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2화 (72/1,303)

72화 Dyspnea (2)

환자는 일단 신현태 교수 앞으로 입원이 되었다.

이게 감염인지 뭔지 잘 모르겠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이전 결핵 병력과 더불어 폐에 차 있는 물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과장님이니, 필요하면 다른 분과로 전과도 쉽겠죠.]

‘응, 그런 것도 있지.’

물론 약간 정치적인 고려도 있긴 했다.

괜히 어린 교수에게 입원장을 냈다가는 곤란한 일을 겪게 될 공산이 크지 않겠는가.

다행히 처음 진단이 잘 맞으면 치료가 쭉 이어지겠지만.

만약 다른 분과 또는 아예 다른 과로 전과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그때가 문제였다.

신현태라면 전화 한 통화 걸어서 ‘어, 내 환자 좀 받아 줘.’라고 하면 될 것을 이런저런 근거를 한가득 달아야만 했다.

‘환자분은 어떠려나?’

[밤새 콜이 없었으니 괜찮을 겁니다. 호전도 별로 없었겠지만요.]

‘음.’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병동으로 향했다.

병동 스테이션 앞에는 잔뜩 긴장한 얼굴의 안대훈이 서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환자 일보에는 벌써 여러 개의 주름이 져 있었다.

새벽부터 나와서 여러 차례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아, 선생님!”

그는 수혁을 발견하자마자 90도로 인사를 올렸다.

“아, 아니. 그렇게까지는 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수혁은 그런 대훈을 말렸지만, 말리면서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때까지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는 사실을.

“아무튼, 어제 그 환자 어때요? 김승준 환자.”

“네. 어제 심낭 천자 해서 검체실에 보냈던 거 결과 나왔습니다.”

“아. 그거 좋네. 볼까요?”

“네. 여기 제가 띄워 놨습니다.”

안대훈은 어제처럼 군기가 바짝 든 채 모니터를 가리켰다.

모니터에는 그가 방금 말했던 것처럼 검사 결과가 쫙 떠 있었다.

Turbidity(혼탁 정도), RBC(적혈구), WBC(백혈구) 등등 무수히 많은 결과가 떠 있었는데.

그중에서 수혁이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ADA(Adenosine deaminase)였다.

주로 결핵 활성도를 보기 위해 내는 검사였는데, 이게 높으면 결핵일 가능성이 있었다.

[61U/L 군요.]

‘낮은데.’

[위음성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결핵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진 셈입니다.]

‘그럼……. 다른 전신 질환이라는 얘긴데.’

[환자의 탈모와 광대 주변 발진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합니다. 모두 한 가지 원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탈모, 광대 주변 발진 그리고 심낭염에 폐렴까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보일 수 있는 질환이라.

‘자가 면역 관련일까?’

[환자의 젊은 나이를 고려할 때 가장 가능성이 큽니다.]

‘하긴 비장도 커져 있었지……. 다른 혈액 검사는 어땠지?’

[기본 검사만 이루어지긴 했는데, 헤모글로빈 9.5G/dl에 백혈구 수치는 2600이었습니다.]

‘둘 다 떨어져 있어. 그런 것도 역시 자가 면역 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는 특징이지.’

수혁은 어제 보았던 환자의 소견 및 지금까지 나가 있는 별거 아닌 검사들을 토대로 환자의 진단명을 다시 잡아 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이 말 한 마디 없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안대훈으로서는 조금 답답할 따름이었다.

‘역시……. 천재라더니 달라…….’

물론 이미 콩깍지가 씌어도 제대로 씐 탓에 그저 좋게만 보일 뿐이긴 했다.

[자가 면역 질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를 요청합니다. ANA, Histone Ab, Anti ds DNA, ANCA IF, C3, C4, CH 50입니다.]

방금 바루다가 읊어 댄 검사 항목들은 내과 아닌 다른 과 의사들은 학생 때 슬쩍 훑고 지나가기만 하는 항목들이었다.

해서 굉장히 생소할 수 있는 항목들인데.

내과 의사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항목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자가 면역 질환을 이걸로 감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수혁은 환자 진단하는 데 있어서 시간 낭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즉시 처방을 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안대훈은 역시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입을 헤 하고 벌렸다.

그제야 수혁은 너무 자기 혼자 케이스를 주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들은 딱 보면 바로 알지만…….’

안대훈은 1년 차 아니던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고 봐도 무방할 시기란 얘기였다.

“일단 어제 나간 검사를 보면 ADA가 낮잖아. 결핵이 아니란 거지. 근데 환자가 빈혈에 백혈구 결핍에 비장 종대까지 보이고 있잖아. 그럼 뭘 의심해야 해?”

“어…….”

“1년 차니까 괜찮아. 자가 면역 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지.”

“아……. 아! 그래서 이 검사가 나가는 거군요?”

“그래. 학생 때 배운 거지? 근데 처방전에 쓰여 있어서 낯설었을 거야. 나도 그렇더라고.”

물론 수혁은 바루다 덕에 바로바로 교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아무튼, 낯설게만 느껴졌던 거 자체는 사실이었다.

“아……. 그럼 약을 바꿀까요? 항생제 끊고?”

“아니, 아니. 이건 굉장히 주의해야 해.”

지금까지 나온 결과를 보자면 감염성 질환의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 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냅다 새롭게 의심되는 자가 면역 질환에 대한 약을 쓸 수는 없었다.

써야 하는 약이 스테로이드였기 때문이었다.

진단명이 맞다면 반응을 보이겠지만.

틀린다면 어떻게 될까.

‘균이나 바이러스에 환자가 잡아 먹힌다…….’

스테로이드는 아주 다양한 역할을 하는 약이었다.

동시에 정말 강력한 약이기도 했고.

가격도 저렴했다.

그래서 아주 많은 과에서, 아주 많은 질환에서 쓰고 있긴 한데.

주의가 필요한 약물인 것도 사실이었다.

여러 기전이 다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지금은 역시 면역 억제 기능 때문에 그랬다.

‘전에 전원되어 왔던 환자분은 결국 돌아가셨지.’

곰팡이가 있는지 모르고 스테로이드를 썼다가 곰팡이균, 즉 진균에 환자가 실시간으로 잡아 먹히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그나마 빨리 왔으면 좀 나았을 텐데.

환자가 워낙 고령인 데다가, 기저 질환들이 있어 초기에 증상이 없었던 것이 화였다.

수혁은 그런 상황은 자신이 직접 본 환자에게서 되풀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분초를 다루는 응급 상황이라면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쓰겠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최대한 안전하게 가는 것이 옳았다.

“면역 억제제는 주의해야 해. 일단 항생제 유지하면서 검사 결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

“아, 네.”

“처방 다 냈으니까, 환자 보러 가자.”

“네, 선생님!”

안대훈은 마치 교수님이라도 모시는 듯한 태도로 부리나케 병실을 향해 달렸다.

시간이 애매하면 일단 환자가 병실에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할 테지만.

지금은 7시도 되기 한참 전이었다.

게다가 김승준 환자가 어딜 나다닐 몸 상태도 아니었고.

“환자분.”

덕분에 수혁은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환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환자 옆에는 금일 시행한 심전도가 놓여 있었는데, 아마 안대훈이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동안 인턴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아, 네. 선생님.”

환자는 어제 심낭 천자를 해서 그런지 확연히 상태가 좋아져 있었다.

다행히 다시 차거나 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수혁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심전도부터 살폈다.

[심박동 수는 정상 범위로 내려와 있군요.]

‘음……. 근데 약간……. 전도가 약해진 느낌이 들지 않아?’

[느낌이요? 근거 중심 의학이라는 말은 잊은 겁니까?]

‘아니, 아니. 확실히 조금 약하잖아. 어제 찍은 심전도랑 비교해 보라고.’

수혁은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못할 일을 해 내고 있었다.

바로 머릿속에서 정확히 어제 찍었던 심전도를 소환해 낸 후, 지금 심전도와 비교하는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바루다 또한 수혁의 말이 있고 나서부터는 다소 불안하다는 어조로 변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아주 살짝 약하군요.]

‘인턴 차인가? 심전도에서 이 정도 에러는 있을 수 있잖아.’

[에러 축에도 못 끼긴 할 겁니다. 이걸 잡아 내는 사람이 없을 테니.]

‘그래도 분석할 때 이것도 넣기는 해봐. 혹시 모르니까.’

[음. 알겠습니다. 타당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혁은 그렇게 바루다와의 대화를 빠르게 마친 후, 재차 환자를 바라보았다.

“열나는 거 같진 않아요?”

“네? 아……. 네. 괜찮습니다.”

“숨찬 건 어떠세요?”

“훨씬 낫습니다.”

“기침은 없고요?”

“네.”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어제 관찰했던 바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탈모에 광대 주변 발진. 이건 변하질 않네.’

[그렇군요.]

그사이 병동 간호사 한 명이 병실 안으로 들어와 환자의 팔뚝을 걷었다.

“검사가 있어서요. 피 좀 뽑을게요.”

“아, 네.”

그리곤 피를 제법 많이 뽑아 갔다.

아무래도 워낙 젊은 환자라 그런지 검사는 수월했다.

수혁은 그렇게 뽑힌 붉은 피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이내 환자를 돌아보았다.

“결과는 아마 오후면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때 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 네……. 근데 저 심각한 건가요? 입원했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걱정하셔서.”

“음.”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물론 바루다와 함께였다.

[지금까지 경과를 보면, 아주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지?’

[네.]

그의 의견이나 바루다의 의견이나 매한가지였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긍정적인 대꾸를 할 수 있었다.

“너무 걱정하진 마시죠. 일단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혹시 이상 증상 생기면 바로 말씀해 주시고요.”

“네.”

수혁은 그렇게 환자를 잔뜩 안심시켜 주고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가 다시 병실을 찾은 건 오후 늦었을 때였다.

검사 결과가 나온 후였는데, 신현태와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대훈은 마치 문 여는 기계라도 된 것처럼 앞장서서 신현태와 수혁 둘 앞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도록 조치했다.

“환자분, 신현태 교수입니다. 아까 저희 이수혁 선생이 말씀드렸던 것처럼 결과가 나와서요.”

“아, 안녕하세요.”

“네. 보호자분도 들으시죠. 일단…….”

신현태는 자신이 직접 얘기하기보다는 수혁이 말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판단했다.

‘직접 진단한 사람이 말하는 게 낫지.’

해서 수혁을 돌아보았고, 수혁은 다른 레지던트들과는 달리 당황해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아까 회진 전 신현태 교수에게 브리핑했던 것을 떠올리면서였다.

‘비록 ANA가 낮기는 해. 하지만 ANTI ds DNA가 확 떠 있고, C3, C4는 떨어져 있어. 100% SLE(Systemic lupus erythematosus: 전신 홍반 루푸스)야.’

이미 바루다와도 함께 확인한 바였다.

해서 상당히 자신 있는 어조로 입을 열 수 있었다.

“검사 결과 환자분은 전신 홍반 루푸스, 일명 ‘SLE’입니다.”

“그……. 그거 뭔가 심각한 병 아닌가요?”

“난치성 질환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지만, 최근엔 관리가 아주 잘되는 편입니다.”

“그래도 군 면제 되는 병 아닌가요?”

여기서 군 얘기라니.

수혁은 좀 황당했지만 이내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환자분은 급성 악화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 수준의 루푸스면 면제입니다.”

“아, 괜히 갔다 왔네…….”

환자는 지금 당장 증상이 썩 괜찮으니, 마음이 느긋한 모양이었다.

앞으로 하나의 만성 질환을 쭉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굳이 루푸스 환자의 어려움을 세세히 짚진 않았다.

그건 어차피 천천히 알아갈 테니까.

지금은 지금 생긴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다.

“아무튼 환자분은 아직 심낭에 물이 조금씩 차고 있어요. 오후에 시행한 흉부 엑스레이를 보면 아직 폐에도 물이 차 있고요. 때문에 일단 입원을 유지하고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작할 겁니다.”

“아……. 그럼 괜찮아지는 거죠?”

“네. 잘만 따라오시면 괜찮을 겁니다.”

“네, 뭐……. 알겠습니다.”

환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수혁 또한 그렇게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다시 찾아온 주말, 안대훈에게 노티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선생님! 환자 열이 납니다! 숨도 차 하고요!”

“오늘 갑자기?”

“어제…… 어젯밤에 잠깐 그러다 말았는데. 아침에 더 심해졌습니다!”

“뭐지? 지금 갈게.”

염증 수치가 천천히 좋아지고 있던 참이었기에, 마치 지뢰라도 밟은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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