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 흑염의 프린세스 (210)화
(210/306)
Lv.99 흑염의 프린세스 (2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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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아무래도 좋아
2023.02.26.
타닷─
텅 빈 복도 위로 다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이어졌다. 발소리의 주인공은 한국의 몇 남지 않은 S급 헌터 중 하나, 괴도 강아연이었다.
[도성윤] [오전 10:03] 소식 들었어? 오늘 새벽에 은평구 쪽에 검은 균열 나타난 거.
[도성윤] [오전 10:03] 혹시 괜찮으면 조사 나가 줄 수 있을까. 길드에 남는 손이 없어서. 부탁 좀 하자.
오늘 오전 불멸 길드의 현 마스터 도성윤에게 도착한 메시지였다. 어제 늦게까지 모바일 게임을 하다 잠든 아연은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그 메시지를 확인했다.
[나] [오후 2:20] ㅇㅇ? 이제 봄
[나] [오후 2:21] 검은 균열?? 협회에서 말하던 요즘 자주 나타난다는 그건가??
검은 균열. 최근 일주일 동안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자주 발생하고 있는 이상 현상이었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고, 시민들의 동요를 우려하여 협회와 정부에서는 고랭크 헌터들이나 길드에 의뢰하여 은밀하게 조사를 이어 가는 중이었다.
[나] [오후 2:21] 거기 아직 게이트인지 다른 오류 현상인지 밝혀진 것도 없자너ㅠㅠ 요니 무셔버ㅠㅠ 안갈랭
[나] [오후 2:21] 근데 얼마줄건데ㅠ?
졸린 눈을 끔뻑이며 메시지를 보내자 몇 분 뒤 성윤에게서 답장이 돌아왔다.
[도성윤] [오후 2:29] 일단 대답이 없어서 허재민이 가 보기로 했어.
그것이 약 3시간 전의 일이었다.
이후 성윤은커녕 균열 조사를 나간 재민조차 연락이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냐, 괜찮겠지.
그렇게 소파 위를 뒹굴며 초조하게 휴대전화만 뚫어져라 살피던 아연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불멸 길드 본부로 찾아온 것이었다.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을 활짝 열어젖힌 아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재민 오빠는?”
그러자 소파에 걸터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남자, 불멸 길드의 부마스터 허재민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깜짝이야! 야, 꼬맹아, 내가 들어올 때 노크하라고 했지?”
술 다 엎을 뻔했네. 쏟아질 듯 찰랑이는 술잔에 입을 가져간 재민이 후루룩 소리를 냈다.
굳어 있던 아연의 얼굴이 일순 펴졌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재민의 반대편에 앉았다.
“보자마자 잔소리부터 해 대는 걸 보니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네. 아까워라.”
“어쭈, 걱정돼서 여기까지 눈썹 휘날리게 뛰어온 주제에.”
“걱정은 개뿔. 육개장 먹을 생각에 신나서 뛰어온 거지.”
“말하는 본새하고는. 언제 철들래?”
재민의 말에 아연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테이블 위 마른안주를 집어 먹었다. 우적우적 오징어를 씹어 삼킨 아연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툭 던지듯 물었다.
“……진짜 안 다쳤지?”
그러자 재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래, 이 아가씨야. 다칠 일도 없었어. 그냥 새까만 균열이었거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몬스터 기운도 없어.”
“그래? 최근에 서울 곳곳에 나타난 싱크홀 때문에 난린데 협회 아저씨가 그 균열이랑 싱크홀이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어때? 그렇지도 않았어?”
“어, 아직은 잘 모르겠네. 개인적으로는 싱크홀이랑 검은 균열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내 생각에는 그냥 이번에 흑프…… 아니, 백랑이 탑을 닫으면서 일어난 일시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세한 건 조금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그리 덧붙인 재민이 다시금 술잔을 기울였다.
“너 흑프랑 친하잖아. 그 사람한테 한번 물어봐. 그녀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지금 언니는 격리 기간이라서 아마 검은 균열에 대한 이야기는 전달받지 못했을 거야. 전달받았다고 해도 며칠 동안은 정식 활동이 불가능하고.”
격리 기간 동안 정밀 검진 결과에 문제가 없다면 쇼핑이나 여가 활동 등의 일상생활은 가능했으나 게이트 토벌이나 전투 따위의 공식적인 헌터 활동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아직 검은 균열에 대한 위험성이 확실시되지 않았으니, 협회 차원에서도 흑염의 프린세스 정도 되는 고급 인력을 처음부터 꺼내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쌓여 있는 인터뷰 일정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당장 TV만 켜도 흑프의 활약에 대해 찬양하고 있는 채널이 상당수였다. 게다가 인천 공항을 통해 하루가 멀다 하고 입국하고 있는 외신들.
이때다 싶어 ‘바로 그 흑프가 한국인이다!’ 하고 눈도장을 찍고 싶을 것이 틀림없었다. 협회든 정부든 윗대가리 놈들은 국민의 안전만큼이나 보여지는 것 역시 중요시하니까 말이다.
아연은 휴대전화 액정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배경 화면은 은하와 함께 찍은 셀카. 착신 메시지는 없다.
말 나온 김에 조만간 언니한테 전화나 해 볼까?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잘근잘근 오징어를 씹던 아연이 결심한 듯 숫자 다이얼을 눌렀다.
* * *
부르르…….
짐 보관소 위 놓인 은하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액정 위로 ‘요니♥’라는 문자가 떠오른다.
그러나 정작 휴대전화의 주인인 은하는,
“어서오세요, 환영합니다아, 반갑습니다아! 저희 네버랜드 친구 여러분들, 귀중품은 짐 보관소에 따로 보관하셨지요?”
네버랜드의 명물 어트랙션 중 하나 플룸 라이드(Flume ride)에 막 탑승한 차였다.
“자리에 탑승하신 친구 여러분들은 은색 안전문을 꽉 닫고 대기해 주세요~ 꽈악 닫으셨지요? 대기 시간 2분 후에 출발할게요오!”
귀여운 모자를 쓴 플룸 라이드 담당 캐스트가 탑승 안내 멘트를 좔좔 외우는 동안, 배 모형 의자에 올라탄 은하 일행은 안전 바를 내리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네. 대기 줄을 봤을 땐 한 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은하가 주변을 힐끔힐끔 살폈다. 배 위가 텅텅 비어 있었다.
“생각보다 플룸 라이드가 인기가 없나 봐.”
은하 왼쪽에 앉은 이준이 장갑을 끼며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말했다.
“백이준, 혹시 너…….”
은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준은 빙긋 웃으며 안전 바를 잡았다.
“응?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그가 대기 줄에 서 있던 사람들, 그리고 플룸 라이드를 타러 오는 사람들에게 미약한 페로몬을 뿌려 다른 곳으로 가게 했던 것이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었던 은하는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한편 은하의 오른쪽에 앉은 시우는…….
[12신수 ‘깊은 밤을 수호하는 개’가 얼굴이 새하얗다며 괜찮냐고 묻습니다.]
“……욱.”
배 모형 의자 아래로 슬쩍 비치는 구정물을 보며 헛구역질을 삼키고 있었다.
지금도 불쾌한 물비린내를 견디기 힘든데, 어트랙션이 출발하면 어떨까? 더러운 불순물이 가득 섞인 저 물이 온 사방에 튀겠지.
아찔하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핼쑥한 얼굴로 슬쩍 은하를 바라보았다. 은색 안전 바를 두 손으로 꼭 쥔 은하는 얼핏 보아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새까만 눈이 미약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눈이 마주치자 은하가 물었다. 시우의 얼굴색이 파리한 것을 눈치챈 것이다.
“부상 때문에 그래?”
은하는 시우의 복부를 힐긋 확인했다. 그렇지 않아도 시우의 부상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녀였다. 시우는 은하가 괜한 오해를 하길 원하지 않았다.
“아뇨, 괜찮습니다. 놀이기구를 타는 게 오랜만이라 조금 긴장했습니다.”
시우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구정물? 부상? 그런 걸 신경 쓸 것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지금 놀이기구에서 내린다면 선배는 마에스트로와 단둘이서 플룸 라이드를 즐기게 될 것이다.
‘안 돼.’
그래, 절대로 안 된다.
으득. 시우가 쥐고 있는 안전 바가 발에 밟힌 콜라 캔처럼 찌그러졌다.
그러나 사실 출발을 앞에 두고 초조한 것은 비단 시우뿐만이 아니었다.
“…….”
이준은 말없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30년 이상 갈고닦은 포커페이스 덕분에 다행히 은하에게는 들키지 않은 것 같았지만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20초 후 출발하겠습니다아!”
발랄한 캐스트의 목소리에 장갑 안쪽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의 이준은 이런 자극적인 놀이기구는커녕 벌레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순박하고 심약한 청년이었다. 이준은 그때의 자신이 싫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은하에게 보이는 것은 더 싫었다.
30년이 지나 이제 겨우 변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게 되었는데……. 막상 놀이기구에 타고 나니 긴장으로 온몸이 굳어 버리고 입매에 경련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반짝반짝 동화의 나라~ 신나는 플룸 라이드의 세계로, 출발 준비 완료! 사랑을 가득 담아서 쏴아아~ 원 투 쓰리, 출바알!”
콧소리가 가득한 캐스트의 목소리와 함께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50초 후, 시우는 자신의 무모한 선택에 대해 깊이 후회하게 되었다. 배가 가장 고점에 다다랐을 때였다.
배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면서 어디선가 찰칵! 하고 카메라 셔터음이 들리더니,
“……!”
촤아아아악─!
진한 녹색을 띤 구정물이 온 사방으로 흐드러지게 튀었다.
“반짝반짝 동화의 나라~ 신나는 플룸 라이드의 세계는 어떠셨나요? 나가시는 문은 왼쪽입니다! 네버랜드 친구 여러분, 또 만나요, 안녀엉!”
이후 세 사람은 플룸 라이드에서 퇴장했다.
인생 첫 플룸 라이드 탑승에 꽤 만족스러웠던 모양인지, 은하의 얼굴이 입장할 때보다 조금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약간이지만 말이다.
“꽤 괜찮았네.”
이준은 이마를 타고 흐르는 물을 닦으며 빙긋 웃었다. 저것이 플룸 라이드를 타면서 튄 물인지 식은땀인지는 본인도 몰랐다. 안색이 좀 창백해진 것 같기도 했다.
“…….”
뒤이어 시우가 나왔다. 묵묵히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더니 주변 쓰레기통에 그것을 휙 버리고 또 다른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표정이나 행동이 굉장히 침착해 보였지만, 그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는 당장이라도 주변을 알래스카로 만들어 버릴 듯 냉랭했다.
“네버랜드 친구 여러분, 추억을 파는 가게입니다아! 이곳에서 사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쪽으로 렛츠 고!”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은하가 고개를 돌렸다.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 그를 통해 방금 플룸 라이드에 탑승했던 승객들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은하 일행의 사진은 맨 위쪽에 있었다.
사진 속 은하는 무심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이준의 눈은 질끈 감겨 있었다. 그리고 시우는…… 주변에 튀는 물방울을 찢어 죽일 듯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각기 다른 얼굴로 사진에 찍힌 세 사람.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은하의 눈이 조용히 접혔다.
그런 은하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이준이 무언가 생각난 듯 휙 등을 돌렸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그가 근처 ‘추억을 파는 가게’로 향하고 몇 초 뒤.
“꺄아아아!”
플룸 라이드 승객의 즐거운 비명이 들리며, 트랙을 따라 배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촤아아아악─!
조금 떨어진 곳, 플룸 라이드 대기 줄 위로 엄청난 물벼락이 내리쳤다. 열차가 하강하는 부분과 가까웠던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쪽을 바라보고 있던 시우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일시적인 워터파크 개장에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은 덩달아 비명을 지르며 까르륵 웃었고, 어린아이들은 물방울을 잡겠다며 손을 높이 들어 보였다.
열차는 계속해서 달리고, 이 바로 앞에도 하강 지점이 있었다. 은하 일행이 서 있던 이곳까지 물보라가 닿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심지어 은하와 이준이 서 있는 곳은 물벼락을 피할 만한 장치도 없었다.
‘위험해.’
시우의 얼굴이 굳는 순간,
쏴아아아아─
뒤늦게 떨어지는 2차 물벼락.
사진을 구매하고 돌아온 이준이 한 박자 늦게 코트 자락을 들어 은하를 가리려고 했는데.
“……?”
채애앵─!!
이곳을 무섭게 덮치려고 했던 물벼락이 그대로 꽁꽁 얼어 버렸다. 갑작스러운 얼음 등장에 사람들이 “뭐야, 무슨 일이야?” 하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얼음의 근원지에 대해 아는 자는 은하와 이준뿐이었다. 두 사람은 휙 시우를 돌아보았다.
“괜찮으세요, 선배?”
시우는 늑대 탈을 깊이 눌러쓰며 은하의 안위를 확인했다. 그가 얼음으로 물벼락을 얼려 버린 덕분에 물 한 방울 맞지 않은 은하였지만…….
“헐! 얼음! 뭐야, 쇼인가?”
“설마 백랑 아니야?”
“어디? 어디?”
눈치 빠른 사람들이 마구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친구들~ 바닥이 미끄럽습니다! 조심하세요!”
“잠시 지나가겠습니다아!”
덩달아 갑작스럽게 얼음이 등장한 탓에 어트랙션을 작동하고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던 다른 캐스트까지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이준의 말에는 은하와 시우 역시 동감했다.
타다닷……!
세 사람은 신호도 없이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 뒤에서 “어?!”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그들은 플룸 라이드와 회전목마, 바이킹, 그리고 커다란 인조 폭포를 지나서야 뛰는 것을 멈추었다.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시우가 쓰고 있던 늑대 탈이 비뚤어지고, 은하와 이준의 머리 위에 달려 있던 왕관 핀도 떨어질 듯 흘러내려 있었다.
이준은 왕관 핀을 바로잡지도 않고 시우를 찌릿 노려보았다.
“왜 그런 짓을 했지?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는 게 좋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선배에게 지저분하고 불결한 물이 튀는데 그냥 보고 있으라는 소린가?”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글쎄, 당신은 선배가 눈앞에서 위기에 처해 있어도 그딴 걸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을 겨를이 있나 본데 나는 아니야.”
“뭐?”
파지직…….
두 남자 사이에 살벌한 스파크가 튀겼다. 무표정으로 시우를 응시하던 이준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너를 여기에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데리고 와? 누가 누구를 말이지?”
그런 이준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우가 비릿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순간이었다.
“풋.”
작은 웃음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은하였다. 멈칫 말싸움을 중지한 이준과 시우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하의 손에는 물벼락이 떨어지기 직전 이준이 구매하고 돌아온 세 사람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신시우, 너, 표정이 왜 이래.”
웃음을 억누른 목소리로, 은하가 사진을 시우 앞에 내밀었다.
“……네?”
“표정 말이야. 왜 이렇게 화가 났냐고.”
은하는 그 사진을 손에 쥐고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 웃었다. 시우는 멀거니 제자리에 선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깜빡였다. 이준도 마찬가지였다.
“백이준, 너는 여전히 겁이 많구나.”
하나도 안 변했네. 은하는 손을 들어 눈가에 고인 눈물을 살짝 닦아 냈다. 그래도 아직 우스운지, 사진에 시선을 고정한 채 피식피식 계속해서 웃음을 흘려 대다가, 겨우 진정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던 이준과 시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우는 물론 이준조차 처음 보는, 즐거운 얼굴.
“선배는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아무 데나. 은하 네가 원하는 곳으로.”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