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 흑염의 프린세스 (207)화
(207/306)
Lv.99 흑염의 프린세스 (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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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전달하지 못하는 마음
2023.02.23.
“도련님, 마스터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웃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때가 되었구나,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늑대의 차기 주인. 워낙 어렸을 적부터 들어 왔던 이야기였다.
선배를 잃은 후 시우 역시 힘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녀를 되찾기 위해, 다시는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힘이 필요했고 ‘늑대의 주인’보다 적합한 자리는 없었다.
다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신기하기는 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던 왕좌는 시우에게 지독한 족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늘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었던 자신이, 막상 때가 되니 스스로 왕좌에 앉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 사뭇 놀라웠다.
그 선택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선배, 차은하의 존재였다.
그러나 막상 시우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그녀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토록 두려워했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또 그 이후에는 다시 원하게 되었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허무했다.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산의 정상에 도달했더니 이제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마치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다.
여기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이 변할 줄 알았는데, 사실상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비로소 시우는 깨달았다.
은하를 만난 이후, 자신은 그녀를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도피를 멈춘 이유도, 다시 늑대의 우리로 돌아온 이유도, 이곳에 앉은 이유도, 힘을 키운 이유도, 모조리 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그에게 나아가야 할 이정표가 되었고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오히려 산의 정상에서 가만히 멈춰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그녀의 걸음걸이를 닮을 수 있게, 그녀에게 가까워질 수 있게, 그렇게 흉내라도 내 봐야지.
시우는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녀가 돌아오면 그때는,
그때는 꼭…….
* * *
잠들어 있던 시우가 부스스 눈을 떴다.
하얀 커튼 사이로 미끄러진 햇살이 눈부셨다. 이 병실의 침대는 유독 햇볕이 잘 드는 탓에 이렇듯 잠에서 깨면 늘 눈가가 저리고 목이 탔다.
시우는 초점이 흐린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옆으로 손을 뻗었다. 간호사가 두고 간 물병이 분명 그곳에…….
툭.
“……?”
손끝에 무언가 닿았다. 감각으로 미루어 봤을 때 물병이 아니었다.
흐릿하던 푸른 눈동자에 퍼뜩 초점이 돌아오고 번쩍 상체를 일으켰다. 복부로부터 시작된 고통이 찌리릿, 하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선─.”
무심코 달싹여진 입술을 퍼뜩 다시 닫았다.
침대 곁에 놓인 간이 의자. 그리고 그 위에서 팔짱을 낀 채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은하였다. 무릎에는 푸른 리본 장식이 달린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시우는 저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보아도 그건 선배였다.
고요한 병실. 색색이는 은하의 고른 숨소리가 이어졌다. 앉은 채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핏기 없이 하얀 피부가 창가에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더욱 창백하게 보였다. 그녀의 머리카락만큼이나 새까만 속눈썹이 흰 뺨에 옅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눈으로 보았을 때 그녀에게 큰 외상은 없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번에는 오롯이 내 힘으로 그녀를 지켜 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앉은 채 잠든 은하가 꾸벅꾸벅 고개를 기울일 때마다 어깨에 걸쳐져 있던 까만 머리카락이 사르륵,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뺨에 걸친 머리카락이 간지러운지 그녀가 파르르, 속눈썹을 옅게 떨었다.
시우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기 위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얼른 다시 거두었다.
미친놈. 방금 무슨 짓을 하려고 했지? 시우의 표정이 매섭게 변했다. 만일 그녀가 자고 있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뺨을 거칠게 때려 버렸을 것이다.
시우는 혹시 물을 따르는 소리에 그녀가 깰까 봐 물병조차 건들지 못하고 그 자리에 돌처럼 딱 굳어 버렸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상체를 완전히 일으키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눕히지도 못한 채 애매한 자세로 굳어 있기를 수십 초. 결국 부상을 입은 복부에 통증이 심해져서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냈다.
“윽.”
“…….”
그러자 눈을 감고 있던 은하가 스르륵 눈을 떴다. 밤하늘처럼 새까만 눈동자가 천천히 주변을 훑더니 곧 시우에게 고정되었다.
“일어났어?”
막 잠에서 깬 은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가라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꺼풀에 가려져 있던 까만 눈동자에 자신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치는 것이 보였다.
부상 탓인가, 복부 근처가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시우는 복부를 느릿하게 쓸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네, 방금.”
검푸른 머리카락에 반쯤 뒤덮인 귀가 조금 빨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은하가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몸은 좀 어때?”
“괜찮습니다.”
시우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짧게 답했다. 은하는 힐끔 시선을 내렸다. 그의 커다란 손이 복부를 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상처가 아파? 간호사를 불러 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정말. 그보다 물 한 잔만 받을 수 있을까요.”
몇 초 뒤 쪼르륵, 하고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은하가 불쑥 물 잔을 내밀었다.
“자.”
“고맙습니다.”
시우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잔을 건네받았다. 손가락 끝과 끝이 살짝 스치는 순간 하마터면 잔을 떨어트릴 뻔했지만 다행히 시우는 그 정도까지 덜렁대지는 않았다.
기도를 타고 넘어간 차가운 물이 일시적으로 올라갔던 체온을 시원하게 식혀 주었다. 그와 함께 어지럽던 머릿속이 정리가 되어 혼란과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던 시우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빈 물 잔을 만지작대던 시우가 멍하니 입을 열었다.
“……꿈인 줄 알았습니다.”
문득 은하의 시선이 뺨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 지금 당장 뉴스만 봐도 네가 탑을 닫은 걸로 다들 떠들썩한데.”
힐끗.
시우의 푸른 눈이 은하를 향했다.
‘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시우는 손아귀에 쥐고 있던 잔을 조금 더 만지작대다가 탁, 하고 근처 미니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굳이 오해를 정정하지 않고 그냥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병실은 좁고 답답하니 나가서 이야기할까요? 근처에 괜찮은 카페가 있습니다.”
“그 상태로 어딜 가려고.”
“아직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지만 조금 걷는 정도야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내일이면 퇴원이고요.”
사실이었다. 시우는 한 시간이 다르게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었다. 급한 수술도 끝났으니 당분간 능력을 쓰지 않고 안정을 취한다면 내일 퇴원해도 생명에 지장이 없을 거란 진단도 내려온 상태였다.
더군다나 몇 날 며칠씩이나 여기 병실에 처박혀 있을 시간도 인내심도 없었으니, 내일이면 당장 여길 나갈 예정이었다.
그렇게 시우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은하가 탁! 하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아니, 그냥 여기에 있어. 여기서도 이야기는 할 수 있잖아.”
“…….”
뻣뻣하게 굳어 버린 시우의 눈이 답지 않게 휘둥그레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하는 단호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누워.”
“……네.”
결국 시우는 은하의 말대로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왜 웃어?”
문득 은하가 물었다. 시우는 그제야 자신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자신의 입매를 슬쩍 매만진 시우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예전 생각이 나서요.”
“예전 생각?”
“이전에 선배도 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부산 언노운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였던가요.”
그때 일은 은하도 기억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잡아떼는 은하를, 제휘와 시우가 거의 반강제적으로 장기 입원 시켰었지.
“그때와 지금이 좀 비슷한 것 같아서요. 선배도 의외로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네요.”
그리 중얼거리며 코를 슥 매만지는 시우의 옆얼굴은 거의 무표정에 가까웠으나 어쩐지 조금 기뻐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한편 은하는 시우의 입에서 나온 ‘걱정’이라는 단어에 제휘의 말을 떠올렸다.
‘걱정하고 계신 거잖아요. 솜사…… 아니, 그 에단이라는 사람을요.’
순간적으로 은하의 눈이 조금 가라앉았다. 시우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선배? 무슨 일 있습니까?”
“……신시우, 에단이 사라졌어.”
에단. 그 이름에 시우의 손가락이 미약하게 움찔했다.
“탑에 분명 같이 진입했다고 생각했는데, 들어가고 나니까 에단이 없었어. 너를 데리고 탑에서 탈출했을 때도 그곳에 없었고.”
높낮이라고는 거의 없는, 언뜻 들으면 무심하게도 들리는 목소리. 얼굴은 늘 그렇듯 이렇다 할 감정이 실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알 것 같았다.
“선배는 그자가 걱정됩니까?”
시우가 물었다. 잠시 입을 다문 은하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향해 넌지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가 봐.”
“…….”
창밖을 응시하는 은하. 그리고 그런 은하를 응시하는 시우. 병실에 내려앉은 정적은 수십 초간 지속되었다.
“사실은.”
오랜 정적 끝에 시우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은하에게 에단을 만났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에단이 자신은 탑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고, 그런 저를 대신하여 탑에 들어가 은하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는 것까지도.
원래라면 은하에게 바로 설명했어야 할 이야기였다. 그러나 탑에서 은하를 만났을 때는 예가임을 상대하느라, 이후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탓에 그럴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조금 늦어졌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는 전달하는 편이 낫겠지.
“이걸 제게 전해 주더군요.”
“…….”
은하는 시우가 내민 체리 장식의 머리끈에 시선을 고정했다. 분명 은하가 에단의 머리를 묶어 주었던 바로 그 머리끈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매끈하고 붉었던 체리 장식이, 마치 어딘가에 세게 부딪히기라도 한 듯 굵은 금이 번져 있다는 점이었다. 조금이라도 손에 힘을 주어 쥐면 부서질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였다.
격렬한 전투 탓에 망가진 것인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시우는 그것을 은하에게 건네주었다.
“그자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배에게요. 그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시우는 고개를 들어 은하를 바라보았다. 은하는 여전히 체리 장식의 머리끈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그자 때문에 그런 표정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표정이라니?”
문득 은하가 고개를 들어 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는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다가 이내 관두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그런 표정요.”
시우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작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새하얀 침대 시트 위에 살짝 주름이 졌다.
은하는 무심코 자신의 뺨을 슬쩍 쓸었다.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모르겠다는 듯, 그녀가 애매한 눈빛을 했다.
“……에단 말고도 마음에 걸리는 점이 많이 있어서 그래.”
“어떤?”
“예가임 말이야. 내게 쌍둥이를 만났느냐고 묻더라.”
“쌍둥이…… 말입니까?”
이후 은하는 예가임과 나누었던 대화를 시우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배신자가 둘이라던 말. 확실하지는 않지만, 흑염의 프린세스의 ‘칠흑 비단 드레스’에 대해 물어봤다는 점까지.
다만 놈이 고양이의 권능에 대해서 알고 있는 눈치였다는 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것들에 대해 상세히 물어본 이후 해치웠어야 하는데.”
이야기를 듣던 시우가 그리 말했다. 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때는 그럴 겨를이 없었으니까.”
자세히 물어봤다고 한들 놈이 제대로 대답해 줬을 것 같지도 않고. 은하가 덧붙였다.
시우는 힐끔 시선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역시 기분 탓이 아니었다. 평소 시우가 봐 왔던 것보다 그녀의 표정이 복잡하고 어두워 보였다.
“은하 선배.”
시우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정말 그것뿐입니까?”
은하가 고개를 들어 시우를 바라보았다. 진지함을 담은, 호수처럼 푸르른 눈동자가 뚫어져라 은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그 녀석…… 에단이나 예가임을 제외하고도, 선배의 표정이 어두운 데에 다른 이유는 없냐고요.”
“…….”
은하의 입술이 스르륵 벌어졌다. 조금 놀란 듯 그녀의 새까만 눈이 살짝 확장되더니, 다음 순간 아래로 내리깔렸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비로소 은하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예가임은 내게 백이준과 민주, 거기 마을 주민들을 가지고 협박했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말이야.”
“어떤 제안이죠?”
“네뷸러의 일원이 되라고. 그럼 사람들을 살려 주겠다고.”
네뷸러의 일원? 내심 놀랐지만 시우는 내색하지 않고 이어지는 은하의 말을 경청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지. 다시 생각해도 거절 말고 다른 대답은 할 수 없어. 하지만 난 망설였어. 놈이 정말로 백이준을, 민주를,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 같아서. 결국 나는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했고 그때 신시우, 네가 나타난 거야.”
은하는 그때의 자신의 감정을 천천히, 그러나 끊지 않고 하나하나 시우에게 늘어놓았다.
“넌 내게 한 번만 믿어 달라고 했지만, 그 결과 네가 크게 다쳤어. 솔직히 후회가 돼. 그때 내가 예가임을 상대로 망설이지 않았더라면. 억지로라도 얼음 방벽을 부수고 너 대신 내가 놈을 상대했더라면, 넌 다치지 않아도 됐을 거야.”
거기까지 말한 은하가 느릿한 한숨을 쉬었다. 긴 속눈썹 아래 깊이 잠긴 검은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분해. 그뿐이야.”
“선배.”
지금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기만 하던 시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렇게 따지면 3년 전, 선배를 그곳에 혼자 두고 온 것은 제 탓입니다.”
“그건─.”
“30년 전, 선배가 그곳에 오랫동안 갇히게 된 건 마에스트로 탓이 되겠군요. 하지만 선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시우가 시선을 들어 똑바로 은하를 응시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
“선배 탓이 아닙니다. 내가 원했을 뿐이죠. 나는 선배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은하 역시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에 미약한 의문이 서려 있었다.
하얀 침대 시트 위에 올려져 있던 시우의 주먹에 조금 더 힘이 깃들었다.
“은하 선배, 왜냐하면 난.”
그의 상체가 기우뚱, 은하를 향해 움직인 순간이었다.
똑똑.
“실례합니다.”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왔다.
“검진 시간이 되어서요. 잠시 괜찮으십니까?”
“네.”
은하는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 볼게.”
“아.”
시우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향해 살짝 손을 뻗었다가 도로 거두었다.
“괜찮은 걸 확인했으니 됐어. 매니저님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겉옷을 걸친 은하는 병실을 나가기 전 힐끗 시우에게 시선을 던졌다.
“고마워, 신시우.”
또 보자. 은하는 그 말을 남기고서는 너무나도 쉽게 병실을 떠났다.
달칵.
문이 닫히고 병실에는 시우와 의사, 그리고 간호사만이 남았다.
“잠시 체온 체크부터…… 헉.”
시우에게 다가가던 의사와 간호사는 순간 헛숨을 들이켰다. 시우가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