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쌍둥이의 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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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쌍둥이의 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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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쌍둥이의 가호
2023.04.09.
[개체 식별. 차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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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 식별 완료.]
[신수 ‘어?을 방?¶뷠□ 고양劙’와의 계약이 유효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대상자 : ‘흑염의 프린세스’]
[당신은 ‘어?을 방?¶뷠□ 고양劙’와 영혼이 결속되었습니다!]
[권능을 재부여합니다.]
눈부신 황금 빛이 은하를 에워쌌다.
마치 고양이와 처음 계약을 했던 그때처럼 말이다. 호흡이 뜨겁고 전신에 알 수 없는 힘이 깃드는 이 선명한 감각조차 그때와 같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시스템창이 명시한 고양이의 칭호가 오류가 난 듯 깨져 있다는 점이었다.
띠링!
귓가에 또 한 번 알림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붉은 경고창이 팝업되었다.
[예기치 못한 문제 발생.]
[대상자 ‘흑염의 프린세스’에게 이미 ‘권능’이 깃들어 있습니다.]
[System Error = 82609 볷?¶□뚭긆깂깒?긽¶‡귻깛긐긘긚긡?]
[System Error = 82610 걁퉹뷠뾴?벍밙¶딯땝끯□궕뚷‡궻귘]
[경고! 시스템 손상이 감지되었습니다. 알 수 없는 충돌 현상입니다.]
[ - - - Loading - - - ]
은하를 에워싸고 있던 황금 빛이 점점 더 짙어졌다. 그 빛은 마치 은하를 그대로 꿀꺽 집어삼킬 듯한 기세였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은하에게서 거리를 벌린 에단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녀를 관찰했다.
‘쌍아궁 녀석……. 소멸하기 직전, 동생이 입혀 둔 가호 위에 자신의 가호를 덧씌웠군.’
에단에게는 시스템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라면 두 개의 기운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에단의 예측은 정확했다.
루나는 소멸하기 직전 자신의 기억을 전달하며 제 가호 또한 그녀에게 내렸다. 은하 본인조차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했다.
에단 역시 그녀에게 미약하게 남아 있는 별의 기운이, 동생 쪽의 가호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설마 루나가 따로 가호를 내렸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뿐더러, 자매의 기운이 워낙 닮아 눈치채기도 힘들었다.
‘본래라면 하나의 대상에 두 개의 가호가 깃들 수는 없다.’
그러나 쌍아궁은 둘이서 하나인 존재. 시스템이 잠시 충돌할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하나’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다만 은하가 두 개의 가호를 버티느냐 그러지 못하느냐, 그것이 문제일 테다.
인간의 몸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힘일 테니까.
‘웬만한 정신력과 신체로는 두 개의 가호를 온전히 버텨 내지 못할 거야.’
──즉, 은하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곡선을 그리고 있던 에단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더니, 붉은 두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멈춰.”
그건 은하가 아닌 고양이, 루시를 향해 하는 말이었다.
에단이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루시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움찔 몸을 떨며 인형과 쿠션을 꼬옥 껴안았다. 잔뜩 겁을 먹은 듯한 태도였지만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치솟은 두 눈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두 번은 경고하지 않아.”
에단이 루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만두지 않겠다면 그만두게 하면 된다. 에단의 커다란 손이 루시의 조그만 얼굴 위에 그늘을 그리는 순간이었다.
또각─
검은 구두가 눈부신 황금 빛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고, 에단의 입술이 슬쩍 벌어졌다.
“네가 멈춰.”
춤을 추듯 넘실거리는 황금 빛 사이로 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에단의 붉은 홍채가 넓게 확장되었다.
말도 안 돼. 두 개의 가호를 견뎌 냈다는 말인가?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로 넋을 놓고 있던 와중,
촤악─!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에단의 손등을 스쳤다.
은하의 양산이었다.
이후 은하를 감싸고 있던 황금 빛은 서서히 사그라들었고, 또 한 번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눈부신 빛에 가려져 있던 은하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애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마, 에단.”
마치 주변 빛을 그대로 흡수하기라도 한 듯, 은하의 두 눈이 황금 빛으로 번쩍 빛났다.
마치 은하 주변에만 바람이 부는 듯,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이 곡선을 그리며 흩날리고 있었다.
[당신에게 ‘쌍아궁(雙兒宮)’의 가호가 온전히 깃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대폭 증가합니다.]
[축하합니다! 숨겨진 권능 ‘아세팔리(Acephali)’가 해금되었습니다. 기존의 권능도 유지됩니다.]
[액티브 ▶ 머리 없는 인형(Headless Marionette) 스킬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에단의 손등 위에 그려진 붉은 선에서 새빨간 피가 또르륵 떨어졌다. 다른 쪽 손으로 제 손등을 감싼 그는 얼이 빠진 듯한 웃음을 흘렸다.
설마 두 가호를 견뎌 낼 줄이야. 은하에게 신체적 혹은 정신적 타격이 없어 보이는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꽤 까다롭게 됐네.’
‘지금의’ 은하에게 물리적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서도 저 꼬마를 처치하는 것이 말이다.
방금 전 은하가 양산으로 에단의 손등을 그었을 때, 에단은 손등이 찢어지는 찌릿한 고통을 느낀 후에야 그것을 눈치챘다.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엄청난 속도였다.
‘역시 저 꼬마부터…….’
에단이 슬쩍 뒤꿈치를 떼어 냈다. 은하는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퍼엉!
에단의 바로 옆에서 검은 불씨가 터졌다.
에단이 조금만 더 움직였더라면 꼼짝없이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반응 속도 역시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튼 생각 마.”
“서운한데. 날 숯덩이로 만들 셈이야?”
“네가 먼저 시작한 일이야.”
“그랬던가.”
에단이 한쪽 입꼬리를 슥 말아 올렸다. 웃는 얼굴과는 달리 은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사뭇 달라졌다.
은하는 지금 일종의 ‘각성 상태’였다.
아마 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고작 10분 내외일 것이다. 그 이상 유지한다면 그때는 정말 몸이 망가져 버릴 테니까.
각성 상태를 무한히 유지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은하 스스로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급한 거겠지.
따라서 두 사람의 목적은 여기서 둘로 갈라지게 된다.
‘10분간 버티는 게 좋겠어.’
‘10분 내로 승부를 낸다……!’
에단과 은하는 동시에 땅을 걷어찼다.
파앗!
‘보인다.’
은하의 눈에 깃든 황금 빛이 조금 더 밝게 빛났다. 아까는 눈으로도 좇기 힘들었던 에단의 속도를 지금은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연속으로 팝업되는 시스템창을 일일이 확인할 겨를은 없었지만, 모든 능력치가 대폭 향상되었다고 했는데 그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스킬도 생긴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에단은 가차 없이 고양이를 죽이려고 들 테니까.
슈욱, 팟─!
은하는 고양이를 향해 손을 뻗는 에단에게 양산을 크게 휘둘렀다. 그 끄트머리에 잘린 분홍색 머리카락 몇 가닥이 공중에 실처럼 흩날렸다.
그것들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은하는 양산을 다시 한번 휘둘렀다.
화르륵!
그것을 내려치기 직전, 양산의 형태를 따라 검은 불꽃이 휘감겼다.
물론 에단을 죽일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죽일 각오로 덤비지 않는다면, 고양이를 처치하려는 에단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에단은 달랐다.
에단은 굳이 은하를 죽이기는커녕 작은 상처 하나 내지 않을 생각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루시를 확실히 처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에게는 있는 것이다.
휘익!
에단은 턱을 뒤로 살짝 젖히며 또다시 은하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했다.
그 말은 현 상태의 은하와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다거나 혹은 그 이상이라는 소리였다.
쯧, 작게 혀를 찬 은하는 곧장 다시 공격을 이어 갔다. 에단에게 타격을 주겠다기보다는 고양이를 노릴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슈욱! 탓, 탓, 탓!
우연의 일치일까, 에단의 자만 때문이었을까. 그중 몇몇 공격이 에단에게 적중했다.
“굉장한데, 은하.”
조금 떨어진 곳에 탁, 하고 착지한 에단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문질렀다. 은하의 양산이 스친 그의 왼쪽 뺨에는 꽤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 상처쯤, 에단이라면 눈 깜빡할 새 치유할 수 있으리라는 걸, 은하는 알고 있었다.
은하는 루시의 상태를 힐끔 확인했다.
루시는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다.
은하는 다시 에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앞으로 5분? 아니, 3분인가?’
양산을 꾹 쥐어 잡았지만 희미하게 떨리는 손을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각성 상태에 돌입하고 전투를 한 것이 처음이라 도통 정확하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앞으로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건 5분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
‘에단은 강하다.’
은하가 여태 상대했던 그 어떤 몬스터, 헌터, 조디악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데바는, 그런 에단을 가둔 장본인이었다.
‘여기서 에단을 이기지 못한다면 데바를 이길 생각 따위 할 수도 없어.’
번쩍!
은하의 눈동자 속, 서서히 꺼져 가던 황금 빛이 다시 한번 환하게 빛났다.
“머리 조심해, 고양아.”
은하는 천장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양산을 높게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땅에 내리박았다.
콰아앙─!!
땅에 꽂힌 양산을 중심으로 굵은 금이 거미줄처럼 쩌적쩌적 번지더니 그것은 곧 순식간에 벽을 타고 천장까지 뻗어 나갔다.
‘함정?’
에단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투둑투둑…….
천장에 뾰족뾰족하게 박혀 있던 종유석들이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에단에게 그것을 피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만일 피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위라면 모를까, 이 정도 종유석에 조금 긁힌다고 해서 죽지는 않을 테다.
‘동굴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걸 우려해서 어느 정도 힘 조절을 한 모양이지만…….’
──나를 상대로 힘을 조절하는 건 오산이야, 은하.
에단의 입매가 느슨하게 풀리던 바로 그때였다.
쉬익, 파앗!
은하는 위에서 떨어지는 종유석 사이로 단숨에 에단에게 접근했다.
“읏……!”
반사적으로 상체를 꺾어 은하를 회피하려던 에단은, 그곳에 떨어지던 종유석에 어깨를 그대로 찍혀 버렸다.
저릿한 통증이 전신을 관통했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핑 돌았지만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다시 섰다. 그때는 이미 은하가 에단에게 양산을 겨눈 뒤였다.
그제야 에단은 이 종유석들이 공격을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나.’
그건 꽤 감탄할 만한 일이다.
이렇듯 불리한 싸움에서 혼란하지 않고 빠르게 주변을 파악한 뒤 계획을 세우는 사고 능력. 적절하게 지형을 이용하는 전략. 게다가…….
‘동굴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만큼 종유석을 떨어트리기 위해서는 굉장히 세밀한 힘 조절이 필요했을 텐데.’
오랫동안 이곳에 갇혀 있었던 경험이 있는 은하는, 이 동굴 내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힘을 가해야 하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찰나에 그것을 계산하여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제 어쩐담.’
에단은 자신의 턱 끝에 겨누어진 양산을 보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은하는 똑바로 에단을 응시하며 물었다.
“왜 고양이를 죽이려는 거야?”
“그게 내 복수니까.”
에단의 목소리는 여전히 여유가 섞여 있었다.
“말했잖아. 저 녀석은 나와는 달라. 여전히 조디악의 힘을 가지고 있지.”
더군다나 쌍아궁을 재우고 그 힘을 흡수할 수 있다면 에단은 지금 이상의 힘을 가질 수 있다.
그의 붉은 눈이 슬쩍 휘어졌다.
“별들을 다 집어삼켜 버릴 거야.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말이야.”
“그리고?”
“뭐?”
에단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그래서 모두 다 죽이고, 그렇게까지 해서 복수를 하고 나면 그다음은 어쩌고 싶은데?”
……다음?
에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은하는 왜 그런 것을 묻는가? 그것도 모르겠다.
에단은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삐딱하게 턱을 들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따지고 보면 너도 나와 다를 게 없을 텐데, 은하.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네게서 많은 걸 빼앗아 간 놈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싸우는 거잖아.”
“아니, 달라.”
은하는 단호하게 답했다.
“난 지키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싸우는 거야. 모든 게 끝났을 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이 싸움의 이유도 없는 거니까.”
데바를 쓰러트리고 세상에 평화가 다시 찾아와도 엄마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눈앞에서 죽어 간 다른 동료들도, 소장님도, 그리고 백이준도.
하지만 아직 은하에게는 남은 이들이 있다. 군단과 불멸, 그리고 시우와 아연, 고양이와 에단까지.
은하는 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데바를 쓰러트릴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놈을 쓰러트린다 한들, 아무 의미가 없으리라는 걸 아니까.
“네게는 그런 게 없어?”
은하가 물었다. 에단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에단이 조용히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이었다.
은하의 머리 바로 위, 실금이 번진 천장에 굵은 금이 쩌적, 번졌다.
“어, 언니─!”
고양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은하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