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 흑염의 프린세스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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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99 흑염의 프린세스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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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7일째의 변덕
2022.12.29.
대한민국 서울 송파구.
군단 본부 지하 1층, 통칭 ‘제조실’.
입구 앞에 선 녹색 망토의 남자는 쉽사리 문을 열지 못하고 이마를 긁적이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배준환. 대한민국 최고의 소수정예 길드, 군단의 부마스터였다.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준환은 이내 결심한 듯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년의 목소리. 준환은 주춤주춤 문을 열었다.
“마스터.”
딸깍딸깍…….
소총을 만지는 소리가 고요한 정적 위를 걸었다. 준환은 작게 헛기침을 한 뒤, 마스터의 등을 향해 간략히 용건을 전달했다.
“아스가르드의 길드장 ‘아처’가 만나 뵙길 요청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내일 오후 본부를 방문하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내일?”
소총을 만지고 있던 소년이 힐끔 뒤돌아보았다. 귤색 머리카락. 갈색 동그란 눈 아래에 찍힌 작은 눈물점. 준환과 같은 녹색 망토. 군단의 주인 ‘트릭스터’ 송민주였다.
또래에 비해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앳된 모습은 여전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준환의 가슴께밖에 오지 않았던 민주가 이제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컸다는 점.
‘시간이 흘렀으니까.’
자신의 작은 주인을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준환은 다시금 표정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2주 후에 있을 탑 4차 탐색에, 자신들도 함께하고 싶다더군요.”
“왜 하필 우리 쪽에.”
귀찮게. 민주가 쯧, 혀를 찬다.
“지난번 탐색으로 24층도 겨우 돌파했는데 25층은 또 어떨 줄 알고? 하등 쓸모없는 인원을 데려갈 바에야 차라리 우리끼리 가는 편이 훨씬 나아.”
2032년 7월 탑이 등장하고 약 2년이 흘렀다. 그동안 인류는 저 정체불명의 탑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입수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이 선정한 글로벌 랭커 12인만 탑에 입장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계기로, 기존의 S급 헌터들도 입장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로벌 랭커 혹은 S급 헌터가 공략대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탑의 입구조차 열리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면, 공략대에 한 명이라도 ‘자격자’가 포함되어 있으면 몇 명이든 탑에 입장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각성자에 한해서.
따라서 현재 세계 각국의 11개의 탑에는, 각각의 글로벌 랭커 혹은 S급 랭커가 이끄는 11개의 공략대가 주기적으로 탑에 입장해 각 층을 공략하고 있었다.
다만 현재까지도 탑의 꼭대기가 몇 층인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이번에 한국의 공략대가 입장하게 될 25층의 난이도가 얼마나 될지도 예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번에는 얼마나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민주는 굳은 얼굴로 소총을 딸깍대며 생각했다.
24층 토벌전에 진입한 헌터는 총 123인. 그중 돌아온 것은 단 65인뿐이었다. 생존율이 50%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던 것.
그런데도 헌터들이 목숨을 걸고 탑에 입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 있었다.
첫째로는 탑이 인류에게 위협적이기 때문이었다. 저 안에는 몬스터와 함정이 가득했다. 서둘러 클리어 하지 않으면 마치 게이트처럼 폭주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팽배했다.
그리고 둘째. 탑의 자원과 그곳에서 얻게 될 경험치는 헌터에게 있어서 죽음을 불사할 수준이었던 것이다. 탑 안에서는 경험치가 쉽게 쌓여 랭킹을 넘나드는 일도 가능했다.
만일 이번 25층 토벌에 성공한다면? 어떤 보상이 돌아올지 모른다. 물질적으로도, 명예 면에서도 말이다. 아스가르드 길드장 녀석은 그 기회를 놓칠 수 없는 거겠지.
─하지만 그건 걔네 사정이고.
만일 그들이 거기서 죽어 버리면? 그 책임은 공략대를 이끄는 대장에게 오롯이 돌아온다. 물론 법적인 책임을 물을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꿈자리가 사나워서 말이지.’
민주는 약한 녀석들, 정확하게 말하자면 ‘준비도 되지 않은 녀석들’을 이끌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아스가르드, 그쪽도 꽤 간절한 것 같던데요. 나름대로 준비해 온 것이 있으니 우선 만나 뵙고 직접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보나 마나 피규어 같은 걸 준비해 왔겠지. 가서 전해. 웬만한 희귀템들은 싹 다 가지고 있으니 빌붙으려거든 딴 데 가서 붙으라고.”
민주는 툭 내뱉듯 빈정대고는 해당 화제에 대해 그만 관심을 꺼 버렸다.
민주가 피규어에 관심을 끊은 지, 정확히는 피규어에 손을 대지 않은 지도 벌써 2년이었다.
‘마스터. 이것들은 전부 치워 버릴까요?’
대청소 날, 패밀리 중 하나인 수현이 민주에게 물었다.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다면, 자리만 차지하는 그것들을 모조리 치워 버릴 작정인 듯했다.
‘안 돼.’
그러나 민주는 그런 그녀를 저지했다.
‘누나랑 같이 만들기로 약속한 것들이란 말이야.’
─라고 말이다.
“그리고…….”
스르륵.
만지작대던 소총을 내려 둔 민주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면에 걸린 달력을 향해서였다. 준환의 고개 역시 그쪽을 향해 함께 돌아간다.
“내일은 안 돼. 추모식이거든.”
“아.”
무어라 말을 하려던 준환은 ‘추모식’이라는 단어에 얼른 입을 닫았다. 그렇군. 내일이 벌써…….
“취소해 두겠습니다.”
준환은 더 이상 군말을 붙이지 않고 그리 말했다.
내일은 국립 서울 현충원에서 헌터 추모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남해안 게이트 사건 이후, 민주는 매년 그곳에 들렀다. 남해안 게이트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패밀리 경호, 그리고 은하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달칵달칵.
불현듯 찾아온 정적 속에서, 민주는 내려 두었던 소총을 다시 만지기 시작했다.
준환은 힐끔 곁눈질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손목을 말이다.
‘귤색 소원 팔찌…….’
언젠가 은하가 선물해 주었던 그것이 여전히 그의 손목에 남아 있었다. 이제는 꽤 해져 버렸지만 민주는 단 한 순간도 그 팔찌를 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민주의 손목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준환이 문득 입을 열었다.
“랭킹 재선별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톡. 허공을 두드리자 준환의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오른다. 톡, 톡톡. 몇 번 더 허공을 더듬자 시야 가득 떠오르는 숫자.
[랭킹 재선별 – 41:56:13]
남은 시간은 약 41시간.
‘랭킹 재선별’이란 말 그대로 시스템이 글로벌 상위 12인의 랭커를 재선별하는 것이었다.
시스템에 의한 랭킹 재선별은 보통 6개월마다 한 번씩 진행되곤 했는데, 이번이 아마 다섯 번째일 것이다.
세간에는 랭킹 선별 기준에 대해서 많은 억측과 추측이 난무했다.
랭킹은 단순히 등급이나 공격성을 기준으로 매겨지는 것은 아닌 듯했다. 글로벌 랭킹 5위에 등극한 이탈리아 출신 헌터 ‘뮤턴트’의 경우, 무려 S급도 A급도 아닌 B급 헌터였다. 그런 그가 5위에 등극한 것이다.
혹자는 지금까지 헌터로 활동하며 쌓은 경험치가 토대일 것이라고 주장했고, 혹자는 단순히 전투력, 혹자는 기계로는 읽을 수 없는 잠재력에 의해 랭킹이 정해지는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 중 그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자는 누구도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단 한 번도 가장 최상위, 랭킹 1위 헌터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는 것.
“이번에도 1위는 그분일까요.”
──흑염의 프린세스.
2031년 겨울, 남해안 언노운 게이트에서 전사한, 바로 그녀였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사자(死者)인 그녀가 다섯 번의 재선별 동안 1위 자리를 보란 듯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말이다.
그녀가 사실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었다. 그저 단순한 오류라고 주장하는 자도 있었다.
일부는 흑염의 프린세스에 관련한 괴담을 언급하며 몸서리를 쳤다. 최근 줄줄이 이어지는 흑염의 프린세스 목격담이 주장에 더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당연하지.”
달칵.
소총을 내려 둔 민주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 누나는 누구한테도 안 져.”
빙긋, 민주가 웃었다.
몇 년 전, 언노운 게이트에서 심한 부상을 입은 민주는 죽다 살아났다. 유명한 의사도,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치유 헌터도, 그를 살리기는 힘들 것이라 진단했다.
그러나 누나는, 은하는 끝까지 민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주었다.
그리하여 민주는 다시 눈을 떴다.
그러니 이번엔 민주 차례였다. 기다릴 것이다. 은하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러네요.”
민주의 미소 앞에서, 준환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따라 웃었다.
“유라 씨…… 아니, 은하 씨라면 언젠가 짠 하고 나타나서 우릴 놀라게 할 것 같습니다.”
“응.”
소총을 내려 둔 민주는 자신의 손목을 감싸며 배시시 웃었다.
“정말 그럴 것 같다.”
때는 2034년 11월.
은하가 없는 세 번째 겨울이었다.
* * *
“헌터?”
스르륵 턱을 든 에단이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양털처럼 복슬복슬한 분홍색 머리카락이 속눈썹 위로 흔들린다.
타닥타닥…….
흑염에 고깃덩이를 구우며 은하가 답했다.
“그래. 헌터.”
“그게 뭔데?”
“내 직업이 뭐냐고 물었잖아. 난 몬스터…… 괴물을 사냥하는 일을 해.”
“아하.”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라는 직업에 대해 모르는 것을 보아하니, 역시 그는 은하가 있던 세상의 주민이 아닌 듯했다.
“괴물을 죽이는 사람은 다 헌터라고 불러? 나도 사냥을 좋아하는데, 그럼 나도 헌터려나.”
“달라. 괴물을 죽이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야.”
은하는 손바닥 위에 피워 낸 흑염을 거두며 답했다.
“괴물을 죽여서 사람을 구하는 일. 그게 헌터야.”
“그 헌터라는 사람들은 다 너 같아?”
“무슨 소리야?”
은하가 힐끔 시선을 들었다.
“…….”
“…….”
의미를 알 수 없는 침묵이 잠시 둘 사이를 스쳤다.
“다른 이야기도 해 줘. 아무거나 좋아.”
에단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결국 그의 진짜 말뜻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이후에도 은하는 그에게 은하가 살던 세상의 이야기를 여러 가지 들려주었다. 에단은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은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경청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남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그래, 전화기가 있으니까.”
전화기? 에단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그 모습은 얼핏 보면 정말 어리고 순진한 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원래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굳이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내서 에단에게 보여 주기까지 한 까닭은 아무래도 그 탓이었다.
“그게 있으면 능력이나 권능이 없어도 가능하다고?”
“그렇지. 누구나 가능해.”
에단의 반응이 좋아서였을까.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던 은하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더니 슬쩍 전원을 켰다.
‘배터리를 아끼려고 꺼 둔 상태였지만 잠시는 괜찮겠지.’
은하는 남은 배터리 잔량을 확인했다. 약 4%. 켜지긴 켜지는구나. 전원이 켜진 것을 확인한 은하는 그것을 다시 에단 앞에 슥 내밀었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서 보관할 수도 있어.”
“사진?”
에단의 붉은 눈이 휴대전화 액정에 닿았다.
“어라, 이거 너네.”
그러고는 눈매를 활짝 휘며 말했다.
“너 언제 여기 들어갔어?”
“들어간 게 아니라 사진을 찍은 거야.”
“옆에는 누구야?”
“옆에는…….”
은하도 에단을 따라 휴대전화 액정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제 품에 쏙 안긴, 귤색 머리의 작은 소년. 그 곁에 선 녹색 망토의 무리들. 그리고 그들 중앙에 서서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는, 나.
은하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패밀리.”
이후 은하는 손가락으로 액정을 쓸어 넘기며 에단에게 다른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에게 보여 주었다기보다는 은하가 보았다는 것이 정확했다.
“이건, 예전에 내가 잠시 맡고 있었던 강아지. 이름은 휴지.”
“못생겼네.”
“…….”
평소에 휴대전화를 잘 만지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이렇듯 휴대전화 앨범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장의 사진에서 은하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이건 누구야?”
액정을 응시하던 에단이 물었다.
사진에 담겨 있는 건 은하와 브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제휘, 그리고 그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인상을 팍 쓰고 있는 시우였다.
언젠가 제휘의 요구로 셋이서 함께 찍었던 사진이었다. 장소는 은하의 오피스텔.
끝까지 싫다고 고집을 피우던 시우는 ‘대표님은 이 헌터님과 사진을 찍기가 그렇게나 싫으신 건가요?’라는 발언에 결국 고집을 꺾었더랬지.
그럼에도 쑥스러웠던 건지 미간에 팍 주름을 쓰고 있는 것이, 은하의 눈에는 우스웠다.
그리고 그 후에는…….
‘이 헌터님, 보정은 안 해도 되죠? 사진 바로 톡으로 보내 드릴게요.’
‘……나는.’
‘네? 아, 아아. 대표님도 필요하세요? 진즉 말씀하시지. 전 필요 없으신 줄 알고.’
‘말이 길군.’
‘죄송합니닷!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닷!’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은하는 저도 모르게 액정에 손을 가져갔다. 느릿하게 액정을 쓸자, 손가락 끝에 차갑게 식은 감촉이 닿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들이 현대에서의 가족이었던 것 같다.
갈 곳 없는 은하에게 집을 제공하고, 밥을 주고, 옷을 사 주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은하를 대신해 그 책임을 져 주기도 하고…….
그런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던 적이 있었던가.
또한 그럴 기회가 앞으로 과연 있을 것인가.
“뭐 해?”
불쑥, 에단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그제야 은하는 에단이 자신을 이상하단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하는 액정 위의 손가락을 치워 버리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쑥 집어넣었다.
“아무것도 아냐.”
자, 먹어. 은하는 그 대신 그에게 잘 구워진 고깃덩이를 건넸다. 에단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눈매를 휘며 웃었다.
“왜 오늘은 안 먹여 줘?”
“…….”
“봐, 여기 피.”
에단은 보란 듯이 자신의 손바닥을 향해 턱짓했다. 그의 말대로, 한동안 멎었던 출혈이 다시금 이어지고 있었다.
“아야, 아파…….”
“엄살 피우지 말고 네가 알아서─.”
──먹어.
그렇게 말을 하려던 찰나, 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작게 한숨을 쉰 은하는 결국 고기를 찢어 그의 입에 가져다주었다.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즐거운 듯한 미소를 띠며 에단이 말했다. 은하는 그 미소에 따로 화답하지 않고, 기계처럼 고기를 찢어 그의 입에 날라 주었다.
그렇게 주는 대로 척척 고기를 받아먹던 에단이 문득 입을 열었다.
“있잖아.”
“삼키고 말해.”
의외로 꽤 말은 잘 듣는다. 에단은 꿀꺽 고기를 삼킨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있잖아. 아마 오늘이 7일째지?”
“나도 모르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은하는 다음 고기를 찢으며 단조로이 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야?”
“뭐가.”
“말했잖아. 7일째에는 집행자가 찾아올 거라고.”
“찾아오라고 해.”
무심하게 답한 은하가 에단의 입가에 고기를 가져가며 덧붙였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은 아니야. 하지만 죽을 생각도 아니야.”
“…….”
에단은 넙죽 그것을 받아먹지 않고 뚫어져라 은하를 바라보았다. 루비처럼 새빨간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한동안 은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네가 열 번째야.”
문득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에 갇힌 사람 말이야. 첫 번째는 바깥에서 몬스터의 습격을 받고 죽었어. 두 번째 사람도 마찬가지고.”
그에게 내밀었던 고기를 거둔 은하는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에단은 먼 기억을 떠올리듯 허공을 응시하며 말문을 이었다.
“꽤 오래 버텼던 자도 있었지. 키도 덩치도 큰 남자였는데 너처럼 몬스터를 쉽게 상대할 정도로 꽤 강한 자였어.”
“그 사람은 탈출에 성공했어?”
“아니. 강하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 끝은 같더라. 굶어 죽거나, 낙담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어떻게 해서 살아남더라도 ‘집행자’에게 죽거나.”
“너는?”
“나?”
에단이 힐끔 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스르륵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나는 그냥 여기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지. 쟤는 또 언제 죽을까, 어떻게 죽을까, 하고. 보다시피 이곳에는 유흥거리가 하나도 없어서 말이야.”
유흥.
그 단어에 은하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단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였다.
“너는…….”
은하가 무어라 입술을 달싹이던 순간이었다.
에단이 고개를 푹 숙여, 은하의 손에 들려 있던 고기를 덥석 물었다. 핏기가 어린 고깃덩이를 입에 문 채, 에단은 붉은 시선만을 들어 은하를 응시했다.
“그런데 너는 살아 있는 편이 재미있을 것 같다.”
“무슨.”
“말 그대로 그런 의미.”
음, 맛있다. 에단은 꿀꺽 고깃덩이를 삼키고 빙긋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어.”
쿠우우우웅─!
미궁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지진 속, 에단이 속삭이듯 말했다.
“도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