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2화 (82/1,303)

82화 천재의 증명 (2)

[로이스 디에즈 증후군이군요.]

‘응. 아마…….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진단명을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아니, 조금 전보다도 오히려 더 어두워진 듯했다.

‘로이스 디에즈 증후군이라니…….’

로이스 디에즈 증후군(Loeys-Dietz syndrome).

이름도 생소하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질환이었다.

아마 절대다수의 의사들은 이런 병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 터였다.

학생 때 배울 만한 질환은 아니었으니까.

엄청나게 드문 질환이었으니까.

‘예후가 안 좋겠는데.’

그에 반해 중증도는 어마어마한 질환이었다.

이 질환처럼 결체 조직의 결합력이 떨어지는 선천성 질환 중 그나마 유명한 것이 말판 증후군(Marfan syndrome)인데, 로이스 디에즈 증후군은 예후가 훨씬 좋지 못했다.

평균 수명이 26세로 측정될 지경이었다.

“환자 어딨죠?”

그사이 흉부외과에서 내려왔는지, 응급실이 소란스러워졌다.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가운을 풀어헤친 여러 명의 의사들이 보였다.

보통 내과계 의사들은 가운을 풀기는커녕 넥타이까지 하고 다니지 않던가.

그에 반해 흉부외과 의사들은 병원 사람들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외적인 차이를 보였다.

“아, 흉부외과 선생님.”

수혁은 그중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현종과 함께 심혈관 조영술에서 봤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도 수혁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수혁이 그날 본 환자로 NEJM에 논문을 냈으니까.

“그…… 네, 뭐.”

솔직히 그 환자를 본인이 봤다고 해서 똑같은 논문을 낼 수 있었을 거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수혁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아주 곱지만은 못했다.

“환자분 대동맥 박리 의심된다고요?”

그에 더해 튀어나오는 말도 싹싹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수혁을 질투하네요.]

바루다는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듯 심드렁한 어조로 그의 말투를 분석해 주었다.

수혁 또한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인간들이 왜 이럴까.’

내과에서도 그렇고, 다른 과에서도 그렇고.

그를 마뜩잖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 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백이 너무 든든한 데다가, 실력까지 받쳐 주는 통에 앞에서 대놓고 까부는 놈이야 없었지만.

은근히 건드리는 놈들은 아주 많았다.

“네, 의심됩니다.”

해서 수혁도 약간은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은 채 대꾸해 주었다.

직급으로 따지면 저쪽은 펠로우고 이쪽은 레지던트라 차이가 있기는 해도.

어차피 다른 과끼리는 아저씨 아니던가.

상호 존중이 룰이라는 뜻이었다.

저쪽에서 먼저 그 룰을 어긴 마당에도 룰을 지켜 줄 정도의 호구는 못 되는 수혁이었다.

“뭐로 의심했는데요?”

“심초음파 상 대동맥 뿌리 쪽에 확장이 관찰되었습니다.”

“경식도?”

“아뇨. 그냥 가슴 통해서 봤습니다.”

수혁의 말에 흉부외과 펠로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봐야 뭐 별로 타격을 주고 말고 할 것도 없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 한 마디 더 면박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이현종을 건드릴 수는 없잖아?’

생각 같아서는 이현종 원장에게 시비를 트고 싶었는데.

그 사람에게 시비를 트려면 흉부외과 과장도 좀 밀리는 감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상대적으로 만만한 수혁을 털 수밖에 없었다.

“대동맥 박리 정확히 보려면 경식도로 봐야 하는데, 몰라요? 이수혁 선생님. 레지던트 2년 차죠? 왜 순환기내과 펠로우 먼저 안 보고 우릴 불러요?”

“경식도로 봐야 하는 건 알죠. 하지만 대동맥 박리의 임상 증세가 확실하고, 또 심초음파에서 확장 소견이 명확할 때는 최대한 빨리 CT 찍고 수술방으로 가는 게 원칙 아닌가요?”

해서 당황할 줄 알고 툭 질렀는데, 수혁의 반응이 만만치가 않았다.

솔직히 레지던트 2년 차면 대강 싫은 소리 나왔을 때 이미 꼬리를 내렸어야 정상일 텐데.

이 녀석은 어떻게 된 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 대답을 했다.

흉부외과 펠로우를 더더욱 기가 차게 만드는 것은 딱히 수혁의 말에 허점이 없다는 뜻이었다.

명확할 때, 수술을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이런 젠장.’

하지만 펠로우는 전과 달리 레지던트 둘을 달고 내려온 참이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터였다.

‘괜히 건드렸나? 천재라더니……. 이 새끼…….’

한편으로는 벌써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일단 또 한 번 질러 보기로 했다.

“원칙? 원칙이야 맞지. 하지만 레지던트 2년 차 눈이 얼마나 정확하길래 이렇게 확신을 갖지? 환자 나이가 18세면 아닐 가능성도 고려해 둬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래도 아까보다는 좀 더 억지가 섞여 있었다.

아니, 솔직히 거의 생떼 비슷한 느낌이라 할 수 있었다.

같이 따라온 레지던트 중, 수혁과 같이 인턴을 돌았던 친구는 벌써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추합니다……. 선생님…….’

수혁이 천재라는 소문은 이제 비단 내과 안에서만 나도는 것이 아니었다.

아예 다른 병원에도 파다할 지경 아니었던가.

흉부외과고 뭐고 어디 구분할 거 없이 온 병원 구석구석 퍼져 있었다.

심지어 각 교수의 이수혁에 대한 반응까지도 돌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현종의 장탄식이었다.

[하늘은 어찌하여 나보다 더한 천재 수혁을 낳고 다리를 다치게 하셨는가.]

이제야 겨우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할 만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다리가 다쳐서 순환기내과에 못 남는 사람이라는 것을 빗댄 일종의 시였다.

천상 이과답게 시라고 하기엔 좀 많이 어설펐지만.

아무튼, 뜻은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요새 아예 이현종 교수님 파트 돌 때는 심초음파 거의 수혁이가 본다던데……. 잘못 볼 리가 없잖아…….’

뒤에 있는 레지던트 중 하나가 전의를 상실했을 때쯤,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던 수혁이 몸을 살짝 틀었다.

그러자 흉부외과 의사들에게도 환자의 외형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양쪽 눈 사이의 거리가 우선 눈길을 끌었다.

딱 봐도 뭔가 좀 이상할 정도로 넓었다.

외모의 개성이라기보다는, 의학적 해석이 필요할 정도로.

“환자는 하이퍼텔로리즘(Hyperelorism), 즉 양안 격리증이 있으며 목젖이 두 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거기에 심초음파상 뿌리가 확장되어 있는 소견까지 미루어 볼 때 한 가지 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죠. 이 증후군의 경우 대동맥 박리가 아주 흔하죠.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 대동맥 박리일 정도로요. 이만하면 확실하지 않습니까?”

수혁은 일부러 질환명을 말하지 않고, 그 질환의 특징에 대해서만 읊었다.

마치 ‘이 정도는 다 알지?’ 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당연하게도 부록처럼 딸려 내려온 레지던트 둘은 아예 뭘 의심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얼굴이었다.

“알아?”

“아니.”

“역시 천재…….”

“그러니까…….”

그저 이런 대화만 나누고 있었다.

즉 레지던트는 전원 전의를 상실했다는 뜻인데, 문제는 펠로우조차 비슷한 심정이라는 뜻이었다.

‘머, 머리야 돌아라.’

아까부터 머리에 응원 문자를 끝도 없이 보내고 있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모르는 건…… 시간 끈다고 생각나지 않아…….’

그렇다고 모르쇠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 앞에 있는 이수혁은 싹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어쩌지?’

해서 고민을 이어 나가다 일단 아무 말이나 해 보기로 했다.

“그, 그래…… 그…… 거.”

“그거? 이름을 정확히 말해 보세요.”

“내, 내가 이름을 모를까 봐?”

“아뇨. 제가 발음을 잘못 알고 있나 헷갈려서요. 한번 원래 어떻게 부르시는지 말씀해 보시죠.”

“음.”

수혁은 상대를 핀치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이야……. 이제 잘하네요?]

‘너 덕분이지.’

수혁은 바루다의 깐족거림을 떠올리고는 보다 표독스러워진 얼굴로 펠로우를 바라보았다.

펠로우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이대로 더 두었다가는 터지는 거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었다.

[이제 그만 푸시죠? 흉부외과랑 영영 척 질 거 아니면. 소문에 의하면 저 펠로우, 아마 임상 교원으로는 남게 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계속 얼굴 보겠네?’

[네. 수혁이 여기 교수가 된다면요. 자꾸 된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되지 않겠냐?’

[현재로서는 거의 100% 확신합니다.]

‘근데 왜 그렇게 말해. 아무튼, 그럼 풀자.’

[네. 수혁, 그게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수혁은 재차 펠로우를 바라보았다.

펠로우는 여전히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고 있었다.

연신 수혁의 눈치를 살피면서였는데, 거의 꼬리를 수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추하다…….’

‘그러게 왜 덤벼서…….’

그 뒤에 있는 레지던트들의 얼굴은 굳이 분석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을 정도로 명확할 지경이었다.

해서 수혁은 곧장 입을 열었다.

“로이스 디에즈 증후군. 저는 이렇게 알고 있는데 맞나요?”

그 말을 들은 펠로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떠올린 병하고는 아예 비슷하지도 않은 이름이었기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언젠가 교수님에게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어, 그래…… 맞아.”

그는 몇 번인가 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당장 흉부 CT 찍고, 수술방으로 가야 하는 것도 맞죠?”

“어……. 그래.”

“네. 감사합니다. 수술해 주시면 저희도 협진 형식으로 로이스 디에즈 질환 관련해서 계속 협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응…….”

펠로우는 어쩐지 축 처져 버린 어깨를 하고선 환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아까 수혁이 찍어 둔 초음파 영상을 확인하자마자 서둘러 CT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수혁에게는 깝죽거리던 일 인일 뿐이었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의사는 의사 아니던가.

사람 생명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더 시간을 지체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수술에 대한 조언까지는 필요 없겠죠?]

바루다는 급히 사라져 가는 흉부외과 펠로우를 보며 조잘거렸다.

수혁은 그런 바루다가 뒤통수만 있다면 톡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대꾸해 주었다.

‘저분이 하는 것도 아니고 교수님이 하시는 거야. 모르냐? 우리 병원 흉부외과…… 세계적인 레벨인 거.’

[하긴. 이현종이 키웠죠, 거의.]

이현종이 워낙에 공격적인 시술을 하다 보니, 그만큼 많은 환자를 살리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많은 합병증을 겪기도 하지 않았겠는가.

그 뒷수습을 한 게 태화 의료원 흉부외과였다.

실력이 팍팍 늘어서 전 세계적인 레벨에 이를 때까지 뒤처리를 해 왔다는 뜻.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성은 이현종에게만 쏠리고 있으니 감정이 좋지 못할 만도 하기는 했다.

“선배…… 진짜 멋있어요. 대체 로이스 디에즈 증후군이 뭐예요?”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있으려니, 그때까지 꿔다 둔 보릿자루처럼 서 있던 하윤이 입을 열었다.

돌아보니 완전히 선망의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나 좋아하나?’

수혁으로서는 이런 생각이 들 법한 표정이었지만.

[오랜만에 욕 좀 할까요?]

바루다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아니, 하지 마.’

[할게요. 하고 싶네요.]

‘그럴 거면 뭐 하러 물어봐?’

[유일한 입출력자인 수혁에 대한 예우라고 해 둘까요?]

‘예우 지킬 거면 좀 확실하게…….'

[미쳤습니까? 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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