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
“……우리는 어떻게 될까?”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은하는 힐끔 고개를 돌렸다.
그 작은 촛불 하나가 뭐가 그리 아늑하다고, 양초를 꼬옥 붙잡고 있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촛불도, 이준의 그림자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아, 아니다. 그냥 우리, 내일 뭐 먹을지 얘기나 할까?”
이준은 맘처럼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애써 올렸다.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혹자는 그것을 회피라고 할지언정 상관없다.
촛대를 든 손을 꼼지락거리며 이준이 말했다.
“나는…… 음, 싱싱한 채소에 구운 연어가 잔뜩 올라간 샐러드가 좋겠어.”
밝은 체를 하고 있었지만 은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와 함께한 지도 3년이었으니 말이다.
까만 눈으로 흔들리는 촛불을 가만히 응시하던 은하는 휙 고개를 돌렸다.
“……나는 국밥이 먹고 싶어.”
“국밥?”
“응. 엄마랑 자주 먹었던 국밥. 거기 김치 만두도 맛있거든.”
초라한 촛불에 은은하게 밝혀진 그녀의 옆얼굴은 앞을 향해 오롯이 고정되어 있었다.
“언젠가 함께 갈 수 있을까?”
똑─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똑─
유난히도 선명한 그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을 때, 은하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짧게 대답한 은하는 배낭을 뒤적여 담요를 꺼냈다.
“촛불이 꺼지기 전에 조금 자 두는 게 좋을 거야. 그게 마지막 양초니까.”
그리고 담요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 낸 뒤 이준에게 내밀었다.
“덮어. 난 필요 없어.”
그녀는 이끼가 낀 동굴 내벽에 망설임 없이 등을 기댔다. 그러자 이준이 펄쩍 뛰며 담요를 도로 내밀었다.
“이거 대고 기대. 옷이 더러워지잖아.”
“이미 피 칠갑이 된 군복에 흙이 좀 묻어서 뭐가 달라진다고.”
“그래도…….”
대수롭지 않은 은하의 대답에 이준의 얼굴이 흐려졌다.
마음이 무거웠다.
언제부터 그녀는, 우리는 옷에 피가 튄 것을 개의치 않게 되었던가.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자, 어서.”
이준은 결국 반강제적으로 은하의 등 뒤에 담요를 끼워 넣었다. 은하는 그런 이준을 조금 성가신 듯이 바라볼 뿐, 딱히 저지하진 않았다.
그로부터 긴 침묵이 흘렀다.
어쩐지 썩 잠이 오지 않았다. 이준은 힐끔, 자신의 옆에 앉은 동기를 훔쳐보았다.
새까만 머리카락, 또 그만큼 새까만 눈동자. 주위를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가 이제는 별로 무섭지 않다.
“은하야. 너도 잠이 안 와?”
스윽.
정면을 향해 고정되어 있던 검은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나까지 잠들어 버리면 급습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문득 그녀의 어깨에 달린 초록색 견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것이 얼마만큼의 무게인지, 이준으로서는 도저히 모르는 일이었다.
“은하야, 있잖아─.”
“자라니까.”
“네가 안 자면 나도 안 잘 거야.”
“…….”
은하가 물끄러미 이준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픽,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맘대로 하든가.”
그 앞에서 이준 역시 배시시 웃는다.
이준은 알고 있었다. 은하는 의외로 꽤 사소한 것에 웃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녀의 미소는 아지랑이와 같았다. 아주 희미하고 옅은 데다가 손을 뻗으면 금방 사라지고야 마는, 그런 것 말이다.
두 사람은 축축한 동굴 내벽에 나란히 기대어 앉았다.
푸른 이끼가 가득한 벽에 기다랗게 뻗은 두 그림자는 어딘가 닮아 있었다. 그 사실이 내심 기뻐, 이준은 벽에 드리운 그들의 그림자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이지, 아버지는 내가 미국에 오길 바라셔. 어머니도 마찬가지고.”
“근데 왜 가지 않아?”
“그건…….”
작게 입술을 달싹인 이준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빛이라곤 이 작은 촛불밖에 없는 이 동굴 속에서도, 그녀의 까만 눈동자는 은하수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이준은 슬쩍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보다 긴 속눈썹이 흰 뺨에 가지런한 그늘을 드리웠다.
“그냥…… 좋아서.”
은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워낙 목소리가 작아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방금 뭐라고 했어?”
이준은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배시시 미소 지었다.
“아냐. 은하 너는 어때? 이제 대학 갈 생각이 없는 거야? 애견 미용사가 꿈이라고 했잖아.”
“그거라면 이제 생각 없어.”
아주 잠시간의 침묵 후 천천히 달싹인 입술 새로 나온 목소리는 지독히도 차분했다.
“세상이 바뀌어 버렸잖아.”
그녀는 열아홉의 끄트머리에서 능력이 발현되었다. 그리고 딱 스무 살이 되던 해 징병되었고, 올해로 헌터 생활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만일 세상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녀는 미국에서 원하던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언젠가 다시 평화가 찾아오면.”
그땐, 나와 함께 미국으로 갈래?
이준은 그 말을 온전히 끝맺지 못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거센 진동 때문이었다.
***
“그 후로는 네가 아는 대로야.”
달칵, 수저를 내려놓은 은하가 이야기를 끝맺었다.
거실을 비추는 주홍빛 조명 아래, 시우와 은하의 시선이 마주쳤다.
“백이준은 탈출하고, 나는 언노운 게이트에 갇혔지.”
“……그렇습니까.”
시우 역시 들고 있던 수저를 놓았다. 은하의 빈 그릇에 비하면 그의 앞에 놓인 그릇에는 아직도 카레라이스가 수북했다.
‘그를 위해서…… 선배는.’
30년 동안이나 언노운 게이트에 갇히게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희생한 것이다.
그리 생각하자 자연스레 의문이 떠올랐다.
‘대체 왜?’
시우는 누군가를 위해 그런 희생을 한 적도 없거니와 그럴 생각도 없었다. 설령 가족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물론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 납득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냥, 궁금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녀로 하여금 제 몸을 던져 가며 희생케 만들었을까.
“글쎄. 굳이 말하자면 여린 사람이었지.”
빈 그릇을 응시하던 은하가 아렴풋이 중얼거렸다. 심지어 무슨 기억을 떠올리는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걸기까지 했다.
‘여리…… 다고?’
누가? 마에스트로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에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낯빛이 매우 심각해진 시우에게 은하의 시선이 닿았다.
“그럼 이제 네가 말해 봐. 넌 어떻게 백이준을 아는데?”
“어떻게, 랄 것도 없습니다. 그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테니까요.”
시우의 말에 은하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시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이준을 띄워 주는 듯한 발언은 내키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다. 시우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는 한국의 첫 번째 S급 헌터거든요.”
“뭐?”
긴 흑발이 어깨선을 타고 사르륵 떨어져 내렸다. 은하는 진심으로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은하가 기억하는 이준은 전투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으니까.
“아. 한국의 첫 번째 S급이라는 말에도 조금 어폐가 있겠네요. 그는 미국인이니까.”
그리 덧붙인 시우는 드르륵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그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약 30년 만의 방문이라더군요.”
툭 내뱉듯 무심하게 말한 시우는 식탁 위의 그릇들을 챙겨 싱크대로 향했다. 고무장갑을 끼려던 그의 손이 우뚝 멈춘다.
“……선배는.”
시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입술을 뻣뻣하게 달싹였다.
“선배는, 그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뭐 그리도 어려운 질문이라고, 맘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 입술이 답답했다.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묻지 말 걸 그랬나. 뒤늦게 그런 후회가 물밀 듯 닥쳐 왔다.
“딱히.”
홱, 시우의 고개가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식탁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은하와 눈이 마주쳤다.
“왜 놀라? 꼭 그가 보고 싶어야 하나?”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 시우가 얼떨떨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선배는 그를 위해 희생하셨던 게 아닙니까.”
“희생?”
어깨선을 따라 흐르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그녀가 연이어 말했다.
“넌 날 영웅으로 생각하나 보지.”
굳이 말하자면, 가까웠다.
1세대 헌터라는 것 자체가 현대 헌터들에게 있어서는 영웅과 가까운 존재인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은하에게는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마 훨씬 무기력한 사람일걸.”
그날, 언노운 게이트에 갇히는 순간 은하는 희생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손해가 적은 쪽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은하에게는 더 이상 현실을 살아갈 여력도 희망도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 게이트에 남아 있길 택한 것이다.
그것을 희생이라 포장할 생각은 없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선배입니다.”
뒤돌아선 시우가 나지막이 부정했다.
“선배는 선배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마 훨씬 멋진 사람일 거예요.”
“…….”
“정말로.”
턱을 괴고 있던 은하가 스르륵 손을 아래로 내렸다.
잠시간의 침묵.
시우는 고무장갑을 끼고 수돗물을 틀었다. 멋쩍음을 감추기 위함인지도 몰랐다.
쏴아아─
수돗물이 수도꼭지를 타고 기세 좋게 쏟아졌다. 그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고마워.”
문득 그릇을 닦던 시우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우는 무심하게 수세미질을 재개했다.
깔끔하게 설거지를 끝낸 시우는 벗었던 후드를 다시 눌러쓰고 차 키를 챙겼다.
“흠. 내일은 새 휴대전화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줘도 상관없어.”
“아뇨, 급합니다. 내가.”
시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 이토록 답답한 일인지는 정말 몰랐던 일이었다.
더군다나 트릭스터나 마에스트로 건으로 조만간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두 쪽 모두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인물이니.
미리 묶어 두었던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챙긴 시우는 신발을 신었다.
“네겐 여러모로 고마운 것이 많네.”
신발장 앞에 선 은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운동화 끈을 묶던 시우가 힐끔 고개를 들었다.
“네? 무슨.”
“그냥. 이것저것.”
벽에 살짝 머리를 기댄 은하가 싱긋 눈매를 접었다.
“네가 없었다면 정말 곤란했을 거야.”
“……아뇨, 뭐, 그런.”
시우는 푹 고개를 숙이고 짧고 싱겁게 답했다. 오늘따라 유독 말썽인 운동화 끈과 한참 씨름을 벌인 후에야 그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응, 내일 봐.”
은하가 슬쩍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짧은 목례를 마친 그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쿵, 쿵, 쿵. 복도에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도 컸다.
딩동─
17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