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 위험한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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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위험한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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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위험한 티타임
2023.04.30.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시우는 눈을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온통 어둠으로 뒤덮인 하늘. 쓸쓸한 바람이 불어오는 폐허의 땅 위에 덩그러니 놓인 티 테이블과 다구.
퍽 어울리지 않는 그 풍경 속에서, 유리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히 울렸다.
“……그래서, 언제까지 이 장난을 계속할 생각인 건지 궁금한데.”
“장난이라 함은?”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마갈궁, 벤달기프는 직접 주전자에 차를 우리며 되물었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시답잖은 짓은 관두고 본색을 드러내는 게 어떤가 해서.”
시우가 푸른 시선을 날카롭게 들어 올렸다.
“─조디악.”
그들을 감싼 공간이 적막에 휩싸였다. 찻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몇 번 일정하게 들려온 뒤, 벤달기프가 마른 웃음을 흘렸다.
“진정하시오. 나는 그대를 해할 생각은 없소. 불필요한 살생은 하고 싶지 않거든.”
“하, 우습지도 않군.”
비웃음을 흘린 시우는 더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듯 다른 쪽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신체를 제압하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끊임없이 마력을 발산했다.
하지만 벤달기프는 그런 시우의 속셈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짓을 관두는 것을 추천하오. 이곳 ‘기사의 성역’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대는 ‘포로’가 되었으니.”
“포로?”
“그렇소. 내가 해방하지 않는 이상 그대가 스스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지.”
“……이상하군. 그게 사실이라면 왜 바로 날 죽이지 않는 거지?”
“말하지 않았소. 나는 불필요한 살생을 즐기지 않는다고.”
“넌 조디악이잖아.”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소만 조디악이라고 해서 살생을 즐긴다는 것은 편견이자 선입견이오.”
물론 그런 자도 있기는 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백양궁 에단이나 천갈궁 예가임. 그들은 제 기분에 따라, 혹은 여흥 삼아 살생을 일삼았으니까.
벤달기프는 익숙한 움직임으로 차를 우려내며 말을 이었다.
“보다시피 이곳은 무척 적적하지 않소. 나는 그저 함께 차 한잔 마실 말동무가 필요할 뿐이오.”
“미안하지만 나는 느긋하게 차나 마시고 있을 시간 따위 없다. 찾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별을 말하는 거요?”
“……새로운 별?”
“‘그분’께서 친히 초대하신 귀빈이 있어서 말이오. 여길 지나간 사람은 그자밖에 없거든.”
“……! 네놈, 선배를 어떻게 한 거─ 읍!”
시우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벤달기프의 짓인지는 몰라도 더 이상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 마시오. 그자라면 이미 탑으로 들어갔으니, 지금쯤이면 그분을 알현하고 있을 거요.”
이런, 차가 다 식어 버리겠군. 벤달기프는 주전자를 조용히 내려 두었다.
달그락, 달그락…….
살벌한 분위기 가운데 어울리지 않는 티스푼 소리가 맑게 이어졌다.
어느덧 차기 소리가 멎은 시점, 벤달기프의 샛노랗고도 기묘한 시선이 흘러가듯 시우에게 닿았다.
“설탕과 우유, 어느 쪽이 좋소?”
“……뭐?”
“홍차에 넣을 것 말이오. 여기 두 가지 모두 준비되어 있소. 어느 쪽을 선호하시오?”
“…….”
시우는 굳은 얼굴로 입을 닫았다. 이 조디악이 지금 그딴 것을 묻는 속셈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가늠이 가질 않았다.
이것은 어떠한 ‘시험’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저 호기심? 어쩌면 그저 유흥일지도 모른다.
“대답하시오. 어느 쪽?”
벤달기프는 눈꺼풀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다시 물었다.
“헛소…….”
시우의 턱선을 따라 식은땀이 소리 없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지만, 순식간에 돌변한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현재 시우는 눈조차 마음대로 깜빡일 수 없는 상태였다.
벤달기프가 말한 그의 권능 ‘기사의 성역’은 ‘포로’로 지정한 대상의 능력을 봉인하고 움직임의 자유까지 앗아 가는, 상당한 위험한 힘이었다. 벤달기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시우를 죽일 수 있다는 소리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놈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몸을 억누르고 있는 억제감(抑制感)이 강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바위가 양어깨를, 아니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형형한 눈빛이, 이곳을 맴도는 바람이, 그 모든 것이 말해 주고 있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죽는다.
“……아무것도 안 넣는다.”
침묵을 깬 시우가 참고 있던 숨을 토해 내듯 답했다. 그러자 벤달기프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눈매를 은은하게 휘었고, 몸을 억누르고 있던 원인 모를 힘이 조금은 약해졌다.
“정답이오. 그편이 찻잎의 향을 훨씬 더 즐길 수 있으니.”
쪼르륵─
벤달기프는 찻잔에 홍차를 따라 시우에게 건넸다. 시우는 두 손을 뻗어 공손히 그것을 받았다. 물론 그것이 그의 뜻은 아니었다.
여전히 놈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당장의 위기는 피해 간 걸까. 그렇게 안심할 새도 없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질문이 또다시 이어졌다.
“다과는 차를 마시기 전과 후, 언제 맛을 보오?”
“……후.”
“정답이오. 뜨거운 차와 조금 식은 차, 어느 쪽을 선호하오?”
“조금 식은 차.”
“정답이오. 아무래도 그대와 나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소.”
벤달기프는 썩 만족스러운 얼굴로 찻잔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소. 누군가 이 차에 수상한 약을 탄 것이 의심되지만 꼭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면?”
“……뭐?”
싸아아─
순간 그들을 둘러싼 바람이 우뚝 멎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벤달기프는 손가락을 하나씩 펴기 시작했다.
“첫째, 그대를 따르는 시종에게 시음을 명한다. 둘째, 그냥 마신다.”
벤달기프는 표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선택을 강권했다.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소?”
시우의 푸른 시선이 아래로 떨어져 오른손에 쥐고 있는 찻잔에 닿았다.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던 시우가 이내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마시지 않는다.”
“꼭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지 않았소.”
“실수로 손이 미끄러진 척 찻잔을 깨는 것 정도야 쉬운 일이니까.”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군. 왜 굳이 그런 연기를 하겠다는 거요? 그것보다는 적당한 시종을 불러 맛을 보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하고 명확한 방법이 아니오. 그대를 따르는 시종이니 명령만 내리면 거부 못 하지 않소.”
벤달기프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만일 차에 독이라도 섞여 있으면 그자는 죽을 텐데.”
“시종을 가엾게 여기는 것이오?”
“가엾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인상을 찡그린 시우가 시선을 들어 벤달기프를 쏘아보았다.
“나를 따르고 있는 자라면, 그자의 목숨의 책임도 내게 있는 거니까.”
“…….”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무기질적인 눈동자가 시우를 뜯어보듯 살폈다.
휘이이잉…….
한순간 멎은 것 같았던 바람이 다시금 불어오기 시작하며, 가지런한 시우의 머리카락을 미약하게 흩트렸다.
“틀렸소.”
우드득!
“……?!”
찻잔을 쥐고 있던 시우의 손가락이 돌연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였다.
땅으로 떨어진 찻잔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고, 김이 오를 정도로 뜨거운 홍차가 시우의 옷가지를 적셨다.
“읏…….”
신체의 자유를 억압받는 상태였던 시우는 일그러진 손가락 관절을 다시 펴내지도 못한 채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런 거였나.’
홍차에 우유나 설탕을 넣는지, 다과를 먹는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그러한 것들은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벤달기프는 시우의 대답을 ‘정답’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서는 ‘틀렸다’고 말하며 시우를 위협했다.
즉, 처음부터 놈은 시우에게 ‘바라는 대답’이 있었던 것이다. 이미 정해진 답을 듣고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만일 놈이 바라는 대답 혹은 만족할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면…….
“다음은 목이요.”
다그닥…….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벤달기프가 발굽 소리를 내며 시우 곁에 서 있었다.
스릉, 서늘한 금속음이 귓가에 닿았다. 팔짱을 끼고 있는 벤달기프의 곁에 신기루처럼 나타난 검 한 자루였다.
“그대가 목숨 바쳐 따르는 자, 혹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 누구여도 좋소. 그런 자가 그대에게 독이 든 차를 건넨다면 어떻게 하겠소?”
검은 당장이라도 시우의 목을 베어 버릴 위협으로 다가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시우의 손이 주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검을 쥐었다. 그러고는 스스로의 목에 칼날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시우는 안간힘을 써서 그 움직임을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2신수 ‘깊은 밤을 수호하는 개’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억제되고 있는 당신을 해방하려 시도합니다.]
[…….]
[…….]
소용없었다. 단단하게 검의 손잡이를 쥔 시우의 손은 기어코 목에 칼날을 들이밀었다.
목에 예리한 감각이 미약하게 스친다. 목 줄기를 타고 무언가 뜨끈한 액체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답하시오.”
─그것은 자신의 피였다.
조금만 더 검이 다가오면 그대로 목을 베일 상황이었다. 시우의 뇌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빠르고 명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마 이 질문에 있어서도 ‘정답’과 ‘오답’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벤달기프가 원하는 대답은 과연 무엇일까.
놈은 데바를 ‘그분’이라 높이 부르며, 그가 있는 탑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또한 은하를 귀빈이라 호칭하기도 했다. 데바가 그녀를 직접 초대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벤달기프는 데바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아마 데바가 독이 든 차를 마시라고 한다면…….
“─마실 것이다.”
벤달기프는 기꺼이 그리할 것이라고, 시우는 판단했다.
“……독이 든 줄 알면서도 마시겠다고.”
기묘한 빛깔을 한 벤달기프의 눈매가 사뭇 가늘게 변하는 순간, 시우는 무언가가 사뭇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검을 쥐고 있는 시우의 손힘이 조금 느슨해진 것이었다. 벤달기프가 동요하고 있는 건가?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시우는 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서히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놈의 마력과 자신의 마력. 결이 다른 두 마력이 한 번에 충돌한다면 더 큰 파장을 가진 마력이 승리한다. 그것이 마력 간의 공식이었다.
‘마력의 양만 따지고 본다면 놈이 나보다 훨씬 유리하겠지만…….’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시우가 자연계열 헌터라는 것이었다.
자연계열 헌터가 특별한 이유는 각성자 중에서 가장 드물게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계열의 헌터들보다 훨씬 더 농도가 짙고 순수한 마력을 가진 덕분이기도 했다.
자연계열로 각성한 헌터들이 첫 측정에서 빠짐없이 최소 B+ 이상의 랭크를 부여받는 것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증명된 일이었다.
더군다나 시우는 일반적인 자연계열 헌터와는 달리 얼음과 물 두 가지의 능력을 동시에 다룰 수 있기까지 했다.
‘승산은 있다.’
벤달기프가 동요하기 시작하면 그가 풍기는 마력에도 균열이 일어난다. 그것은 곧 그의 권능에 빈틈이 생기는 것을 뜻했다.
그 틈을 공략하여 시우가 순수한 마력을 한 번에 방출한다면 이 ‘기사의 성역’을 해제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놈이 완전한 빈틈을 보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회는 한 번뿐일 테니까.
시우는 벤달기프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조금씩 마력을 응축하면서도, 조금 더 시간을 벌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마실 거다. 하지만 후회하겠지.”
“후회?”
그러자 놈의 눈동자가 일순 미약하게 흔들렸다.
‘좋았어.’
시우의 입매에 미약한 미소가 걸렸다.
벤달기프는 한낱 불청객에 불과한 시우를 죽이지 않았다.
데바의, 조디악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시우는 분명한 적이다. 또한 벤달기프는 ‘포로’ 상태인 시우를 진즉에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놈은 불필요한 살생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대면서 지금까지 살려 두고 있었다.
그것은 데바의 의지가 아닌, 벤달기프 자신의 의지라는 소리였다.
기둥 근처에서 보았던 사자궁 얀의 경우, 데바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벤달기프는 조금 다르다.
시우는 이렇게 판단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벤달기프가 가진 ‘충성’에는 아주 작은 균열이 일고 있다고. 지금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균열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좋다. 시우는 그 가능성에 목숨을 걸었다.
“너도 그렇지 않나?”
“……무슨 소리요.”
“후회하고 있지 않느냐고.”
벤달기프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두통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까보다 훨씬 더 억제감이 옅어진 것이 느껴졌다.
“무엇을 후회한다는 말이오.”
“무엇이든.”
조금만. 조금만 더.
시우는 서서히 마력을 응축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네가 데바에게 충성하고 있다면 왜 나를 죽이지 않았지? 사실은 그의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아닙니다.”
벤달기프의 미간이 사정없이 좁아졌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
놈은 갑작스럽게 말투가 바뀌더니 시우를 전하라고 불렀다. 아니, 시우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이것이 나의 충성. 나는 왕에게 충성을, 왕국에 심장을.”
벤달기프는 스스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이마를 감쌌다. 그러면서도 마치 그렇게 입력된 듯이, 기계적으로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낙원을 위해.”
놈의 손이 움찔 떨렸다.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던 무기질적인 눈동자에 동요의 빛이 서렸다. 그 순간 시우를 옥죄고 있던 속박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지금이다.’
조금씩 모아 둔 마나를 한 손에 응축한 시우가 두 눈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의 푸른 두 눈이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찰나,
“……!”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다가오고 시우를 중심으로 엄청난 바람…… 아니, 푸른 빛을 머금은 마력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채앵─!!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벤달기프와 시우가 서 있는 공간에 금이 갔다.
눈앞의 광경이 깨진 거울처럼 일그러지며 시스템 메시지가 연속하여 떠오른다.
[System Error = ??? 허가되지 않은 출력입니다.]
[Pa뛟霂 System:{ }SV8??Jd웮뎻쥾㼖n䗧鑴]
[System Error = 21388 걁퉹뷠뾴?벍밙¶딯땝끯□궕뚷‡궻귘]
[치명적인 오류 발생.]
[지정 영역을 강제 리셋합니다.]
휘익!
시우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제 목이 아닌 벤달기프를 향해 휘둘렀다.
명중인가?
“놀랐소.”
“……!”
─아니,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나의 권능을 인간이 스스로 해제하다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중얼거리던 벤달기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온전한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미간을 좁힌 시우는 작게 혀를 찼다. 완벽한 빈틈을 노려 ‘기사의 성역’을 해제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벤달기프는 기습을 당할 만큼 무른 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의 충성을 의심하는 자여.”
제게 달려드는 검을 손아귀에 거머쥔 벤달기프가 특유의 무기질적인 눈동자로 시우를 응시했다.
빠드득!
강철로 만들어진 검은 그의 손힘에 의해 부서졌다. 손바닥을 뒤집은 그가 피가 흥건하게 묻은 검의 파편을 땅에 후드득 떨어트렸다.
“이것이 마지막 질문이오.”
슈슈슈슉…….
시우가 현재 쥐고 있는 검과 같은 형태의 검이 벤달기프의 오른쪽에, 아니 사방에 무수히 생성되었다.
벤달기프는 그저 그 가운데서 조용히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다. 굳이 손을 뻗어 검을 잡을 필요 따위 없다는 듯.
“여기서 전투가 시작된다면 죽는 것은 그대와 나─.”
시퍼런 날을 빛내는 그것들은 명령이라도 받은 듯 일제히 시우를 향해 겨누어졌다.
“어느 쪽일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