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서울 S병원. PM 8:05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게냐?”
무거운 침묵 속에서 귀훈이 입을 열었다. 침대 반대편에 놓인 의자에는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젊고 유능한 늑대, 시우가 삐딱하게 앉아 있다.
“할 말이 없으니까요.”
줄곧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시우가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몇 개월 만에 겨우 상봉한 부자지간이라고 하기에는 병실 실내가 놀랍도록 건조했다.
귀훈은 그런 아들을 응시하더니 이내 푹 한숨을 쉬고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곧 죽을 애비 앞에서도 밤새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작정이로구나.”
“…….”
“아니면, 기다리는 연락이라도 있는 건가.”
“…….”
“이유라, 그 컨셉 헌터의 연락이라든지.”
줄곧 무표정을 고수하던 시우에게서 드디어 반응이 돌아왔다. 싸늘하리만치 푸른 두 눈이 일순 이곳을 향했다.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를 포착한 귀훈이 만족스레 입꼬리를 올렸다.
“정답인가 보구나.”
“무슨 속셈이십니까.”
“그저 네가 요즘 끼고 다니는 헌터가 있다고 보고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빙긋 웃은 귀훈이 턱을 괴었다.
“속셈은 네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었더냐?”
소름 끼치도록 무거운 정적 속에서 시곗바늘 소리가 유독 날카롭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두 사람의 눈은 닮아 있었다. 투명한 청색 눈동자에 매서운 눈매.
그래서 시우는 아버지 귀훈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싫었다. 자신도 저런 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아들이란 사실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넌 튜토리얼을 마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도 헌터 활동 생각이 없는 게냐. 그것도 혹시 그 여자와 연관이 있나?”
“선배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선배, 라고. 귀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시우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가볍게 덧붙였다.
“단지 귀찮았을 뿐이지.”
귀찮다고? 다시 한번 짧은 침묵이 흘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귀훈은 아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게다.”
귀훈의 말에 시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요? 마주친 눈동자는 마치 그리 묻고 있는 듯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면 두 사람은 원인과 결과였다. 귀훈이 원인으로 시우라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그들은 가장 다르고도 가장 닮은 사이였다.
“나를 미워하는 건 상관없지만 늑대를 미워하지는 말거라.”
“…….”
“늑대에겐 네가 필요해.”
그 여자가 아니라. 귀훈이 뒤늦게 덧붙이는 순간 시우의 눈빛이 돌변했다.
역시 아버지는 선배에 대해 조사를 해 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도로 시우가 ‘흑염의 프린세스’를 키우고 있는지도 예상하고 있을 테다.
그러나 그들은 부자지간. 귀훈이 시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시우 역시 그랬다.
여기서 발끈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다. 시우는 다리를 꼬고 느슨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처리하시려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우는 재미있다는 듯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나 눈만은 웃고 있지 않았다.
“역시 최강의 헌터라고 불리던 아버지십니다. 병실 침대에 누워서도 사람 목을 싹둑싹둑 잘라 버리는 건 일도 아니네.”
“…….”
“이번에도 그리하시든가요. 어차피 다시 구하면 그만입니다. 누가 이기나 해 보죠. 1년 동안.”
“시우, 너.”
“아, 앞으로 7개월이었던가요. 시간 참 빠르네. 그럼 그때까지 전 그 후의 일을 계획하는 것이 바람직하겠군요.”
“……무슨 계획을 말하는 것이냐.”
“글쎄요. 아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시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닮은 빛의 푸른 눈동자가 소리 없이 마주쳤다.
“그저 몸 관리에만 신경 쓰세요. 아버지.”
더는 당신과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마치 그리 말하듯, 시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
시우는 곧장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신착 메시지 0통.
부재중 전화 0통.
“후.”
쓰고 있던 후드를 벗어 버린 시우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할 생각도 없이 비상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어떻게 됐지?”
그것이…… 확인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