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215)화 (215/306)


#215. 각오
2023.03.03.


의혁은 제휘를 가장 넓은 응접실로 데리고 갔다. 그는 망치 길드에서도 레드 등급, 실력이 입증된 제작 헌터만을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음……. 이건 조금 힘들겠는데요.”

드레스를 살피던 제작 헌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작 헌터 20년 경력 동안 이런 원단은 처음 보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식으로 수리를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군요.”

양산을 살펴보던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보통 아이템은 아닌 것 같은데. 보아하니 손잡이랑 끄트머리 부분은 오리하르콘(Orichalcum)으로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제 실력으로 이걸 완벽히 복구할 자신은 없네요.”

이후 의혁은 몇 번이고 다른 제작 헌터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자신 있게 맡겨 달라 말하는 자가 없었다.

‘이 드레스랑 양산, 그렇게 고치기 힘든 건가?’

제휘는 자신이 품에 소중히 안은 양산과 드레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헌터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것을 보아 보통 아이템은 아닌 것 같았지만, 망치 길드의 유명 제작 헌터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제휘의 상상 이상으로 진귀한 아이템일지도 몰랐다.

‘만일 고치지 못한다면 어쩌지.’

헌터님께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는데. 제작 헌터가 응접실을 방문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제휘의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번져 갔다.

“미안하게 됐군.”

그것은 의혁도 마찬가지였다.

고치고 싶은 물건이 무엇이 됐든 가지고만 오라고 했던 건 의혁 쪽이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수리가 힘든 아이템일 줄이야.

의자에 등을 기댄 의혁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흑염의 프린세스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헌터였다. 그런 그녀를 VIP 손님으로 잡아 두는 것은 길드 차원에서도 이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국내를 넘어 국외까지도 엄청난 홍보 효과가 될 테니까.

하지만 안 되는 것을 억지로 고쳐 낼 수도 없는 노릇.

“혹시 이후에라도 수리 가능성이 생기면 이쪽에서 연락 주도록 하지.”

의혁은 아쉬운 마음을 감춘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자, 잠깐만요!”

꾸욱─

제휘는 일어나려던 의혁의 옷소매를 잡았다.

“다른 제작 헌터들도 불러와 주실 수는 없습니까?”

“방금 녀석이 사실상 마지막 레드 등급 제작 헌터였는데.”

“레드 등급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길드에 손이 빈 다른 제작 헌터들도 있지 않습니까?”

제휘의 말이 옳았다. 망치 길드는 실력만큼 규모도 큰 것으로 유명했다. 지금까지 응접실을 방문한 제작 헌터는 여섯 명. 그 외에도 제작 헌터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의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는 일이야. 레드 등급이 고치지 못하는 아이템을 옐로우나 오렌지 놈들이 수리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제휘가 목소리에 간절함을 담아 부탁했다.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 드레스와 양산을 꼭 고쳐야만 해요.”

의혁의 옷깃을 붙잡고 있는 제휘의 손에 꾹 힘이 들어갔다.

‘그런 얼굴 마시고 편히 다녀오십시오, 헌터님. 돌아오실 때쯤에는 드레스와 양산을 멀쩡하게 복원해 두겠습니다!’

……그렇게 큰소리를 쳐 놨는데.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은하에게 혼날 일을 염려하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가 아는 은하라면, 드레스와 양산을 고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수고했다고 말해 줄지언정 결코 면박을 주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제휘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매니저의 관할에서 조금 벗어난 일이라는 것을.

헌터 매니저의 일이란 어디까지나 담당하는 헌터의 일정을 관리하고 보조하는 일.

드레스와 양산을 가지고 망치 길드를 방문했지만 수리가 불가능했다. 그냥 그렇게만 보고하면 제휘가 매니저로서 해야 할 일은 끝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알겠지만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야.”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한 번씩이라도 좋으니 다른 제작 헌터들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휘의 의지였다.

걱정 말고 다녀오시라며 자신 있게 내뱉은 말에 ‘노력했는데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같잖은 변명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헌터님께서 내게도 의지하실 수 있도록, 단순한 매니저를 넘어 ‘동료’라고 여기실 수 있도록. 헌터님 곁을 지키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그런 내가 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 자존심 따위의 구구절절한 이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

선글라스 너머 의혁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제휘는 그의 팔을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의혁이 알겠다고 할 때까지 부탁할 생각인 듯했다. 그 정도로 제휘의 눈빛에서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결국 의혁은 한숨과 함께 제휘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알았어. 알겠으니까 이것 좀 놓지 그래.”

“……!”

제휘가 반색하며 손을 놓았다.

그러나 쓸데없는 희망을 불어넣을 수는 없다. 의혁은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레드 등급이 고치지 못하는 아이템을 그 밑 등급 놈들이 수리할 가능성은 없어. 이건 내가 장담하지. 등급이란 것이 원래 그런 거야.”

“그럼…….”

제휘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만일 그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방금 전까지 달랑달랑 흔들리던 꼬리가 졸지에 추욱 늘어졌을 것이다.

그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던 의혁은 문을 향해 뒤돌았다.

“……마지막 레드 등급 제작 헌터를 만나러 가지.”

만나러 가겠다고? 길드장과 손님이 직접 말인가? 지금까지는 제작 헌터가 직접 응접실을 방문했는데.

아니, 그것보다─.

“예? 하지만 방금 전 제작 헌터가 마지막 레드 등급이었다고…….”

“그래. ‘사실상’ 그렇지.”

달칵.

의혁은 문고리를 돌렸다.

“너무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손님.”

그 말뜻에 대해서는 곧 알게 되었다.

의혁은 제휘를 데리고 5층 가장 구석 작업실로 향했다. 햇볕도 들지 않는 데다가 엘리베이터, 비상계단과도 가장 멀리 떨어진 곳. 그곳에 그가 말한 ‘마지막 레드 등급 제작 헌터’의 작업실이 있었다.

‘윽, 무슨 냄새야…….’

작업실이 가까워질수록 제휘의 코끝이 씰룩씰룩 움직였다. 매캐한 담배 냄새와 알싸한 알코올 냄새 위에 작업실 특유의 기름 냄새까지 뒤섞여 견디기가 힘들었다.

만일 코가 좋은 시우였다면 근처까지도 가지 못했을 수준이었다.

의혁은 노크도 없이 작업실 문을 열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더욱 역해져서, 제휘는 슬그머니 코를 막았다.

빈 술병이 데굴데굴 나뒹구는 바닥. 그는 적당히 발로 그것들을 치워 가며 작업실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작업실 맞아?’

제휘는 눈을 의심했다. 곳곳에 작업대라든가 더러운 앞치마, 망치나 니퍼 따위의 도구가 널브러져 있긴 했지만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듯 모두 먼지가 수북하게 앉아 있었다.

그것뿐인가, 불도 켜 놓지 않은 탓에 까딱하면 바닥에 뒹구는 술병을 잘못 밟고 넘어질 것 같았다.

“뭐야.”

어디선가 잔뜩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벽면에 위치한 아궁이, 그 앞에 놓인 지저분한 소파 위에서 흐느적흐느적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후욱─

여성의 걸쭉한 목소리와 함께 담배 연기가 허공을 향해 하얗게 피어오른다. 제휘는 또르륵 시선을 옮겼다.

“무슨 일인데? 노크도 없이.”

3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쭉 찢어진 눈에 퀭한 눈, 걸걸한 목소리, 게다가 온몸에 찌든 알코올과 담배 냄새까지.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거친 인상을 가진 여자였다.

“손님이다.”

의혁은 그녀를 향해 짧게 말했다.

“손님?”

그러자 여자의 샛노란 눈동자가 휙, 제휘를 향했다. 기분 탓일까. 의혁과 이목구비가 묘하게 닮은 것 같기도 했다.

후욱─

다시 한번 길게 담배 연기를 뿜은 그녀가 소파에서 일어나 저벅저벅 제휘에게 다가왔다.

“이 형씨가?”

제휘보다 조금 더 큰 키의 그녀는 민소매 차림이었다. 까맣게 그을린 어깨와 탄탄한 근육이 붙은 팔뚝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탈색이라도 한 듯 푸석푸석하고 밝은 금발을 질끈 묶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머리끈이 아니라 주변에 굴러다니던 케이블 타이를 주워 묶은 듯했다.

그녀는 살짝 시선을 내리깔아 제휘를 삐딱하니 응시했다. 뭔가 상대로 하여금 주눅이 들게 할 정도로 뾰족한 시선이었다. 제휘는 애써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그러자 가만히 제휘를 응시하던 여자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인사를 받아 주지는 않고 작업실 벽에 꽁초를 대충 지져 담뱃불을 끈 그녀는 휙, 허공으로 꽁초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흑염의 프린세스의 매니저야. 드레스와 양산을 고치러 왔어.”

“그래서?”

“문명진이랑 권은비에게도 보여 줬는데 둘 다 고치지 못하겠다더군.”

“그래서?”

“……네가 한번 봐 줬으면 하는데.”

의혁이 억눌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종일관 삐딱한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을 꾹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나아지지 않았다.

뒷주머니를 뒤적여 새로운 담배를 꺼내 든 그녀가 물었다.

“내가 왜?”

“너라면 고칠 수 있잖아, 표그루.”

“…….”

그루라고 불린 여자는 말없이 라이터를 켰다. 고요한 정적 위로 치지직, 담뱃잎이 타는 소리가 울렸다.

“싫은데?”

“표그루.”

“나 망치 안 든다고 했어. 오빠도 알잖아. 지금까지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서 갑자기 왜 지랄이야? 흑염의 프린세스고 나발이고 난 모르는 일이야.”

후욱.

담배 연기를 내뿜은 그녀가 뚜벅뚜벅 걸어와 두 사람을 지나치더니 작업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꺼져.”

순식간에 공기가 차게 식었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혁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선글라스 너머로 한참 그루를 노려보던 의혁은 이내 푹 한숨을 쉬며 제휘를 돌아보았다.

“……들었지, 손님? 이제 망치에 그걸 고칠 수 있는 제작 헌터는 없어. 그만 나가지.”

“아…….”

그들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제휘가 힐끔 그루를 살폈다.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다시 소파로 돌아간 그녀는 곁에 놓여 있던 술병을 들어 나발을 불고 있었다.

제휘는 결심한 듯한 얼굴로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 잠깐─.”

뒤에서 의혁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제휘는 그루 앞에 척! 하니 섰다.

술병에 입을 갖다 댄 채, 그루는 시선만을 들어 아직도 볼일이 남았냐는 듯 삐딱하니 제휘를 올려다보았다.

태도도 불량하고 작업실 상태로 보아서는 망치를 들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은 대충 사실인 것 같았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극심한 슬럼프를 앓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의혁은 말했다.

‘너라면 고칠 수 있잖아, 표그루.’

망설임 없는 목소리로.

즉 눈앞의 이 표그루라는 여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망치 길드 내 최고 실력을 가진 레드 등급 제작 헌터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제휘가 할 일은 정해졌다.

툭.

제휘는 무릎을 꿇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니까.’

권력도, 고유 능력도 가지지 못한 일반인. 제휘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드레스와 양산을 고쳐 주세요.”

그루가 기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뭐 하자는 거냐, 마치 그렇게 묻고 있는 듯했다.

“제가 모시고 있는 헌터님에게는 이 드레스와 양산이 꼭 필요합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돈?”

푸핫, 그루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봐, 미안한데 난 돈 같은 건 필요 없어.”

“드레스와 양산을 고쳐 주신다면 능력이 닿는 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가져오겠습니다.”

“무엇이든?”

그루의 눈이 가늘어졌다. 술을 마시고 있던 그녀의 입술이 빙그레 호선을 그렸다.

관심 없는 듯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그녀가 스르륵 상체를 일으켜 제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제휘는 무릎을 꿇은 그대로 그루의 시선을 결코 피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제휘를 빤히 응시하던 그루가 다시 한번 술병을 들어 꿀꺽꿀꺽 그것을 삼켰다. 그리고 비어 버린 술병을─

챙그랑!

벽에 내리쳐 깨 버렸다.

깨진 술병은 아궁이의 불빛을 받아 마치 흉기의 날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그루는 그것을 제휘에게 내밀었다.

“그럼 팔 한쪽이라도 내놓든가.”

“표그루!”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의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루는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제휘를 향해 물었다.

“보아하니 꽤 절박해 보이는데,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어?”

“…….”

제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린 그의 두 주먹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것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나 보네.”

그루가 피식 웃었다. 제휘에게 내밀었던 깨진 술병을 그대로 거두어 버리려던 순간,

덥석─

제휘가 그것을 잡아챘다. 그루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시체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보였다.

깨진 술병을 쥐고 있는 손 위로 제휘의 손이 겹쳐져 있었다. 그 손이 어찌나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는지, 소파에 앉은 그루에게마저 진동이 옮을 지경이었다.

“놔.”

한 마디 툭 내 뱉은 그루가 힘을 주어 그에게서 술병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휘는 더욱 단단히 술병을 움켜쥐었다.

심각한 얼굴로 술병을 응시하고 있던 제휘가 결심한 듯 홱 시선을 들었다.

“……마취는 해 주십니까?”

“뭐?”

그루가 멈칫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깜빡이던 그녀가 이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요것 봐라?’

그녀의 눈동자가 재미있다는 듯 휘었다.

* * *

아르헨티나 산타크루즈 주.

이름 없는 작은 숲 근처에는 어느 재력가의 별장으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건물 바깥에 위치한 고즈넉한 언덕에는 미리 준비된 티테이블과 12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곳이 바로, 이번 헤드 헌터 회담이 열리는 곳이었다.

헤드 헌터들이 모이는 장소는 매번 달라지는데,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경우에는 이렇듯 각국 매스컴의 시선을 피해 비밀스러운 장소를 선별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흑염의 프린세스는 아직인가?”

나무 테이블 위로 하릴없이 주사위를 던지던 사내, 글로벌 랭킹 6위 니키타가 입을 열었다.

“늦잠을 잤을 수도. 랭킹 1위에게도 시차 적응이 필요하겠지.”

얼굴 왼쪽 전체를 기이한 문양이 덮은 남자, 이탈리아 출신의 뮤턴트가 대꾸했다.

“다들 성미가 급하시군요. 아직 회담이 시작하기까지 10분이나 남았어요.”

랭킹 9위 판도라였다. 그녀는 늘 손에 쥐고 있는 공작 깃털 부채를 살랑이며 웃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지……. 기대가 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 보죠.”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왔군.”

랭킹 2위, 엘리멘탈 마스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의자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던 나머지 9인의 헌터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저벅─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방향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언덕을 올라오는 두 개의 인영.

백랑과 흑염의 프린세스의 도착.

비로소 12인의 헤드 헌터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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