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4화 (44/1,303)

44화 아니 무슨 이런 문제를 내? (3)

[음…….]

바루다는 붉은 반점을 보며 침음했다.

수혁도 그랬고, 심지어 하윤도 그랬다.

“역시 선배님은 좀 다르시네요.”

“응?”

뜬금없는 하윤의 말에 수혁은 잠시 발진에서 눈을 뗀 채 하윤을 바라보았다.

하윤은 여전히 발진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거 문제, 저희 아빠가 그대로 베껴 왔다고 했거든요. 2학기에 낸다고.”

“아…….”

“그래서 문제를 다 알고 있는데, 제가 헤매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알려 주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교수들…….’

자식한테는 좀 알려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걸 꼭꼭 숨겨 두고 말이야.

괜히 명의병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니고, 괜히 교수병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 잘 보라고 하셨거든요.”

하윤은 수혁의 이러한 속내는 꿈에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난 수혁은 역시 자신의 촉이 옳았단 확신이 들었다.

‘거봐. 들었어? 여기가 핵심이야.’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비특이적입니다. 이 발진들은.]

비특이적이다.

흔히 의학 한다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다.

‘아, 그 환자 증상이 비특이적이야.’

주로 이런 식으로 쓰게 되는데.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은 ‘아, 나 그 환자 잘 모르겠어’랑 거의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깡통.’

[아니……. 진짜 비특이적입니다. 특징이 없어요.]

‘아니지. 아냐.’

수혁은 비특이적이라는 단어만 반복하고 있는 바루다의 말을 듣다가 돌연 고개를 세차게 저어 댔다.

그 바람에 어지간히 가까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던 하윤은 수혁의 머리통에 가격을 당할 뻔했다.

“어.”

놀란 얼굴이 된 채 뒤로 물러난 하윤은 잠시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수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방금 하윤을 때릴 뻔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듯했다.

‘가끔 이상하다고는 들었는데.’

우창윤 교수는 자기가 먼저 만나 보라고 한 주제에 그 이후로는 딱히 언급이 없었다.

아예 다른 병원에 있는 데다가, 우창윤 교수도 퍽 바쁜 몸이니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노상 고향 후배나 학교 후배랍시고 찾아오는 조태진 교수가 심심하면 수혁 얘기를 했더랬다.

- 애가 좀 이상할 때가 있기는 한데, 진짜 천재라니까?

그리고 수혁에 관한 얘기의 머리말에는 늘 ‘애가 좀 이상할 때가 있긴 한데.’가 붙어 있었다.

‘확실히 조금 이상하긴 하구나.’

하윤은 거의 몇 분이 되도록 움직이지 않고 있는 수혁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물론 그 시간 동안 정말 수혁의 머리가 정지한 것은 아니었다.

‘비특이적이라고 했잖아. 계속.’

[네. 비특이적이니까요.]

‘근데 그게 실은 특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네? 특징이 없는 게 특징……. 이라고요?]

‘그래. 네 말대로 이 환자의 폐렴은 물론 중하긴 해. 중하기는 한데, 원인은 아니란 말이야. 우리가 제일 집중해야 할 건 결국, 발진이라고.’

[그건……. 그건 그렇습니다.]

언제나 내과에서 제일 중요시해야 할 것은 환자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가 아니라 ‘왜’였다.

그러자면 제일 초기 증상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비특이적인 발진은 주로 어디서 나타나지?’

수혁은 그렇게 바루다의 주의를 돌린 후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제법 많은 수의 진단을 함께해 온 둘이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해서 바루다는 잠시 당황스럽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물론 수혁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긴 했지만.

‘딴생각하냐?’

[아, 아뇨. 아닙니다. 수혁, 죄송합니다.]

‘비특이적인 발진이 주로 어디서 나타나냐고.’

[알레르기가 아니어도 접촉 시 발진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 즉 표면이 꺼끌꺼끌한 물질에 접촉하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수혁이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그거 말고.’

[정도 이상의 발열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말고. 전신에 나타나진 않잖아. 주로 접히는 부위에서나 그렇지.’

만약 바루다가 사람이었다면 짜증을 냈을 터였다.

하지만 바루다는 인공지능이었다.

진단 목적을 지닌.

[음…….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에서도 비특이적인 발진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 그거라면 전신의 발진이 설명되지.’

[하지만 수혁 말대로라면 맨 처음 발진에 가려움증이 동반되지 않았다는 문구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환자는 고령이잖아.’

[고령에서는 증상이 비특이적일 수 있죠. 음.]

바루다는 잠시 말을 잃었다.

제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의학을 통달했다고 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사람 몸이라고 하는 건 기계와는 달라서 개개인마다도 차이가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바루다가 다시 입을 연 것은 수 분이 지나서였다.

[처음에 배제했던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즉 드레스(DRESS: Druc Reaction with Eosinophilia and Systemic Symptoms)을 고려한다면……. 여러 가지 증상이 설명됩니다.]

약물 반응이라고 해서 꼭 피부 발진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었다.

때에 따라선 발열, 임파선 종대, 간염, 신장염, 호산구증 등의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이것은 지금 환자가 겪고 있는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드레스에 대한 치료는 스테로이드입니다. 만약 진단이 틀릴 경우, 즉 환자가 감염병일 경우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건 맞아.’

스테로이드는 모든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진 약물이었다.

그래서 약물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에 관해 쓰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이 되겠지만.

만약 감염이 있는 상태에서 이걸 쓰면 차라리 독약을 쓰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사람이 산 채로 바이러스나 세균에게 뜯어 먹히는 꼴을 보게 될 테니.

‘그럼 어쩌지? 그렇다고 시도조차 안 해 보긴 아까운데.’

[음.]

바루다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 분석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수혁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거기엔 꽤 놀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하윤이 있었다.

“아. 미안. 내가 집중하면 좀.”

“아녜요. 조태진 교수님한테 얘기 들었어요.”

“아……. 조 교수님을 볼 때가 있어?”

“가끔 집에 놀러 오세요.”

“아…….”

이럴 때면 우하윤이 정말 금수저에 로열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세상에 집에 교수가 노상 놀러 오는 집이라니.

고아인 수혁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막 부럽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바루다가 말을 걸어왔다.

[조직 검사를 하시죠.]

‘조직……. 검사?’

[네. 발진에 대한.]

‘아! 거기서 호산구증이 나오면 확진이 되지.’

[네. 그렇습니다. 그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우선 항생제 치료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폐 또한 약물에 의한 반응일 수 있으나, 확신이 들기 전에 끊기엔 너무 심각한 상황이니까요.]

‘그렇지.’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바루다의 말대로 냅다 약을 끊기엔 흉부 X-ray가 너무 살벌하게 생겼더랬다.

저기서 더 심해지면 대체 무슨 수를 써야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튼, 그렇게 최종 검사와 결과가 결정되었다.

“일단 검사는 혈액 배양, 객담 배양, PCR 그리고 발진에 대한 조직 검사를 해 보는 게 좋겠어.”

수혁은 그걸 말없이 띡띡 누르는 대신 하윤을 향해 말을 해 주었다.

하윤은 당연하게도 눈을 빛내며 마지막 검사에 대해 궁금해했다.

“발진이요?”

“응.”

“조직 검사를 하면……. 뭘 알 수 있을까요?”

질문하는 투로 봐서는 아예 단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은 듯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현종이 현 병력 맨 앞에 함정을 파 뒀으니까.

이건 약물에 대한 부작용은 아닐 거라고.

“호산구가 증가해 있으면 약물 부작용을 의심해 볼 수 있잖아.”

“하지만…….”

“일단 해 보자. 이거 뭐 목숨이 있어?”

“네. 다섯 개.”

“어? 목숨이 있어? 우리 땐 없었는데.”

“그때 누가 노가다로 다 찍어서 맞추는 바람에……. 생겼어요.”

“이런 미친.”

수혁은 하윤 앞인 것도 잊고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하윤도 별문제 삼고 싶진 않았다.

그녀 또한 혼자 있을 때 몇 번인가 욕설을 내뱉은 적이 있었으니까.

“뭔 놈의 PBL에 목숨이 있지? 지금 몇 개 남았는데?”

“한 개…… 요.”

“한 개. 허.”

그럼 이번에 수혁이 실패하면 끝이라는 것이었다.

[실전이라고 생각하시죠. 어차피 지금 내린 결정 이상의 결정은 내리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좌절하려는데, 바루다의 말이 들려왔다.

언제나처럼 환자를 열심히 보게 만드는 그런 말이었다.

‘그래……. 해 봐야지. 나도 이것보다 논리적인 답은 없을 거 같아.’

그리고 수혁은 지금 바루다와의 토의를 통해 도달한 검사와 치료에 완전히 동의하고 있던 참이었다.

해서 확신에 찬 눈으로 하윤을 돌아보았다.

“이게 맞을 거야.”

“음.”

하윤은 잠시 그런 수혁을 마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배. 어차피 저 혼자서 하면 또 틀려서 환자 죽을 거예요.”

“좋아. 그럼 선택한다. 검사는 이렇게 하고. 치료는 일단 테이코플라닌 추가하고, 투석하는 거로.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만.”

“네.”

선택을 완료하자, 모래시계가 떴다.

그 모래시계 옆에는 환자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인형과 활력징후가 떠 있었다.

“이게……. 선택이 잘못되면 갑자기 안 좋아지다가 죽어요.”

“악취미구만…….”

“네. 기분 진짜 찝찝하더라고요.”

“막 당장 그런가?”

“아뇨. 한 3일?”

“3일이면……. 어차피 배양 검사는 결과를 못 보겠구나.”

수혁이 막 그 말을 했을 때쯤, 하루가 지났다.

예상대로 검사 결과가 뜬 항목은 딱 하나였다.

바로 발진에 대한 조직 검사.

배양 검사는 아직 완료되려면 며칠씩 더 걸릴 터였다.

그 결과를 보기 전에 환자는 무조건 죽을 것이었고.

“어디…….”

수혁은 조직 검사 결과를 빠르게 클릭했다.

하윤 또한 패드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바람에 둘은 둘이 내쉬는 이산화탄소를 공유하게 될 만큼 가까워졌지만, 수혁이나 하윤이나 그 사실을 의식하진 못했다.

[혈관 주변으로 중등도의 림프구와 호산구의 침투가 관찰되었군요.]

일단 수혁은 아예 바루다와의 대화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았네.’

[네. 약물에 의한 반응입니다.]

‘내가 맞았어.’

[되게 좋아하시는군요.]

‘웬일로 시비를 안 건다?’

[저는 그쪽으로 분석을 못 했으니까요.]

‘자식. 아무튼, 약을 그럼 스테로이드 추가하자. 항생제 끊지는 말고.’

[네. 그게 좋겠습니다.]

수혁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곤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맞는 거 같지?”

“아……. 이게 호산구가……. 이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아무래도 하윤은 아직 학생인지라 다른 교수들처럼 딱딱 아귀가 맞지는 않았다.

수혁은 자신의 풋풋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응. 그러니까 스테로이드를 쓰자고.”

“아……. 네. 네. 어차피 저는 죽었을 거라서요.”

“자, 그럼 쓴다.”

수혁은 아직 완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하윤을 대신해 치료 방침을 정했다.

그러자 또다시 모래시계가 뜨고 다음 날이 되었다.

“확 좋아졌지?”

“와……. 폐도 좋아졌어요!”

“그래. 그럼 이제 확실해졌으니 항생제 끊고 스테로이드로 가자.”

“네! 선배!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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