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9. 백색 성 (269/306)


#269. 백색 성
2023.04.26.


GIA의 목적은 데바를 저지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있는 건 그들의 보스이자 동료인 요한, 이준의 구출이었다. 이미 죽었을지언정 그의 시신이라도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준에 대한 일은 우선 GIA에게 맡기기로 정한 은하는 그들과 잠시 개별 행동을 하기로 했다.

제주도에는 협회의 요원과 조사 단원 그리고 국내 길드에서 파견된 헌터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주변 수색 및 주요 임시 거점 관리, 그리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해안선을 수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약 일이 잘못되면 그 여파가 바다를 넘어 대륙에까지 뻗게 될 테니 말이다.

그들과 짧게 대화를 나눈 시우는 은하가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미리 파견해 두었던 길드원들의 말로는, 백색 성에는 S급 이상 랭크의 헌터 혹은 헤드 헌터만이 입장 가능한 모양입니다.”

“그건 탑이랑 똑같네.”

“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탑은 자격이 있는 헌터를 대표로 세우면 그자가 이끄는 공대까지 함께 입장할 수 있는 방식이었는데, 백색 성은 불가하다더군요.”

그렇다면 아연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단독으로 움직이는 유형이니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테고, 민주는 군단 패밀리들과 떨어져 혼자 성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백색 성 내부에 진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 극소수. 민주와 아연, 그리고 먼저 제주도에 도착해 있던 발키리와 뮤턴트까지 포함하여 생각할 수 있는 인원은 넷 정도다.

“그들과 합류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죠.”

그리 말한 시우는 널리 시선을 던져 주변을 훑었다.

‘괜한 체력 소모를 막기 위해서는 운전이 베스트겠지만…….’

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는 형태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만일 어딘가에 적이 숨어 있다거나, 데바가 이쪽을 염탐하고 있기라도 한다면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는 게 좋겠지.

“여기서부터는 직접 움직이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결국 시우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은하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은하와 시우 그리고 에단은 섬 중앙에 위치한 백색 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데바의 성은 해변가에서 보아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거대했지만 실상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다만 전 조디악인 에단은 물론이거니와 은하와 시우는 S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프로 헌터였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편 백색 성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제주도의 풍경은 더욱더 처참하고 삭막해져 갔다.

“게이트 안을 보고 있는 것 같군요.”

주변을 확인하던 시우가 중얼거렸다.

아니, 사실 그 어떤 게이트도 이렇지는 않았다. 그곳에는 적어도 몬스터라도 있었으니까.

원래는 한라산이었던 이 장소는 이제 아무런 생명체도 살지 않는 황무지가 되어 있었다. 인간은커녕 이 주변의 동식물들이 모조리 소멸된 것만 같은 적막감에 숨이 멎을 듯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그들이 바람을 가르면서 뛰는 소리뿐.

서울을 포함한 다른 지역들도 그랬지만 백색 성의, 데바의 영향을 받은 제주도는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망가져 있었다.

“네뷸러화가 진행됐던 다른 채널의 세계는 다 이렇게 변했던 건가?”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던 시우가 힐끗 에단에게 눈길을 던졌다. 마찬가지로, 시우와 은하의 속도에 맞춰 뛰던 에단은 백색 성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글쎄.”

“뭐지, 그 애매한 답은.”

“네뷸러화가 완전히 진행된 이후에는 해당 채널에 가 본 적이 없으니까 확실히는 몰라.”

“……무책임한 놈들이군.”

시우는 경멸하는 듯한 차가운 음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어느새 백색 성 앞에 도달해 있었다.

“이건…….”

제자리에 멈춰 선 은하의 시야에 무언가 익숙한 물건이 들어왔다.

백색 성 입구 근처의 말라비틀어져 죽은 나무. 그곳에서 무언가 펄럭이고 있었다.

‘녹색 망토.’

군단이 늘 두르고 있던 바로 그 옷이었다.

단순히 바람에 날아가 나무에 걸린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겠지만, 망토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뭇가지에 단단하게 묶여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트릭스터가 미리 표시를 남겨 둔 모양입니다.”

녹색 망토를 눈에 담은 시우가 그것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역시 민주는 먼저 백색 성에 진입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아연도 함께일 것이다.

“우리도 뒤따르죠.”

녹색 망토를 챙긴 시우가 입구를 향해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성에는 딱히 입구라 할 것이 없었다. 거대하고 굳건한 문이 자리해 있어야 할 텅 빈 공간에는 문 대신 아치형의 커다란 기둥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언제든 들어오라는 건가.’

아무런 장치도 되어 있지 않은 그 빈약한 입구는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너희를 맞이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입구 앞에 선 은하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오만한 녀석이군.”

또각─

맑은 구두 소리를 내며 은하는 입구에 한 걸음 다가갔다. 시우 역시 마찬가지로 그녀를 따라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가장 후방에 서 있던 에단이 마지막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파지직!

돌연 허공에서 시퍼런 스파크가 강하게 일어나며 에단을 튕겨 냈다. 순간적으로 눈빛이 바뀐 에단이 붉은 눈을 홱 들어 올려 둥근 아치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이 녀석…….’

치직, 치지직…….

남은 스파크의 잔류가 에단 주변으로 튀었다.

“에단?”

몇 걸음 앞서 걸어가던 은하가 다시 걸음을 돌려 에단에게 다가왔다. 아치를 차갑게 노려보던 에단이 그곳에서 시선을 거두고 어깨를 으쓱했다.

“예상대로 환영받지는 못하는군.”

“뭐?”

“이 안은 아마 녀석의 네뷸러와 연결되어 있을 거야. 난 추방당한 몸이니까 못 들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말이야.

순간적으로 에단의 동공이 가로로 길게 찢어지며 그를 감싸고 있는 공기가 차갑게 식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은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와 있었다.

‘데바는 왜 이 성안을 자신의 네뷸러와 연결해 둔 거지?’

그럴 필요가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어째서? 네뷸러화하지 않으면 자신이 이 채널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하지만 데바는 아주 잠시이지만 시스템의 규율을 깨고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때 은하는 분명 데바의 모습을 보았으니까.

‘그건 본체가 아니었던 건가?’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은하의 까만 눈이 스르륵 움직여 눈앞의 에단에게 닿았다. 에단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로 백색 성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데바는 에단의 진입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가?’

왠지 그런 직감이 들었다.

에단은 데바 본인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태초의 별’이다. 동시에 별을 먹는 별이라고도 불리는 이단자이기도 했다.

물론 은하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은하는 데바에게 있어 에단이라는 존재가 위협적인 정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걸림돌 이상이리라 생각했다.

“먼저 가 있어.”

이곳에서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 쓸데없는 짓이란 걸 알아차린 에단은 정면 돌파를 쉽게 단념했다.

“어쩔 생각이지?”

시우가 묻자 에단은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 올리더니 말했다.

“조금 길을 둘러 가야 하겠지만 늦지는 않을 거야.”

“둘러 간다니, 대체 어디로─.”

시우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쪽.

은하의 왼쪽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 에단이 히죽 웃었다.

“이건 내 가호.”

“너……!”

시우의 턱이 땅에 닿을 기세로 쩍 벌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황 파악을 마친 시우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온전한 백색으로 물들었다. 그의 주변으로 투명한 얼음 파편이 파스스 소리를 내며 생겨나더니, 그것은 곧 날카로운 고드름이 되어 에단을 겨누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에단이 모습을 감춘 뒤였다.

[신수 ‘어둠을 방랑하는 고양이’가 저 미친 XX! 하며 격노합니다.]

[겡禱꿼 System:{ }P49/Y?2k갚뭲뗎蘇SQn牡]

[문자화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무서운 기세로 연속하여 떠오르는 노란 메시지창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은하는 복잡한 얼굴로 자신의 왼쪽 뺨을 느릿하게 쓸었다.

‘가호라니.’

분명 그때는, 한 대상이 두 개의 가호를 동시에 받을 수 없다고 했으면서.

* * *

에단과 잠시 떨어진 은하와 시우는 백색 성 내부로 진입했다.

아치형 기둥을 지나 수십 걸음 걷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안개가 온몸을 휘감았다.

짙은 안개 탓인지 정신마저 뿌옇게 흐려졌다. 분명 발이 땅에 닿아 있는데 어쩐지 구름 속을 걷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화아악……!

안개가 서서히 걷어질 즈음,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왔다.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춘 은하와 시우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이윽고 바람이 멈추었을 때, 그들은 가느스름하게 뜨고 있던 눈을 들어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여긴.”

살짝 눈썹을 찡그린 시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들은 분명 백색 성 내부에 진입했다. 그러니까, 실외에서 실내로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막상 그들이 도착한 이곳은 결코 성의 내부라 생각되지 않는 곳이었다.

[신수 ‘어둠을 방랑하는 고양이’가 이곳은 데바의 네뷸러가 확실하다며 불안한 듯 몸을 떨기 시작합니다.]

‘여기가…… 데바의 네뷸러?’

검은 비단을 깔아 둔 듯 새까맣게 물든 하늘. 소금같이 흰 별이 뿌려진 은하수 아래 잘게 부서지고 쪼개진 땅이 곳곳에 두둥실 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우주 가운데를 부유하고 있는 행성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공중을 떠다니는 수십 개의 작은 섬 아래에는 바다나 대륙 대신 두꺼운 구름이 깔려 있었다. 그 아래가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선배, 저길 보십시오.”

시우가 뭔가 발견한 것인지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 멀리 떨어진 곳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살짝 눈살을 찌푸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특이한 형태를 한 탑이었다.

마치 알파벳 ‘Y’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새였는데, 꼭대기 부분이 작은 태양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이 침묵의 공간에서 그 탑만이 유일한 발광체인 듯 보였다.

은하와 시우는 저곳에 데바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또한 만일 저 탑을 보았다면, 아연과 민주 역시 망설임 없이 저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은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그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휙, 휙, 휙!

공중으로 도약한 그들은 부유하는 크고 작은 땅의 조각들을 발판 삼아 중앙 탑으로 향했다.

“선배.”

도중, 시우가 뛰던 걸음을 멈추고 굳은 입술을 열었다. 은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눈치를 채고는 우뚝 몸을 세웠다.

“그래, 저쪽으로 향하는 길이 없어.”

그들은 냇물 위의 징검다리를 이용하듯 땅의 파편을 밟고 중앙 탑으로 이동하는 중이었지만, 여기서부터는 그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발을 디딜 파편 사이사이가 너무 넓은 데다, 탑을 중심으로는 엄청난 바람이 소용돌이치듯 불고 있었다. 불필요한 침범을 차단하겠다는 듯 매서운 칼바람이었다.

“트릭스터와 괴도가 정말 저쪽으로 향한 걸까요?”

그들 역시 지금 이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등에 크고 튼튼한 날개가 달려 있지 않은 이상, 저 칼바람을 뚫고 탑으로 가는 것은 그들에게도 무리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은하는 ‘검은 장미 펜던트’를 손에 감싸 민주나 아연을 추적하려고 했다. 그런데.

[Cast Spell ‘위치 추적’ 감지]

[당신은 ‘위치 추적’을 요청하셨습니다. 유물 ‘검은 장미 펜던트’를 활성화하시겠습니까?]

[위치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아이템 사용이 허용되지 않은 채널입니다.]

‘……뭐?’

어째서인지 이곳에서는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진퇴양난. 지금 상황이 바로 그랬다.

어딜 가든 막다른 길이라면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탑 주변의 저 바람 소용돌이를 제외하고도 또 다른 함정이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이상 탑에 접근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저곳에 아연과 민주가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래도 가 봐야지.”

방법이 없으니까.

결심을 마친 은하가 다음 도약을 위해 무릎을 살짝 굽히는 순간이었다.

빠득─

딱딱한 것을 밟기라도 한 듯, 구두 아래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돌멩이인가? 무심코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구두 굽에 의해 부서진 노란색 사탕이 보였다.

“왜 그러십니까?”

“사탕이 떨어져 있어.”

“사탕…… 이요?”

이런 곳에 사탕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 웬 말인가.

덩달아 이동을 멈추고 은하 곁에 선 시우는 한쪽 무릎을 굽혀 사탕을 주워 들었다. 별 무늬 포장지에는 ‘레몬맛’이라고 적혀 있었다.

“포장지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아하니 누군가가 먹다가 뱉었다기보다는 우연히, 혹은 일부러 흘린 듯합니다.”

시우는 부서진 사탕을 손바닥 위에 올려 두고 그것을 뜯어보듯 살폈다. 한편 은하는 그 별 무늬 포장지의 레몬맛 사탕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좋아, 언니는 특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레몬맛으로 주지 뭐.’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그곳에서 아연을 처음 만났던 날 그녀가 은하에게 선심 쓰듯 내밀었던 바로 그 사탕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워낙 군것질을 좋아하는 아연은 평소에 사탕이나 초콜릿, 풍선껌 등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 별 무늬 포장지의 사탕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였다.

‘그럼 이건 아연이가…….’

백색 성 입구 부근 나무에 묶여 있던 녹색 망토처럼, 아연 역시 뒤따라올 은하와 시우를 생각해서 표시 삼아 사탕을 떨어트려 두었을지도 모른다.

은하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예상대로 주변 곳곳에는 사탕이 떨어져 있었다. 시우 역시 아연의 의도에 대해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손에 쥐고 있던 사탕을 휙 던져 버린 그가 어이없다는 듯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후 은하와 시우는 땅에 떨어진 사탕을 표지판 삼아 이동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언니!”

아연을 만났다. 곁에는 민주도 함께였다. 그들은 무언가로부터 몸을 숨기고 있기라도 한 듯 커다란 바위 뒤에 반쯤 숨어 있었다.

“쉿, 목소리가 커.”

민주는 은하를 보고 흥분한 아연에게 눈을 흘기며 주의를 주었다.

무언가 있는 건가? 덩달아 걸음 소리를 죽인 은하와 시우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무심코 입을 열던 시우가 멈칫했다. 그들 옆에 쓰러진 두 개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림자의 주인은 헤드 헌터 발키리와 뮤턴트였다.

발키리는 머리를 크게 다친 듯 이마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뮤턴트는 강한 타격을 입은 양 한쪽 어깨가 아주 기이하게 꺾여 있었다.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한 은하와 시우의 눈빛이 사뭇 굳었다.

‘죽은 건가?’

─아니, 미약하지만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아 아직 숨은 붙어 있는 듯했다.

드르르…….

그때 후욱, 하고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시끄러운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 은하와 시우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넓적하고 커다란 바위 위에 느른하게 늘어져 잠든 그것은─.

“……사자?”

붉은 갈기를 가진 엄청난 덩치의 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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