절의 가장 흔한 원인인 부상이 배재된 상황이었다.
아주 간단해야 할 진단 과정이 극도로 꼬이게 된 마당이기도 했다.
자연히 수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엑스레이 보고 그럴 거 같긴 했는데……. 정말 부딪친 적이 없으니까 고민되는데? 뭔 검사를 더 하지?’
[일단 전과부터 받죠.]
‘전과……. 서효석이 받으려나? 아니, 최필두 교수님이 주시긴 할까?’
[오.]
거기에 더해 진료 외적인 고민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수혁의 얼굴은 거의 울상이 되고야 말았다.
‘조언을 좀 해 봐.’
[아니……. 이런 건 좀 알아서 하세요.]
게다가 바루다도 모르쇠였다.
‘시발놈아.’
[어허, 어허. 욕은 하지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