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섬망이 아니면 뭔데? (1)
“환자분! 환자분 지금 수술받으셨어요!”
몸이 불편한 수혁보다는 아무래도 다른 이들이 훨씬 먼저 환자에게 달려갔다.
특히 이식외과 류진수 교수는 거의 슬라이딩하다시피 해서 환자를 눕혔다.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 환자는 다른 수술도 아니고 폐 이식술을 받았던 환자였으니까.
그로 인해 면억 억제제를 쓰다가 폐렴이 생겨 일부 폐엽 절제술을 한 후 중환자실에 온 환자였으니까.
“아니! 마누라가 바람을 핀다고!”
하지만 환자는 무척이나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직 체력적으로 팔팔하기 그지없는 30대.
평생 쇠라고는 메스밖에 들어본 적 없는 류진수로서는 속절없이 밀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어.”
“야! 안 돼! 일어나면 안 돼!”
다행히 중환자실에는 류진수 외에도 여러 간호사가 있었다.
그중 막내이자, 청일점이기도 한 이철진 간호사를 중심으로 해서 겨우겨우 환자를 눕히는 데 성공했다.
막 환자가 가슴에 틀어박혀 있던 흉관을 뽑으려던 참이었다.
“휴.”
그게 뽑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류진수 교수는 또다시 수술방을 어레인지해서 응급 수술에 들어가야만 했을 터였다.
지금 이 환자의 면역은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었으니까.
해서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마누라! 바람!”
환자는 여전히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이 생긴 셈인데, 사실 중환자실에서는 퍽 흔하게 볼 수 있는 증상 중 하나였다.
“섬망, 섬망이야.”
류진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때는 이미 수혁도 환자 근처까지 간 후였다.
[섬망이라.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큰 진단명입니다.]
‘그럼 별로 신경 쓸 거 없지 않아?’
[하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이지 않다?’
류진수는 환자 옆에 선 채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수혁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 너무 급해서 좌측 가슴팍에 떡하니 내과라고 쓰여 있는, 다른 과 애한테까지 신경을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정신과 협진 내고. 지금은…….”
류진수는 약간은 어두운 얼굴이 된 채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바람!”
환자는 여전히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이 상태로는 그 어떤 면담이나 치료도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재우자.”
해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일단 진정제부터 주기로 했다.
‘이걸로 또 얼마나 이환 기간이 늘게 되려나…….’
본래 섬망을 유발하는 약제 중 하나가 진정제였다.
그래서 최대한 줄여서 쓰는 것이 원칙이기는 했는데.
알다시피 모든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라는 건 존재 하지 않는 법이었다.
특히나 사람을 치료하는 의학 부분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네, 교수님.”
“일단 정신과에는 약물 검토만 좀 해 달라고 하자고. 지금 또 난동 부리기 시작하면……. 진짜 큰일이야.”
류진수는 안정제가 들어간 후, 늘어진 환자에게 다가가 상처 부위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주변을 서성이던 레지던트들과 간호사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명 수혁만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니, 바루다와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뭐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거야? 저 갑작스러운 망상이나 공격성은 딱 섬망이잖아?’
수혁도 몇몇 섬망 환자를 본 기억이 있었다.
중환자실 인턴을 돌았다면 누구든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혁이 지금까지 보아 왔던 섬망 환자와 이 환자는 너무도 증상이 비슷했다.
[우선 환자의 나이를 보십시오.]
하지만 바루다는 얼마 안 되는 직접 경험을 근거로 사유하는 생물이 아니었다.
그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동등하게 다룰 줄 아는 인공지능이었다.
그것도 꽤 성능이 좋은 편에 속하는.
‘나이……. 음. 34. 어리긴 하다.’
보통 섬망은 노인에서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조금 죄송스러운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노화는 적어도 의학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별로 좋은 게 없었다.
[그렇습니다. 나이가 일단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것뿐이야? 이 사람 렁티(Lung transplantation: 폐 이식) 환자라고. 얼마나 쇠약해져 있겠어?’
[방금 류진수 교수를 한 손으로 밀쳐내는 것을 보고도 쇠약하다는 말이 나오는군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근력이 좋다고 건강한 건 아니잖아.’
물론 근력은 여러 건강 상황과 아주 긍정적인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근력이 강하다고 해서 여러 만성 질환에 노출이 안 되는 건 결코 아니었다.
바루다 또한 수혁의 이러한 말에 굳이 토를 달진 않았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 환자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점은 나이뿐만은 아닙니다.]
‘그럼?’
[지금 몇 시입니까? 수혁.]
‘응? 갑자기 시간은 왜?’
[답이나 해 보시죠.]
수혁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미 환자는 안정제를 맞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혹 호흡이 흔들릴까 봐 간호사 하나가 환자의 산소 포화도 모니터를 주의 깊게 보고 있기도 했다.
‘오후 2시네.’
수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역시 낮이라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곧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오후 2시?’
[네. 대낮입니다.]
‘섬망은…….’
[밤에 주로 발생합니다.]
‘으음……. 하지만 이 두 개만으로 섬망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데.’
[수혁의 의견이 타당합니다. 좀 더 관찰해 볼 것을 요청합니다.]
‘뭐…….’
수혁은 잠시 시계를 되돌아보았다.
역시 오후 2시였다.
병동에 급한 환자들이 있다면 너무 바쁜 시간이겠지만.
적어도 수혁은 그렇지 않았다.
‘깡통이 도움이 되긴 해.’
어지간한 입원 환자들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처방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애초부터 진단이 되어서 올라온 환자들은 거의 올라오는 즉시 처방이 주르륵 나갈 지경이었다.
‘간호사들이 그래서 날 좋아하지.’
인계할 때 수혁 환자들은 정말이지 깔끔 그 자체라고 들었더랬다.
오늘 처방은 물론이고, 내일, 심지어 모레 처방까지 나가 있었으니까.
그 덕에 수혁은 다른 내과 레지던트들에 비하면 시간이 꽤 많은 편이었다.
[중환자실 차트부터 보실 것을 권유합니다.]
반면 바루다는 수혁이 감상에 빠진 시간조차도 아까운 모양이었다.
아무튼, 수혁 또한 환자에게 흥미가 생기던 참이었기에 그냥 넘어가진 않았다.
차락.
해서 곧장 중환자실 차트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미 류진수 교수는 다른 수술 때문에 수술방으로 간 후였고, 이식외과 레지던트들도 마찬가지였다.
중환자실 내에는 간호사들뿐이었다, 이 말이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정신과?”
“보니까 내과던데.”
“이수혁…… 아닌가?”
그중 한 명이 수혁을 알아보았다.
다른 이들은 아예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에 뭔가 더 정보를 요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수혁?”
“몰라? 원장님 숨겨진 아들이라던데?”
아직 이게 헛소문이라는 사실은 내과 내부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도 신현태 과장이 보낸 메일 때문에 다시 정말 아들이 아니긴 한 건가 하는 의심에 빠진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놓고 건들지 말라는 말을 할 리가 없었으니까.
“헐. 완전 로열이네.”
“근데 왜 왔지? 호흡기내과 도나?”
“모르겠네. 거기 협진도 안 냈는데.”
“일단……. 일단은 그냥 둬. 가까이 가지도 말고.”
“그, 그래.”
로열에게 괜히 가까이 갔다가 밉보였다간 최악이었다.
굳이 찾지 않는 이상에야 숨어 있는 게 제일이었다.
다행히 수혁은 다른 곳에 시선을 두기보다는 중환자실 차트에만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혈압, 체온, 심장박동 수, 호흡수 모두 안정적이군요.]
소위 활력징후라 불리는, 환자 상태를 볼 때 제일 중요한 것들은 지극히 안정적이었다.
아예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근데 체스트(Chest: 흉부, 보통 엑스레이를 뜻함)는 지저분하네.’
[절제된 폐엽 조직 검사 결과를 보면 균주가 아스퍼질러스군요.]
아스퍼질러스.
정상적인 성인 몸속에서도 간혹 발견되는 곰팡이균이었다.
정상 성인에서는 면역 체계 때문에 문제를 못 일으키는데, 이 환자처럼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는 어마어마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 이 환자에서처럼.
‘골 아픈 폐렴이네. 세균도 아니고, 곰팡이라니.’
[아마 그래서 절제술을 했을 겁니다. 다행히 수술은 아주 깔끔하게 된 거 같군요.]
‘흉부외과에서 협진 수술 한 거로 되어 있네. 집도의는 강일구. 나름 유명한 분이셔.’
[저도 압니다. 관련 논문이 데이터에 있습니다.]
‘아, 그런가?’
[수혁이 직접 읽은 건데 기억 못 하시는군요.]
데이터화가 되어 있으니 찾아보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로드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읽었다는 기억 자체가 없으니 말짱 꽝이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해서 수혁은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바루다 또한 환자 상태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이러쿵저러쿵 더 시비를 걸어 오진 않았다.
주기적으로 짜장이니 뭐니 하는 걸 먹인 보람이 있었다.
[오늘이 처음이 아니군요, 섬망이.]
‘그래? 아, 그렇네.’
바루다의 말대로 아침에도, 어젯밤에도 섬망 삽화가 있었다.
[아침은 아주 짧게 지나갔습니다.]
‘바로 진정제를 놔 버렸네.’
[그리고 어젯밤에도 삽화가 있었군요. 어제 상황만 놓고 보면 나이 말고는 섬망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긴 어렵군요.]
‘그렇네. 역시 그냥 섬망인가?’
[그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전……. 아, 튜브 뽑은 게 어제구나.’
[네, 그 이전까지는 완전히 의식을 재워 두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섬망과 같은 증상을 전혀 보이진 않았단 얘기였다.
이에 수혁은 약간은 맥이 풀린 기분이 되어 양재원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다행히 양재원 환자의 수술은 아주 잘된 상황이었다.
일단 수술하는 도중 활력징후가 흔들린 적이 없다고 했다.
덩이 자체가 큰 건 아니니, 회복만 잘되면 곧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명색이 주치의였던 사람이 다른 과로 갔다고 아예 안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모든 업무가 종결된 이후, 즉 오후 8시쯤 되었을 때 다시 중환자실로 향했다.
“아직 재워 뒀네.”
양재원 환자는 수술 직후와 정확히 같은 모습이었다.
[검사 결과도 안정적이군요. 아마 내일쯤이면 익스투베이션(Extubation: 기도 삽관된 것을 제거하는 행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갈까?’
[공부나 하죠.]
‘그래.’
그렇게 위로 올라가려는데, 또다시 박태수 환자가 발작을 일으켰다.
“마누라가 바람을 핀다고!”
의사 된 입장에서 환자가 섬망을 일으키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공교롭게도 지금 딱 중환자실에 의사라고는 수혁밖에 없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일단 진정제 놔 주세요! 흉관 뽑으면 큰일입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로열이라고 생각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간호사들이 부리나케 환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곧 환자는 진정제를 맞고 모로 쓰러졌다.
‘아직도 정신과 협진 안 봤나? 해결이 안 되네.’
그 모습을 지켜본 수혁이 막 자리를 뜨려는 찰나, 바루다가 외쳤다.
[잠깐!]
‘왜.’
[지금 시각이 몇 시죠?]
‘2시 인마.’
[어제랑 같습니다. 정확히.]
‘뭐?’
[어제 섬망 증상을 보인 시각도 2시입니다. 이건…….]
‘우연일 수가 없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