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어둠을 방랑하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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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어둠을 방랑하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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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어둠을 방랑하는 고양이
2023.04.07.
그러나 움막을 찾아내는 것은 맘처럼 쉽지 않았다.
벽에 표시를 새겨 둔 곳으로부터 분명 그렇게 멀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사이 바위가 무너져 내린 것인지 길이 생각보다 많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간간이 ‘붉은 눈의 흑호’가 공격해 오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은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적수가 되지 못하는 것과 상대하기 귀찮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폭발로 바위를 부수면서 이동하면 조금 더 빠를 것 같지만…….’
혹여 주변 몬스터를 자극하게 될 수도 있고, 놀란 고양이가 더욱 몸을 숨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남해안 게이트 때처럼,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구조라면?
‘섣불리 행동하다가 다른 언노운 게이트로 이동하게 될 가능성도 있어.’
애초에 은하는 ‘언노운 게이트’라는 공간 전체가 얼마나 큰지 알지 못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조건을 만족시켜 경계를 넘어 버린다면 길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되도록 조용히 이동하는 게 좋겠어.’
가볍게 양산을 털어 낸 은하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팔랑─
주머니에 챙겨 두었던 낡은 사진이 땅에 떨어졌다. 무심코 그것을 주워 들기 위해 상체를 숙인 은하는 그 상태로 살짝 굳었다.
“…….”
이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다시금 가라앉았다.
지금 이곳에 혼자 있으니 처음 언노운 게이트에 갇혔을 때가 떠올랐다.
그 당시 은하는 이준을 살릴 셈으로 혼자 남는 쪽을 택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갈 곳도 없고 가족도 잃은 자신보다는 이준이 살아남는 편이 훨씬 나을 테니까.
언노운 게이트에 동료들의 시체와 은하를 남겨 둔 채 홀로 남은 이준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30년을 버텼을까.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아마 지금의 은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죄스럽고 공허한 마음이었을 테다.
은하는 목숨을 걸어야 할 위기가 닥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나서곤 했다.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자에게 깃든 버릇 같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준과 시우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그런 은하를 저지했다.
그건 은하가 못 미덥다든지 다른 중요한 사정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녀를 잃을 것이, 그 공허함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던 거야.’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 공허함을 일찍이 경험한 은하였다. 겉으로는 혼자 희생하는 척, 모두를 구하고 숭고한 마지막을 맞이하기로 결심한 척했지만 실은 그 공허한 감정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미룬 것에 불과했다.
혼자 남는 쪽이 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더는 남겨지고 싶지 않다는 그런 마음.
이기적이었다.
그것이 너무도 이기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이준을 잃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어두운 동굴에 있다 보니 자꾸만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감상에 젖고 뒤늦은 후회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는 걸 은하는 잘 알고 있었다. 애써 감정을 추스른 그녀는 사진을 접고 주머니에 쑥 집어넣었다.
‘가자.’
은하는 언제나 그렇듯 다시 일어섰다.
팔 한쪽이 잘려 나가고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도 늘 그러했듯이.
이후 수없이 많은 통로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움막을 찾아냈다. 은하가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하여 직접 만든 바로 그 움막이 틀림없었다.
다만 그것은 은하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더 망가져 있었다.
그사이 내벽이 무너졌는지 반쯤은 바위 무더기에 깔려 있었고, 그나마 남은 반쪽은 몬스터의 짓인지 몰라도 상태가 엉망이었다. 몬스터의 가죽으로 덮어 둔 천장은 갈기갈기 찢긴 채였고 기둥 삼아 지탱해 둔 뼈는 더 이상 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바깥과 이곳은 시간의 흐름이 엉망진창이었으니까. 이곳에서의 2~3년이 바깥에서 30년이었던 것처럼, 그 반대의 흐름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할 테다.
움막만 보아서는 적어도 은하가 이곳을 나간 지 10년은 흐른 것처럼 보였다. 물론 사실이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고양이는…….’
은하는 아주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움막으로 다가섰다.
금방이라도 띠링, 하고 귓가에 알림음이 울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
움막을 응시하던 은하의 눈빛이 조금 날카로운 기색을 품었다. 기분 탓이 아니라면.
‘무언가 있다.’
저쪽에서 미약한 기척이 느껴졌다.
사람 같지는 않다. 그러나 몬스터의 기척과도 사뭇 달랐다. 왜냐하면 살기라든가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것은 차라리 경계에 가까운 기척이었다.
‘움막 속인가?’
쓰러진 움막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면 야수형 몬스터는 확실히 아닐 것이다. 그들이 숨기에는 터무니없이 좁은 공간일 테니까.
은하는 양산을 바로 쥐었다. 그리고 기척을 죽인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또각─
미처 다 죽이지 못한 구두 소리가 고요히 정적을 울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그에 반응한 걸까. 쓰러진 움막 위를 덮은 몬스터의 가죽 안쪽에서 무언가 움찔,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인기척을 느낀 ‘그것’이 도망치기도 전에, 은하는 단번에 가죽을 홱! 거두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에 고양이처럼 끝이 살짝 올라간 눈매. 조금은 해져 보이는 까만 드레스. 구석에 자신을 구겨 넣을 기세로 몸을 잔뜩 말고는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그 아이는──.
“……고양이?”
은하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소녀가 눈에 띄게 흠칫 어깨를 떨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소녀가 바로 은하가 찾던 ‘어둠을 방랑하는 고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비단 저 소녀가 은하가 만났던 쌍아궁 루나와 꼭 닮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확신이 들었다.
“고양아.”
은하는 소녀를 불러 보았다. 소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은하를 올려다보았다.
“어, 언니…….”
언니. 분명 언니라고 했다. 역시 이 소녀는 고양이가 틀림없었다.
어째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보다도 저곳에서 고양이를 빼내는 것이 우선이겠지.
“데리러 왔어. 이리 나와.”
은하는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시, 싫어!”
고양이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치더니 은하의 손을 탁 하니 쳐 냈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 고양이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은하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은하는 고양이에게 내쳐진 제 손을 다시 거두지도 뻗지도 못했다.
이건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고양이를 찾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을 뿐, 고양이가 저를 거부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사실 고양이는 지금껏 은하에게 이렇듯 강한 거부의 의사를 비친 적이 없었다. 모습뿐만이 아니라 태도까지 변한 것에는 이유가 있는 걸까.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은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괜찮아, 내 옆은 안전해.”
“시, 싫어……!”
“다 알고 왔어. 네가 쌍아궁이라는 것도, 무엇 때문에 언노운 게이트를 떠돌게 되었는지도.”
“…….”
“그래도 괜찮아. 전부 다. 그러니까 이리 와.”
은하는 또다시 손을 내밀었다. 황금빛을 머금은 동그란 홍채가 슬그머니 이쪽을 향했다. 은하는 그제야 그곳에 주렁주렁 매달린 눈물 구슬을 발견했다.
‘울고 있어?’
또 한 번의 당황을 미처 갈무리할 사이도 없이 고양이가 입을 열었다.
“언니는 죽은 거지?”
“…….”
은하의 말문이 막혔다. 지금 고양이가 말하는 ‘언니’가 자신이 아닌 루나를 가리킨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고양이는 은하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나 때문이야.”
“고양아.”
“난 안 갈래.”
“……뭐?”
“여기 있을래. 내가 가면 전부 불행해지니까. 나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발목만 잡을 테니까. 아무 데도 안 가고 여기 있는 게 나아.”
아직 젖살이 다 빠지지 않은 통통한 뺨 위로 짙은 슬픔을 머금은 구슬이 주르륵 길게 떨어져 내렸다.
“알고 있어. 모두 나 때문이라는 거.”
몸을 동그랗게 쪼그린 아이는 양팔로 꼭 끌어안은 무릎에 울음을 파묻었다.
“나는 아무 쓸모도 없어.”
가느다란 어깨가 떨리면서 새까만 머리카락이 마치 암막 커튼처럼 아이의 얼굴을 가렸다.
은하는 이준을 잃은 뒤 자신의 모습을 그곳에 투영했다.
유일한 존재의 상실.
그것이 얼마나 큰 공허를 가지고 오는지, 얼마나 자신을 몰아세우게 되는지 은하는 알고 있었다. 그럴 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말이다.
‘내가 돕겠습니다.’
누군가가 내밀어 준 따듯한 손, 그리고─.
‘무너질 것 같을 때나 괴로울 때, 그런 기억들이 힘이 되곤 했거든.’
아득한 만큼 찬란한 기억들.
지금도 은하의 주머니 속에는 그 기억이 고이 접혀 있었다. 빛이 바랬다 한들, 찢기고 낡았다 한들 그 소중함에는 변함이 없다.
은하는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고양이를 향해서가 아닌 허공을 향해서였다.
톡, 작게 허공을 두드리자 인벤토리창이 열렸다. 은하는 그중 지금 가장 필요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몬스터의 가죽도, 꽤 가치 있어 보이는 장비 아이템도, 소모용 포션도 아니었다.
은하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물건을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이거.”
그러자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고양이가 스르륵 고개를 들었다. 이어서 황금색 눈동자가 서서히 확장되는 것이 보였다.
[아이템 상세 ▶ ‘낡은 고양이 인형’ │ 일반 아이템 │ 희귀도 : 잡동사니 │ 사이좋은 쌍둥이 자매가 가장 처음으로 만든 인형. 너무 낡아 먼지 냄새가 난다. 특별한 쓰임새는 없어 보인다.]
까만 고양이 외형의 봉제 인형은 박음질마저 엉성한 데다 한쪽 단추가 떨어져 외눈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인형의 가치를 결코 떨어트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있던 고양이가 서서히 손을 뻗었다. 낡은 인형을 품에 안는 순간 보이지 않는 벽이 와장창 깨지기라도 한듯 고양이의 표정이 무너졌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이나 슬픔 따위가 아니었다.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은하는 이어서 또 하나의 물건을 내밀었다. ‘캣닢을 솔솔 뿌린 고등어 쿠션’. 언젠가 고양이에게 받았던 아이템이었다.
“이게 있으면 불안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
왼손으로 낡은 인형을 꼭 껴안고 있던 고양이는 오른손을 들어 고등어 쿠션을 향해 천천히 뻗었다.
마침내 작고 통통한 손이 쿠션에 닿았을 때.
콰아앙─!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며 움막 뒤쪽의 동굴 내벽이 파괴되었다.
힘을 뺀 채 앉아 있던 고양이 위로 바위가 떨어지기 직전, 은하는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고양이를 품에 안아 감쌌다.
‘대체 무슨─.’
자욱하게 일어나는 흙먼지 속에서 은하가 고개를 들었다. 몬스터의 습격인가?
은하가 고양이를 등 뒤에 숨긴 채 양산을 쥐는 순간,
“뭐야, 여기 있었네.”
흙먼지 사이로 붉은 두 눈이 드러났다. 크게 뜨였던 은하의 눈이 이내 매섭게 날을 세웠다.
“……에단, 이게 무슨 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