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109)화 (109/306)


#109. 망자의 군락 (1)
2022.11.17.


E급 광대저씨에게 그 공고가 닿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대충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협회가 엄청난 작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협회와는 별개로 닥터 플랜트 역시 따로 전투 인원을 모집하고 있는 거라고.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그곳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 몇 년 치의 연봉 또는 그 이상을 챙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이토록 고액을 보장하는 데다 본부를 두고 강원도 지부에서 은밀하게 인원을 소집한다는 것 자체가, 이것이 보통 일은 아닐 거란 확신이 들게 했던 것. 어쩌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여보, 다음 달 민지 과외비가 조금 부족할 것 같은데……. 학원을 하나 줄이는 게 나으려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빠, 이번에 멀리 출장 간다며?’

‘응. 돈 많이 벌어 올게. 우리 딸은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 아빠 믿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딸이었다.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지이잉─

쥐고 있던 휴대전화에서 다시 한번 진동이 울렸다.

[민지공주♥] [오전 8:54] 아빠 왜 답장안해?

[민지공주♥] [오전 8:54] 나이제 수업시작해용

[민지공주♥] [오전 8:54] 조시미 다녀와ㅎㅎ!! 올때 기념품 잊지말구!!!

문자만 보아도 딸의 활기찬 목소리가 귓가에 재생되는 듯했다.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아빠는 딸이 토라지기 전에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나] [오전 8:55] 그래,,, 사랑한다 우리딸,,

[나] [오전 8:55] 오늘도 힘차게~,,, 아자아자파이팅~~~!!?^^

오늘도 어제와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딸에게 전한 광대저씨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그로부터 얼마 있지 않아 단상 위로 멀끔한 정장 차림의 여자가 나타났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주신 헌터분들께 우선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부터 올립니다. 저는 장미 길드 소속 치유 헌터 오희서라고 합니다. ‘은매화’라는 이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은매화는 짧은 단발을 귀 뒤로 넘긴 후 곁에 선 요원들에게 살짝 눈짓했다.

“우선, 지금 배부하는 동의서 작성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원들은 미리 정해 둔 동선을 따라 그곳에 모인 헌터들에게 A4 용지 크기의 동의서를 나누어 주었다.

광대저씨는 배부받은 그것을 눈으로 살펴보았다. 첫 장은 별것 없었다. 지금부터 듣게 될 모든 사항은 외부 누설을 금지한다는 내용. 그리고 다음 장은…….

팔락─

종이를 넘긴 광대저씨가 짐짓 굳었다.

<작전 준비 및 이행 과정에서 각성자의 전투 미숙련 또는 개인의 부주의, 명령 불이행, 치유 거부로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장미는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선뜻 사인을 하기에는 꽤 겁이 나는 문장이었다. 동의서라기보다는 차라리 각서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특히나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컨셉 헌터에게는 더욱이 그랬다.

물론 헌터가 길드에 가입하거나 게이트 토벌에 참여할 때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일종의 의례라 할 수 있었다.

사각사각…….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헌터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펜을 움직였다. 마치 인터넷 쇼핑몰에 회원 가입을 하는 양, 제대로 내용을 읽어 보지도 않은 채 빈칸에 가볍게 사인을 해 갔다.

은매화는 그곳에 모인 헌터들이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동안 이번 작전에 대한 안내를 이어 갔다.

“협회는 남해안 지역에 곧 거대 게이트가 열릴 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저희 장미는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여 협회에서 준비한 네 개의 부대와는 별개로 지원대를 구성하고자 합니다.”

요약하자면 그랬다.

협회는 1대, 2대, 3대, 그리고 특임대까지 총 네 개의 전투대를 꾸릴 예정이라고 했다.

여기 모인 헌터들은 위에 말한 본대 어디에도 소속하지 않고, 닥터 플랜트가 따로 구성하는 지원대에 속할 예정이란 소리였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협회가 모집하는 인원보다 기준이 낮았다. 물론 그만큼 보수도 낮겠지만 이 정도가 어디인가. 광대저씨는 기필코 이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결심과는 달리 눈앞에는 또 하나의 산이 있었으니.

“저희 장미는 본대뿐만 아니라 지원대에 속할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하여 최대한의 치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다만 큰 싸움이 예상되는 만큼 협회는 지원자 여러분의 전투력 입증이 불가피하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여 저희는 강원도 철원군에서 간단한 지원 자격시험을 행하려고 합니다.”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강원도 철원군. 그러나 현대인들은 어느 기점에서부터 그곳을 철원이라 부르지 않았다.

금지 구역, 한국의 체르노빌, 또는…….

‘망자의 군락.’

꽤 오싹한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사실 그다지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약 20년 전 철원 복계산(福桂山)에 출현한 C-급 게이트.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게이트의 잔재를 칭하는 말이었다.

현대와는 달리 물자 조달이나 각성자 인력 부족은 물론 균열 판독기, 현대에서 흔히 말하는 게이트 리더(Gate Reader, 일반 게이트의 등급과 좌표 파악을 돕는 도구)라는 물건조차 없던 시절. 토벌이 늦어진 까닭에 게이트는 폭주했고, 복계산의 절반 이상이 몬스터 떼로 뒤덮였다.

그나마 해당 게이트가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인 C-급이었다는 점과 출현 위치가 도심이 아닌 산 중턱이었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스켈레톤, 즉 언데드(Undead)형이었는데 레벨이 5에서 10 정도였던 까닭에 토벌 작업 자체는 그다지 고되지 않았다.

놈들에게는 이상한 특징이 있었다. 일정 구역을 벗어나면 뼈다귀로만 육체를 이룬 놈들은 마치 젠가 블록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놈들도 알고 있는 까닭일까. 언데드들은 산중에서 그들만의 군락을 이루었다. 놈들이 시가에 내려와 민간인들을 공격한 사례는 지금까지 전무.

정부와 협회는 그러한 점을 역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날에 이르러서 복계산은 요원들이 주기적으로 토벌 작업을 행하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초보 헌터들의 튜토리얼 필드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복계산을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고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그곳에서 스켈레톤의 핵을 되도록 많이 구해 오는 것이 이번 남해안 작전 지원 자격시험의 내용입니다. 최종 지원자는 상대 평가로 정할 예정이며, 따라서 입수해야 할 핵의 개수는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한 시간은 10시간. 중도 포기 가능. 파티 플레이 가능.

거기까지 설명한 은매화는 그곳에 모인 헌터들을 널리 훑어보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돌아가실 분들은 지금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그녀의 말에도 그곳에 모인 백여 명의 헌터 중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헌터는 없었다.

광대저씨, 단 한 명을 빼고.

‘망자의 군락에서 지원 자격시험을……?’

꿀꺽.

그는 소리 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마지막 빈칸에 사인만 하면 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은매화의 말대로 시험 난이도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단히 다진 각오와는 달리 목숨을 걸 필요까지는 없었다.

다만…….

‘친구, 난 오늘부터 컨셉 헌터를 그만두기로 했네.’

‘뭐라고? 그럼 뭘 해서 먹고살려고?’

‘전투 헌터가 되어 보려 하네. 이번에 소원 길드에서 복계산 튜토리얼을 연다고 하던데, 난 그곳에 참여할 생각이야.’

‘전투 같은 거 제대로 해 본 적도 없는데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

‘괜찮아. 난이도도 C-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 데다 출몰하는 몬스터 레벨도 낮아. 여차하면 숲 밖으로 나오면 돼.’

약 20년 전의 일이었다. 튜토리얼을 위해 복계산으로 떠난 친구가 행방불명이 된 것이 말이다.

복계산을 포함하여 그 근처 어디에서도 그의 시신은커녕 머리카락 한 올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함께 튜토리얼에 참여한 사람들, 그리고 소원 길드 간부의 증언으로는 그런 인상착의의 남자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곳에 있던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헌터의 행방불명 따위 흔한 일이었다. 결국 지금까지도 미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대저씨는 아득한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망자의 군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은 아닐까, 하고.

물론 근거 따위는 없었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아무 소식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친구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

친구의 일을 떠올린 광대저씨는 마지막 빈칸을 눈앞에 두고 쉽게 사인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빠! 나 내년에 대학 들어가면─.’

딸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광대저씨는 쥐고 있던 펜을 홀린 듯이 움직였다.

─때로는 가장이기 때문에 각오해야만 하는 일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아마 그 친구 또한 그랬을 것이다.

이윽고 모든 사람이 사인을 마치자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장미 길드원들이 각 열별로 동선을 나누어 동의서를 거두었다.

“……그럼 전원 참가하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지하 강당을 빠져나온 지원자들은 장미에서 미리 준비한 버스에 저마다 올라탔다.

광대저씨는 배정받은 차량 번호를 확인한 후 거기에 해당하는 버스를 발견했다.

버스 내부에는 이미 헌터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이미 파티 플레이를 약속하고 구체적인 작전을 짜는 그룹도 보였다.

광대저씨는 버스 전체를 둘러보며 앉을 만한 곳을 물색했다. 거의 모든 자리가 차 있었지만 유일하게 단 한 군데 비어 있는 곳이 있었다.

“실례합니다, 여기 앉아도 될까─.”

창가에 앉아 있는 여자를 향해 슬쩍 고개를 내밀던 광대저씨가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네.”

차분하게 되돌아온 음성. 눈이 마주치는 순간, 광대저씨의 머릿속에 벼락처럼 재생되는 기억이 있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민지 선물.>

흑염의 프린세스.

몇 달 전, 함께 특집 방송에 출연했던 컨셉 헌터였다.

* * *

대한민국 헌터 관할 협회 본부 최상층.

“협회장님, 지원자들을 실은 복계산행 버스가 이제 막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렇군.”

부하 광현의 보고에 협회장 대윤이 곧장 물었다.

“괴도 쪽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광현이 말끝을 흐렸다.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도 협회의 호출에 응할 생각이 없는 거겠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연락해 보긴 했지만 처음부터 괴도 강아연에게는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쉽지 않다면 그것은 또 거짓말이었다.

괴도는 주로 암속성을 다루는 헌터였다. 게다가 S급.

이번 작전에 그녀를 영입할 수만 있다면 아마 몇십 인분의 전력이 되어 줄 것이다. S급 헌터인 백야와 트릭스터의 불참이 확실한 지금 상황에서는 더더욱.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보수를 제시하면 그녀의 힘을 빌리는 것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3년 전 평창 S급 게이트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대윤은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평창 S급 게이트 출현 당시 괴도가 요구한 고용비는 자그마치 90억 원. 그것도 보스 몬스터가 드롭한 유물급 아이템 ‘금서 오르페우스’를 넘기는 조건으로 깎은 금액이었다.

괴도는 득실 계산에 있어서는 그 나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약은 구석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의 ‘계산’에 헌터로서의 도리나 책임 따위는 개미 눈곱만큼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정말 미안하지만 현실적으로 90억 원은 빠듯할 것 같은데. 자국을 위하는 일이니 조금만 더 깎─.’

‘으음, 얼마 전에 프랑스의 랑데부 길드에서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던데. 스카웃일까요? 아니겠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만나나 볼까?’

아연은 진달래처럼 고운 분홍색 눈동자를 가느스름하게 휘며 웃었다.

‘……준비해 두겠네.’

그 앞에서 대윤은 패배했다.

남해안 게이트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이번에는 대체 얼마만큼의 금액을 부를지 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지원자들을 대거 고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마침 닥터 플랜트는 따로 치유 헌터를 포함한 지원대를 꾸릴 예정이라고 했으니 그곳에 예산의 일부를 지급하기로 한 것.

대윤은 눈앞의 두툼한 서류 뭉치를 손에 쥐었다. 장미에서 전한, 남해안 게이트 작전 지원자 명단이었다.

확실히 개중에는 쓸 만한 헌터들이 더러 섞여 있었으나, 소수를 제외하고는 랭크 면에서나 경력 면에서나 본대에 비해 미숙한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대윤은 닥터 플랜트에게 지원자들의 자격시험을 제안했다.

각성자들을 닥치는 대로 게이트에 밀어 넣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는 지침과 원칙 따위가 명확하게 존재했으니. 협회장 자리에 앉은 대윤으로서는 그것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됐다.

하지만 그가 지원 자격시험을 제안한 이유는 비단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그자는?”

명단을 넘기던 협회장이 넌지시 묻자 광현은 그리 물을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차분하게 답했다.

“흑염의 프린세스도 버스에 탔습니다.”

광현의 대답에 협회장 대윤은 어제 이곳을 방문한 제천대성을 떠올렸다.

‘흑염의 프린세스를 본대에 넣지 않겠다고?’

유환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은 듯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후회할 텐데.’

대윤은 아직까지 그 웃음의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천대성은 흑염의 프린세스를 자신이 이끄는 1대에 넣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남해안 게이트 작전의 다섯 부대 중 1대는 제천대성을 필두로 한 선두 공격대였다. 참고로 2대는 트릭스터를 제외한 6인의 군단이 이끄는 소수 정예대, 3대는 닥터 플랜트가 통솔하는 치료 부대.

남는 것은 특임대인데…….

여기서 특임대는 백랑 신시우가 이끄는 200명의 후방 공격 부대로, 앞서 말한 세 부대와는 따로 움직일 예정이었다. 말하자면 조커 카드 격이다.

다만 1대, 2대와는 달리 특임대의 지휘권은 오로지 백랑 신시우에게만 있으며, 따라서 전진 및 후퇴 명령을 포함한 모든 판단에는 협회의 입김이 들어갈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닥터 플랜트가 협회의 지원금 및 자신의 사비까지 들여 따로 모집하고 있는 지원대. 이는 만일을 대비하여 전투 인원이 부족할 시 언제든지 보충할 수 있게끔 추가해 둔, 이른바 졸병(卒兵) 부대였다.

‘치유 헌터로 구성된 닥터 플랜트의 3대를 제외한 나머지 부대와 비교했을 때, 지원대가 전투력이 가장 낮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물론 흑염의 프린세스는 협회가 바라 마지않는, 화속성과 암속성을 동시에 지닌 헌터였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제천대성의 신임을 한몸에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옳다구나’ 1대에 넣을 수는 없었다. 흑염의 프린세스만 1대에 구성하면 나머지 지원자들의 원성을 살 것이 분명하니까. 그것은 곧 사기 저하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또한 안전상의 문제도 있었다. 대윤 입장에서 F급 헌터를 1대에 넣는 일은 2종 운전 면허증도 없는 자에게 버스 핸들을 잡게 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차르르륵─

지원자 명단을 넘기던 손가락이 한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흑염의 프린세스. 이유라. 경상남도 만례읍 해을면 출신. 서울시 반하동 거주.

……포천 헌터 훈련소 126기 졸업생.

‘당시 훈련소의 조교들에게도 수소문을 해 보았지만 이유라라는 훈련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전에 광현이 보여 주었던 TV 예능 프로그램 속 흑염의 프린세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B급 헌터 윈드메이커와의 팔씨름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했다.

흑염의 프린세스의 프로필을 살피던 대윤은 가만히 턱을 쓸었다.

트릭스터, 괴도, 백야. 세 S급의 불참. 그 와중에 제천대성이 강력히 추천하는 헌터.

과연 이자는…….

“장미에 연락을 넣게.”

지원자 명단을 덮은 대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원도 지부로 간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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