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9화 (99/1,303)

99화 가진 거 내놔 보셔 (2)

“네? 왓슨을…… 보고 싶다고요?”

“네, 왓슨. 저희도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으로 같이 학습을 하거든요. 조언을 드리려면……. 아무래도 어떤 인공지능인지 한번 봐야 할 거 같은데요.”

“어…….”

스티브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닥터 왓슨 프로젝트는 일개 레지던트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 프로젝트였으니까.

‘뭐라고…… 하지?’

단지 비용만의 문제라면 그나마 간단할 터였다.

하지만 왓슨 프로젝트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관여되어 있었다.

그것도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병원의 뛰어난 교수들이었다.

‘근데 이상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지금의 왓슨 프로젝트는 실패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니, 실제로 실패했다.

주어진 정보를 분석해 내는 것은 잘하지만, 그 정보라는 것이 오로지 텍스트에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인공지능에게 사람의 눈과 귀, 코, 혀 그리고 촉각을 대신할 장치를 달아 주지 못하지 않은가.

어찌 보면 예견된 실패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걸로……. 대체 뭔 교육을 한다는 거야.’

설마하니 태화 의료원인지 뭔지에서 만든 인공지능이 왓슨보다 훌륭할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교육 방법에 뭔가 비밀이 있을 터였다.

[고민하는 거 같죠?]

‘고민하네. 근데 왓슨을 보여 주는 게……. 그렇게 큰일인가?’

[설마 그냥 ‘와 왓슨이다’ 하고 나갈 생각이었던 건 아니죠? 그렇다면 정말 큰일인데. 역시 이현종 머리에……. 아니, 수명이 길지 않으려나…….]

‘이놈은 틈만 나면 지랄이네. 내가 기계를 아냐? 하나도 몰라, 이놈아.’

[무언가를 모른다는 게 이렇게 당당할 일인가 싶긴 하지만……. 이해는 합니다. 의대 공부했는데 기계까지 알면 그건 좀 이상한 일이죠.]

옛날 같았으면 아마 마냥 깐족거리기만 했을 테지만.

이제 바루다는 수혁의 아주 밑바닥에 있는 기억까지도 거의 다 분석을 해 낸 상태였다.

그 말은 바루다가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더 수혁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기계한테 이해받는 기분이라니.

아마 경험 없는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을 터였다.

‘기분 희한하네. 아무튼, 보면 좋은 게 뭔데? 그리고 얜 왜 이렇게 고민해?’

[고민할 만하죠. 만약 수혁이 인공지능에 대해 능통한……. 가령 태화 전자에서 이 위대하신 바루다를 만들어 낸 사람이라면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으로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네가 그렇게 위대하면 왓슨인지 나발인지 볼 필요 없는 거 아냐?’

[음.]

수혁의 말에 바루다는 몹시 불편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그리곤 한숨을 토해 냈다.

[저를 만든 개발자들이 왜 양키 타도, 양키 타도를 외쳤겠습니까?]

‘글쎄.’

[그건 양키가……. 그러니까 그 양키들이 만든 왓슨이 워낙 뛰어나서였을 겁니다.]

‘오……. 상당히 자기 검증력이 강한데?’

[물론이죠. 근거 없는 자신감 만큼 위험한 건 없으니까요. 이 바루다에게 약점이란 없습니다.]

‘바로 후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바루다에 이어 수혁이 약간은 다른 의미의 한숨을 토해 낼 때쯤에서야 스티브가 재차 입을 열었다.

종업원이 그가 주문한 햄버거 두 개를 내려놓는 시점과 거의 같았다.

“그……. 저는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먼저 드세요.”

“식으면 맛없는 거 아니에요?”

“어…… 아뇨. 여긴 그래도 맛있……. 아니, 이게 아니고. 전화를 좀 드리고 말씀을 드려야 될 거 같아서요. 제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아……. 알겠어요. 제가 괜히 곤란하게 해 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뇨, 아뇨. 알려주신다는데……. 저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스티브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이틀 연속 외래 찢었는데 인상 깊었겠지.]

‘외래를 찢긴 뭘 찢어……. 어디서 본 거야.’

[‘쇼 미 더 머니’요.]

‘나도 안 본 걸 대체 어디서 봤어?’

수혁은 진정으로 두렵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마 자신이 잠들 때 몸을 통제했나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에 반해 바루다는 아주 시큰둥했다.

[공부할 때 주의력 일부를 TV에 돌려놨죠.]

‘아니, 이 새끼가?’

[일단 먹읍시다. 먹어요. 이야 이거 딱 내가 좋아하는 맛이네.]

‘내가……. 내가 좋아해서 먹는 거야.’

[그거나 이거나.]

‘그……. 아니다.’

수혁은 더 논쟁하기를 포기하고 일단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오?’

[이거……. 이거 미쳤네.]

‘진짜 중부 최고일 수도 있겠는데.’

[그러니까요. 이거보다 더 맛있는 햄버거가 있기는 하려나.]

딱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허름하기만 했던 가게 내부가 정갈해 보이는 효과를 지닌 맛이 느껴졌다.

패티에서는 ‘이게 육즙이고 지금까지 너희가 먹었던 건 다 가짜’라고 주장하는 듯한 녹진한 육즙이 줄줄 새어 나왔다.

아삭한 양파와 토마토 그리고 양상추는 딱 좋을 정도로 녹은 치즈와 한데 어우러져 그 육즙의 풍미를 더 살아나게 만들고 있었고.

‘빵은 뭔데, 이거.’

[미쳤네.]

심지어 그저 빵일 뿐이었던 번조차 고소하니 모든 맛을 조화롭게 만들어 주었다.

“네네, 왓슨을……. 보고 싶다고 하는데요.”

수혁이 바루다와 함께 황홀경에 빠져들고 있을 때, 스티브는 커다란 덩치를 잔뜩 구긴 채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왓슨을……? 그걸 왜?”

“태화 의료원에서는 이제 교육에 인공지능을 쓴다고 합니다.”

“어? 그런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아, 기밀인가?”

“그런 거 같습니다. 꽤 조심스러운 태도였어요.”

“기밀이라 이거지. 교육법이……. 하긴……. 이수혁이 그 친구 보면 그럴 만도 하지.”

조태진이라고 했던가.

사람 좋은 얼굴을 해서는 별 특별한 것도 없다고 구라나 치고.

행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잠시 옆을 바라보았다.

이미 연구소에 온 지 오래였기 때문에, 옆 방에는 현재 내과 과장인 앨리슨이 있었다.

“잠깐 기다려 봐.”

“네.”

해서 행크는 곧장 앨리슨에게로 달려갔다.

앨리슨은 마침 한창 연구 중인 건 아니었던지라, 문을 열고 들어서는 행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뭐, 주말에 모이는 거? 전해 들었어. 비비큐 먹으러 가야지.”

“아아. 그래요. 주말에 오는 건 오는 건데.”

“어? 그거 때문이 아냐?”

“그, 이수혁 말입니다.”

“이수혁?”

갑자기 들어와서 이수혁이라니.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이수혁이라는 이름 자체가 미국인들에게는 무척 낯선 이름이었으니까.

하지만 앨리슨은 무려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병원의 내과 과장을 맡을 정도의 우수한 재원이지 않은가.

“아……. 그 연수생. 왜?”

“괴물이던데요? 걔?”

“괴물? 그 정도야?”

“어제 제 외래 왔을 때도……. 진짜 장난 아니긴 했거든요?”

“들었어. 다학제 데려갔다고. 처음이지? 연수생을……. 월말 아니고 월초 다학제에 데리고 들어간 건.”

수혁이야 원래 다학제가 마련되어 있는 병원에서 온 몸이었지만.

“네, 처음이죠. 그럴 만큼 우수했는데……. 오늘 엡스 교수 외래에서는 뭐라더라. 그래, 대마로 인한 면폐증? 뭐 이딴 걸 진단했다고 하더라고요.”

“면폐증? 그게 뭐야.”

“모르죠. 그러니까 대단하죠.”

앨리슨은 행크의 말을 들으며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곱씹어보니 과연 그럴싸한 의견이었다.

‘하긴 행크도 나도 모르니까……. 아주 희귀한 질환이겠지.’

둘 다 이미 다른 세부 분과를 정해 들이판 지 오래되어서 전반적인 내과 지식이 쪼그라든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긴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개 레지던트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봐야 했다.

따로 공부하거나 진료하지는 않더라도 여기저기 주워듣는 게 계속 있었으니까.

“대단하긴 하네. 근데?”

“그래서 제가 스티브 녀석 통해서 대체 어떻게 교육을 받는 건지 물어봤어요.”

“스티브……. 너 걔 진짜 스태프로 키울 생각이구나? 엄청 싸고 도네?”

“똑똑하니까요. 걔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연구도 열심히 하고.”

“뭐……. 그야 그렇지.”

적어도 지금 스티브 연차에서 스티브만 한 친구는 없다고 보면 되었다.

내과가 어디 서너 명 모인 과는 아니니, 적어도 십수 명 중에서 제일 우수한 녀석이라는 뜻이었다.

“근데……. 이수혁이라는 애는 그 정도가 아니야. 물론 걔가 특별히 더 뛰어나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교육법을 알아내기는 해야 해요.”

“음. 좋은 생각이야. 그래서 날 찾아온 거야?”

“아뇨. 물어봤더니, 태화 의료원에서는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교육한다고 하더라고요?”

“인공지능?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데.”

“거기 이현종인지 뭔지……. 그 사람 아니에요? 그 사람이 뭐 다 솔직하게 말해 줄 거 같습니까?”

이현종은 월드 스타라는 별명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나름 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예 심혈관 중재술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 버린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까지도 모든 내과 의학도들은 그가 낸 논문을 바탕으로 쓰인 교과서로 배우고 있었다.

“음……. 아니지, 그건 아니지.”

“근데 이수혁이라는 친구는 아직 순진한 거 같더라고요.”

“뭐……. 20대니까.”

“그래서 알려줄 거 같은데. 저희 인공지능 보여 주면 그거 토대로 조언을 해 주겠대요.”

“우리 인공지능? 닥터 왓슨?”

“네.”

“너 미쳤……. 음.”

앨리슨은 불같이 화를 내려다 말고 고개를 떨구었다.

닥터 왓슨은 정말 기밀 중의 기밀이기는 했다.

왓슨으로 인한 성과 같은 거야 언론으로도 내고 있긴 했지만.

그게 어떤 과정을 통해 개발이 되었고, 또 어떤 과정을 통해 러닝하고 있는지는 극비였다.

‘그러면 뭐 하나…….’

이미 하버드에서는 왓슨은 실패작이라고 규정하지 않았는가.

단독으로 진료하는 건 무리더라도 최소한 진료에 들어가는 품은 줄여 주었어야 했는데.

이놈의 왓슨은 도리어 러닝이라는 명목하에 시간만 더 잡아먹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을 낼 때가 있단 말이지.’

연구진을 더 환장하게 만드는 건 결론은 맞았는데 그 과정이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였다.

결론이 틀린 거야 답을 모르는 거니 수정을 해 주면 될 텐데.

과정이 뒤죽박죽이다가 답을 맞히는 건 더더욱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근데 그걸……. 교육용으로 쓴다 이거지?’

어떤 방식으로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든 간에 지금처럼 수천억이 든 폐기물로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았다.

그편이 선의든 돈을 벌기 위해서든 선뜻 거금을 내어 준 투자자들에게도 할 말이 있을 거 같았고.

“그래. 한번 보여 줘.”

“역시 안……. 네? 보여 줘요?”

“그래. 보여 줘. 어차피 왓슨……. 지금 구동도 안 하고 있지 않아?”

“절전 모드로 돌려놨죠.”

워낙 고가의 제품이다 보니, 껐다가 안 켜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끄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른바 전기 도둑으로 전락한 셈인데 정말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가동해. 오후에 바로 보지 뭐.”

“아……. 네. 그럼 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