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50)화 (150/306)


#150. 에단
2022.12.28.


툭.

은하는 새롭게 구운 고깃덩이를 남자의 눈앞에 던졌다.

“먹어.”

은하의 말에 남자의 새빨간 시선이 도르륵 떨어져 고깃덩이에 닿았다.

방금 그것은 마치 우리에 갇힌 짐승에게 먹이를 던져 주는 듯한 행위였다. 그러나 남자는 조금의 불쾌함도 내비치지 않고 그것을 기껍게 받아먹었다. 오히려.

“이것보다 조금 덜 익혀도 좋을 것 같은데.”

“…….”

조금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자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냥 해 본 말이야.”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처박고 고깃덩이를 입 속으로 우걱우걱 쑤셔 넣기 시작했다.

‘이걸 내게 줘도 알려 줄 건 없어.’

‘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 일이 있었던 이후, 은하는 그에게 종종…… 아니 자주 고기를 가져다주었다.

남자는 정말 몇 년은 굶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없었다.

은하는 먹고 먹어도 부족하다는 듯 끝도 없이 입으로 고기를 욱여넣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툭, 그의 눈앞에 또 한 점의 고기를 던져 주었다. 그것은 은하가 손에 들고 있던, 그녀 몫의 고기였다.

“……?”

고깃덩이를 입 속으로 욱여넣던 그가 스르륵 시선을 들었다. 핏물처럼 새빨간 눈에 의문이 가득했다.

은하는 특유의 담백한 어조로 짧게 말했다.

“잘 먹길래.”

중얼거리는 듯 작은 목소리.

남자는 물끄러미 은하와 눈앞에 새로이 던져진 고기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은하보다 훨씬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맙다.”

“…….”

이번에는 은하의 눈빛이 묘해졌다.

이 남자를 오래 본 것은 아니었으나,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하루, 그리고 이틀……. 시간은 계속하여 흘러갔다. 물론 시계가 없는 관계로 확실치는 않았지만 체감이 그랬다.

“자.”

툭.

오늘도 역시 그에게 적당히 고깃덩이를 던져 준 은하는 주변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이번에도 수확은 전무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허송세월을 보내야 하는 걸까. 빨리 탈출에 대한 열쇠를 찾아야 하는데…….

지치고 피로한 기분으로 스르륵 눈꺼풀을 감으려던 찰나였다.

“……읏.”

가까운 곳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으려던 은하가 도로 눈꺼풀을 들어 올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으…….”

남자는 무릎 아래에 던져진 고깃덩이를 먹기 위해 있는 힘껏 목과 허리를 구부린 상태였다.

평소라면 허겁지겁 그것을 입에 쑤셔 넣었을 그가, 웬일인지 괴로운 신음을 흘리며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빤히 살피던 은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의 손에 박힌 대못, 정확하게는 손바닥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철철 흘러나오는 새빨간 피를 말이다.

‘출혈이 멎질 않네.’

그가 언제부터 이곳에 저러고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꽤 시간이 흘렀을 것은 분명했다. 왜인지 모르지만 손바닥에 구멍이 뚫렸는데도 출혈은 없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피가 멎은 상태였다.

그런데 마치 그럴 시간이 됐다는 양 피가 다시금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대못을 억지로 빼내지 않는 이상 다시 멈추긴 하겠지만…….’

은하의 새까만 눈이 그에게 고정됐다.

남자는 괴로운 듯 몸을 비틀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얀 피부가 점점 더 창백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남자는 무릎 아래 던져진 고기를 먹겠노라고 안간힘을 써 가며 몸을 있는 대로 비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늘 개가 밥그릇에 코를 박고 사료를 먹듯, 그렇게 고깃덩이를 입에 쑤셔 넣곤 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양 팔목과 발목에는 굵은 사슬이 매달려 있었고, 손바닥에는 대못이 박혀 있으니 일반적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은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아래에 놓여 있던 고깃덩이에 손을 뻗어 그것을 주워 들었다.

남자가 은하를 향해 스르륵 시선을 들어 올렸다. 무슨 짓이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설마 줬던 것을 뺏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의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은하는 그런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손에 쥔 고깃덩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찢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의 입 앞에 슥 내밀었다.

“…….”

“…….”

둘 사이에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남자는 화등잔만 해진 눈을 끔뻑이며 은하를 쳐다보았다.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아니, 당황한 걸까.

한참의 침묵 끝에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너…… 읍.”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은하는 그의 입안에 찢은 고기를 쏙 넣어 버렸다.

남자의 눈이 커지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 되었다. 워낙 피부가 하얀 탓에, 그의 귀 끝이 빨갛게 번지는 것이 눈에 확 띄었다.

은하는 그것을 못 본 체하며, 손에 들고 있던 고기를 다시 먹기 좋은 크기로 찢었다.

“대체…… 읍.”

그리고 또 한 번 그의 입에 쏙 집어넣었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남자는, 몇 번의 반복된 행위 끝에 묵묵히 그것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아기 새 같네.’

그의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유였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 마스터. 아~ 하세요.’

식사를 할 때마다 민주에게 숟가락을 들이밀던 준환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찌익.

은하는 다음 고기를 찢으며 군단 패밀리에 대해 생각했다.

아래로 내리깔린 그녀의 새까만 속눈썹이 희미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눈매가 가느다랗게 접혔다.

물론 은하는 군단 패밀리를 떠올리는 자신이 그런 식으로 웃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

남자의 새빨간 눈은 고기를 목구멍 뒤로 넘기는 그 순간까지도, 은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찌익, 하고 고기를 찢는 소리와 그것을 꼭꼭 씹어 삼키는 소리만이 고요한 미궁 안에 감돌았다.

끝이 없을 줄로만 알았던 정적 끝에,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단.”

문득 남자가 말했다.

“내 이름. 에단.”

……갑자기?

은하는 뜬금없는 자기소개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아직까지도 새빨간 그의 귀가 눈에 들어왔다.

은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픽, 하고 작게 웃으며 답했다.

“나는 은하.”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차은하야.”

은하…….

에단이 중얼거리듯 그녀의 이름을 되뇌었다.

이후 두 사람의 대화는 또다시 단절되었다. 그러나 참 신기하게도, 그 침묵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 * *

그와의 대화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밥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 은하가 그에게 고깃덩이를 던져 주는 횟수가 늘수록 그가 은하에게 말을 걸어오는 횟수 역시 늘어갔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찌하여 이런 꼴로 묶여 있는 것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그러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은하 역시 그러한 걸 구태여 물어보는 일도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알맹이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하여 흘렀다.

퍼어어엉─!

지하 미궁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거센 폭발음. 미궁 내벽을 덮친 은하의 흑염이었다.

은하는 틈이 날 때마다 벽에 흑염을 쏘아 댔다. 반복적으로 같은 벽을 공격하다 보면 언젠가는 허물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눈앞의 벽은, 야속하게도 흠집 하나 가지 않았다. 이번에도 말이다.

“너, 아직도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거야?”

곁에서 들려오는 특유의 잠결 섞인 목소리. 에단이었다.

한차례 식사를 마친 그는 단잠에 빠져 있다가 방금 전 굉음에 눈을 뜬 듯했다.

“……당연한 말을.”

낮게 읊조린 은하는 다시 한번 내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퍼어어엉─!

또 한 번의 폭발.

퍼어엉─! 펑! 퍼버벙!

두 번, 세 번, 네 번.

몇 번을 반복해도 벽은 꿈쩍도 않는다.

“하아, 하아…….”

은하의 어깨가 거칠게 오르락내리락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과한 공격을 반복한 탓이었다.

질끈. 은하가 주먹을 쥐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어.’

남해안 게이트에 갇힌 시간. ‘문’을 넘어 아스트를 만나고 신전에서 보낸 시간. 그리고 이 미궁에 갇힌 뒤 출구를 찾느라 보낸 시간. 모두 합하면 그것이 며칠일지 혹은 몇 주일지 알 수 없다.

바깥은 지금도 시간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곳과는 다른 속도로. 게다가.

‘곧 ‘지구’로의 통로가 생길 겁니다. 당신이 열고 온 그런 문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통로가 말이죠.’

아스트가 했던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은하는 줄곧 생각해 왔다.

이 공간 자체가 지구와 이어진다는 소리인가?

만일 은하의 예상이 맞다면 아스트 같은 존재들이 지구인들과 한데 섞이게 된다는 소리일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위험해 보이는 존재가 말이다.

만일 아스트가 은하에게 그러했듯 다른 인간을 공격한다면? 또한 아스트 같은 존재가 비단 그 한 명뿐만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지? 그 ‘통로’라는 것은 어째서, 언제 지구에 나타나는 것이지?

──지금, 바깥의 상황은?

“…….”

은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순식간에 은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을 경계로 사라져 버린 고양이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군대리아를 나눠 먹은 군단의 패밀리들.

산더미처럼 쌓인 맥주 캔을 치우면서도 늘 양손 가득 수제 반찬을 챙겨 오던 제휘.

언니, 언니 하며 귀찮을 정도로 저를 쫓아다니던 아연.

서투른 태도였지만 늘 은하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던 시우.

그리고……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보았던, 이준의 그 얼굴까지도.

그 수많은 인연이 은하의 머릿속을, 가슴을 스쳐 지나간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은하의 가설이자 추측일 뿐이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스트에게 물어보는 것이겠지만, 그러려면 그를 다시 만나야만 했다. 빨리 이곳을 나가서, 다시 한번 말이다.

“그 검은 불꽃─.”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에단이 문득 입술을 달싹였다.

“……아니다.”

그러다가 결국 다시 입을 닫고 다른 것을 물었다.

“너, 이 미궁에 온 지 얼마나 됐어?”

“아마 5일 정도는 된 것 같은데.”

물론 체감상의 이야기였다.

에단은 빤히 은하를 쳐다보다가 휙,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툭 내뱉듯 말했다.

“그럼 앞으로 이틀 남았네.”

“이틀?”

“7일마다 ‘집행자’가 오거든. 네가 이곳에 온 지 5일째가 맞다면 앞으로 이틀 남은 거지.”

“그 ‘집행자’라는 건 아스트의 부하인가?”

“뭐 그렇지.”

남자는 고기를 뜯으며 태연히 답했다. 아까 먹다 남은 그것이었다.

‘이틀…….’

은하는 그가 했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분명 에단은 방금 무언가 힌트를 준 것이 틀림없었다.

‘너, 절대로 여기서 못 나가.’

단언하듯 그렇게 말을 했던 이유가 저것이었던 걸까. 7일 후에 ‘집행자’가 온다면 그의 손에 죽을 거라서?

──아니, 절대.

은하는 두 주먹을 꾹 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죽을 생각은 없었다. 물론 영영 이곳에 갇혀 있을 생각도 추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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