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한국의 여섯 번째 S급 헌터, 백랑.
그는 마음만 먹으면 서울 전체를 알래스카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대단한 빙술사(氷術士)라고 했다. 그마저도 그를 둘러싼 수많은 소문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의 주인공, 백랑이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사실 생각보다 그리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다.
‘이게 마지막인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차례차례로 박살 낸 시우가 마지막으로 가볍게 검지를 튕겼다.
쨍그랑!
품고 있는 몬스터의 몸체와 함께, 얼음은 빙수처럼 잘게 부서졌다. 시우가 구역질을 삼킨 것도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냄새.’
시우는 얼음과 함께 산산조각 난 몬스터 파편에서 시선을 돌렸다. 소매로 다급히 코와 입을 막은 그가 생각났다는 듯 후드 주머니를 뒤져 두꺼운 마스크를 꺼냈다.
그가 한국 최고 규모를 자랑하는 늑대 길드의 도련님이며, 여섯 번째 S급 헌터라는 것은 진실이다.
다만 사실 그는 게이트라든지 몬스터가 거북했으며, 헌터 활동에 뜻이 없는 자였다. 아니, 오히려 혐오했다.
마스크를 끼던 시우는 방금 전 전투로 팔소매가 찢어진 것을 발견했다. 찢어진 천이 불편하게 너덜거려 이대로라면 전투에 방해가 될 것이다.
상의를 탈의할 수는 없고. 잠시 고민하던 시우는 소매를 홱 걷어 버렸다.
“…….”
그러자 팔 표면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심한 흉터들이 드러났다. 무언가에 찔린 흉터, 화상 흉터, 날카로운 곳에 베인 흉터까지 그 수를 셀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얻게 된 흉터인지, 그 흉터가 팔 너머 어깨며 등까지 뻗어 있다는 것까지도 시우는 잘 알고 있었다.
빼곡한 흉터를 응시하는 푸른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고작 그 정도로 늑대를 짊어질 수 있겠습니까?’
흉터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시우는 걷었던 소매를 차단하듯 다시 내려 버렸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뭐야.”
발끝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마스크를 낀 시우는 상체를 숙여 그것을 주워 들었다. 주먹만 한 보랏빛 광석.
보석 같기도, 플라스틱 같기도 한 그것은 ‘게이트 핵’으로 보스 몬스터 처치 시 입수할 수 있는 돌이었다.
이걸 들고 돌아가면 그가 튜토리얼은 완수했다는 증거가 될 테다.
핵을 챙긴 시우는 뒷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현재 시간 7시 58분. 대략 30분 정도 소요된 모양이었다.
‘택시를 타고 다시 김광현이 있는 곳까지 카페까지 가는 시간을 포함하면…….’
얼추 8시 30분쯤 되려나. 지각은 하지 않겠다. 시우는 흰 손수건으로 자신의 손과 휴대전화의 액정을 깨끗이 닦은 뒤 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출구가… 닫혀 있어?’
분명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든 몬스터를 처리했는데. 핵도 챙겼다. 시우는 잠시 가만히 서서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모르겠다.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십 년 이상 다져진 경험과 지식으로도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언노운 게이트?
‘아니야. 분명 초록색이었어.’
게이트는 균열의 빛깔로 난이도를 판별할 수 있었다. 협회에서 내민 자료에도 B급이라 명시되어 있었고, 자신이 들어올 때도 분명 초록색 균열을 보았다.
그렇다면 남은 경우의 수는 단 한 가지. 보스가 두 마리인 경우.
가끔 분열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육체를 두 개 가진 몬스터가 있었다.
‘확인하는 수밖에.’
시우는 결국 다시 게이트 중추로 들어갔다.
자신이 걸어온 방향을 나타내는 허연 빙판길이 주르륵 깔려 있었다. 물론 그 위로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통로를 지난 시우는 내벽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아 있던 물색 눈동자에 슬슬 짜증이 일렁이기 시작할 때쯤, 그는 게이트 가장 깊은 곳에서 시끄럽게 요동치는 검은 균열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현상이었지만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마지막 한 놈은 저곳에 있다고.
잠시 망설이던 시우는 이윽고 그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균열은 잠시간 반항이라도 하듯 격렬히 몸서리치더니 이내 파스스 소리를 내며 공중에 흩어졌다.
일순 시야에 칠흑 같은 어둠이 번졌다. 먹물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시야가 다시 밝아졌을 때, 시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한 쌍의 눈을 발견했다.
Lv.30 ‘붉은 눈의 흑호’가 당신을 향해 돌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