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97)화 (97/306)

#97

“은하. 차은하가 맞지?”

원철은 은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반가움과 그리움. 그리고 안도. 커다랗게 확장된 그의 눈에는 그러한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은하가 그의 시선을 피한 것은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

마치 목에 무언가가 턱 막힌 것처럼, 은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비단 고양이와의 계약으로 이름을 빼앗겼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TV에서 널 닮은 컨셉 헌터를 보았을 때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역시 네가 맞았구나.”

“…….”

컨셉 헌터.

그 단어 하나만으로 그가 어떤 내용의 TV 프로그램을 보았는지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은하가 요란한 드레스를 입고 양산을 휘두르고 다니는 것 또한 보았을 것이다.

가방끈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꾹 힘이 들어갔다. 과연 소장님은 그걸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이어서 들려온 원철의 목소리는 은하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억양이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난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야.”

손으로 눈매를 꾹 누른 그가 붉어진 눈시울로 은하를 응시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이준의 소식은 너도 들었겠지? 한국 최초의 S급인 것도 모자라 프라임이 되었다고. 장총 하나 거뜬히 들지 못하던 녀석이 대성했지.”

이준.

그 이름에 은하가 번쩍 시선을 들었다. 예상치 못한 훈련소장과의 재회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은하의 새까만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어서 그를 쫓아야만 하는데.

“그렇지. 마침 장 교관을 만나러 가는 길이란다. 너도 기억하겠지? 어떠냐. 바쁘지 않으면 함께 가는 것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은하에게, 원철은 동행을 권유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은하는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너무나도 냉소적인 반응에 원철이 우뚝, 움직임을 멈출 정도였다.

“차은하?”

“……아.”

짧게 신음한 은하가 습관처럼 왼쪽 팔목을 매만졌다.

소원 팔찌.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했던 기존의 팔찌가 아닌, 훨씬 더 깨끗하고 선명한 푸른색을 띤 그것.

“죄송하지만…….”

한참 동안 소원 팔찌를 매만지던 은하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사람을 잘못 보셨나 봅니다.”

그렇게나 건조한 말을 뱉으면서도 은하는 차마 훈련소장을 바라볼 수 없어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는 과연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무슨 소리냐? 내가 널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잖아.”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강하게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그가 아는 ‘차은하’라는 것을.

은하는 왼쪽 팔목에 건 소원 팔찌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저는 말씀하신 은하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조금 더 단호하게.

“…….”

원철은 은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은하는 그런 그에게 끝까지 시선을 두지 않았다.

문득 그의 시선이 은하에게서, 은하가 어깨에 멘 가방으로 옮겨 갔다.

〈강행욱 애견 미용 학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