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203)화 (203/306)


#203. 사막에 핀 얼음꽃 (2)
2023.02.19.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

“신 대표님, 이후 일정은 우선 협회에서─.”

“아니, 갈 곳이 있으니 그쪽은 알아서 처리해.”

“예? 아…… 시, 신 대표님?!”

시우는 공항에서 탑이 있는 남양주시로 곧장 달려왔다. 예정되어 있던 출국을 미룰 수 없었기에 중요한 일만 재빨리 처리하고 귀국한 것이었지만,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흑염의 프린세스와 그 일행이 탑에 진입한 이후였다.

남양주시에 도착한 시우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흑염의 프린세스 일행이 탑에 진입한 것은 오전 9시 즈음이라 했다. 지금이 오후 12시를 막 넘긴 참이니…….

‘아직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어.’

휴대전화를 집어넣은 시우는 저 멀리 보이는 탑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선배와 합류해야만 했다.

S급 헌터이자 헤드 헌터 12인 중 하나인 백랑에게는 다행히 탑 단독 진입 권한이 있었다.

문제는 진입 이후였다. 내부가 어떤 필드이고 또 어떤 퀘스트 혹은 전투가 진행 중일지 모르는 이상, 합류가 빠를 것이라고는 단정하지 못했다.

‘서두르자.’

그렇게 쉬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달린 결과, 오후 1시가 되기도 전에 탑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진입 전 단말기를 이용해 협회에 탑 진입 신호를 보내고 남은 배터리 잔량을 확인한 뒤 전투에 필요한 최소한의 아이템을 챙겨 왔는지 인벤토리를 최종 점검해야 했지만, 시우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 따위 과감히 생략하고 거대한 탑의 문 앞에 섰다.

그런데 그곳에는 시우 말고도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너는…….”

포근한 분홍빛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에 피처럼 새빨간 눈동자. 에단이었다.

인터넷 기사에 걸린 사진 속에는 분명 은하와 이준 그리고 에단이 찍혀 있었다. 세 사람이 함께 탑에 진입한 줄 알았는데, 어째서 이자만이 덩그러니 입구에 남아 있는 것인가?

‘설마.’

──함정이었나?

일부러 선배를 여기까지 유인하고 자신만 쏙 빠진 건 아니겠지? 시우의 눈매가 차갑게 굳는 순간이었다.

“바람이 바뀌었어.”

턱을 들고 문을 올려다보고 있던 에단이 낮게 중얼거렸다. 닫힌 문틈으로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오고, 에단의 분홍색 머리카락이 유유히 흩날린다.

“붕괴되고 있는 거야. 아니, 정확하게는 놈이 ‘붕괴하게끔’ 만들고 있는 거겠지. 볼일이 끝났다는 거야.”

붕괴라고? 시우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탑 붕괴란 흔하다면 흔한 일이었다. 탑에 진입한 공략대가 클리어에 실패한 경우 해당 층이 리셋(Reset)되는 현상이었으니까.

시우 역시 에단처럼 턱을 들어 문을 바라보았다. 에단과는 달리, 시우는 지금 탑이 붕괴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런 것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이자의 말대로 탑이 붕괴되고 있는 거라면…….’

선배가 실패했다는 소린가? 그 순간 오싹, 피부 위에 한기가 돌았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듯했다.

은하 일행이 탑에 진입한 지 아직 4시간도 흐르지 않았다지만, 바깥에서의 시간과 탑 내부에서의 시간이 같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언노운 게이트보다도 훨씬 변덕스러운 곳, 그곳이 탑이니까.

탑이 붕괴되고 있다면 지금쯤 은하 일행은 탈출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늘 그런 건 아니었으나 붕괴 시 발생하는 균열을 통해 확률적으로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은하와 이준은 탑에 진입한 게 이번이 처음이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더라도 실전 경험이 없으니 애를 먹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탈출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점. 그리고…….

‘내가 해야만 해.’

귓가를 스치는 은하의 목소리.

시우는 반사적으로 주먹에 꾸욱 힘을 주었다. 선배라면 분명 탑 탈출을 눈앞에 두더라도 혼자 무리를 해서까지 조디악의 흔적을 찾으려 할 것이다.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다.

또다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희생을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러기 위해 견뎌 온 3년이 아니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우가 황급히 문에 손을 갖다 대려는데.

“내 추측이 맞다면 공간이 무너지는 틈새로 아지랑이가 보일 거야. 그중 모래성을 찾아.”

“……모래성?”

문을 열다 만 시우가 뒤돌았다. 에단은 여전히 턱을 든 채 탑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 거기 놈이 있을 테니까. 나 대신 네가 좀 가 줘라.”

이전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시우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저 말투 역시도.

“지금 내게 명령하는 건가?”

시우는 불쾌함을 담아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그런데.

“아니, 부탁.”

에단은 평소보다 조금 더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부탁. 그 단어에 시우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슬쩍 엿보이는 에단의 붉은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걸까. 알 수 없다. 시우는 굳은 얼굴을 풀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왜 내게 그런 부탁을 하는 거지?”

“나는 탑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어째서? 너는 탑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그렇기 때문이야. 나는 너희랑 다르니까. 어떻게든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짜증 나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어. 그러니까─.”

탑을 올려다보고 있던 에단이 붉은 시선을 휙 돌려 시우를 바라보았다.

“네가 나 대신 가서 은하를 좀 도와주라.”

“…….”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왔다.

시우는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 서서 에단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가 어떤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가 제게 ‘부탁’을 해 올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선배의 일로.

만일 이게 함정이라면, 굳이 저런 얼굴을 하고 부탁할 필요가 있을까? 더군다나 평소 그다지 우호적이지도 않았던 상대에게 말이다.

“분명 지금쯤 무리를 해서라도 놈의 흔적을 쫓으려고 아득바득대고 있을 테니까.”

그 애는 그런 애잖아. 에단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우는 그와 자신이 은하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시우의 눈앞까지 다가온 에단은 슥, 손을 내밀어 시우에게 무언가 건넸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건네받은 시우는 제 손 위에 놓인 물건을 힐끗 확인했다. 체리 장식이 두 알 달린 머리끈이었다. 이걸 왜 내게…….

“필요할 거야. 가지고 가.”

한참 머리끈을 응시하던 시우는 에단의 목소리에 시선을 들었다. 에단은 웃음기나 장난기 따위 하나도 섞여 있지 않은 눈초리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탁한다.”

짧은 한 마디. 시우는 손바닥 위 체리 머리끈을 꾹 쥐었다.

“……네가 부탁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

이게 함정이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안에 선배가 있고, 만일 탑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게 진짜라면, 망설일 이유 따위 없었다.

지금 시우가 여기에 서 있는 이유도, 그리고 탑에 뛰어드는 이유도, 오로지 은하였다. 이자의 부탁 때문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고맙다.”

에단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만족스럽다는 듯…… 아니, 정말 고맙다는 듯.

시우는 그 앞에서 살짝 눈매를 찌푸렸다.

은하를 위해 부탁하는 그의 모습이, 은하를 지켜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의 미소가 어쩐지 내키지가 않아서, 결국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탑 문을 열었다.

이후 탑에 진입한 시우는, 에단의 말대로 붕괴 현상을 목격했다. 워낙 필드가 넓어 은하를 찾는 데에 시간이 걸릴 줄 알았지만…….

‘모래성.’

저 멀리 깨진 공간, 그 균열 사이로 모래성 형태의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모든 것이 에단의 말한 대로였다.

시우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 * *

“신시우, 네가 여길 어떻게…….”

“설명은 나중에 하는 게 좋겠습니다.”

시우 말이 맞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너, 내 성을 망가트리다니 배짱이 좋네.”

예가임의 말에 시우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은하는 작은 목소리로 시우에게 언질을 주었다.

“조디악이야.”

“그런 것 같네요.”

짧게 대답한 시우는 힐끔 은하의 상태를 확인했다.

큰 부상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상태가 좋다고도 할 수 없었다. 어깻죽지부터 쭉 찢어진 저 드레스로는 아마도 원활한 움직임이 힘들 것이다. 살짝 구부러진 양산 역시 시야에 들어왔다.

은하의 드레스와 양산은 보통 재질이 아니었다. 게다가 은하는 저 아이템들을 꽤 아끼는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전투에도 여태 망가진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어떤 싸움을 했기에 드레스와 양산이 저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그 순간 에단의 목소리가 시우의 귓가를 스쳤다.

‘분명 지금쯤 무리를 해서라도 놈의 흔적을 쫓으려고 아득바득대고 있을 테니까. 그 애는 그런 애잖아.’

‘네가 나 대신 가서 은하를 좀 도와주라.’

“…….”

시우는 말없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가 뭔데? 그렇게 받아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자신을 대신해 은하를 도와달라던 에단의 얼굴을 마주하니 그럴 수 없었다.

저 남자는 무엇에 저토록 자존심이 상한 거지? 뭐가 그렇게 분한 거지? 그러면서도 무엇 때문에 내게 부탁까지 하는 거란 말인가?

아니, 사실 시우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에단이 어떤 심정으로 제게 부탁해 온 건지.

‘놈은, 선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다.

그 소중함의 형태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 녀석은 선배가 다치기를, 이 탑 안에서 조디악의 함정에 빠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에단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시우였지만 그 마음만큼은 싫을 만큼 전달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도…… 나 역시도 같은 마음이니까.

하지만 시우는 결코 에단을 ‘대신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결단코 말이다.

“……덮고 계세요.”

은하를 응시하던 시우는 스르륵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듯 덮어 주었다. 그 덕분에 드레스가 찢어져 훤히 드러나 있던 어깨가 가려졌다.

“너는 누구냐?”

예가임이 시우를 바라보며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찰랑, 그의 귀 아래에 달린 무거운 금 귀걸이가 흔들렸다.

시우는 대답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여우처럼 길게 찢어진 눈매에 화장이라도 한 것처럼 붉게 물든 눈두덩이. 이목구비도 차림새도 화려한 남자였다.

시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향유 냄새와 포도주 냄새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탓에 코가 마비되는 듯했다.

“이상하군.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지?”

예가임이 다시 물었다.

이 모래성은 탑의 주인이자 조디악인 예가임이 지배하는 공간. 최상층으로 연결되는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한 층 한 층 탑을 클리어해서 도달하지 않는 이상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애초에 출입조차 할 수 없는 구역이었다.

균열의 틈새로 모래성이 보여도 그것뿐. ‘가호(加護)’가 없다면 도달할 수 없을 텐데.

‘이놈에게 ‘가호’가 있는 건가?’

시우를 바라보는 예가임의 눈매가 가늘게 변했다. 확인해 봐야겠다. 그대로 걸음을 내디뎌 시우에게 다가오려던 그가, 돌연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

예가임의 시선이 차츰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발견했다. 어느새 제 두 발을 꽁꽁 묶고 있던 새하얀 얼음을. 발에서부터 이어진 얼음은 바닥을 주욱 지나쳐 시우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벽을 뚫고 내부로 들이닥치는 순간, 예가임이 정신을 놓은 틈을 타 한기를 뿜어 발을 묶어 버린 것이었다.

얼음 탓에 제자리에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 예가임이 짜증스럽게 인상을 썼다. 심지어 움직일수록 더욱 단단히 굳어 버리는 얼음은 어느덧 발목을 지나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얼음이랑 같이 네 발이 산산조각 나길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야.”

꽤 섬뜩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예가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도리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건 내가 할 소리군.”

스스스…….

예가임의 곁에 동그란 모래 구체가 떠올랐다. 아까 은하가 보았던 바로 그것, 바깥의 풍경을 비추는 모래 눈알이었다.

“너야말로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걸.”

붕괴가 진행되는 탑 내부. 반쯤 정신을 놓고 미쳐 날뛰는 마을 사람들과, 그런 그들을 통제하면서도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제압하고 있는 이준과 민주가 보였다.

“너, 이들을 모른 체할 셈인가?”

예가임이 시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목소리에는 여전히 여유가 섞여 있었다. 어차피 그럴 수 없잖아. 휘어진 두 눈은 그리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시우에게서 되돌아온 대답은 그가 기대하던 것과는 달랐다.

“그래도 되고.”

시우는 툭 내뱉듯 대꾸했다.

“나는 그들과 그다지 친분이 없어서.”

“의외군. 너희들은 인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었나?”

“안타깝지만 난, 한 사람이 수십 수백의 사람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 그리고…….”

탁.

시우가 은하를 등 뒤에 숨긴 채 그를 똑바로 마주했다.

“지금 내가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따로 있어서.”

“흐음.”

예가임이 재미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 채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두 눈이 옅은 호기심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잘 들어라, 조디악. 네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건 두 가지다.”

스르륵.

서서히 손을 들어 올린 시우는 예가임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차갑게 말문을 열었다.

“첫째, 난 애초에 저기 있는 모두를 살릴 생각은 없어. 그러니 그딴 협박 따위 접어 둬. 그리고 둘째.”

휘오오오─

시우를 중심으로 섬뜩한 냉기가 일었다. 검푸른 머리카락이 온전한 백색으로 물드는 순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여기서 거래를 제안할 수 있는 건 네놈이 아니라 나다.”

시우의 손아귀로부터 피어난 새하얀 냉기. 원래의 시우였다면 이렇듯 사막과 같은 건조한 필드에서 이 정도의 얼음을 만들어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원래의 시우였다면,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는 단순히 살상력(殺傷力)을 높이기 위한 훈련을 반복해 왔던 그였으나, 최근 3년 동안 행한 훈련법은 조금 달랐다.

물과 얼음을 제어하는 능력, 또 그것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위력.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그것은 수분을 끌어모으는 능력.
이전의 시우는 주변 환경 혹은 대기 중의 수분을 끌어모았지만, 현재는 이렇듯 메마른 사막에서도 충분한 수분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것은 바로, 체내의 수분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공기 중의 수분과 체내의 마력을 머금은 수분을 섞어서, 소량의 수분으로도 최대치의 효율을 뽑을 수 있게 훈련한 것이었다.

다만 그다지 건강한 방법은 아니었다. 시우의 주치의는 이 방법은 수명을 깎는 행위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듯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건조한 공간에서 이 정도 수분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쩌적, 쩌적…….

건조한 공기에서 생성된 얼음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예가임의 몸을 감쌌다. 무릎을 넘어 이제는 하체 전체가 얼어 버린 상태였다.

“그대로 있으면 뇌까지 꽁꽁 얼어 버릴 거다. 네게 남은 시간은 10초도 되지 않아.”

시우가 차갑게 경고했다. 이대로라면 시우의 말대로 몸 전체가 얼어붙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쩍 굳어 버린 예가임을 향해 시우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자, 결정해. 그대로 얼어 죽을 건지, 지금 당장 붕괴를 멈추고 그들을 밖으로 내보낼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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