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22)화 (22/306)

#22

본대로 돌아가는 길.

헌터 하나가 뫼비우스에게 다가갔다.

“리더, 저 여자를 내버려 두실 생각입니까?”

“충분히 경고를 했고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 본대를 벗어났습니다. 이 일로 문제가 불거진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그녀가 지게 될 테죠.”

걱정 마세요. 리더의 미소에 안심한 그는 목뒤를 긁적이며 물러났다.

한편, 옮긴 시선 끝에 어딘가 넋이 나간 동료의 얼굴이 보였다.

“이봐, 왜 그래?”

“아, 아니…….”

머뭇거리며 입을 닫은 동료는 휙 고개를 돌려 지나온 통로를 바라보았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 흑염의 프린세스는 이미 반대 방향으로 사라진 뒤였다.

정말 아이의 엄마를 홀로 찾아 나선 모양이었다. F급 헌터가, B급 게이트에서.

“……1기라던데.”

“뭐라고?”

“1기 훈련소 졸업생이래.”

“누가?”

“저 여자가.”

“…….”

“…….”

푸핫!

곁을 걷던 또 다른 헌터가 배를 잡았다. 한참을 웃던 그가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네가 더 신기하다는 듯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동료 헌터는 가볍게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들어차 있었다.

1기 졸업생이라면 1998년 4월 졸업생을 뜻했다. 정부 기관이 게이트에 대해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기도 전, 즉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혼돈의 시기였다. 당시 무차별적인 징집으로 인해 모인 헌터의 수는 현대의 헌터 수를 훌쩍 웃돌 정도였다고. 하지만 그 시기를 겪고도 살아남은 1기 졸업생은 이제 고작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만큼 헌터의 대우가 좋지 않았을뿐더러 전문화된 교육 과정도 없었다. 3개월이라는 짧은 훈련만을 마치고 거의 맨몸으로 게이트에 던져졌을 텐데, 죽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으리라.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1기 졸업생은 훈련소 입구에 사진이 걸려 있거나 헌터 양성 아카데미의 교과서에 실려 있는 등, 30년 이상이 지난 아직까지도 길이길이 회자되었다.

물론 그중 저 여자는 없었다.

“네가 잘못 들었겠지. 아니면 저 여자가 정말 제대로 미쳤거나.”

“그렇기는 한데…….”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이 마주친 순간 들었던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게 피부에 남아 있었다.

남자는 다시 한번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을 꿀꺽 삼킨 듯 까마득한 통로. 그 끝에서, 남자는 한참 동안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

“헉, 허억…….”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여인은 뛰고 또 뛰었다.

“예리야, 어디 있니? 예리야!”

그녀는 애타게 딸의 이름을 불렀다.

딸의 생일을 맞아 방문한 아쿠아리움에서 설마 게이트에 휩쓸리게 될 줄 그 누가 상상했겠는가.

헌터들이 오기까지 얌전히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두 사람을 덮친 파도 탓에 그만 딸을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하늘이 무너진다면 이런 기분일까. 신발조차 물에 떠내려간 지금, 여인은 맨발로 하염없이 게이트를 뛰었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몬스터를 깨우는 자극제가 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딸이 몬스터에게 잡아먹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예리야……!”

여인의 쉰 목소리가 공허한 게이트 내부를 울렸다.

얼마나 깊은 곳까지 들어와 버린 것일까. 갈수록 빛줄기는 사라졌고, 배터리가 다 되어 더 이상 휴대전화 플래시에 의지할 수도 없게 되었다.

눈앞에 깔린 어둠은 그녀가 느끼는 절망만큼이나 짙었다.

툭.

“앗, 안 돼…….”

몸에 힘이 빠진 탓에 순간적으로 들고 있던 카메라를 놓쳐 버렸다.

카메라에 꽂힌 메모리카드에는 중요한 업무 자료뿐만 아니라 딸과의 추억이 가득했다. 혹시나 망가졌을까, 상체를 숙인 여인이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손에 쥔 순간이었다.

쿠웨에에에엑─!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맙소사. 여인은 굽힌 상체를 일으키지도 못한 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예리야…….’

여인의 눈앞으로 순식간에 주마등이 지나갔다. 여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꼭 쥐었다.

찰박.

찰박.

찰박.

점점 등 뒤의 몬스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쿠웨에에엑─!

여인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런데.

…….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느릿하게 고개를 돌린 그 순간.

“……!”

황금빛 홍채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캄캄한 어둠 가운데서도 섬뜩하리만치 밝게 빛나는 그것은,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 믿기 힘든 빛깔이었다.

‘모, 몬스터……?’

너무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다시금 떨어트리고, 여인은 더듬더듬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검은 불꽃이 마치 뱀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거칠게 일렁이는 불길. 그 가운데, 은하는 무심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

“…….”

은하는 여인을, 아니 정확하게는 여인이 입고 있는 원피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공격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주변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는 것을 눈치챈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해파리가 일그러진 채 구석에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가느다란 촉수는 죄다 끊겨, 마치 헝클어진 실처럼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죽였… 어?’

이 검은 여자가? 여인은 다시 한번 은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은하가 쥔 양산 끄트머리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에 만들어진 피 웅덩이 위로 은하의 창백한 얼굴이 비쳤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저기…….”

용기를 낸 여인이 입을 여는 순간.

뻐억!

돌연 은하가 양산을 휘둘렀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여인의 시선이 은하를 쫓았다.

화륵!

물고기처럼 유연하게 허공을 헤엄치는 흑염은 마치 주인과 보이지 않은 실로 연결된 것만 같았다.

쿠웨엑!

여기저기서 몬스터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렇듯 어둠이 짙게 깔린 공간에서 어떻게 몬스터의 위치를 모조리 다 파악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휘릭!

쉬이이익─

빠각!

짧은 사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믿을 수 없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무언가 불에 타는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여인은 그저 눈을 질끈 감은 채 빨리 이 지옥 같은 상황이 지나가길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주변에 완연한 정적이 찾아왔을 때.

“괜찮으신가요?”

그제야 여인은 천천히 눈을 떴다.

맹수처럼 번뜩이던 황금빛 눈동자가 아닌, 새까맣고 차분한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여인의 어깨를 본 것일까. 은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기다리는 대신 그녀에게 손을 뻗어 왔다.

여인은 제게 내밀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 누구시죠?”

“……저는.”

턱. 늘 그렇듯, 목구멍이 막혔다. 이름을 말하려고 해서? 비단 그것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입을 다물어 버린 은하는 자신이 들고 있는 양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치렁치렁한 소매도, 허리를 감싸고 있는 기다란 리본도, 모든 것이 헌터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수많은 게이트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을 썰고 베어 낸 은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자신은 지금 무엇으로서 이곳에 있는가.

‘이명을 정해야합니다만 뭘로 하시겠습니까?’

‘흑염의 프린세스요. 제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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