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40)화 (140/306)


#140. 어리석은 남자
2022.12.18.


‘아무도 없군.’

이준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는 커다란 바위가 쓰러져 있었다. 그것은 금이 간 채 바닥에 반쯤 박혀 버린 여신상의 머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은하의 흑염으로 인해 손상되었던 필드가 여신상 주변에서 뻗어져 나온 수십 개의 나뭇가지들로 인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결과 이렇듯 뒤얽힌 미로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로 저 거대한 여신상 역시 부서져 버린 듯했다.

‘나무줄기.’

여신상의 뺨을 송곳처럼 뚫어 버린 굵은 나무줄기.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이준의 눈매가 가늘게 변했다.

이준은 불과 몇십 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선택의 천칭’에서 돌발 퀘스트를 완료한 직후, 이준 역시 시우를 포함한 다른 헌터들처럼 ‘바깥’으로 순간 이동되었다.

순간 이동된 이준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저 거대한 여신상. 그리고─.

‘어머.’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닥터 플랜트 금로제였다. 그녀는 ‘선택의 천칭’에 진입하지 않고 뿌리 부근에 남기를 선택했다. 뿌리에 남은 수백의 부대원들을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선택의 천칭을 지나치지 않고도 여신상 앞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대원들은 어쩌고 당신 혼자 이곳에 있는 거지?’

로제에게 다가간 이준은 단도직입적으로 그리 물었다.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어요.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에 있더군요.’

로제는 조금 머리가 아픈지 자신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기억에 없다는 말인가?’

‘그래요.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 정신을 차려 보면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있거나…….’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계속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인지 그녀는 괴로운 신음을 억누르며 미간을 꾹꾹 눌러 댔다.

그런 그녀의 옆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이준이 높낮이 없는 어조로 물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당신이 보았던 본대 상태는 어땠지? 부상자의 수는?’

‘…….’

그때였다.

이준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로제의 홍채가 언뜻 붉게 물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찰나였다.

‘그들은 무사해요.’

생긋 웃으며 대답하는 로제의 눈동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와 같은 보랏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하지만 이준은 그 찰나의 변화를 분명히 포착한 뒤였다. 그 순간 로제를 휘감았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질적인 기운 역시 말이다.

이준은 그 기운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가 다루는 ‘페로몬’의 그것과 흡사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수상했다. 이준은 느릿하게 턱을 쓸었다.

[12신수 ‘독늪에 숨은 뱀’의 권능 ▶ ‘뱀의 눈’ 활성화. 충성을 약속한 은밀한 존재들은 기꺼이 당신의 눈이 되어 줄 것입니다.]

어떤 광경이 직접적으로 이준의 뇌리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뿌리 부근에 일찍이 숨겨 두었던 뱀이 텔레파시를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신수 뱀의 권능을 이용하면 이렇듯 멀리 있어도 그곳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리 제한이 있고 미리 그 장소에 가서 뱀을 풀어놓아야 하는 등의 조건이 있었지만.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권능을 이용하여 확인한 뿌리 부근의 광경은, 로제의 말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별일이 없다면 수백의 부대원들이 생흡충을 상대하고 있어야 했지만, 웬일인지 그곳에 남아 있는 부대원의 수는 고작해야 100명도 되지 않아 보였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헌터는 바닥에 쓰러진 채 미동도 없었다. 즉 본대는 거의 궤멸 상태에 이른 것.

닥터 플랜트가 거짓말을 한 건가? 만에 하나 그런 것이라면, 그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거짓을 말한 것인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다면, 불게 해야지.

스르륵.

끼고 있던 검은 장갑을 벗은 이준이 실수를 가장하여 그것을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로제는 반사적으로 장갑을 주워 이준에게 내밀었고 이준은 빙긋 웃으며 그것을 건네받았다.

‘고맙군.’

장갑을 건네받는 순간, 그들의 손이 희미하게 스쳤다. 그것이 바로 이준이 노리던 ‘틈’이었다.

페로몬 향만으로 상대에게 걸 수 있는 상태 이상은 고작해야 5분 정도 지속되는 ‘매혹’ 효과뿐이다. 그보다 강력한 ‘지배’ 효과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필요했다.

이걸로 그녀는 ‘지배’를 당해야만 했다.

분명 그랬는데…….

‘별말씀을요.’

눈앞의 로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것이 이준이 로제를 공격한 결정적인 계기였다.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이준은 그녀를 위험 요소라 판단하였고, 따라서 거친 수를 써서라도 그녀가 본성을 드러내게 할 생각이었다. 혹은 강제로라도 포박하거나 말이다.

그러나 이준의 계획은 여신상 앞에 차례로 도착한 시우, 아연 그리고 유환에 의해 저지되고야 말았다.

이후 ‘영면의 제단’을 통해 사라졌던 은하마저 아무 일 없다는 듯 복귀하면서 상황은 더욱더 혼란스러워졌던 것. 결국에는 이렇듯 게이트 내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

이준은 주변을 느릿하게 훑어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이준이 서 있는 곳이 통로와 가깝다는 점이었다. 은하가 직접 뚫고 나타났던, 바로 그 통로였다.

‘네 진짜 이름은 무엇이지? 제단의 수호자는 어째서 너만 공격하지 않았고?’

‘…….’

선택의 천칭에서 몬스터로 몰렸던 은하는 이준의 물음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로써 이준은 확신했다. 저자가 ‘진짜’ 은하일 리가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은하의 모습을 한 가짜, 흑염의 프린세스가 ‘영면의 제단’을 향해 제 발로 걸어갔던 것.

그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심지어 선택의 천칭에서 새하얀 불길과 함께 사라졌던 그녀는 보란 듯이 다시 이준의 앞에 나타났다.

몬스터가 아니었던 걸까.

──혹시, 정말로 은하였던 걸까?

“…….”

퍼뜩 고개를 든 이준은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아니, 그럴 리 없다. 그자가 ‘진짜’ 은하일 리가 없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래야만 했다.

이제 와서 그 판단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괴로워지는 것은 본인뿐일 테니까.

지금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늘 그래 왔듯이.

슈트 자락을 펄럭인 이준은 통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게이트가 머지않아 완전히 무너지리라는 것을 그 역시 예상했다.

게이트 출입구가 활성화되는 상황은 크게 세 가지. 첫째, 보스를 쓰러트린 경우. 둘째, 퀘스트 등으로 게이트가 요구하는 ‘조건’을 달성한 경우. 그리고 셋째, 시스템 손상이나 바이러스, 오류 등 모종의 이유로 인해 게이트가 강제 리셋에 돌입하는 경우.

짐작하건대 현재는 아마도 셋째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게이트는 이미 천장이나 내벽 할 것 없이 큰 손상을 입었으니 높은 확률로 재생을 꾀할 것이 틀림없다.

‘그때가 탈출의 기회다.’

뿌리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가 게이트 출입구가 열리는 순간 부대원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것이 우선이다. 닥터 플랜트를 조사하고 추궁하는 건 그 이후여도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통로에 진입하려던 그때였다.

쿠구궁─

뒤쪽에 있던 거대한 바위가 들려 올라갔다. 조각난 돌가루가 파스스 바닥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이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

불처럼 새빨간 눈동자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바위를 들어 올린 이는 바로 제천대성 유환이었다.

“너…….”

이준을 발견한 유환이 얼굴을 구겼다. 은하를 몬스터로 몰고 간 것도 모자라 로제마저 공격했던 마에스트로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여기서 혼자 무얼 하고 있지?”

유환은 탐색하듯 이준을 바라보며 물었고 이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것도. 나 역시 갑작스럽게 분열된 게이트를 헤매고 있을 뿐이야.”

“로제는, 닥터 플랜트는?”

“나야 모르는 일이지.”

짤막하게 답한 이준은 무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비록 적대적인 눈빛을 하고 있다곤 하나 유환은 아까처럼 이준을 공격하려 들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면 조금은 대화가 가능할 거라 판단한 이준은 그를 향해 말했다.

“제천대성, 그쪽이 닥터 플랜트와 가까운 관계라는 건 알고 있어. 그동안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나?”

“…….”

유환은 이준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으나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이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

“‘지배’와 같은 강력한 정신 조작 스킬에 당한 대상은 보통 공통적인 양상을 보이지. 이를테면 가위로 자른 듯한 단기 기억 상실이라든가.”

“…….”

“스킬을 건 캐스터(Caster)가 어떤 명령을 입력했느냐에 따라 비정상적인 집착이나 집념을 보이기도 해.”

이준이 평소 ‘지배’하고 있는 흰 뱀으로 예를 들자면 이러했다. 상황에 따라 그들에게 내리는 명령은 조금씩 달라졌으나 보통은 한 개체를 주시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만일 그 명령에 따르지 못할 상황이 오는 경우 흰 뱀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폭했다.

명령을 계속 행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했지만 캐스터, 즉 뱀의 주인에 대한 정보를 일체 남기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다.

정신 조작 스킬에 걸린 이들이 고문을 당할 경우 혀를 깨물거나 스스로 목을 베는 것도 따지자면 그런 종류였다. 명령에 대한 집착, 혹은 족쇄.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에 한한 이야기지만.’

만일 이준의 예상대로 로제가 ‘지배’와 같은 정신 조작 스킬에 오염된 것이라면 자폭까지는 아니더라도 자해 혹은 그와 비슷한 이상 행동을 보였을 것이 분명했다.

가까운 자일수록 그런 행동을 눈치채기가 쉽다. 그래서 이준은 생각한 것이다. 제천대성이라면 닥터 플랜트의 변화를 눈치채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대답해라, 제천대성. 그에 대해 넌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식물을 다루는 그녀만큼 나무로 된 이 게이트를 조종하기 쉬운 자는 없을 것이다. 돌이켜 보고 나서야 납득이 가는 지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GIA 소속인 포츈텔러는 현안을 개방하여 미래를 볼 수 있다지만, 닥터 플랜트는 언노운 게이트 연구자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미래를 보는 포츈텔러에 견줄 만큼 정확히 언노운 게이트 출현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런 정보를 가지고도 앞장서서 정부나 협회에 낱낱이 고하지 않은 점도 수상했다. 앞서 잘못된 정보를 거듭하여 전달한 이력 탓이라고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중요한 정보에 대해 입을 닫은 일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알려진 대로 그녀가 정말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자라면 더더욱.

심지어 그녀는 협회에서 모은 네 부대에 만족하지 못하고 따로 복계산 망자의 군락에서 자격시험을 열면서까지 추가 지원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그 망자의 군락은 때마침 던전화가 진행되었고.’

그녀가 정신 조작 스킬에 당했든 그렇지 않든, 정말로 이 남해안 게이트 사건의 내막과 닥터 플랜트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이 모든 것이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마주 보고 선 그들은 멀지도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오랫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그녀는.”

이윽고 오랫동안 침묵하던 유환이 입을 연 순간이었다.

쿠구구궁……!

이준은 잿빛 시선을 위로 올려 천장을 확인했다. 쩌적쩌적 금이 가고 있는 천장은 지금 당장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눈치챘겠지만 이건 게이트 리셋 현상이다. 이곳은 곧 무너지겠지.”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준은 등을 돌렸다.

“뿌리 부근에 있는 부대원들의 상황이 좋지 않아. 출입구가 열리기 전까지 그들과 합류해야 해.”

따라오라는 듯 앞서 걸어가던 이준은 몇 걸음 가다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유환은 이준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등을 돌리고 있었다.

팔소매를 걷은 그는 제 앞길을 막아선 거대한 바위를 단숨에 들어 올리더니,

쾅─!

저 멀리 자갈 던지듯 던져 버렸다. 유환이 그런 행위를 하는 이유에 대해 알 것 같았다.

“내 말을 듣고도 닥터 플랜트를 구하러 가는 건가?”

이준은 그의 등을 바라보며 물었다.

유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다음 바위를 향해 양팔을 뻗을 뿐이었다.

“그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급 헌터가 아니야. 이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더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무사히 이 게이트를 빠져나간다고 해도 난 그녀의 정체를 협회에, 그리고 정부에 알릴 생각이다.”

쿠구구, 콰앙!

두 번째 바위를 집어 던진 유환은 또다시 다른 바위를 향해 양팔을 뻗었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세상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겠지.”

콰앙!

세 번째 바위.

“그럼에도 넌, 그녀를 구할 건가.”

콰앙!

네 번째 바위가 박살 났다.

그토록 거대한 바위가 연속하여 부서진 탓에 주변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상관없다.”

이윽고 눈앞을 가로막는 바위가 모조리 사라진 후에야, 유환은 뒤를 돌아 이준을 바라보았다.

“로제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녀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야. 그녀가 내게 어떤 사람이냐, 그게 더 중요하다.”

유환은 흙먼지 속으로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것이 남에게는 궤변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이 진짜 후회하게 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움직일 뿐이었다.

세상을 지키는 S급 헌터? 모두에게 추앙받는 길드 마스터? 그것들은 모두 그녀가 만들어 준 자리일 뿐 유환이 바란 꿈도, 미래도 아니었다.

진짜 그가 바랐던 것은…….

‘유환.’

단 하나뿐이었다.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한 것인지 자각은 하고 있나?”

팔짱을 낀 채 그를 응시하던 이준이 말했다.

“넌 지금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닥터 플랜트를 구해서 돌아오면 그 후엔 어떡할 셈이지? 나는 분명 말했다. 그녀에 대한 모든 일을 세간에 낱낱이 알릴 거라고. 그때도 너는 그녀를 옹호할 생각인가?”

“그렇다.”

유환은 김이 빠질 정도로 짧고 간결한 답을 내리며 힐끔 뒤돌았다.

“말릴 텐가.”

높낮이 없는 어조. 그러나 이준은 느꼈다. 날카롭게 변한 주변 공기를.

말린다면 공격하겠다. 마치 그 공기는 그런 위협을 담고 있는 듯했다.

이준은 소리 없이 입매를 비틀어 웃었다.

“……굳이.”

게이트가 무너지는 속도로 보아 지금 당장 뿌리로 이동한다면 모를까, 길을 뚫고 닥터 플랜트를 찾은 이후 다시 그녀를 데리고 뿌리 부근까지 복귀할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만일 극악의 확률을 뚫고 그가 닥터 플랜트를 데리고 왔고, 또 무사히 탈출까지 한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모든 것이 밝혀지면, 아무리 제천대성이 옹호한다 한들 닥터 플랜트는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준은 그를 막아서지 않았다. 다만 멀찍이서 멀어지는 유환의 등을 응시하며 중얼거릴 뿐.

“어리석구나, 제천대성.”

이준의 목소리가 닿았던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던 유환이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공에서 두 시선이 마주쳤다.

“…….”

그 순간, 이준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저를 쳐다보고 있는 붉은 눈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어차피 넌 이해하지 못할 거다.”

──정말 어리석은 것은, 네 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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