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59)화 (59/306)

#59

“오셨습니까, 사부.”

앞서 부산에 도착해 있던 불멸 길드의 2인자, 재민이 가장 먼저 유환을 맞이했다.

유환은 “음.” 하고 짧게 답하고는 가볍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인원이 적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보시다시피 아직 도성윤을 포함한 길드원들 전원이 미복귀 상황입니다.”

재민의 보고에 유환이 가만히 턱을 쓸었다.

불멸의 3인자, 철인 도성윤. 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 그였기에 믿고 맡겼다. 설령 다른 길드원 모두가 전멸하더라도 그만은 살아남아 돌아올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에.

그런데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가지고 있는 상식은 버리는 것이 좋을 거야. 적어도 이번 임무 동안에는.’

과연. 재미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는 유환의 곁에서 재민이 힐끔힐끔 눈치를 살폈다.

“저어…… 사부. 사실 보고드릴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음?”

“흑염의 프린세스라고, 늑대 길드가 고용한 계약 헌터가 게이트에 무단으로 침입했다고 합니다.”

“뭐?”

유환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주목한 포인트는 ‘무단으로 침입했다’가 아닌 ‘늑대’였다. 점점 험상궂게 변해 가는 유환의 얼굴에 재민은 다급하게 덧붙였다.

“하, 하지만…… 해당 헌터는 F급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별문제는─.”

“헛소리.”

유환이 그의 말을 뚝 잘라 냈다.

“너 정말 늑대가 F급 헌터를 이곳에 보낼 거라고 생각하나?”

유환 특유의 굵직한 목소리는 마치 동굴 속에서 속삭이듯 주변으로 깊게 울려 퍼졌다. 호쾌한 미소가 사라진 유환의 얼굴은 마치 맹수의 그것처럼 사나웠다.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유환은 곧이어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 됐어. 전리품이 하나 는 셈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유환을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아직까지 싸늘한 살기가 피부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유환은 부하들을 지나쳐 저벅저벅 걸었다. 그리고 블랙홀처럼 일렁이는 검은 균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게이트 입구는 아직 닫히지 않은 상황. 즉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20분 안에 바깥 정리 싹 해 놔.”

웬만한 베테랑 헌터도 저도 모르게 겁을 먹고야 만다는 검은 소용돌이. 그 앞에서 유환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사부.”

우두둑우두둑,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가 멎을 때쯤 유환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짧고 굵게 말했다.

“혼자서 충분해.”

소용돌이를 향해 망설임 없이 걸음을 떼는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웅──

“사, 사부!”

고요히 일렁이던 검은 소용돌이가 마치 깨진 픽셀 조각처럼 산산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태풍이 휘몰아치듯 주변 나뭇가지와 자갈들이 사정없이 흩날렸다.

“이, 이게 대체…….”

“성공했군.”

유환은 저를 향해 날아온 자갈을 휙 목만 움직여 여유롭게 피했다. 이것 보라. 언노운 게이트가 뭐가 어쨌다고?

“역시 도성윤 그 녀석은 날 실망시킨 적이 없다니까.”

그의 중얼거림에 재민이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도, 도성윤이 돌아온 겁니까?”

“그래. 게이트 공략을 마친 거야. 연장 챙기지 않고 뭣들 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쓸 만한 것들 쓸어 와야지.”

환한 이를 드러낸 유환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게이트 입구를 주시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정말 그의 말대로 누군가 그곳에서 나왔다.

“헉! 저 여자는…….”

불멸의 길드원 중 누군가가 퍼뜩 입을 틀어막았다. 틀림없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괴상한 여인, 흑염의 프린세스였다.

또각, 또각─

자갈치시장. 아침 바람에 끼룩대는 갈매기의 울음 위로 고아한 구두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허, 헌터님. 저기 저 사람…….”

은하를 뒤따르던 제휘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달싹였다. 그가 은하의 귓가에 무어라 속닥이자 새까만 동공이 일순 이곳을 향한다.

“…….”

“…….”

유환과 은하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유환은 팔짱을 낀 채 느른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은하는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금 움직였다.

또각, 또각─

“잠깐.”

그녀를 멈춰 세운 것은 유환이 아니었다. 어젯밤 게이트로 뛰어드는 은하를 눈앞에서 놓친, 선글라스를 낀 남자다.

“당신, 어떻게 나온 거지?”

“어떻게 나왔냐니.”

은하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무심하게 대꾸했다. 게이트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보스를 쓰러뜨리는 것이 절차였고, 은하는 그 절차를 밟고 나왔다.

“…….”

남자는 은하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비해 잔뜩 흐트러진 모습. 모르긴 몰라도 게이트 내부에서 꽤 장대한 전투를 치른 모양이다.

“약속대로 안에 자원들은 일체 건드리지 않았어. 들어가서 확인해 봐도 좋아.”

은하는 피곤한 눈빛으로 게이트 입구를 향해 가볍게 턱짓했다.

“가죠.”

그러고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박 남매를 향해 말했다. 박 남매는 흘끔흘끔 주변 눈치를 살피며 은하에게 딱 달라붙어 걸었다.

“아.”

은하가 우뚝 걸음을 멈추자 1cm 간격으로 뒤따르던 제림이 그녀의 등에 콩 이마를 찧었다.

“이거.”

휘릭─

은하가 무언가를 던졌다. 저 멀리 물끄러미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유환을 향해서다.

“전리품입니다. 게이트 핵은 없었고.”

탁!

은하가 던진 물체를 낚아챈 유환이 자신의 손을 확인했다. 눈앞에 푸른 시스템창이 팝업됐다.

‘바다의 눈물’ 액세서리 (펜던트) / 희귀도:유물 / ‘자애의 현혹술사’의 목에 걸려 있던 펜던트. 푸른빛을 띤 보석을 바라보고 있으면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패시브 효과:소지자의 수속성 내성이 50% 상승 / 행운이 20% 상승 / Lv.99 이하 정신 지배 계열 스킬에 100% 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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