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3화 (63/1,303)

63화 못 하는 게 뭐야 (1)

‘발열에 면역 억제제…….’

[억제제 종류가 무엇인지 일단 확인하시죠.]

‘오케이.’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응급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이수혁이다.”

“아……. 잘생긴 편은 아니네.”

“얼굴이 뭐가 중요하냐. 천재라는데.”

“아니, 그냥 그렇다고. 왠지 엄청 잘생겼을 거 같았거든.”

이미 그의 실력은 병원 내에 짜하게 퍼진 후였다.

그간 숱하게 많은 케이스를 홀로 진단해 내고 치료까지 해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번엔 그간 루머인지 뭔지 모를 상태로 있던 이현종 원장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딱 공표까지 된 마당 아니겠는가.

외모도 지팡이 덕에 워낙에 눈에 띄는 편이었고.

그가 들어서자마자 온갖 수군거림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환자분 어디 계시죠?”

“아……. 저쪽에 계십니다.”

덕분에 그에게 연락했던 인턴 또한 친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원장 아들인 데다가, 천재 내과 1년 차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 잠깐 환자 기록만 좀 보고 가서 볼게요. 심전도나 ABGA는 다 했죠? 안 했으면 지금 해요.”

“아, 네. 선생님.”

수혁은 일단 그 인턴을 먼저 환자에게로 보낸 후,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리곤 환자 기록을 띄웠다.

[손금숙, 여자 53세군요.]

‘말기 신부전으로 1달 전에 신장 이식술을 받았군. 흐음……. 거부 반응인가?’

1달이라면 급성 거부 반응은 아니더라도 아급성 거부 반응일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바루다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그렇다고 보기엔 신기능이 괜찮습니다.]

‘약간 떨어져 있잖아?’

[공여자의 신기능이 조금 떨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흐음……. 일단 네 의견은 지금 발열하고는 크게 관계없을 거 같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물론 더 확인해 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알았어.’

해서 수혁은 좀 더 알아보기로 결정하고 환자의 기록을 더 뒤져 나갔다.

‘약은 사이클로스포린이랑 미코페놀레이트네.’

[신장 이식 후에 쓰는 약 중에서는 별로 특별할 거 없는 약이군요.]

‘그러게. 음.’

먹고 있는 약 외에 환자가 대략 20년 전부터 고혈압을 앓아 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고혈압의 합병증으로 신장 기능 부전이 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장 이식술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장 이식술을 받기 전까지는 다른 병원에 다니던 환자였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추측을 해 나가는 주체가 수혁과 바루다이니만큼 상당한 신빙성을 가지고 있었다.

[2일 전부터 전신 쇠약감을 호소했군요.]

‘발열 자체는 내원해서 확인된 거야.’

[그마저도 높지는 않습니다.]

환자의 체온은 37.8도였다.

기껏해야 열이 있다, 정도만 언급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그보다 수혁의 눈을 끈 것은 다른 수치들이었다.

‘혈압이 94에 64……. 심박동 수가 116……. 이 환자 고혈압 환자라며.’

[기저 혈압에 비해 지금 너무 낮습니다.]

‘일단 수액부터 때리자, 그럼.’

진단하는 과정은 물론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바루다와 함께하면 거의 대부분 답을 찾게 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일단은 생명부터 살리고 봐야 했다.

환자가 죽은 후에 진단을 내리는 건 무가치한 일이었으니까.

해서 수혁은 다시금 지팡이를 짚은 채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원래 혈압에 비하면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긴 했지만.

절대적인 수치로 보면 아주 낮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환자는 처치실이 아니라 일반 응급실에 있었다.

“여기 일단 노말 샐라인(Normal saline: 생리식염수) 300 풀 드랍으로 주세요.”

“아, 네. 선생님.”

수혁은 일단 지시를 내린 후 환자를 가만히 살폈다.

주된 증상이 쇠약감이라고 하더니 정말로 쇠약해 보였다.

[아까 보니 키가 163인데 몸무게가 38.5kg입니다.]

‘최근에 빠진 건가?’

[수술 후 입원 치료를 받을 때는 43kg이었습니다.]

그때도 뭐 건장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단 소리였다.

동시에 체중이 지난 한 달간 빠져 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이기도 했고.

그렇다는 건 지금 이 상황이 응급실에서 판단한 것보다 오래된 문제일 수도 있었다.

‘흠.’

급성 감염 같은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둔 수혁은 이제 환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근차근 관찰해 나갔다.

눈동자가 노랗지는 않은지.

눈꺼풀이 창백해진 것은 아닌지.

호흡이 가쁘진 않은지, 혹 갈비뼈 사이 근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달 전 수술 받은 부위는 어떠한지 등등을.

아주 꼼꼼하게 살폈다.

[수술받은 부위가 약간 붉군요.]

‘응. 특히 관 꽂아 두었던 곳이 너무 붉어.’

[네. 그곳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만……. 그 외에는 크게 이상 소견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상 소견이 없다고 해서 이상한 것이 없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

면역 억제제를 복용 중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전형적인 증상들이 가려질 수도 있다는 상황이라고 봐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혈액 검사나 엑스레이 또는 소변 검사 등에 의존해야만 했다.

해서 수혁은 일단 소변 검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인턴이 뽑아 온 심전도 결과를 보면서였다.

“엇.”

심전도상 ST 분절이 아주 전형적인 양상은 아니더라도 정상보다 올라간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혈액 검사상 관찰되는 심근 효소의 양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위 소견을 종합한 바루다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경색보다는 심근의 염증으로 생각됩니다.]

‘전신 감염이 진행 중이라 이건가?’

수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기운이 좀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그렇게 심각해 보이진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수혁은 단순히 지식만 쌓은 의사는 아니었다.

그간 상당히 많은 환자를 보며 경험 또한 쌓아 온 몸이었다.

‘이러다 훅 가지…….’

[최대한 빨리 제대로 된 진단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변 검사 결과 나오는 동안 CT나 찍자. 저기가 너무 불안해.’

[좋은 생각입니다, 수혁.]

그래서 수혁은 붉게 부어오른 자리 확인을 위해 복부 CT를 찍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심각한 감염이 있다면 수술 자리가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CT실 연락해서 바로 찍을 수 있게 해 줘요.”

“네. 선생님.”

인턴은 곧장 CT실에 전화를 걸고는 촬영을 지시한 사람이 원장님 아들 수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자 방사선사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오세요. 어차피 급한 환자 없어서 밀고 찍으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환자는 곧장 CT실로 향할 수 있었다.

수혁은 할 수 있으면 같이 따라가고 싶었지만, 다리 때문에 이동이 수월하진 못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곧 검사 넘어올 겁니다. 소변 검사부터 보시죠.]

‘그래…….’

[다리 고치는 방도에 대해서는 저도 분석 중입니다. 너무 상심하진 마십시오.]

‘그래, 뭐……. 일단 소변부터 보자.’

해서 수혁은 환자는 보낸 채 검사 결과를 끊임없이 새로 고침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결과가 훅 하고 떴고, 그와 동시에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결과 분석에 들어갔다.

‘혈뇨가 있어. 양이 적지 않은데…….’

[백혈구도 나오는군요. 감염입니다.]

‘요로 감염이라……. 근데 열이 이것밖에 안 난다 이거지.’

[면역 억제제를 복용 중이니까요.]

‘좋지 않은데…….’

[최악의 상황입니다.]

신장 이식을 했는데 요로 감염이라니.

어쩌면 이식해 준 신장에 감염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설령 감염을 성공적으로 고친다고 해도 신장 기능 부전이 또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하게도 수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환자 나왔습니다. 영상 떴을 겁니다.]

그 순간 바루다가 주의를 환기했다.

절망이야 환자 잘못된 다음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늦지 않을 거 아닌가.

지금은 그 환자가 잘못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게 바루다가 생각하는 뛰어난 의사였다.

‘조영제를 못 써서 불명확하긴 하지만…….’

[이식해 준 신장이 부었군요. 관 꽂았던 곳 주변으로는 액체 저류도 있고요.]

‘고름일까?’

[조영이 안 되어 100%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런 젠장.’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환자는 이식받은 신장에 감염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그 감염이 그냥 가벼운 감염은 당연히 아니어서, 전신으로 번져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흉부 엑스레이는 깨끗하다는 점인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 어떻게 폐렴이 발생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일단 입원시킬게요. 신현태 교수님 앞으로.”

해서 수혁은 노티도 하기 전에 입원장부터 날렸다.

딱히 그가 건방져서는 아니었다.

신현태 과장이 수혁에게 모든 전권을 위임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수혁은 위 연차 노티고 뭐고 다 필요 없이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었다.

국보급 인재에 대한 예우 중 하나라고 보면 되었다.

“네.”

“그리고. 반코 줍시다. 일단 반코.”

‘반코’란 반코마이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내성 균주에도 듣는 광범위 항생제였는데, 원래 같으면 다른 항생제를 써 보고 안 들을 때 쓰거나 혹은 배양 검사에서 의심이 될 때 쓰는 귀한 약이었다.

하지만 환자를 보다 보면 원칙을 깨야 할 때가 있었다.

지금 이 환자를 그냥 지켜보면서 기다린다는 건 그냥 환자를 죽이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보면 되었다.

“네, 선생님.”

“그리고…….”

수혁은 입원 처방을 내도 병실로 올라가기 전에 시간이 꽤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이 환자에게 있어서는 최대한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직접 째시죠. 다리가 불편한 거지 손이 불편한 건 아니니까요.]

‘내가? 외과 안 부르고?’

[그게 다 시간입니다. 제가 코치하겠습니다.]

‘음.’

수혁은 환자의 부어오른 수술 부위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외과 의사도 아닌데 저길 짼다는 게 조금 꺼림칙했기 때문이었다.

[고작해야 1cm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바루다의 코치가 있다면 저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수술이라기보다는 그저 시술이었으니까.

게다가 수혁은 바루다의 코치를 받아 이런저런 처치를 해 본 경험도 있었다.

자신이 좀 생겼다는 뜻이었다.

드르륵.

수혁은 의자를 끌어 환자 옆에 앉았다.

그 바람에 내내 눈을 감고 있던 환자가 눈을 번쩍 떴다.

그래 봐야 기운이 없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진 못했지만.

아무튼, 수혁은 그렇게 환자와 마주 본 채로 입을 열었다.

“환자분, 지금 감염이 있으세요. 이쪽 아프진 않으세요?”

환자의 수술 부위를 가리키면서였다.

환자는 고개를 아주 살짝 끄덕이며,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 파요.”

“거기 제가 조금 낫게 해 드릴게요. 살짝 따끔하실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아픈 거……. 잘 참아요…….”

“네. 안 아프게 해 드릴게요.”

수혁은 그리 말하며 인턴을 돌아보았다.

그가 뭘 하려는 건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인턴은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아, 절개 배농 세트 좀 줘요. 제 맞은편에 서서 보조하고.”

“여, 여기서 째시려고요?”

사실 수혁도 아까 바루다에게 들었을 땐 좀 놀라긴 했다.

하지만 환자가 앞에 있는데 그런 티를 내서는 곤란했다.

최대한 능숙한 척 해야 했다.

어차피 잘할 자신은 있었으니까.

“저 잘해요. 가지고 와요.”

“어……. 네.”

인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트를 가지러 뛰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응급실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또 한 번 웅성거림이 일었다.

간단한 시술인 줄 몰라서인 탓도 있었지만, 일단 내과 의사가 칼을 찾는다는 거 자체가 충격이긴 했다.

“뭐야, 수술도 해?”

“진짜 천잰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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