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야, 강아연!”
퍽!
문을 열자마자 머리 위로 우유갑이 기세 좋게 떨어졌다. 새하얀 우유가 뚝뚝 머리카락을 타고 흘렀다.
물감처럼 퍼져 나가는 웃음소리.
“아. 조심하라고 말하려 했는데. 까비. 늦었네.”
“큭, 좀 빨리 말해 주지.”
“대박. 우유 비린내.”
“…….”
아연은 얼굴 전체를 적시고 턱 끝으로 떨어지는 우유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지만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태연하게 툭툭 머리를 털고 자리로 돌아간 아연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려는 순간.
드르륵─
기다렸다는 듯 뒤로 쑥 빠져 버리는 의자. 뒷자리에 앉아 있던 동급생의 짓이었다.
“어, 앉으려고 했어? 쏘리. 밑에 내 틴트가 떨어져서. 좀 주워 줄래?”
“…….”
아연은 머뭇머뭇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니, 거기 말고.”
꾹. 손등을 세게 밟혀 버렸다.
“여기.”
당시 아연의 나이 14세.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다.
게이트 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연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입학 당시부터 그 사실이 교내 전체에 퍼져 있었다.
이 지독한 따돌림의 이유는 아마 그것일 거라고 아연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따돌림에 이유 따윈 없었을지도 모른다.
점심시간.
“야, 이것도 먹어.”
촤악─
식판 위로 쏟아지는 장국. 숟가락을 손에 쥔 채 얼어붙은 아연에게로, 동급생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너 기초 생활 수급자라며? 집에 가면 라면밖에 못 먹을 텐데 급식이라도 많이 먹어 둬야지.”
“기생수가 아니고 걍 고아라던데.”
“야, 내 것도 먹어라.”
옜다. 엉망진창이 된 식판 위로 먹다 만 장조림 양념이 뒤섞인다.
“뭐 해? 안 먹어?”
“…….”
아연은 부들부들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역겨운 음식물 쓰레기를 입에 가져가는 순간, 우욱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젖은 눈빛으로 교실 곳곳을 재빠르게 훑어보았다. 몇몇의 동급생들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들은 재빨리 시선을 피해 버렸다.
키득키득…….
당연한 풍경. 그 속에서 누구도 아연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원래 그 나이 때는 싸우기도 하면서 점차 친해지는 거란다. 아연이가 먼저 용기 내서 친구들에게 다가가 보렴. 선생님이 응원할게.”
담임도 마찬가지.
아연에게 학교생활이란 지옥이었다. 이곳보다는 차라리 보육원이 훨씬 나았다. 적어도 그곳에는 아연과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으니까.
돌아가고 싶다.
방과 후 텅 빈 교실. 책상 위의 지독한 낙서들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아연은 생각했다.
‘아연아, 미안하다. 선생님이 이제 더는 보육원을 운영할 수가 없게 됐어.’
병에 걸린 원장은 아연을 보육원에서 내보내며 그리 말했다. 이름도 제대로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병명이었다.
‘하지만 새로 가게 될 보육원도 정말 좋은 곳이야. 선생님이, 우리 아연이 많이 예뻐해 달라고 잘 말해 놨으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네.’
‘선생님이 다 나으면 꼭 다시 데리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