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유라 씨, 잠깐만.”
수업이 끝난 뒤, 강습실을 빠져나오려는 은하를 누군가 붙잡았다. 단발머리의 중년 여성. 같은 수업을 듣는 학원생 중 하나였다.
“이거 받아요.”
그녀는 은하에게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그 속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반찬 통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반투명한 뚜껑 너머로 김치나 장아찌 등 먹음직스러운 밑반찬이 꾹꾹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은하가 혼자 산다는 것을 들은 이후부터 그녀는 2, 3일에 한 번꼴로 이렇듯 반찬을 챙겨 주었다. 그러나 은하는 제게 내밀어진 종이 가방을 냉큼 받지 못했다.
“반찬이라면 지난번에도 받은걸요.”
“에이. 우리 애들한테 보내고 남는 거 챙긴 것뿐이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그리 말한 그녀는 기어코 은하의 손에 그것을 쥐여 주었다.
“참, 저번에 준 멸치 볶음은 어땠어요? 우리 딸은 고추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고 맵다고 난리던데.”
“아뇨, 전 맛있었어요.”
“어휴! 유라 씨가 우리 딸보다 낫다니까.”
그녀는 깔깔 웃으며 은하의 등을 가볍게 팡팡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신체 접촉이었지만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잘 먹겠습니다.”
은하는 옅은 미소와 함께 그녀를 바라보았다.
***
푹 눌러쓴 모자에 하얀 스니커즈.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은하의 모습은 그저 평범한 대학생 같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누가 그랬던가. 처음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무척 낯설다 싶은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꽤 익숙해지기도 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 같은 생활을 쭉 이어 온 기분이었다. 은하는 손에 든 종이 가방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맛있는 냄새가 솔솔 번졌다.
17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