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Lv.99 흑염의 프린세스 (4)화 (4/306)

#04

“──준아. 이준아.”

멍하니 공항 라운지에 앉아 있던 이준이 고개를 돌렸다.

초점이 맞지 않는 동공은 텅 비어 버린 듯 공허했다. 실버 톤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자니 문득 안개가 가득 낀 것처럼도 보였다.

이준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착잡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어깨를 두드렸다.

“가자. 이제 곧 탑승 시간이야.”

“……네.”

이준은 어머니와 함께 공항 내부를 걸었다. 미국으로 가는 여객기가 창 너머로 보인다.

저걸 타는 순간,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발걸음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몇 번 게이트 탑승이었더라?”

어머니가 핸드백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 곁을 가만히 지키던 이준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Gate 21〉

게이트.

그 글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공허했던 그의 두 눈이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깨에서부터 시작한 떨림은 손끝과 발끝으로 속절없이 뻗어 나가, 결국 이준은 그 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맞아, 21번 게이트. 다행히 바로 앞이구나. ……응? 준아?”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는 아들을 발견한 그녀는 화들짝 놀라 아들의 어깨를 잡았다.

“괜찮니? 준아, 백이준!”

“……왔어.”

이준의 눈에서 뚜욱, 투명한 유리구슬이 떨어졌다.

“내가 두고 왔어요.”

또 그 얘기다. 이준의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고유 능력이 활성화된 헌터들을 닥치는 대로 징병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준의 아버지는 미군 중령이었다. 정확하게는 대령 진급을 앞둔 ‘대령 진’이었고, 일찍이 헌터로서 각성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런 아버지의 곁을 마다하고 굳이 한국에 있겠다는 아들이 못내 야속했다. 좋아하는 여자애라도 생겼냐는 농담에 두 귀를 새빨갛게 붉히던 아들을 보지 못한 척했다. 그런데.

“준아…….”

마지막 게이트를 다녀온 이후로 아들은 망가졌다. 지나가는 길고양이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켰고, 헌터용 군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넋이 나갔다.

가뜩이나 심성이 여린 아들이었다. 함께 임무에 투입된 동료 전원이 눈앞에서 몰살당했을 테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싫다고 버티는 것을 무시해서라도 미국으로 데리고 갔을 텐데. 뒤늦은 후회를 했다.

그녀는 불안과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아들을 꼭 껴안았다. 그리고 식은땀으로 차게 식어 버린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준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사고였을 뿐.”

“하, 하지만…….”

“미국은 한국보다 헌터 시스템이 좀 더 체계적이고 안전하단다. 헌터 생활은 잠시 접어 두고 몇 개월 푹 쉬다가 아빠가 곧 창설할 길드에서 다시 시작하자. 알았지? 거기서는 뭐든 억지로 하지 않아도 돼.”

그녀는 어제도 했던 말을 또 한 번 했다. 이준은 대답 대신 젖은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Gate 21〉

머리 위의 노란 간판은 마치 자신을 끌어당기듯, 그리고 탓하듯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빛이 번져 가는 시야에 덧없이 사라진 은하의 불꽃이 보인 듯도 하다.

‘은하야.’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이준은 그곳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똑.

차갑다.

똑.

차가운 무언가가 자꾸 뺨을 두들겼다.

맘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은하는 자신이 정신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꾸역꾸역 상체를 일으켰다.

“윽.”

그리고 다시 고꾸라졌다.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렸다. 욱신거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팔이 잘린 듯한─.

“…….”

은하는 그제야 자신이 오른쪽 팔을 잃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헌터의 자가 치유력으로도 완전히 잘린 팔을 복원하는 것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불로 지져 둔 덕분에 급한 대로 출혈은 멈출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화상을 입은 피부가 화끈거렸지만 이 정도는 헌터의 자가 치유력과 응급 키트의 연고로 어떻게든 될 것이다.

흉터야 남겠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이었다면 오른팔을 불꽃 폭탄과 함께 날리지도 않았겠지.

은하는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막상 몸을 일으키고 보니 생각보다 걸을 만했다. 헌터의 치유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상하리만큼.

출혈이 멎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많은 피를 흘린 뒤였고 더불어 꽤 심한 화상마저 입었다.

‘그런 것치고 몸 상태가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것 같은데…….’

의아하게 생각하며 천천히 발을 앞으로 내딛는 그 순간, 발밑에 무언가 걸렸다.

검은 양산이었다.

은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축하합니다! ‘흑염의 프린세스’의 ‘우아한 양산’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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