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43)화 (143/306)


#143. 엇갈리는
2022.12.21.


대한민국 남해안 해역에 위치한 작은 섬, 대병풍도.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초조한 낯빛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이가 있었으니,

‘아직일까?’

전(前) 실버문 매니지먼트 사원이자 이유라 헌터의 개인 매니저 박제휘였다.

그의 시선은 오롯이 섬 입구에…… 아니 정확히는 일렁이는 검은 소용돌이, 언노운 게이트 입구에 향해 있었다.

입구 주변으로 넓게 진을 친 협회 요원들은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삑! 삐익!

호루라기 소리, 그리고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요원들의 목소리가 시끄러웠다.

“물러서십시오! 이곳은 위험합니다!”

“아니,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온 거야? 이거 기밀 작전 아니었어?”

남해안 게이트 진입 당시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던 그들은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다. 방송국, 신문사 할 것 없이 몰려든 기자들이 찰칵찰칵 플래시를 밝혀 대고, 헌터인지 일반인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많은 사람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현 상황이 말이다.

두두두두…….

급기야 머리 위로는 아나운서를 태운 헬리콥터가 몇 대씩 날아다니기까지 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KBX, SBX, MBX 대한민국 3사 방송국 마크. 심지어 그 뒤로는 유명 외국 방송국들 하며, 세계 헌터 TV 채널 GHB(Global Hunter Broadcasting)의 것도 섞여 있는 듯했다.

당최 이게 무슨 일일까. 그들은 어떻게 알고 이곳을 찾아왔으며, 무슨 수로 여기까지 도달한 것일까.

내부로 진입한 500명의 헌터들 중 온라인 네트워크에 관련한 고유 능력을 가진 자가 있고, 그의 또 하나의 직업은 BJ였으며, 그가 제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내부 상황을 바깥에 중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후에나 알게 된 일이었다.

어쨌든 지금 협회 요원들은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여 비각성자들을 게이트 입구로부터 멀찍이 떨어트려 놓는 것이 임무였다.

파직, 파지직…….

게이트 입구 주변으로 튀기던 검은 스파크가 점차 거세졌다. 약 10분 전부터 이어진 현상이었다. 이것이 승전보일지, 비보일지는 두고 봐야 알 일.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걱정 가득한 눈으로 게이트 입구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제휘는 앞주머니를 뒤적여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특종에 눈이 먼 기자들이 중간중간 그를 치고 지나갔으나 개의치 않았다.

제휘는 액정 안에서 유유히 회전하는 모래시계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여전히 방송은 멈추어 있는 듯했다.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채 다시 시선을 들어 게이트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오빠, 그거 봤어?’

그의 여동생 제림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봤냐니, 뭘?’

‘혀기월드 방송 말이야. 안 봤으면 지금 빨리 한번 봐 봐.’

‘무슨 방송? 나 인방 같은 거 안 보는 거 알잖아. 오빠 일한다, 좀 이따 전화할게. 끊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 BJ가 지금 남해안 언노운 게이트 중계하고 있다니까? 완전 난리 났어.’

‘언노운 게이트에서 방송을 틀었다고?’

‘그렇다니까. 거기에 그때 그 헌터 언니랑 오빠 회사의 그 잘생긴 사람도 나왔어.’

아마 제림은 시우를 말하는 걸 테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제림의 목소리가 한층 고조되었다.

‘헐, 지금 시청자 수 300만 명 넘었는데? 완전 역대급.’

이후 전화를 끊은 제휘는 곧장 방송 어플을 틀었다. 해당 BJ 명을 검색할 필요도 없었다. 메인 페이지 가장 상단에 떡하니 있었으니까.

「《LIVE》 협회의 비밀 작전?! 남해안 언노운 게이트 직접 참여해 봤습니다.」

방송을 확인한 제휘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실버문 매니지먼트 소유의 헬기를 한 대쯤 빌리는 것은 그에게 간단한 일이었다.

허가 없이 사용한 것을 안 대표님께서 나중에 쓴소리를 뱉을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혀기월드 방송에서 확인한 남해안 게이트 상황이 여간 좋지 않았던 것.

심지어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 것인지, 제휘가 헬기로 남해안으로 이동하던 도중 방송이 끊겼다. 화면에 모래시계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보아 BJ가 방송을 종료한 것은 아닌 듯했다. 말 그대로 수신이 끊겨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현재.

남해안 대병풍도에 도착한 제휘는 애타는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되는데. 아니, 아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헌터님과 신 대표님이시잖아. 별일이야 있겠어?’

하지만. 그래도. 에이, 설마. 아니, 혹시?

제휘는 일분일초가 다르게 늙어 갔다.

그 와중에도 협회 요원들과 신고를 받고 뒤늦게 출동한 해안 경찰들은 주변을 둘러싼 인파를 진압용 합금 방패로 밀어 대며 안전거리를 억지로 유지하고 있었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던 밀고 당기기의 싸움은, 돌연 들려온 한 사람의 외침으로 인해 일시 종료되었다.

“저길 봐! 사람이!”

번쩍! 우우우우웅─

사납게 튀기던 검은 스파크가 눈부신 빛과 함께 멎어 버리더니 드디어 게이트 입구가 개방된 것이었다.

한 명, 두 명, 세 명.

스무 명, 서른 명, 마흔 명.

많은 인원이 차례로 게이트 입구로 빠져나왔다. 대부분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큰 외상을 입은 사람은 극히 소수인 듯했다.

따라서 바깥 인원은 예상했다. 그들은 승리하고 돌아온 것이라고 말이다.

휘이익!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었다. 폭죽 소리가 들려온 것 같기도 했다.

펑! 퍼버벙!

공중을 날아다니던 헬기에서 주르륵 플래카드를 펼쳐 아래로 내려보냈다. 축, 무사 귀환. 우리들의 영웅이시여! 빨주노초파남보 화려한 문장은 그러한 내용이었다.

이윽고.

“녹색 망토다!”

“오오! 트릭스터! 심지어 군단 멤버 전원 다 모여 있어!”

귀가 멀도록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급 헌터 트릭스터와 그의 패밀리 6인도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 괴도도 있는데?”

혀기월드의 방송으로 얼굴과 이명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버린 탓에, 아연을 알아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아연과 민주는 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인파에 적잖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잠깐, 잠깐만요! 닥터 플랜트와 제천대성은요?! 마에스트로는 어떻게 되었죠?”

“얼굴 없는 S급 백랑이 작전에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에 대해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괴도님, 그동안 활동이 없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신 데에는 이유가 있을까요!”

수많은 기자가 피라미 떼처럼 달려들었다.

아연은 항공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기자들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도 칼로 찔러 죽여 버릴 듯한 기세. 농담 하나 섞지 않고 정말 그랬다.

그녀의 앞에서 주춤대던 기자들은 이번에는 민주를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나.

처억!

“비키십시오.”

6인의 군단에 의해 트릭스터와는 대화조차 나누기 힘들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에 포기한다면 대한민국 기자라 할 수 없었다.

“잠시만요, 여기 좀 봐 주세요!”

“혹시 질문 한 가지만 해도 되겠습니까?”

꿩 대신 닭이라고, 그들은 인터뷰에 응해 줄 다른 헌터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슈우우─

섬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던 검은 소용돌이가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집 한 채 정도의 크기가 되었을 때.

“…….”

“…….”

마지막 복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에스트로. 이어서 늑대 길드의 검은 가면 이하균과─.

‘도련님!’

시우였다.

세 사람의 등장에, 시끌벅적 떠들어 대던 기자들이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막은 듯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그리고.

슈르르륵…….

점차 줄어들던 검은 소용돌이는 이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닫혔다. 언노운 게이트가.

──정말로, 그들은 성공한 것이었다.

그곳의 수많은 사람들은 단지 그렇게 여겼다. 한 헌터가 내부에서 제 몸을 불살라 게이트 전체를 태워 버렸으리라고는, 아직은 꿈에도 모를 테니까.

어쩌면 게이트 리셋 작업이 완료되며 출입구가 닫혔을 뿐, 언노운 게이트는 공간의 틈새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즉 그들은 ‘정말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와아아아아!”

그러나 상세한 사정을 알 리가 없는 기자들과 협회 요원들은 귀를 찌르는 듯한 함성을 내질렀다.

원래부터 흥분 상태였던 기자들은 더욱더 자리싸움, 인터뷰 대상 선점에 열을 올렸다. 잠시 잠잠해졌던 플래시 세례가 언제 그랬냐는 듯 번쩍번쩍 연속하여 터졌다.

“마에스트로, 잠시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우글우글 몰려드는 기자들.

그러나 이준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터벅터벅 걸어 그들을 지나쳤다.

“잠시만요, 마에스트…… 읏.”

끈질기게 그를 쫓던 한 기자가 헛숨을 들이켰다.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세워진 눈매. 그 반면 저를 향한 잿빛 눈동자에는 작은 생기조차 들어 있지 않았다.

“…….”

또한 이준을 둘러싸고 있는 그 기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압박이었다.

움츠러든 기자들은 스리슬쩍 대상을 바꾸었다. 마에스트로 뒤에 서 있던 후드 티의 청년을 향해서였다.

“부, 불안에 떨고 있었을 남해안 지역 주민 여러분과 시청자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 청년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방송을 시청하던 일부 네티즌들은 그가 얼음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며, 그의 정체를 ‘얼굴 없는 S급’ 백랑이라 주장했던 것이다.

현재도 인터넷은 그 이야기로 뜨겁게 달구어진 상태.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또한 특종 중 특종이었다.

찰칵! 찰칵!

눈이 멀 정도로 밝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도 시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고 있을 뿐.

“일각에서는 백랑이 나타났다고 환호하고 있는데요, 혹시 그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

“역사상 최대 규모의 언노운 게이트를 토벌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

“닥터 플랜트와 제천대성이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그러나 이쪽도 반응은 매한가지였다. 이 후드 티의 청년 역시 인터뷰에 어울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기자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지나쳐 간 트릭스터나 괴도도 그랬다. 기껏 토벌 작전에 성공하고 돌아왔으면서 죽을상을 하고 있는 그들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 분이 마지막으로 출입구에서 빠져나오셨는데, 그럼 이 언노운 게이트는 여기 세 분께서 닫으신 겁니까?”

한 기자가 시우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드디어, 밀랍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던 그에게서 이렇다 할 만한 반응이 돌아왔다.

“아니요.”

찌릿.

푸른 눈이 날카롭게 올라갔다.

“이 게이트를 닫은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그, 그럼…….”

기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질문을 던진 기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시우는 핏줄이 돋아날 만큼 세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흑염의 프린세스.”

사아아─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금 이 자리로 우리를 탈출시킨 사람은 1세대 헌터, 차은하입니다.”

혀기월드의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던 자는 그 이명을 알았다. 흑염의 프린세스. 그녀가 활약하는 장면이 그대로 드러났으니 말이다.

그런데…… 1세대 헌터 차은하라니.

동일 인물일까? 메모지 위로 열심히 펜을 움직여 가던 한 기자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 있죠?”

“1세대 헌터라는 말씀은, 격변의 시대에 활동했던 최초의 헌터를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습니까?”

휙.

시우는 그들의 질문에 더 이상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새롭게 던져진 떡밥, 특종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염의 프린세스! 차은하 헌터를 찾습니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기자들은 여기저기 둘러보며 외쳐 댔다.

제휘 역시 마찬가지. 대표님이 무사 귀환한 것을 확인하였으니 이제 이 헌터님을 찾아야 하는데…….

‘뭐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함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제휘는 기자들 너머로 유유히 사라지는 시우를 뒤로한 채,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뭉게구름처럼 몰려 있는 사람들을 헤쳐 지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헌터님! 이유라 헌터니임!”

──그러나 그는, 끝내 어디에서도 그녀를 찾아내지 못했다.

* * *

2031년 11월.

BJ 혀기월드의 방송을 통해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남해안 게이트의 전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남해안 게이트에 투입된 인원은 자그마치 약 500명. 그중 돌아온 것은 200명이 겨우 넘는 숫자였다.

당시 남해안 게이트 작전에 참여했던 헌터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협회에 출두하였다. 그들은 당시 게이트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진술했다.

닥터 플랜트가 이번 일에 깊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31년 12월.

대한민국 정부와 헌터 협회는 닥터 플랜트의 연구소를 압수 수색하기로 했고, 서울시에 위치한 공식 연구소를 포함해, 경기도 각지에서 자그마치 5개의 연구소를 찾아냈다.

그곳에서 그녀의 일기와 기밀 자료, 그리고 암호가 걸린 USB를 발견한 정부와 협회는 일주일 뒤 그녀가 이끌었던 장미 길드를 강제 해산시켰고, 장미의 간부진 7명 중 6명이 헌터 특례법에 의해 헌터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2032년 1월.

이번 언노운 게이트 사건으로 제천대성을 잃게 된 불멸 길드는 게이트 소멸 직후 차기 마스터가 정해질 때까지 무기한 활동 중지를 선언하였다.

그 뒤 현재까지 이렇다 할 소식을 전해 오지 않은 채 벌써 3개월이 흘렀다.

국내외의 유명 동영상 공유 플래폼에서 흑염의 프린세스 관련 영상이 하나도 빠짐없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할 무렵이었다.

BJ 혀기월드가 스트리밍 및 녹화하였던 남해안 게이트 공략 하이라이트 영상은 물론, 과거 그녀가 출연했던 국내 예능 프로그램 편집 영상까지, 흑염의 프린세스가 등장하는 모든 영상은 인터넷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제는 국내에서 그녀를 모르는 자가 없을 지경.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만큼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헌터였으니 말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헌터는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일반인들도 알고 있기에.

그녀의 위업은 바다를 건너 세계 헌터 기구에까지 닿았다. 그들은 그녀의 넋을 기리어 위인 혹은 영웅급 업적을 이룬 헌터에게만 주어지는 명예 칭호를 은하에게 부여했다.

헌터계의 노벨상. 헌터에게 있어 가장 명예로운 훈장이라 불리는 바로 그 칭호.

──로프티(Lofty).

2032년 1월 말, 대한민국 헌터 역사상 첫 ‘로프티 헌터’의 탄생이었다.

그것은 분명 현안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포츈텔러, 안드레아가 보았던 미래의 일부이긴 했다.

그러나 조금 달랐다. 아무리 세상이 그녀를 영웅시하고 그럴듯한 칭호를 달아 주면 무얼 하나. 당사자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는데.

“후.”

짧게 한숨을 쉰 안드레아는 리모콘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빨간 버튼을 눌러 TV 전원을 켰다.

숨도 쉬기 민망할 정도로 까마득한 정적에 휩싸여 있던 방 안. 딱딱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그나마의 위안이 되어 주었다.

「S급의 부재, 대한민국 전대미문의 위기에 산군이 23년 만에 협회를 방문한다는 소식입니다.」

「은둔 생활을 고집하던 그들이 과연 밖으로 나서게 될지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 헌터 관할 협회 고 총장은 산군과의 회담이 비공개로 진행될 것이라 밝혔──.」

삑.

「한국 헌터계를 대표하는 늑대 길드에서 곧 차기 길드 마스터를 발표한다는 소식에 국민들의 주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늑대의 부길드 마스터 이 씨는 이 점에 대해 아직 정확히 정해진 바가 없으며, 무분별한 루머 생성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을 예고──.」

삑.

「9시 뉴스입니다. 지난 남해안 언노운 게이트에서 200여 명을 탈출을 돕고 희생한, 한국 최초의 로프티 헌터 흑염의 프린세스. 차 씨의 행방을 찾아 달라는 국민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해당 청원 참여 인원은 이틀 만에 500만을 돌파하였습니다. 정부는 해당 청원에 응답하듯 지난 12월 압수 수색하였던 닥터 플랜트의 연구소를 새로운 언노운 게이트 연구소로 증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설기택 기자가 알아보았습니──.」

뚝.

무심한 얼굴로 채널을 돌리던 안드레아는 결국 TV를 끄고 리모콘을 내려 두었다.

힐끔 옆을 바라보자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 요한, 이준이 보였다.

“【저, 요한. 잠깐이라도 눈을 좀 붙이는 게 어때? 벌써 몇 주째 이러고 있잖아.】”

역시나 오늘도 묵묵부답.

소리 없이 한숨을 삼킨 안드레아는 시선을 움직여 이준의 무릎 위 흰 뱀을 응시했다. 미동도 없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 꼭 죽은 것 같았다.

오직 저 뱀만이 현재까지 남해안 언노운 게이트와 연결되어 있는…… 아니, 정확하게는 흑염의 프린세스 차은하와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게이트 입장 때부터 은하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이준이 그녀 주변에 흰 뱀을 심어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일까. 게이트는 이미 닫혔고, 많은 전문가가 그녀의 죽음을 예측하고 있으니.

그럼에도 이준은 저 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3개월 내도록 말이다.

“【현안은.】”

그가 메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안드레아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은하의 행방에 대해서.

오직 그때만이 저 텅 비어 버린 잿빛 눈동자가 잠시나마 움직이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안드레아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없는 이야기를 지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째깍째깍.

무던히 흘러가는 시간. 오직 이준만이 암막 커튼이 쳐진 이 호텔 방에 고여 버린 듯했다.

“【……정 못 자겠다면 뭐라도 먹자. 이러다 정말 죽겠어. S급도 사람이야. 안 먹고 안 자면 죽는다고.】”

촤악.

안드레아는 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며 커튼을 걷었다. 그러나 이준은 미동도 없었다. 도로 커튼을 치란 소리도, 신경 끄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뜨거울 거야.’

“…….”

단지 초점을 잃은 듯한 멍한 눈으로 무릎 위 뱀을 하염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아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만큼 그를 오랫동안 봐 왔으니까.

안드레아는 늘 이준 곁에 있었다. 그가 아직 프라임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달기 전부터 말이다.

사람을 시켜 한국 땅에 있는 묘지를 돌보라 했을 때도, GIA를 형성했을 때도, 캐서린도 모르게 홀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리고…….

경기도 외곽 도시에서 ‘흑염의 프린세스’에게 공격받고 돌아왔을 때에도.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누가, 누가 이런 거야?’

‘……몬스터.’

왼쪽 팔에 피를 철철 흘리며 돌아온 이준은 그렇게 말했다.

‘사람인 척하는, 역겨운 몬스터였다.’

몬스터라니. 게이트에 들어가지도 않은 그가 도대체 어디서 몬스터와 조우했단 말인가. 근처에 게이트 폭주 현상이 있었다는 말도 들은 것이 없었다.

길을 가던 중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인 척하는 몬스터? 그건 대체 어떤 몬스터기에 프라임 헌터인 그에게 이렇게 깊은 상흔을 남겼단 말인가.

그러나 이후 안드레아는 알게 되었다.

그날 이준이 조우했던 몬스터는 ‘흑염의 프린세스’. 한국 헌터들 사이에서 괴담으로 유명한 인간형 몬스터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몬스터가, 이준의 기억 속 ‘그녀’와 아주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준이 그 몬스터에게 깊은 상흔을 입은 것도 납득이 갔다. 쉽게 공격할 수 없었을 테니까.

‘이후 요한은 그 녀석을 쫓아다니며 해치우려 했지만…….’

말 그대로 괴담이라 불릴 정도로 종적을 잡을 수 없는 존재다 보니 그것도 어려웠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진짜 그녀’가 나타나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몬스터와 같은 이명을 쓰고 같은 차림새를 한 그녀를 ‘30년 전의 차은하’로 받아들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던 것일까. 이준은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고 신경 쓰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긴가민가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의 의중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어쨌든.’

안드레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허한 이준의 옆얼굴을 힐끗 살핀 그의 표정이 우울해진다.

이대로라면 요한은 정말 죽어 버릴지도 몰랐다. 어차피 먹지 않겠지만, 안드레아는 그의 옆에 뭐라도 음식을 가져다 놔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캐서린을 시켜 간단한 거로 준비하라 할게.】”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을 캐서린을 찾기 위해 안드레아가 문고리를 잡은 때였다.

쿵!

“【요한?】”

무심코 뒤돌아본 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준이 어쩐 일인지 침대 시트를 향해 덜덜 떨리는 손을 뻗고 있었다.

“【요한?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안드레아의 물음에 이준은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있어.】”

“【뭐?】”

안드레아는 이준의 시선 끝을 따라 천천히 눈길을 옮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버렸다.

3개월 내내 미동도 없던 흰 뱀이,

“【살아, 있어…….】”

아주 작고 희미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1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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