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99 흑염의 프린세스 (138)화
(138/306)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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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돌아오지 않는 봄
2022.12.16.
과실을 보고 동요하던 로제는 뒤늦게 표정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나는 잘…….”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기는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너덜너덜하게 해어진 옷 사이로, 로제의 새하얀 목덜미가 언뜻 비쳤다.
“…….”
그 순간 은하의 눈빛이 언뜻 달라졌다.
아주 찰나에 불과했지만 은하는 분명히 보았다. 그녀의 목덜미에 위치한 작고 붉은 흉터를.
그것은 화상이나 긁힌 상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은하는 저 흉터와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빨간 점처럼도 보이는─.
‘민주의 오른쪽 목덜미에서 본 것과 똑 닮은 흉터.’
언노운 게이트에서 죽다 살아서 돌아온 민주는 그 알 수 없는 흉터를 가진 채 돌아왔다.
“목에 그거.”
은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로제는 너덜너덜한 가운을 여미며 제 목을 가리려고 들었다. 하지만 은하는 이미 흉터를 확인한 뒤였다.
“민주의 목덜미에 있던 것과 같은 흉터처럼 보이는데.”
민주.
그 이름에 로제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민주! 민주는 어디로 갔죠? 분명 내 부대 근처로 온 것을 봤는데……. 다쳤을지도 몰라요.”
어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말끝을 흐린 로제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기분 탓일까. 로제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그런 그녀를 응시하던 은하의 눈초리 역시 변했다.
연기? 그렇다기에는 너무도 실감 났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은하는 손바닥 위 과실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 과실에 대해서는, 당신은 전혀 연관이 없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될까.”
은하의 말에 주변을 살피고 있던 로제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황금빛 과실. 그것을 바라본 로제의 눈빛이 또다시 변했다. 짧은 사이 몇 번이나 얼굴빛을 바꾸는 로제는 얼핏 보아도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은하는 과실을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럼 이대로 이걸 터뜨려 버려도 상관없다는 거겠군.”
과실에 손힘이 가해질수록 로제의 얼굴에 실금이 번져 가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은하는 로제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며 생각했다.
‘역시.’
그녀는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그녀에게는 ‘무언가’ 있다고.
닥터 플랜트 금로제는 GIA의 포츈텔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남해안 사태를 예측했던 자였다. 물론 오랜 기간 언노운 게이트를 연구했던 덕분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다. 단순히 그것만 가지고 의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은하가 로제로부터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복계산 사건 이후부터였다.
정확하게는, 협회에서 열렸던 간이 출정식에서 로제와 대화를 나눈 이후였다.
‘어떻게 당신은 보스에게 이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거죠?’
다시 생각해 보아도 여러모로 이상한 질문이었다.
수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택의 천칭’에 진입하기 전, 로제는 S급 헌터 중 유일하게 자의로 뿌리에 남겠다고 선언한 자였다.
치유 헌터인 그녀가 부대원들의 전투를 보조하는 것은 얼핏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글쎄, 과연 어떨까.
‘적어도 내가 뿌리 부근에 남아 있었을 땐 부대원의 수가 줄어든 상황이 아니었어.’
즉, 부대원이 하나둘씩 ‘순환의 줄기’로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S급 절반 이상이 ‘선택의 천칭’으로 진입한 이후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은하가 필드를 파괴하려 들자마자 그에 반항하듯 여신상 주변에서 뻗어 나온 나무줄기. 이 게이트가 거대한 나무로 되어 있으니 게이트의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하는 로제, 닥터 플랜트의 고유 능력 또한 ‘식물’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우연일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로제 앞에 과실을 들이밀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실을 마주 본 로제에게서는 분명 ‘반응’이 돌아왔다. 그녀를 자극하면 자극할수록 더더욱.
“그만, 둬…….”
로제가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바로 그 순간.
슈우우욱!
무너진 내벽의 잔해로부터 빠르게 뻗어져 나온 무언가가 과실을 움켜쥐고 있는 은하의 손을 강하게 압박했다. 나무줄기. 조금 전 여신상 주변에서 뻗어 나왔을 때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선배, 손이─.”
시우가 은하를 향해 다가섰다. 그녀의 손목을 휘감고 있는 나무줄기를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게 뭔지 알고 부수겠다는 거죠? 그것만 있으면, 그것만 있으면……!”
옅게 되뇌듯 하던 로제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 비치는 그녀의 눈동자가 형형한 이채를 품고 있었다.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다고 했는데……!”
꽈아악.
나무줄기는 은하의 손목을 으스러트릴 듯 강하게 죄어 왔다. 그러나 은하는 표정 하나 무너트리지 않고 눈앞의 로제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화르륵!
나무줄기는 새까만 불꽃에 의해 화르륵 타올랐다. 압박으로부터 손쉽게 해방된 은하는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누가 그랬지?”
로제 앞에 선 은하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온전한 대화가 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물었다.
“이게 있으면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다고, 누가 그런 말을 했지?”
“…….”
역시나 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로제를 바라보는 은하의 홍채 역시, 이채를 띠기 시작했다.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눈동자. 그리고 그녀의 양어깨 위로 혀를 날름거리듯 일렁이는 검은 불길.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을 뿐이야.’
은하에게 머물러 있던 시우의 푸른 눈길이 서서히 옆으로 옮겨져 갔다.
닥터 플랜트 금로제.
분명했다. 선배는 그녀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늑대 간부들 사이에서 닥터 플랜트에 관한 소문이 나돌았다는 것을 시우는 알고 있었다. 잃어버린 딸을 찾다 지쳐 버린 닥터 플랜트가 정신이 나갔다고 했던가.
그러나 표면적으로 그녀는 매우 제정신이었다. 적어도 시우가 보기에는 그랬다.
닥터 플랜트는 그녀가 이끄는 장미 길드의 치유 헌터들을 데리고 각종 게이트 피해 지역으로 찾아가 자원봉사에 인력과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언노운 게이트 연구에 몰두하며 많은 피해를 사전에 막아 내기도 한, 현 한국 헌터계의 위인과 같은 자였다.
시우의 눈에는 늑대의 부흥에 물불 가리지 않는 귀훈보다는 그녀 쪽이 훨씬 제정신처럼 보였던 것.
만일 로제가 제정신이 아니라면 또 어떤가. 그것은 헌터계에 이렇다 할 감흥이 없는 시우에게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태 그녀에 대해 깊이 신경 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우는 시선을 들어 로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진보랏빛 홍채가 점차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마치 물들어 가듯 선명하게.
“그것만 있으면…… 가능해. 어떤 각성자도 가능하지 못했던 일이, 한국 최고의 치유 헌터도 가능하지 못했던 일이 비로소…….”
시뻘건 눈을 한 로제는 마치 줄줄 주문을 외듯 높낮이 없는 어조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닥터 플랜트의 그러한 낯선 모습을 보고 있자니, 게이트가 무너지기 전 이준이 했던 말이 문득 시우의 뇌리를 스쳤다.
‘아까 난 그녀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내 ‘지배’가 듣질 않더군. 둘 중 하나라는 소리야. 상대가 나보다 더욱 강하거나, 이미 대상이 ‘지배’ 상태에 빠져 있거나.’
만일 그런 거라면 닥터 플랜트는─.
시우의 추측이 거기까지 닿은 순간이었다.
화아악!
은하의 어깨춤에서 타오르던 흑염이 예고도 없이 로제를 향했다.
일직선으로 들이박을 줄로만 알았던 흑염은 휙 하고 로제를 지나쳐 그대로 벽에 콰앙 부딪쳤다.
팟, 팟, 팟!
다시금 피어오르는 검은 불덩이.
그 어떤 주문도 명령도 필요 없었다. 은하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선 채 흑염을 이용하여 천장과 벽을 파괴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만둬! 그런 짓을 한다고 해서 이 게이트는 사라지지 않아!”
로제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고아하고 온유한 평소 분위기 따위 먼지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만둬……!”
그만둬, 그만둬, 그만둬, 그만둬!
찢어질 듯한 절규. 그러나 은하는 멈추지 않았다.
팟, 팟, 팟!
이어서 생성된 또 다른 흑염 구체들은 게이트 내벽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들었다.
나무 구조로 된 필드는 은하의 흑염에 의해 속절없이 타들어 갔다. 퍼붓는 화염 공격에 게이트는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장작이 타들어 가듯 말이다.
“안, 돼…….”
바스러지는 듯한 목소리. 타닥타닥 불씨가 번져 가는 주변 풍경을 망연자실하게 응시하던 로제는 이윽고 자리를 박차고 불길을 향해 뛰어갔다.
“안 돼, 안 돼, 안 돼……!”
그녀는 내벽에 다닥다닥 붙은 새까만 불씨를 잠재우기 위해 걸치고 있던 가운을 벗어 그곳에 덮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소용없었다.
나뭇가지에서 하얀 가운으로 번져 온 불길은 눈 깜짝할 새 그것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거의 다…… 거의 다 됐는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던 로제는 내벽에 붙은 불길 위에 자신의 손을 덮었다. 손이 불길에 닿는 것 따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화상?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화악!
손으로 완벽한 진화가 되지 않자 이번에는 몸을 던졌다. 그러한 로제에게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
오히려 놀란 쪽은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은하와 시우였다. 거센 불길 속에 저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던지는 것은 정상인이라면 하기 힘든 행위였다.
기세 좋게 타오르던 검은 불길은 거침없이 로제의 몸으로 옮겨 갔다.
그러나 로제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몸을 불살라’ 흑염을 꺼트리려 하고 있었다.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가진 고유 능력은 식물. 이곳에서 능력을 사용해 버리면 모닥불에 장작을 지피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몸을 던지는 것뿐이었다.
‘설령, 이 몸이 재가 되어 사라지더라도.’
바로 코앞에서 시꺼먼 불길이 화르륵 타올랐다. 기억 속 저편, 몹시도 아득한 곳에서 잊고 있었던 목소리가 함께 피어올랐다.
‘딸을 살리고 싶── 과실을 이용─.’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였던가.
‘내 이름은 ──.’
‘별의 가호가 네게 깃들 것이다.’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은 언제였으며, 정확히 나는 무엇을 들었던가.
짧은 사이, 핏빛으로 물들었던 로제의 눈동자가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찰나일 뿐이었다. 눈을 몇 번 감았다 뜨자 그녀의 홍채는 완연한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로제는 검은 불길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졌다. 이윽고 완연히 검게 물드는 시야 속에서, 로제는 생각했다.
그 목소리가 누구이며 언제 적의 일인지, 이제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단 한 사람, 사랑하는 딸 나래를 위해서.
오직 그뿐이었다.
* * *
타닥…… 타닥…….
거의 다 꺼져 버린 흑염. 그나마 남아 있는 불씨가 희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로제는 바닥에 쓰러진 채 미동도 없었다.
촤아아아─
그녀 위로 물벼락이 쏟아졌다. 시우의 능력이었다.
물론 그 물은 단순히 몸의 열기를 중화시킬 뿐 어떠한 치유력도 없었다. 그러나 은하는 시우에게 그리할 것을 부탁했다.
“켈록…….”
물에 젖은 로제가 작게 기침했다. 시우는 한 걸음 물러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은하가 천천히 로제에게 다가갔다.
“…….”
은하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로제를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서 본 로제의 꼴은 더욱더 참혹했다. 시꺼멓게 타오르는 불에 몸을 던졌으니 그럴 수밖에. 로제를 뒤덮은 흑염을 거둔 은하였으나 그녀의 몸에 입은 화상까지 거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로제의 가슴팍이 미세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아직은 숨이 붙어 있는 것.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은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헌터를 이곳에 끌어들였지?”
쿠우웅…….
무거운 소리를 내며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이어서, 우박과 같은 돌의 파편이 후두둑 떨어졌다. 로제는 대답이 없었고, 은하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언제부터 이 일을 계획하고 있었던 거지?”
“…….”
“그건 당신의 독단이었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았던 건가?”
“…….”
침묵을 일관하던 로제가 스르륵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새빨갛게 물든 채 번뜩이던 홍채가 어느새 원래의 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로제는 느릿하고 가느다란 숨을 내뱉었다.
끝까지 입을 닫고 있을 것만 같던 그녀가, 이윽고 서서히 입을 열었다.
“용서, 는, 바라지 않아…….”
금방이라도 끊길 듯한 목소리는 몹시도 희미하고 처절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만큼은 마치 평화를 맞이한 듯 온화하기만 했다.
로제는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기억의 해일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사라졌던 기억의 파편들이었다.
게이트 출현 지역에서 발견했던 나래의 한쪽 신발. 그것을 품에 안고 목 놓아 우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났던, 전갈 꼬리를 가진 사내.
로제는 맘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고개를 가까스로 돌렸다. 그러자 자신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황금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은하는 여전히 ‘넘치는 생명의 과실’을 손에 쥐고 있는 상태였다. 그 과실을 발견한 로제가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
스륵, 스륵─
꼼짝도 하지 않던 로제가 몸을 질질 끌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굼뜬 움직임이었으나 점차 처절하게 변했다. 장작처럼 타 버린 몸을 하고 팔을 흙 위에서 끌어 대며, 그녀는 어디론가 이동하려는 것 같았다.
마치 무언가 꼭 찾아야만 하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애타는 눈빛.
“죽이지 않을 겁니까?”
시우가 물었다. 은하를 향해서였다.
“…….”
은하는 천천히 멀어지는 로제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대답을 잠자코 기다리던 시우가 다시 한번 물었다.
“제가 할까요?”
그 물음에 로제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일순 시우에게로 향했다. 맹수의 그것처럼 길게 찢어져 있던 동공이 스르륵 원형으로 돌아왔다.
시우는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은하를 대신하여 눈앞의 이 배신자를 처단하겠다고.
물론 이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범죄 중에서도 중범죄였다. 그러나 헌터는 달랐다. 이미 대부분의 일반적인 법률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능력을 가진 헌터들을 온전히 구속하지 못했다.
헌터를 위한 특례법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안되었던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어차피 게이트 바깥에서는 내부에 있던 헌터가 몬스터에게 씹어 먹혀 죽었는지, 사람에게 공격당해 죽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목격자가 없다면 그 어떤 밀실 살인의 배경보다 완벽한 환경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 이것은 살인이라기보다는 처형에 가까운 일이었다. 시우는, 그리고 시우가 몸담은 늑대는 배신자를 ‘인간’이라 여기지 않는 곳이었다.
그토록 늑대를 혐오하는 그였지만, 자라 온 환경과 못 박힌 가치관이 증명하고 있었다.
“선배가 못 하겠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늑대의 아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