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 흑염의 프린세스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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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99 흑염의 프린세스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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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두 번째 귀환 (1)
2023.01.02.
미국 몬태나주.
“【예? 탑이 봉쇄되었다고요? 으앗.】”
승용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데이빗은 펄쩍 뛰다 못해 차 천장에 머리를 쿵 박았다.
“【아니, 도대체 어디…… 여기 미국 탑이 말입니까? 하지만 엘리멘탈 마스터 쪽은 아직 진입 전이 아닙니까? 그럼 누가……. 예, 예에……. 우선 알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데이빗은 다소 허망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미국 몬태나주에 위치한 탑을 누군가가 클리어 했다고 한다.
탑의 내부는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수많은 헌터들이 최상층에 도달하기 위해 한 층 한 층 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탑을 클리어 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건 아닐 테다.
지금까지 인류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탑 내부 곳곳에서는 히든 퀘스트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것을 클리어 하면 탑의 꼭대기, 즉 최상층으로 이동 가능하다고.
실제로 이 방법을 통해 탑의 최상층에 도달한 자가 세상에 단 한 명 있었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인류의 탑 클리어 기록이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시스템창은 전 세계 각성자들에게 《???》에 의해 탑이 봉쇄되었다고 알렸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자는 두 번째 탑 클리어 헌터가 될 것이다.
──다만.
‘도대체 누가…….’
생각에 잠겨 있던 데이빗은 휴대전화를 품속에 집어넣고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사님, 차 좀 돌려 주세요.】”
* * *
“여긴…….”
은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해가 지고 있는 무렵.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하자 노을로 물든 그곳에 하얀 달이 하나 덩그러니 걸려 있다.
‘돌아온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은하의 기억 속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자 가장 처음으로 보인 것은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 그리고 그 호수를 감싸고 있는 낮은 산맥이었다.
적어도 서울 한복판은 아닌 듯했다. 주변에 빌딩은커녕 주택 한 채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경기도 외곽이라든가 어쩌면 그보다 더 멀리 떨어진 시골일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네 세계?”
문득 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은하는 그제야 에단의 존재를 상기했다.
“그런 것 같아.”
“그런 것 같다니?”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달이 한 개인 것을 보면 지구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은하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어디론가 향한다. 이곳을 지나치는 한 남자를 향해서였다.
한 손에는 낚싯대,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양동이를 든 채 휘파람을 불며 지나치는 중년의 남자. 그를 발견한 은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외국인?’
멀리서 보아도 그는 분명 외국인. 그것도 서양인이었다.
“Oh, Hi. How are you?”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외국인은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벗으며 반가운 얼굴로 인사해 왔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분명 영어였다.
“…….”
살짝 손을 흔든 은하의 미간이 곧 더는 없을 정도로 좁아졌다.
그가 인사를 해 왔고 그것을 짧게 받았다.
그럼 이제는 여기가 지구가 맞는지, 만일 맞다면 이곳이 어디인지, 오늘이 며칠인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입이 마음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은하는 그다지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때는 미국 유학을 희망했었지만.’
그게 도대체 몇 년 전이던가. 당시 배웠던 회화나 문법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
외국인 중년 남성은 은하를 향해 뭐라 말을 해 댔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은하는 점점 더 심각한 표정이 되어 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혹시 낚시를 하러 온 거라면 잘 찾아왔다는데?”
에단이 태연한 얼굴로 힐끔 은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알아들어?”
“못 알아들을 게 있나.”
“…….”
은하가 눈을 깜빡였다. 에단이 영어를 할 줄 안다고? 어째서? 아니, 그것보다─.
“여기가 어디인지 물어봐 줘.”
은하는 에단을 통해 남성에게서 정보를 얻어 내기로 했다. 에단은 순순히 은하가 시키는 대로 남성에게 질문을 던졌고, 친절한 외국인 남성은 묻는 말에 다 대답을 해 주었다.
그 결과 은하는 알게 되었다.
‘미국, 이라고……?’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미국. 그것도 서부에 위치한 몬태나주였다.
그 뒤 친절한 외국인 남성은 은하와 에단을 몬태나의 주도(州都) 헬레나까지 데려다주었다.
덕분에 은하는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운타운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2035년…… 이라고?’
에단의 통역에 따르면, 외국인 남성은 오늘이 2035년 1월 27일이라 했다.
은하가 남해안 게이트에 투입된 것이 2031년 11월이었으니…… 그때로부터 약 3년하고도 조금 더 넘게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이전에 비하면 짧지만…….’
처음 언노운 게이트에 갇혔을 당시, 세상에 나와 보니 자그마치 30년이 흘러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3년 따위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문제는 또 있었다.
은하는 굳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은하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무슨 이벤트라도 있는 것인지, 다운타운은 축제 분위기였다. 오색 풍선이 이곳저곳에 걸려 있고 수많은 노점상이 즐비한 광장은 한껏 무르익은 분위기였다.
탑 봉쇄 기념으로 몬태나주 전체에서 축제가 열렸다는 건 아주 나중에나 알게 된 일이었다.
“오,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태평하게 노점상 근처를 서성거리는 에단과는 달리 은하는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무슨 수로 한국에 돌아가지?’
지구로 돌아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설마하니 미국에 떨어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익히 아는 뉴욕이나 LA도 아닌 몬스터? 몬태나? 아무튼 그런 낯선 곳에 말이다.
은하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켜 보았다. 켜지지 않는다. 배터리 수명이 다 한 모양이다.
지금 은하의 상황으로는 비행기는커녕 당장 묵을 숙소를 구할 방법도 없었다. 물론 게이트 구석에서도 잘만 먹고 자던 그녀였기에 노숙 따위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이대로 언제까지고 미국에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떻게든 한국의 누군가와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을까? 시우나 제휘, 그게 아니라면 민주나 아연에게라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Hey! You!”
누군가의 고함이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입에 빵을 문 에단과 그를 향해 씩씩대는 외국인 여성이 서 있었다.
에단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입에 물고 있던 빵을 꿀꺽 삼켰다.
“왜? 맛보고 가라며?”
“【──.】”
“돈? 그게 뭔데.”
“【──? ──!】”
“몰라, 그런 거.”
“【───!!!】”
멀찍이 서서 두 사람의 모습을 살피던 은하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눈치껏 예상컨대 아무래도…….
‘맙소사.’
에단이 저 노점상이 팔던 빵을 무전취식한 것 같았다.
“너, 시끄럽네. 난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야.”
노점상과 옥신각신하던 에단의 눈빛이 변했다. 은하는 반사적으로 튕기듯 그쪽으로 달려갔다.
“에단.”
노점상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그가 힐끗 은하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가 노점상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 은하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고.
“에단, 잘 들어. 음식을 먹으려면 돈을 내야 해. 그건 이 세계의 상식이야.”
은하는 차분히 에단에게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에단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돈’이 뭔데.”
“화폐야. 네 세계에는 없었어?”
“…….”
“……아무튼 네가 한 짓은 범죄야. 당장 이분께 사과드려.”
“왜?”
“왜냐니, 그건.”
“이자가 맛보고 가라고 해서 먹은 것뿐이야.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에단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 표정에서 악의는 찾을 수 없었다.
“너…….”
입술을 달싹이려던 은하가 도로 닫았다. 번뜩 이전의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친 탓이었다.
‘신시우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전에 은하는 현대의 택시비를 착각한 탓에 경찰서에 연행되었던 적이 있었다. 소식을 들은 시우가 뒤늦게 찾아와 택시 기사에게 값을 지불하고 그곳에서 끌고 나와 주었지.
“……하아.”
에단 앞에서 꾹 입을 닫은 은하는 대신 작게 한숨을 쉬었다.
“【───.】”
노점상은 마침 잘 됐다는 듯 은하에게 쪼르륵 다가와 무언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은하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네가 얘 보호자니? 당장 음식값 지불하지 못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쏘리.”
짧게 사과한 은하는 서둘러 주머니를 뒤져 핼쑥한 펭귄 지갑을 꺼냈다.
안에서 나온 것은 백 원짜리 동전 두 개, 오십 원짜리 동전 한 개, 그리고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총 1250원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당시의 시우처럼 척! 하고 값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이 도저히 아니었다.
‘……어쩌지.’
이 1250원이라도 건네는 것이 좋을까. 은하는 펭귄 부리 속 화폐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결심한 듯 그것을 노점상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
몇 초간 눈을 끔뻑이던 노점상이 이내 빽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머리끝까지 화가 뻗친 듯했다.
“【───?】”
“【──.】”
웅성웅성.
시간이 흐르며 주변인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신고를 한 걸까. 저 멀리 경찰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가 인파를 헤집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피해 도망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당장에 에단을 얼싸안고 지붕으로 뛰어올라 누구도 쫓아오지 못하게 달리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건 범죄였다. 에단과는 달리 은하에게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었다. 어쨌든 에단은 무전취식을 했고, 그를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은 은하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 ───!】”
코앞까지 다가온 경찰은 무어라 말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설마 수갑을 채우려는 걸까. 은하는 결연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데.
“【──?】”
경찰이 꺼내 든 것은 자신의 휴대전화였다. 그것을 내밀며 무어라 말을 한다. 아리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데, 에단이 옆에서 말했다.
“사진 좀 찍어도 되냐는데?”
……사진? 은하는 경찰과 그의 휴대전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현장 증거 사진이라도 남길 심산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왜 에단이 아닌 나를?
은하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이번에는 경찰이 앞주머니에서 펜과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은하에게 내밀었다.
자수서? 혹시 외국인 등록 번호 따위를 묻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에단이 아닌 저에게 내미는 까닭을, 은하는 알 수 없었다.
우선 에단을 통해서 경찰에게 상황 설명을 하는 편이 좋을까? 하지만 무전취식한 것이 명백한 그의 말을, 그들이 과연 얼마나 들어 줄까.
“잠깐…….”
은하가 입술을 달싹이던 때였다.
꾸륵, 꾸르르륵…….
마치 비둘기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굶주린 배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은하는 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너, 배고프니?”
조금 식은 눈을 한 은하는 에단을 힐끔 바라보며 나무라듯 말했다. 지금 이 와중에도 배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이 녀석도 정말 정상은 아니다.
그런데 에단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바람 빠지듯 웃더니 말했다.
“나 아닌데?”
“무슨.”
꾸륵, 꾸르륵…….
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 순간 은하는 깨달았다. 이 소리는, 에단의 배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뒤!’
등 뒤. 정확하게는, 은하 곁에 서 있던 노점상의 뒤편으로부터였다. 은하가 고개를 돌린 것과 노점상이 비명을 지른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노점상의 곁에서 부리를 쩌억 벌리고 있는 괴조(怪鳥).
몬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