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57)화 (156/306)


#157. 두 번째 귀환 (3)
2023.01.04.


“우선 드시죠.”

데이빗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 주문한 식사를 향해 손짓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몬태나주에 위치한 작고 조용한 레스토랑이었다. 손님은 그들 한 테이블뿐이었다.

은하는 수저에 손을 대지 않고 데이빗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은하는 아직 그가 누구인지, 또 어째서 저를 도왔는지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은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헌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도 조금 더 친숙한 사이처럼…… 마치 쭉 알고 지내 왔던 것처럼 데이빗은 은하를 대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이렇게 안부까지 묻고 말이다.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어.’

은하는 레스토랑으로 오는 길, 그리고 테이블에 앉은 지금까지도 내내 손에서 양산을 놓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는 각성자인 것 같지도 않고, 지극히 평범한 정장 차림의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였다. 현지의 경찰들도 그를 아는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는 깍듯이 경례까지 해 보였다.

즉 수상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컸지만, 혹시 모르지 않은가. 최근에 뒤통수를 맞은 전례가 있던 은하는 쉽게 의심의 기색을 풀지 않기로 했다.

“오, 맛있는데?”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는 에단은 테이블 위 식사를 잘도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지만.

데이빗은 안부 외에도 은하에게 어째서 이곳 미국에 있는 것인지, 곁에 있는 저 남자는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해 왔다. 그러나 은하는 그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데이빗은 곤란한 듯한 얼굴로 시선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 제가 의심스러우신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뭐냐, 무기는 우선 놓고 대화할까요, 우리?”

……아.

줄곧 은하가 양산을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말에도 은하는 그것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꼭 쥐며 말했다.

“이게 무기인 것을 알고 있군요.”

“흑염의 프린세스가 양산을 주 무기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현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걸요.”

“…….”

“아, 전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거든요. 지금 일이 있어서 잠시 미국에 온 것뿐이고요.”

정말입니다. 그가 덧붙였다.

그러나 은하의 눈빛에서는 의심이 가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데이빗은 짧은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남해안 언노운 게이트.”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웃음기를 지운 그가 조금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그 사건이 있었던 게 벌써 3년 전이네요.”

아무래도 그는 남해안 언노운 게이트의 일을, 그리고 흑염의 프린세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곳은 미국. 그리고 그는 한국어가 유창하지만 분명 외국인이었다. 이런 자에게까지 이름을 알렸을 정도로 은하는, 흑염의 프린세스는 유명하지 않았다. 적어도 은하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오늘 저녁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인데, 괜찮으시다면 저희 쪽 전용기를 타고 함께 가시겠습니까?”

그는 경찰으로부터 은하를 구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식사를 대접하고, 당장 오늘 저녁 한국에까지 모셔다드리겠노라 말했다.

그러나 은하는 섣불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가 저에게 이 정도까지 호의를 베푸는 이유를 여전히 알 수 없었기에.

은하가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목적이 무엇이죠?”

“…….”

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윽고 난처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데이빗이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실은, 꼭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부디 만나 주셨으면 하는 분이 있습니다.”

“누굴 말이죠?”

“마에스트로. 제 상사이자─.”

데이빗은 은하와 시선을 맞추며 덧붙였다.

“당신의 동료 말입니다.”

“…….”

예상치 못한 이명의 등장에 은하의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동시에 귓가를 스치는 그의 목소리.

‘그 애는 그날 죽었으니까.’

그리고 죽일 듯이 제게로 날아들던 흰 뱀.

은하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무심하고 평온한 얼굴. 그러나 양산을 쥔 손에 슬그머니 힘이 들어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은하에게 있어서 이준은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은하의 과거 동료 중 2030년 현대에까지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자였으니까.

아니, 정정하겠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준은 특별했다. 그는 함께 생과 사를 넘나들며 수많은 고비를 함께해 온 가족이었다. 그렇기에 은하는 그를 대신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언노운 게이트에 홀로 남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30년이 지나 겨우 재회한 은하를 모른 척했다. 그뿐인가. 칼을 겨누기까지 했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럴 애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전혀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왜요?”

생각에 잠겨 있던 은하가 입술을 달싹였다.

“왜 그런 부탁을 하시는 거죠? 그 애가 그러라던가요? 하지만 백이준은 날 만나길 원하지 않을 텐데요.”

이번에는 데이빗이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 은하 옆자리에서 테이블에 코를 박고 잠든 에단의 숨소리만이 새근새근 들려온다. 한차례 식사를 끝낸 뒤에 이제는 숙면 시간인가 보다.

오랜 정적 끝에 데이빗이 쥐고 있던 잔을 소리 없이 테이블 위에 내려 두었다.

“제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사실 제 상사, 백 헌터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15년도 전에 제게 한 가지 명령을 내리셨답니다. 저는 그 명령 때문에 한국에서 생활하게 된 거고요.”

명령? 은하의 미간이 희미하게 좁아졌다.

“서울시 반하동 287-14번지.”

은하는 그때까지도 표정 변화 없이 그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 어머님의 묘비가 있지요?”

그의 입에서 예상치도 못한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은하의 눈빛이 더는 없을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걸 어떻게.”

“그 묘비를 돌봐 달라.”

양산을 쥔 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데이빗이 재빨리 덧붙였다.

“그것이 제 상사가 제게 내리신 명령이었습니다.”

데엥─ 데엥─

레스토랑에 장식된 커다란 자명종이 울렸다.

“음…….”

테이블에 엎어진 채 달콤한 잠에 빠져 있던 에단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는 바로 옆에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은하와 바로 맞은편의 곱슬머리 남자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웠다.

“은─.”

“만약 그러고 싶지 않다면요?”

에단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은하가 데이빗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제가 그 애를 만나고 싶지 않다면요?”

데이빗은 그 물음에 당황하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지도 않았다. 동요의 빛 한 줄기 없이, 그저 평온한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헌터님께서 제 상사를 만나 주시든 그렇지 않든, 필요하시다면 저희 쪽 전용기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어째서요?”

“살아 계셔 주셨잖습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정말로, 진심으로요.”

은하는 데이빗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살아 있어 주어서 감사하다니. 그런 말을 생판 처음 보는 그에게 듣는 지금 이 상황이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살아 있어 주었기 때문에 전용기를 제공하겠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러나 데이빗은 진심을 담은 눈초리로 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데이빗이 빙긋 웃었다.

“그분이라면 분명 그리 명령하셨을 테니까.”

* * *

GIA 소유 전용기.

현재 은하는 결국 데이빗과 함께 전용기에 탑승해 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글로벌 랭킹 1위 흑염의 프린세스의 귀환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고 나면, 미국은 쉽게 그녀를 내보내지 않기 위해 갖은 수를 쓸 것이 분명했다. 출국 자체가 상당히 귀찮아질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 전에 이렇듯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헌터 비밀 조직 GIA가 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은하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좌석에 앉아 창밖을 응시하고 있던 은하가 문득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오오!”

옆 좌석에 앉은 에단은 비행기가 이륙한 이래 지금까지 창문에 뺨을 갖다 붙인 채 저러고 있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 보는 시골 청년도 저 정도로 날것의 반응은 보이지 않을 테다.

“앞으로 약 열두 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문득 곁에서 데이빗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을 쳐다보고 있던 은하가 고개를 돌리고는 데이빗을 향해 목을 살짝 까딱였다.

“……감사합니다.”

은하는 그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또한 한국으로 돌아가서 이준을 만나겠다고 확실히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데이빗의 제안을 거절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전용기에 타긴 했지만…….

‘그 묘비를 돌봐 달라. 그것이 제 상사가 제게 내리신 명령이었습니다.’

창밖을 응시하던 은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은하는 잊고 있던 기억에 대해 떠올렸다. 오랜만에 찾았던 어머니의 묘비에서 발견했던 꽃다발, 타다 만 향초, 정돈되어 있던 잡초들. 그 모든 것은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었다.

다만 이준이 제 부하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을 줄은,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미국인이 제 모친의 묘를 10년이 넘도록 돌보고 있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은하는 언노운 게이트 내부에서 저를 따라 다니던 흰 뱀의 존재에 대해 떠올렸다. 그것은 감시를 위해서가 아니었던 걸까?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시 목적이 아니었다면 대체 이준은 무엇을 위해서 마지막 순간 은하에게 그 뱀을 붙여 두었단 말인가. 또한 그동안 은하를 대신하여 엄마의 묘까지 챙겼다면, 어째서 재회 당시 그토록 차가운 태도를 보였던 것일까.

은하는 도무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지만…….

“아참.”

데이빗이 은하 앞에 불쑥 무언가 건네 왔다. 쇼핑백이었다. 그 안에는 청바지에 티셔츠, 두꺼운 외투와 모자, 심지어는 두꺼운 머플러까지 담겨 있었다.

이게 뭐냐는 눈빛으로 고개를 들자 데이빗이 말했다.

“필요하실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노타우로스와의 전투로 그 튼튼하던 드레스가 찢어진 채였다.

데이빗과 쇼핑백 안 옷가지들을 번갈아 응시하던 은하는 그를 향해 쇼핑백을 도로 내밀며 말했다.

“필요 없어요. 옷은 갈아입지 않을 생각입니다.”

비록 드레스의 일부가 찢어지긴 했지만 입고 있는 것에 무리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상륙하자마자 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함부로 세트 효과를 해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섣불리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요……. 전용기니 착륙 지점이 다른 비행기들과는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당분간은 사람들의 눈을 조심하는 편이 어떨까요?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테니 분명 곤란해지실 겁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은하가 눈을 깜빡였다.

“말씀하신 것처럼, 전 그렇게 유명하지 않습니다만.”

물론 이전에 흑염의 프린세스를 알아보는 이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래 봬도 TV에 출연했던 적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명 연예인처럼 얼굴을 늘 가리고 다녔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옅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지금은 2035년이라고 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던가.

“그럴 리가요. 3년 전 있었던 남해안 언노운 게이트의 최대 공헌자가 흑염의 프린세스라는 건 시골 초등학생 꼬마도 아는 사실인데요.”

“……네?”

“아, 모르셨어요? 그때 남해안 게이트 안에서 영상을 촬영하고 있던 헌터가 있었거든요. 도중까지는 토벌 현황을 생방송으로 진행하다가, 이후에는 녹화를 해 두었대요. 너튜브에 검색하면 당시 흑염의 프린세스 관련 영상이 엄청 많이 떠요. 클립 영상부터 매드 무비까지 있다니까요.”

보시겠어요?

데이빗은 조금 신이 난 듯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만지작댔다. 그러더니 불쑥 은하의 눈앞에 그것을 들이밀었다.

<3초 만에 몬스터 전멸시키는 F급이 있다? 이거 그냥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

가장 위에 보이는 영상 제목이었다.

큼지막한 썸네일에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 그러니까 본인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올라와 있다.

게시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꽤 오래된 영상인 만큼 조회수가 상당했다.

은하는 이끌리듯 그 영상을 틀었다.

<라고 하기엔 너무 강력한 한방이었다.>

화면 가득 떠오르는 거대한 흰 자막.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익숙한…… 자신의 목소리.

「잘 버텨 주었습니다. 부대원들에게 전하세요. 이제부터는 무리하지 말고 레벨 30 이하의 몬스터만 처리하라고.」

「그, 그럼 30 이상의 몬스터는…….」

「건드릴 필요 없습니다.」

그 순간 모니터 속 자신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내가 왔으니까.」

그리고 그 뒤로, 자신이 3초 만에 몬스터를 휘리릭 도륙해 버리는 장면이 지나간다. 영상의 길이는 9초. 3초짜리 장면을 3번 반복하는, 아주 짧디짧은 영상이었다.

“…….”

은하는 해당 영상을 보고 그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영상을 보고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어쩐지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불편했다.

미묘한 얼굴로 휴대전화 액정을 물끄러미 응시하는데, 모래시계가 빙그르르 돌더니 다음 관련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내 안의 심연이 꿈틀거린다…… 화제의 헌터 ‘흑염의 프린세스’ 그녀는 누구인가?>

…….

<이거 레알 실화? 주모 찾게 만드는 흑염의 프린세스 매드무비 - 남해안 언노운 게이트 편>

…….

<(브금주의) 킹갓엠페러제너럴충무공마제스티 흑염의 프린세스 전투씬 교차편집>

빰, 빠바밤─! 지징지지징─!

드럼 소리가 강렬한 BGM을 배경으로 흑염의 프린세스 하이라이트 전투 씬이 재생되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주르륵 달려 있는 수많은 댓글들. 역시나 3년 전의 것들이었다.

[와 내가 뭘 본거지]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말이 됨? 도대체 F급 기준이 이상한거냐 저 흑염의 뭐시기가 이상한거냐 난 이제 모르겠다]

[그래서 팬카페 주소가 어디라구요?]

[여러분은 지금 ‘평범한 한국 F급 헌터의 수준.avi’을 보고 계십니다.]

[이 사람 누구임?]

[흑염의 프린세스라고 늑대랑 계약했던 F급 컨셉 헌터임ㅇㅇ]

[이 정도면 측정기가 잘못했네]

[0:18 아니 반복재생하다 발견한건데 님들 이부분 재생 속도 느리게하고 봐보셈;; 진짜 핑퐁 미쳤는데?;; 자기 노리는 몬스터 무시하는 척하면서 뒤에놈하고 같이 동시에 잡는거 지렷다]

[F급에 저정도 실력이면 도대체 얼마나 재능충인거야 ㄷㄷㄷ]

[본인 헌터 경력 7년에 지금 그만둔지 2년째인데 저 정도면 재능 수준을 넘어선거임. 애초에 재능 있는 헌터들은 몬스터를 잡아 죽일 순 있어도 저렇게 딴사람 지키면서 전투하는 건 개힘들거든? 저건 백퍼 짬에서 나오는거라 생각한다. 최소 몇백번은 게이트에서 구른걸로보임]

[아니 F급이 어케 몇백번을 게이트에서 굴러;]

[그니까 미친 실력인거지ㅋㅋ]

[이것이 말로만 듣던 힘숨찐인것이었던것이여따ㅎㄷㄷ]

[ㅠㅠㅠㅠㅠㅠㅠ이거보고 걍 팬됨…… 흑프 제발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난 왜 언니를 이제 안거죠ㅠㅠㅠㅠㅠㅠ]

[가슴이 웅장해진다……]

[아직도 가끔 이거 보러 오는 사람? 나야나]

댓글을 주르륵 읽어 가던 중, 그새 영상이 끝이 났나 보다. 액정 가장 위쪽에서는 또다시 다음 영상이 자동 재생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영상을 보고 있는 것조차 고역이었던 은하는 슬그머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더 이상은 무리라는 듯 휴대전화를 스윽 밀어낸 그녀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이 정도면 충분─.”

“앗! 여기에요. 바로 이 장면! 내가 여기만 몇 번 돌려 봤는지…….”

왠지는 몰라도 잔뜩 흥분한 듯한 데이빗이 은하의 코앞까지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

“키야, 제가 웬만한 헌터들 보고는 이런 생각 잘 안 하는데, 정말 장난 아니시군요!”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창문에 이마를 붙인 채 바깥 풍경을 응시하던 에단이 이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뭐야, 뭐 재밌는 거라도 봐?”

부스스하고 몽실몽실한 분홍색 머리카락 아래로 비친 새빨간 눈동자에 호기심이 깃든다. 그 순간 은하는 저도 모르게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만.”

데이빗과 에단의 시선이 동시에 은하에게로 몰렸다. 은하는 양산을 두 손에 꼭 쥔 채 다소 고역스러운 얼굴로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 그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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