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일반인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진 헌터들은 사회에 있어서 양날의 검이었다.
인간의 화기로는 제압할 수 없는 몬스터들을 해치워 주는 병기 역할도 했으나, 때로는 그 힘을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던 것.
그런 헌터들을 관리하고 제어하는 유일한 세력. 그건 정부도 국민도 아닌 ‘헌터 관할 협회’였다.
그러나 최근, 협회의 위상이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었다.
“신시우 헌터에게서 아직 연락은 없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으리. 헌터 관할 협회의 총장 고대윤은 눈앞에 둔 해결책을 손에 넣지 못해 안달이었다.
“예, 협회장님. 계속해서 통화를 시도하고는 있는데…….”
광현의 대답에 대윤은 관자놀이를 꾹 짚었다. 그는 정말이지, 몹시 간절하게 시우를 원했다.
몇십만 명의 한국 헌터 중, S급 헌터는 고작 6명. 즉, 0.001%라는 극악의 확률로 탄생하는 귀하디귀한 인재라는 소리였다.
시우가 협회 소속의 헌터가 되어 준다면 협회 측은 첫 S급 헌터를 품게 될 것이다.
‘균형을 위한 일이야.’
대윤은 그리 확신했다.
현재 6명의 S급 헌터 중 4명이 개인 길드를 가지고 있다. 그 4개의 길드가 하루하루 힘을 키워 가는 가운데, 협회의 입지와 위세가 이 이상 줄어드는 것은 위험했다. 그것은 곧 헌터들의 무법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와도 다를 바 없었으니까.
즉, 어서 빨리 영향력 있는 헌터를 협회에 영입해야만 한다! 이제 협회 소속 요원들만으로는 한계였다.
“그런데 과연 그가 늑대 길드를 버리고 협회 측으로 들어올까요?”
“신시우가 늑대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잖습니까.”
“열 번 찍어서 안 넘어오는 나무는 없다고 했어. 우선 계속 접촉을 시도하게.”
신시우. 그는 늑대 길드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굳이 ‘실버문’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대표를 자처했다.
실버문은 길드가 아닌, 헌터 매니지먼트 회사였다. 차기 길드장이 되기 전의 발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윤은 왠지 그것만은 아닐 거란 예감이 들었다.
“으음…….”
한편 광현은 곤란한 듯 뺨을 긁적였다. 협회장 대윤은 아직 시우와 정식으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우는 웃는 낯으로 사람을 꽁꽁 얼리는 재주가 있었다. 그의 고집은 아마 그가 세운 얼음 방패보다 굳건하고 단단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광현은 그 얼음 방패를 도무지 뚫을 자신이 없었다. 그와 접촉할 바에는 차라리 ‘괴짜 오타쿠’라고 소문난 군단 길드의 마스터를 찾아가는 게 마음 편할 정도였다.
“아, 그러고 보니.”
광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저번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 흑염의 프린세스라고…….”
“아직도 그 얘길 하고 있는 겐가? 자네는 다 큰 어른이 그런 애들 장난 같은 이야기에 휘둘리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
흑염의 프린세스는 헌터들 사이에 괴담처럼 떠도는 이야기였다.
그러한 종류의 괴담은 그 외에도 많았다. 헌터의 피를 빨아 먹는 ‘박쥐인간’, 죽은 헌터의 영혼이 한데 모여 균열의 틈새를 떠돈다는 ‘검은 사신’ 등등.
“자네, 빨간 마스크 시절에는 손등에 개 견 자라도 쓰고 다녔을 유형이군.”
“……안 쓰고 다녔는데요.”
“그럼? ‘나 예쁘지?’라는 물음에 뭐라고 답했나? 아니라고 하면 화내며 입을 찢고, 그렇다고 하면 똑같이 해 준다고 입을 찢는다던데. 무서워서 학교는 어찌 다녔고?”
“놀리지 마십시오.”
“협회 소속이라는 사람이 그런 괴담을 믿는다니까 하는 소리네. 알겠으면 더 이상 날 실망시키지 말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지만, 대윤은 생긴 것만큼이나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저 보수적인 성향이 정부로 하여금 호감을 샀기에 지금의 협회가 있었다. 그렇다. 그렇기는 한데…….
“그녀의 정체는 모릅니다만 신 헌터가 분명 말했단 말입니다. 그녀는 자신도 이기지 못한다고요.”
“쯧쯧. 신 헌터도 참, 젊은 사람이 겸손해서는.”
“아뇨, 진심인 것 같던데요.”
“됐네. 이런 쓸모없는 대화를 할 시간에 신시우 측에 한 통이라도 전화를 더 하는 것이 생산적이겠군.”
“아니, 그러니까…….”
“나가 보게.”
떠밀리듯 쫓겨난 광현은 쾅 닫힌 문 앞에 서서 비통한 가슴을 쳐 댔다.
‘하. 진짜 퇴사할까.’
정확히 201번째 퇴사 충동이었다.
보통 저런 꽉 막힌 사람의 경우, 본인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때까지 결코 사람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광현은 결심한 듯 넥타이를 졸라맸다.
“팀장님, 벌써 퇴근하십니까?”
“당분간 나 찾지 마.”
“예? 무, 무슨 일이라도……?”
가방을 챙긴 광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어떻게든 한 건 물어 오기 전까지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테다! 광현은 분노에 휩싸인 검지로 닫힘 버튼을 거세게 눌렀다.
***
은하가 게이트를 탈출하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탁, 타닥.
조용한 방.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한 은하는 양 검지를 세워 키보드를 두드렸다.
늑대 길드 |
하얀 화면을 통해 늑대 길드에 관련한 정보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은하는 천천히 마우스 휠을 내리며 정보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입력해 갔다.
시우는 은하를 배려하여 노트북을 가져다주었다. 은하에게는 와이파이 연결부터가 고난이었기 때문에, 그는 결국 모든 세팅을 해 주었다. 덕분에 은하는 방 안에서도 현대에 관한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흠.”
인터넷을 뒤지던 은하는 가만히 턱을 쓸었다. 과연, 늑대 길드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길드가 틀림없어 보였다. 다만 그 유명세가 양날의 검이 된 듯했다.
[제목] 늑대 길드 욕하는 사람 보셈
[작성자]□□(121.204)│2031.4.13 PM 2:11│[조회] 21,946│[추천] 1,333
늑대 길드가 아니면 한국이 이 정도로 헌터 강국이 됐겠냐? 음모론 있는 것도 알겠고 강압적인 시스템을 고수하는 것도 분명 문제가 있겠지만, 갓직히 결과적으로 S급 게이트 소탕 횟수는 늑대 미만 잡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