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한국 서울의 어느 호텔.
5성급 혹은 그 이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호화로운 방.
금발의 청년이 의자에 걸터앉아 기분 좋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새장 속 하얀 새는 그의 허밍이 듣기 좋은지 꾸벅꾸벅 졸았다.
기세 좋게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벌컥!
“【와, 깜짝이야.】”
턱을 괴고 있던 포츈텔러, 안드레아는 흠칫 어깨를 떨며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슈트 차림의 이준이 장갑도 벗지 않고 성큼성큼 안드레아 앞으로 걸어왔다.
“【요한? 어딜 갔다 오는 길이야?】”
이준은 곧장 답하지 않고 안드레아 맞은편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가 가볍게 머리를 쓸어 넘기자 미약한 향수 냄새가 코끝에 살짝 다가왔다.
하지만 안드레아는 알고 있었다. 그는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것은 그의 체취.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고유 능력, 페로몬 향이었다.
“【협회에 잠깐.】”
갑갑하게 잠겨 있던 손목 단추를 푼 뒤 소매를 살짝 걷으며, 이준이 짧게 대답했다.
마에스트로가 한국 협회와 계약을 맺은 것은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 그가 협회를 방문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으응…… 그렇구나.】”
그러나 안드레아는 마치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휙 시선을 피했다.
“【쓸데없는 짓을 했더군, 안드레아.】”
……역시. 올 것이 왔구나. 안드레아는 천진하게 눈을 깜빡였다.
“【쓸데없는 짓이라니? 협회에 예언을 전달한 일?】”
천연덕스러운 그의 태도에 이준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안드레아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굉장히 기분이 저조하다는 것을.
안드레아, 포츈텔러는 전서구를 이용하여 한국 헌터 협회장 고대윤에게 예언을 전달했다.
협회장이 예언을 신뢰한다는 가정하에, 한국은 곧 있을 재앙을 사전에 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체적인 대비 방안에 대해서는 GIA가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원래라면 말이다.
“【……속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전달한 건 그냥 서비스였어.】”
“【그래서? 팁은 좀 챙겼고?】”
이준이 입꼬리를 비스듬히 말아 올렸다. 당연하게도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속성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은 까맣게 잊었나 보지?】”
“【그건…….】”
안드레아가 우물쭈물 말끝을 흐렸다.
“【그, 그래도 그 덕분에 한국 협회는 조금 더 구체적인 대비 방안을 준비할 수 있을 거고,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을 거야. 좋은 일이잖아?】”
안 그래, 요한? 안드레아가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준은 단호한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죽을 사람은 죽어.】”
무책임하리만큼 냉정한 말. 그 반면, 이준의 눈은 한없이 무겁게 침잠했다.
이준은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저런 눈빛을 하곤 했다. 안드레아는 그 눈빛이 머금은 감정을 읽어 냈다.
비통함. 분명 그랬다.
평소 이준은 이성적이고 계산적이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부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알았다. 만일 이준이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면, 그는 GIA로 활동하지 않았을 거란 사실을.
부친이 세운 체이서라는 길드를 뒤로한 채,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느닷없는 한국행을 결정하지도 않았을 것을.
──또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묘를 30년 동안이나 돌보지 않았을 거라는 점도.
“【네 예언으로도 모든 사람을 살리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야. 너도 알잖아?】”
이준은 침묵하는 안드레아 앞에서 어깨를 으쓱였다.
포츈텔러의 능력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별했다. 전 세계의 각성자를 통틀어도 예지 능력을 가진 자는 그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안드레아의 능력은 불친절한 구석이 많았다.
언제 현안(賢眼)이 개방되어 미래를 볼 수 있을지는 본인도 모르는 일이었으며,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의 미래를 지정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안드레아는 연이은 복권 당첨으로 세계 최고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우연히 개방된 현안에서 단편적으로 보았던 하얀 나무.
그것을 성속성과 목속성이라 유추한 일은 거의 끼워 맞추기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그 게이트에 있는 게 나무 한 그루뿐이겠는가.
더군다나 그 나무가 위험 요소일지 아닐지는, 게이트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
그런데도 안드레아는 굳이 협회장에게 반대 속성에 대한 조언까지 덧붙여 전달했다. 화속성, 암속성이라고 콕 집어서 말이다. 마치 미끼를 던지듯.
“【그냥 솔직하게 말해.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칼날과 같은 이준의 목소리에 방 안의 공기가 차게 식었다. 바뀐 공기에 새장 속 하얀 새가 푸드덕 날갯짓을 했다.
새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안드레아는 오랜 침묵을 깨고 입술을 달싹였다.
“【……요한, 그녀는 구원자야.】”
그리 말하면서도 이준 쪽은 바라보지 못했다.
‘그녀’.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가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흑염의 프린세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이제 곧 진짜 재앙이 시작될 거야. 그때 인류는 그녀가 필요해질 거라고.】”
“【…….】”
“【이번 일로 그녀는 크게 성장할 거야. 그러면 곧 다가올 진짜 재앙에서는 분명 그녀가─.】”
“【그 소리는 그만해.】”
이준이 안드레아의 말을 단칼에 끊어 냈다. 질린다는 듯 앞머리를 헝클어트린 그가 딱딱하게 입을 열었다.
“【지난번 파티 때.】”
이준의 입가에는 이젠 형식적인 미소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네가 내 이름을 빌려 그 애를 초대했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그건…….】”
안드레아는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에 온 뒤에도 넌 그녀를 제 발로 찾아간 적이 없으니까. 솔직히 난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아. 애초에 네가 한국에 온 이유는 흑염의 프린세스 때문이잖아.】”
내 말이 틀려? 안드레아는 이준을 똑바로 응시했다. 시선과 시선이 맞부딪히며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안드레아는 슬며시 입술을 달싹였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밀어내려는 거야?】”
“【…….】”
“【요한, 말해 줘. 나도 알고 있다고. 사실은 네가 아직도 그녀를─.】”
흠칫.
안드레아가 입을 닫았다.
마주 앉은 이준의 눈빛이 돌연 바뀌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를 보아 온 안드레아마저 이토록 날 선 얼굴은 여태 본 적이 없었다.
“【……안드레아.】”
나지막이 그를 부른 이준이 끼고 있던 장갑을 스르륵 벗었다.
고작 그 정도의 행위. 그러나 안드레아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에 온몸이 꽁꽁 묶여 버린 듯이 말이다.
이준의 실루엣을 따라 피어나는 진홍빛 기운. 그에 따라 선명하게 다가오는 짙은 향기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난 너를 동료로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동료란 포츈텔러, 널 포함한 GIA 멤버뿐이야.】”
“【아…….】”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안드레아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이준의 손에 턱이 쥐인 상태였다. 그사이 안드레아는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 여느 때처럼.
“【진짜 재앙이든 뭐든, 우리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다른 누구도 필요 없어. 그렇지?】”
마치 바로 귀 앞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목소리가 가까웠다. 안드레아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은 만족한 듯 희미하게 웃더니 그의 턱을 슬며시 놓아주었고, 그제야 공허했던 안드레아의 동공에 초점이 돌아왔다.
마치 술에서 방금 깨어난 듯 머리가 미약하게 지끈거리는 감각. 안드레아는 깨달았다.
이것은 매혹(魅惑).
몬스터든 인간이든 관계없이 생물체를 자신의 노예로 만들 수 있는, 이준이 가진 강력한 상태 이상 계열 스킬이었다.
그가 필요에 따라 협회장을 입맛대로 주무르고 있는 것도 이 스킬 덕분이었다. 덕분에 이준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뤄 낼 수 있었다. 가령, 협회가 흑염의 프린세스의 뒤를 캐내는 일을 관두게 한다든가.
‘위험했어.’
이준이 그럴 마음만 먹었더라면 3초 뒤 자신은 아마 그의 구두를 핥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오싹해졌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그와 동료라서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이준은 벗어 두었던 장갑을 다시 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슈트 상의를 작게 펄럭인 그가 뚜벅뚜벅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은 그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다음은 없다는 걸 기억해, 안드레아.】”
***
“정말 그만두시게요?”
강행욱 애견 미용 학원, 원장실. 원장은 아쉬운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마주 앉은 사람은 이유라. 최근 학원에 등록한 신규 등록자였다. 그런데 학원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가 대뜸 관두겠다고 찾아온 것이었다.
“남은 기간이 아직 6개월이나 되는데, 규정상 환불은 어려워서…….”
“괜찮습니다.”
은하는 태연하게 답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원장은 그렇지 못했다.
“유라 씨만큼 재능이 있는 사람도 드문데…… 정말 아쉽네요.”
원장을 말끝을 흐리며 은하의 안색을 살폈다. 혹여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 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은하는 희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달칵.
원장실에서 나온 은하는 바로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주변 풍경을 응시했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학원 복도. 강습실로 향하는 서너 개의 문. 간간이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와 털을 자르는 가위 소리.
그 위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저는 헌터는커녕 각성자도 아니지만 앞으로도 아버지처럼 살 겁니다. 제게 아버지는 최고의 헌터였으니까.’
은하는 저를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웃는 남자를 떠올렸다. 자신과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던 텅 빈 장례식장에서 그는 그렇게 웃었다.
영정 사진 속 소장님도, 그렇게 웃고 있었다.
장례식장을 빠져나오기 전, 소장님의 아들은 은하를 보고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헌터님.
“…….”
은하는 왼쪽 손목을 느릿하게 쓸었다.
제휘에게 선물로 받은 새 소원 팔찌. 그 곁에 비슷한 색상의 낡은 소원 팔찌가 포개져 있었다.
제자리에서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은하는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유라 씨! 유라 씨, 잠깐만요!”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은하를 불러 세웠다. 평소의 말끔한 모습과는 달리 잔뜩 흐트러진 모습의 윤호였다.
“하, 학원을 그만두신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정말이에요?”
은하 앞에 선 그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바람결 따라 한 방향으로 뻗은 머리카락. 눈썹 휘날리게 달려온 모양이었다.
“네,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은하가 단조롭게 답했다. 그러자 가까스로 숨을 고르고 서 있던 윤호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저, 정말…… 이었구나…….”
툭. 무릎을 굽히고 주저앉은 윤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은하는 까만 시선을 내리깔아 그를 응시했다.
“이것저것 알려 줘서 고마웠어요. 자격증 시험 꼭 붙길 바랄게요.”
그럼. 은하는 아주 쉽게 등을 돌렸다. 그녀의 안에서 학원을 관두는 것은 이미 결정 난 일이었으니 이제 와서 아쉽다거나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
“유라 씨!”
은하가 몇 걸음 내딛고 얼마 있지 않아 등 뒤에서 윤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잔뜩 상기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윤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깊게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저, 유라 씨를 좋아합니다.”
“……네?”
“학원에서 처음 만난 날 한눈에 반했어요. 가, 갑작스럽겠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은하가 눈을 깜빡이자 눈앞에 노란 메시지창이 띠링, 떠올랐다.
신수 ‘어둠을 방랑하는 고양이’가 이 새끼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며 두 귀를 의심합니다.
언니, 아닐 줄은 알지만 설마 승낙하는 건 아니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며 발톱을 잘근잘근 깨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