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진짜 이상하네 (2)
“응?”
이미 나름의 결론을 내린 엡스 교수가 수혁을 바라보았다.
스티브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휠체어에 앉아 있던 환자도 그러했다.
수혁은 그들 모두를 둘러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 환자, 제가 다시 한번 봐도 될까요?”
괜히 얘기를 꺼냈나 하는 후회는 없었다.
그랬다면 지금쯤 목소리가 아주 조금은 떨려 오지 않았겠는가.
오히려 당당하기 그지없을 따름이었다.
[뭔가 있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했다.
“환자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엡스 또한 수혁의 얼굴에서 그러한 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 그가 지금까지 수혁의 실력을 보지 못했다면 여기서 욕이라도 한 사발 끼얹어 주었을 터였다.
하지만 엡스는 이미 여러 차례 수혁의 신들린 듯한 진단 능력을 엿본 바 있었다.
그나마 미국에서만 흔한 질환에 대해서는 아주 기본적인 질환도 헷갈린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아이오와 주립 대학교 연구소에 다녀온 이후―그것도 싹 극복해 버렸더랬다.
오히려 스티브보다도 더한 신뢰가 쌓여 있다는 얘기였다.
“네, 교수님.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좀…….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레지던트가 감히 교수의 말에 토를 다는 건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미국이 자유롭다고 해도, 어떤 선은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엡스는 그리 화가 나지 않는 자신이 신기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궁금하기만 했다.
이 녀석이 대체 뭘 보고 이상하다고 하는 건지.
자신이 뭘 놓친 건지.
“음, 뭐. 어차피 시간은 있으니까. 괜찮겠지. 다시 보죠.”
“아……. 네, 교수님.”
해서 손짓을 해 댔고, 교도관은 휠체어를 다시 돌려놓았다.
그렇게 다시 보게 된 환자의 얼굴은 과연 험상궂었다.
‘허약해 보이는데 무서워.’
참 아이러니한 발언인데.
정말 그랬다.
비쩍 마른 얼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환자는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게다가 꾀병으로 CT 찍고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던 기회를 눈앞에 조그마한 동양인 의사 때문에 잃을 수 있단 생각에 표정까지 별로 좋지 못했다.
[뭐 합니까? 가까이 가야 진료하죠.]
‘수갑 저거 안 풀리겠지?’
[안 풀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움직이지도 못할 거 같은데요?]
‘하긴……. 여차하면 막아 주겠지.’
수혁은 교도관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덩치가 산만 한 것이 이런 죄수 한둘쯤은 팔뚝 하나로도 제압이 가능할 거 같았다.
해서 수혁은 다시 환자 앞으로 다가갔다.
“환자분, 입 좀 벌려 볼래요?”
“입?”
“네. 한번 벌려 보세요.”
“음.”
환자는 수혁의 지시에 따르는 대신 엡스 교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이런 애송이의 말을 꼭 따라야 하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대로 하시죠. 닥터 리는 아주 우수한 의사입니다. 저도 가끔은 배워요.”
“호.”
환자는 절대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일단 수혁의 말대로 입을 벌렸다.
잘 관리되지 않은 이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내과가 아니라 치과를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를 닦기는 하는 걸까요?]
‘그러니까…….’
도저히 그냥 볼 자신이 없어지는 끔찍스러운 광경이었다.
수혁은 저도 모르게 장갑을 낀 채 환자의 입술을 좀 더 바깥쪽으로 당기곤, 불을 비추었다.
환자는 무척 언짢은 얼굴이었지만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수갑이 목에 연결이 되어 있어서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흠.”
수혁은 엉망인 이 대신 잇몸 쪽을 바라보았다.
중금속 중독인 경우, 특징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소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튼스 라인(Burton’s line)이 있군요.]
‘그러네. 이건……. 납 중독에서 주로 나타나는 소견인데.’
잇몸에 검푸른 색이 착색되는 형태의 이상 소견이었다.
방금 수혁의 말대로 납 중독에서 주로 나타날 수 있는 소견 중 하나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보였던 미즈 라인이나 아스닉 케라토시스도 납 중독에서 보일 수 있죠.]
‘그래, 비소보다는 납 쪽이 훨씬 자연스럽지.’
[근데 납이 대체 어디서 유입이 되고 있는 걸까요?]
‘일단 이 사실부터 말을 해 주는 게 낫겠어. 말 안 하면 바로 데리고 나갈 거 같아.’
수혁은 자신이 나선 이후로 단 한 순간도 눈을 떼고 있지 않은 엡스, 스티브 그리고 교도관을 둘러보았다.
그나마 엡스나 스티브는 그간 보아 온 게 있어서 표정이 아주 엉망은 아니었지만.
교도관은 그야말로 못마땅한 표정의 표본인 수준이었다.
가뜩이나 하기 싫은 업무 아니겠는가.
나쁜 놈들에게 이만한 치료라니.
그가 보기엔 이런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은 저기 슬럼가에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교수님.”
하지만 교도관은 차분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덕에 수혁은 엡스 교수에게 자신이 본 사항을 일러 줄 수 있었다.
엡스 교수는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놀란 얼굴이 되었다.
“납 중독……?”
솔직히 말하면 방금 수혁이 말해 준 무슨 라인이니, 무슨 케라토시스니 하는 것들은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학생 때 들어 본 기억은 있었다.
그게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몰랐을 뿐.
“네. 납 중독입니다. 그중에서도 이 손톱에 나타나 있는 미즈 라인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흐음……. 이상한데? 교도소에 그럴 만한 시설이 있나?”
뭐가 어찌 되었건 교도소는 미 정부 시설이었다.
그 말은 곧 가장 엄격한 기준에 의해 지어졌고, 또 운영된다는 뜻이었다.
미국 교도소가 위험한 건 그 안에 있는 재소자들 때문이지 시설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아뇨. 납을 다루는 곳은 없습니다. 납땜도 하지 않아요. 사고의 위험이 있어서.”
같이 따라온 교도관도 세차게 고개를 저어댔다.
좀 더 등급이 낮은 교도소에서는 나름대로 직업 재활 훈련이라고 해서 이것저것을 한다고 하던데.
여기 있는 놈들은 뭐라도 쥐여다 주면 흉기로 사용할 놈들이었다.
심지어 숟가락도 살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여기서 교도관 노릇 하면서 배웠다.
“이 비슷한 소견을 본 적은 없습니까?”
엡스 교수는 그런 교도관에게 환자의 손바닥을 보여 주었다.
아스닉 케라토시스가 명확했는데, 그 말은 곧 보기 싫은 작은 반점이 알알이 박혀 있다는 뜻이었다.
누가 봐도 한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아마 저 비슷한 손을 누군가 다른 녀석이 가지고 있다면 바로 이름을 댈 수 있을 터였다.
교도관은 휠체어에 앉은 교활한 피트의 실제 이름이 실은 아주 말랑말랑한 장 폴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아뇨. 없습니다.”
그만큼 죄수들에게 관심이 많다는 뜻인데, 하늘에 맹세코 이런 손바닥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자 엡스의 얼굴이 더더욱 심각해졌다.
“그럼 이 환자만 납에 노출이 되고 있다는 뜻인데…….”
“아뇨. 그렇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반점이 나타나려면 상당히 오랫동안 노출이 되어야 합니다. 아, 교도관님. 혹시 이 사람 수감 기간이 어떻게 됩니까?”
수혁의 말에 교도관은 자신의 턱을 쓸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수혁을 그리 탐탁지 않은 눈으로 봤었는데.
어쩐지 지금은 그의 질문을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해서 최선을 다해 머릿속을 뒤진 후 부리나케 입을 열었다.
“올해로 8년째입니다.”
“긴 편인가요?”
“아뇨. 저희 시설에서는 평균입니다.”
“흠.”
그 말은 곧 엡스의 말대로 다른 수감자에게도 증상이 나타났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이 사람 감방에서만 납이 흘러나오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 잠깐만.”
한참을 수혁과 엡스가 토의를 이어 나가고 있을 무렵,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죄수 장 폴이 입을 열었다.
생각 같아서는 손을 들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수갑이 목에 걸려 있었으니까.
그냥 목소리만 낼 뿐이었는데, 한창 토의에 빠진 터라 그 누구도 장 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진 않았다.
“혹시 감방에 대한 역학 조사가 가능한가요?”
“어……. 그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아니, 혼자 사용 중인가요?”
“아뇨. 2인 1실입니다.”
“그 사람 지금 왔나요?”
“아뇨. 그 친구는……. 모범수입니다.”
그 말은 곧 장 폴은 모범수가 아니란 뜻이기도 했다.
마침 계속 씹히고 있던 장 폴의 심기를 건드리기 충분한 말이기도 했고.
“아니, 내 말 좀!”
해서 소리를 질렀다.
당연하게도 모두의 눈이 장 폴을 향했다.
그중에서 교도관의 눈은 아주 사나웠다.
“미쳤어? 의사분이 물을 때만 입 연다, 이게 원칙인 거 잊었어?”
덩치도 큰 데다가 원래도 무섭게 생긴 사람이 이 난리를 피우니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공포가 전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니 그 덩치를 직면하고 있는 장 폴의 두려움은 더할 나위 없을 지경일 터였다.
하지만 장 폴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나도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러는 거라고요!”
일단 교도관의 이유 없는 체벌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일단 다리가 불편한 사람 아니던가.
대부분 상대 과실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진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뭘 드릴 말씀이 있어?”
“제 증상이요!”
“아.”
교도관은 꽤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해서 증상이란 말에 위협적인 태도를 즉각 거두고, 비켜 주었다.
그제야 수혁과 엡스는 장 폴을 다시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름 진중한 얼굴을 하는 듯했지만.
평생을 쌓아 온 껄렁거림은 어쩔 수 없었다.
“의사 양……. 아니. 음. 의사 선생님들.”
“네. 말씀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하나도 안 들어 놓고선…….”
“지금은 듣고 있잖아요.”
늘 환자에게 있어서만큼은 친절했던 엡스인데도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지금 대면하고 있는 죄수가 어떤 범죄를 일으켰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무튼, 이 교도소에 들어오는 죄수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인지는 알고 있기에 그러했다.
제아무리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고 해도 사람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흥.”
장 폴은 그런 엡스의 태도가 익숙한 듯 그리 개의치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바닥을 힘겹게 위로 올렸다.
“뭐 내 손톱이나 입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도 몰라요. 하지만 이거. 나 이거 원래 이랬어.”
“원래 이랬다고요? 태어날 때부터?”
“아니……. 그건 아니지. 하지만 꽤 됐어. 적어도 10년은 넘었다고.”
“10년이라. 그럼…….”
적어도 이 교도소에 수용되기 전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은 납 중독의 원인이 교도소에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고.
“뭐야, 그럼.”
“말이 안 되잖아.”
어떻게 교도소에 오기 전에 있던 납 중독이 지금까지도 이어진단 말인가.
설령 납 중독을 일으키는 물건을 지니고 있다 해도 모조리 압수되었을 텐데.
방금 엡스가 중얼거린 것처럼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납 중독이 아닌가?’
[아뇨. 검사는 해봐야겠지만 저 정도로 소견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정도면……. 납 중독은 확실합니다.]
‘아귀가 안 맞잖아.’
[뭔가……. 놓친 게 있을 겁니다. 그걸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