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04화 (104/1,303)

104화 파티 (3)

화이자라는 말에 수혁은 다시 한번 로니라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빡빡 민 머리에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흑인 남성이었는데, 인물이 썩 좋았다.

큼지막한 눈은 물론 코도 오뚝한 느낌을 주진 않아도 시원하게 잘 뻗어 있었다.

무엇보다 체격이 좋았고, 옷걸이가 되었다.

[있어 보이는 사람이네요.]

‘그러니까. 배우 같지 않냐?’

[옷도…… 아르마니네요.]

‘일부러 아르마니를 입은 건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조르지오 아르마니, 그러니까 아르마니의 창업자는 의대를 다니다 중퇴한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명품 정장 브랜드 중에서 의사들이 제일 선호하는 브랜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무튼, 로니는 정말이지 있어 보이는 사내였다.

“닥터 리 반갑습니다.”

동시에 아주 젠틀한 사람이기도 했다.

어디서 따로 교육이라도 받은 건지는 몰라도, 악수를 청하는 자세에서부터 매너가 느껴졌다.

“아, 네. 이수혁입니다. 태화 의료원 내과 2년 차입니다.”

“2년 차면……. 펠로우이신가요?”

“아뇨, 레지던트입니다.”

“오. 레지던트인데 연수를 올 정도면 아주 우수하신 분이겠군요.”

사실 로니에게 수혁이란 존재는 거의 티끌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로니는 미국 중서부 지역의 화이자 RND 산업 전체를 총괄하는, 그야말로 거물이었고.

수혁은 기껏해야 한국의 레지던트였으니까.

물론 태화 의료원이라고 하면 작은 병원은 아니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마찬가지였다.

영업의 대상으로서의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산학 협동 연구 대상으로서의 가치는 별로인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니는 여전히 예의 바른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정말 우수한 친구예요. 행크랑 엘리슨이 홀딱 반해서 지금 여기로 오게 하려고 영업 중입니다.”

그런 로니의 질문에 답을 해 준 것은 수혁이 아니라 황이었다.

“그런가요? 행크 교수님하고, 엘리슨 교수님이?”

그 말을 들은 로니는 상당히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아는 저 둘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어찌 보면 거만하기까지 한 위인들이었기에 그러했다.

둘이 누군가를 인정하는 일은, 특히 그 대상이 외국인이라면 극히 드문 일일 터였다.

“네. 얘기를 들어 보니 진단 능력이 남다른 거 같더라고요.”

“호오…….”

로니는 아까보다는 좀 더 흥미가 짙어진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그럼 혹시 진행 중인 연구도…… 있습니까?”

그리곤 자신이 정말로 관심을 두는 분야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늘 자신만만하던 수혁의 얼굴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연구라.]

‘김진실 교수님하고 하고 있는 게 있기는 한데…….’

[솔직히 김진실 교수님 연구죠, 그건.]

‘그러니까.’

김진실 교수는 복부 영상의학의 대부 이하언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신진 교수 아니던가.

당연하게도 그녀가 진행 중인 연구 중에는 어마어마한 연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AI 관련한 연구들은 너무 영상의학과스러운 데다가, 동시에 이미 산학 협동으로 잡혀 있는 업체들이 있어 수혁이 끼어들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가 관여하고 있는 연구는 그나마 가장 임상과 연관이 있는, 간암에 대한 고주파 열 치료에 관한 것이었다.

[게다가 치료의 프로토콜을 변경하는 방식의 연구이지, 새로운 약물하고 상관이 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좀 말하기 쑥스러워지는데?’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죠. 대신……. 관심을 좀 끌면 좋긴 하겠습니다.]

‘어떻게?’

[수혁이 잘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바루다가 말한 수혁이 잘하는 것이란 다름 아닌 뭔가 있어 보이게 말하는 것이었다.

수혁은 바루다의 뉘앙스가 입만 산 놈이란 뜻으로 들리기도 해서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일단 입을 열기는 했다.

실제로 잘하는 분야이긴 했으니까.

“아……. 얼마 전에 1저자로 논문 낸 것이 있기는 합니다.”

“오. 2년 차인데, 벌써 1저자로 발간이 된 논문이 있다고요? 어디인가요?”

로니는 굳이 로컬이라는 말을 붙이진 않았지만 내심 확신하고 있었다.

내놓으라 하는, 미국의 우수한 레지던트들도 2년 차 때에 1저자로 논문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낸다고 해도 기껏해야 케이스 리포트이거나 완전 로컬 학술지가 대다수였다.

아주 옛날에야 20대에도 역사에 길이 남을 연구 논문을 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지 않았는가.

신진 연구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점점 늦어지는 실정이었다.

“아, NEJM에 냈습니다.”

“네?”

그렇기에 NEJM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로니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놀라고야 말았다.

산학 협동 연구 총책이자, 국회 로비스트 출신인 그의 얼굴에 진짜 감정이 드러났다는 얘기였다.

이런 일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황도 적잖이 놀란 얼굴을 하게 되었다.

‘NEJM……? 연구도 잘해?’

그 또한 NEJM 얘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NEJM에…… 냈다고요?”

로니는 바로 옆에서 입을 쩍 하고 벌리고 있는 황에게서 완전히 몸을 돌린 채 수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냥 똘똘한 레지던트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정도가 아닌 거 같아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이 임상 시험의 천국인데…….’

대한민국의 대학 병원들이라고 해서 산학 협동 연구를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저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뿐이었는데, 그건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의 구조 및 역량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제 K-바이오라는 말이 나온 지 기껏해야 15년 남짓한 상황 아니던가.

뛰어든 기업 중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곳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기업 대부분의 사활이 한두 개의 약에 걸린 상황이기도 했다.

여기서 무리하게 산학 협동 연구를 진행할 정신 나간 회사는 없다고 보면 되었다.

‘지금 우리 회사 약 중에서도……. 임상 데이터를 서울에서 쌓고 있는 게 꽤 있지.’

그렇다고 최첨단 연구에서 뒤처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어떻게 대한민국 의료계가 여기까지 왔는데.

해서 대학 병원에서는 외국계 제약 회사들의 연구에 어떻게든 참여하려고 했고, 그 일환으로 임상 시험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뭐 건강 보험 제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겸사겸사 그런 상황이었다.

즉 예전보다는 다국적 제약 회사에 있어 대한민국의 위상이 아주 조금은 올라갔다는 얘기였다.

“네. NEJM.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과분한 학술지에 냈다고 생각합니다.”

깜짝 놀란 얼굴의 로니에 비해 수혁은 정말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꾸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해도 절대 별거 아니라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좋아요. 역시 연기 좋아.]

수혁의 예상대로 로니는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운이 좋아서 낼 수 있는 곳은…… 아니지, 절대.’

오죽하면 화이자에서 막대한 돈을 들여 펀딩한 연구들조차 숱하게 고배를 마시겠는가.

아니, 고배를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성공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

지금까지 그가 관여했던 연구 중에 NEJM이나 그 정도 급이라고 인정받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수를 즉시 손에 꼽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케이스 리포트는 아닌 거 같은데, 어떤 연구죠?”

“관상동맥의 해부학적 변이 중 하나를 우연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 혹시 그 논문 링크를 제가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번호 알려 주시면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수혁은 아주 자연스럽게 로니의 연락처를 물었다.

‘음……. 번호라. 내 번호 아는 레지던트가 있기는 있던가?’

당연하게도 로니는 수혁의 수작을 대번에 간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단칼에 거절하지 않는 것은, 여기 수혁이라는 친구에게 상당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뭐……. 태화 의료원이면 한국 화이자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로니는 자신의 번호를 알려 주었다.

수혁은 늘 논문 PDF 파일을 들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파일을 건넬 수 있었다.

내심 로니가 그 파일을 받자마자 읽어 보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대신 더 재미있는 제안이 돌아왔다.

“가면서 읽어 보죠. 혹시 시간 괜찮으면 주말에 시카고로 와요. 우리 연구소 중 하나가 시카고에 있는데……. 미국까지 온 김에 견학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수혁은 그 제안을 덥석 무는 대신 황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황 뒤에 서 있던, 어느 틈엔가 대화를 엿듣고 있던 엘리슨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쁠 거 없죠. 어차피 주말에는 스케줄도 없는데.”

“감사합니다. 좋은 기회가 될 거 같습니다.”

“말 나온 김에 여기서 약속을 잡죠? 다음 주?”

엘리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로니를 바라보았다.

로니는 잠깐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곧장 스케줄을 확인했다.

“뭐……. 저는 이제 샌프란시스코로 가야 하는데, 다른 담당자에게 얘기해 두겠습니다. 다음 주에 오시죠.”

“좋아. 닥터 리, 괜찮죠? 다음 주?”

“감사합니다.”

수혁은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일전에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병원 부속 연구소에 갔을 때도 바루다가 상당한 연구 데이터를 얻어 내지 않았던가.

화이자의 연구소라면 아이오와보다도 더 나을 테니, 더더욱 커다란 소득을 얻어 낼 수도 있었다.

“자, 여기 담당자 번호예요.”

로니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혁에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연구소장의 명함인 듯했다.

이런 사람의 명함을 툭툭 건네줄 수 있다니.

수혁은 새삼 눈앞의 로니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연락하겠습니다.”

“네. 그럼 즐거운 파티 되십쇼.”

로니는 갈 데가 있다고 하면서 곧 차를 타고 사라져 갔다.

무려 기사가 딸린 롤스로이스 차를 타고서였는데, 당연하게도 바루다의 야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저런 차 타게 해 줄 겁니까?]

‘아니……. 넌 기계 주제에 뭔 롤스로이스야.’

[잊었습니까? 저는 수혁의 모든 감각을 공유합니다.]

‘그거……. 되게 소름 끼치는 말인 건 알고 있지?’

[덕분에 소름 끼친다는 감각이 어떤 건지 방금 배웠군요.]

‘하…….’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바루다는 정말 최선을 다해 화이자 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준비하도록 시켰다.

[왜애애애앵.]

‘아니, 환자도 없는데 왜 난리냐고!’

[롤스로이스.]

‘이런 미친놈아. 연구소 간다고 그게 나오냐?’

[왜애애애앵.]

‘알았어, 알았다고……. 근데 내가 이 사람 개인에 대해서 왜 알아야 하는데?’

[아픈 사람 치료해 주는 것만큼 고마운 일도 없죠.]

‘아픈지 안 아픈지도 모르잖아…….’

[아픈 데가 있고, 아무도 못 고치고 있기를 빕시다.]

‘너 그거 되게 부적절한 기도인 거 알고는 있냐?’

[가치 판단은 기계의 몫이 아닙니다.]

‘기계처럼 하려면 롤스로이스를 바라지나 말던가! 둘 중에 하나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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