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뉴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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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뉴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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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뉴페이스
2023.08.17.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병가 신청으로 며칠 동안 학교를 빠졌던 미카의 등굣길엔 칸이 동행했다.
눈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납골당에 함께 다녀온 뒤로 둘은 평소보다 더 끈끈해져 있었고, 서로를 의지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칸은 어쩌면 자신이 죽을 때 양부모님을 제외하고 진심으로 울어줄 사람은 미카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정도로 칸에게 미카는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친구였다.
“그 애들 뭔가 있어. 분명해.”
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산 클럽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짐짓 진지하게 추리라도 하듯 미카가 말하자, 칸은 자신이 대신 들고 있던 음료 빨대를 그녀의 입에 물려주곤 습관처럼 반응했다.
“그 애들이라니?”
“너희 여관에 사는 ‘그 애들’ 말이야.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유대감이 있는 게 분명해. 전에 나자크가 그랬거든.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을 잃었다고.”
미카는 그때의 충격이 다시 떠올랐다. 무언가 그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사건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은 했었지만, 그것이 가족의 죽음일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잃었다고. 가족을.”
칸이 미카로부터 들은 말을 따라 하며 곱씹었다.
어쩌면 떨어져 지내는 다른 가족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맺어진 인연이라고는 상상해본 적 없었다.
그들은 어쩌다 이 그레이빌까지 떠내려오게 된 걸까. 사람들이 모두 입 모아 말하는 운명이나 필연 같은 것이 그 이유라면 좀 허무했다.
“가까워질수록 어려운 것 같아.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을 겪은 것 같고. 가끔은 너랑 참 비슷하단 생각도 들어.”
미카가 중얼거리며 떠오르는 말들을 주저리 늘어놓았다.
일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그 형제들에게선 어쩐지 칸의 향기가 난다. 그건 단순히 생물학적인 냄새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있을 때 느껴지는 어떤 ‘동류’로서의 기이한 안정감이었다.
“비슷하다니. 뭐가?”
꼭 뭐라도 들킨 사람처럼 칸의 목소리 톤이 살짝 높아지자, 미카는 남은 샌드위치를 먹어치우고는 그에게서 음료를 뺏어 들며 살짝 느슨한 어투로 말을 풀었다.
“음…… 그냥. 숨긴다기보단 말하지 않는 점도 그렇고, 풍기는 분위기나 외적인 느낌이랄까? 아, 물론! 얼굴이 닮았단 건 아냐. 그냥 말 그대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지. 느낌.”
미카의 말에 칸은 정말로 자신이 그런지 가늠해보기라도 하듯, 제 손바닥을 펼쳐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는 대체 뭘 느끼고 있는 걸까?
요즘 들어 평소에 보지 못했던 칸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 터라, 미카는 일일이 그런 행동에 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잠깐만…… 저게 뭐야?”
앞으로 걸어가던 미카가 어딘지 잔뜩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가던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그녀가 가리킨 손가락 끝엔, 벌집처럼 우르르 모여 있는 학생들이 보였고, 워낙 그레이빌 세컨더리에서 험한 일을 많이 당한 터라 그녀가 본능적으로 칸을 뒤로 밀며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우리랑 상관없는 거 같은데.”
“그래. 다행히도 일단은 그래 보이네. 일단은.”
칸의 무덤덤한 대답에도 미카는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고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칸의 말대로 다가오는 두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학생들은 동시에 어딘가를 바라보며 저마다 수군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미카는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불과 몇 달 전, 전학생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하며 평화롭던 나날들을 뒤로한 채 갖은 곤욕을 치르지 않았던가.
“설마…… 또?”
미카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칸으로부터 아이들의 시선이 분산되는 거야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또 골치 아픈 일을 맡게 되는 건 사양이었다.
늘 그렇듯 전학생을 담당하는 교무부장은 미카의 반 담임교사였고, 불행히도 그는 무척이나 그녀를 신뢰하니 말이다.
미카는 울상인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칸을 바라봤다.
“제발. 아니라고 말해줄래, 칸?”
* *
불행히도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다.
그레이빌 세컨더리는 뉴페이스의 등장에 어두침침하기만 했던 최근의 분위기를 단번에 뒤집고 활기와 밝은 에너지를 되찾았다.
게다가 주목을 받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루카의 태도는 단연 같은 반의 반장, 미카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주 불편스럽게도 말이다.
“안녕, 미카?”
……안녕, 미카?
뭐지. 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인사는.
“아, 어. 그래, 안녕.”
그가 오늘 온 전학생이라는 사실도 완전히 잊어버린 채 미카는 얼떨결에 그 인사를 받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개성 넘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소년이었다.
귀에 주렁주렁 매달린 반짝이는 피어싱이 그랬고, 투톤으로 아래에 길게 늘어뜨린 절반의 카키색 머리칼이 또 그러했다. 외관을 치장하는 것에 별다른 제재가 없는 학교라는 걸 이렇게 몸소 알려주는 학생은 지금까지 그가 처음이었다.
“내 이름은 알지?”
“알 리가. 난 널 지금 처음 봤는데.”
“그럴 리가. 아침에 봤잖아. 정문에서.”
“아니, 내 말 뜻은 우리가 지금 처음 인사하는…….”
“넌 왠지 나랑 말이 잘 통할 것 같아.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 내 얼굴이 워낙 화려한지라 잠깐 적응하는 데 고생은 하겠지만, 뭐 사양은 말고.”
아니, 이봐!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데?
미카가 말 대신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루카는 그런 것 따위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녀 앞으로 클럽신청서를 대뜸 내밀었다.
“자, 여기. 선생님이 너한테 제출하라고 하던데.”
이전의 나자크와 엔지, 그리고 타헬과는 달리 이 소년은 모든 게 쉽고 간단했다.
루카는 대부분의 것이 낯설 텐데도 꼭 자신의 구역인 양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행동했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이곳에서 견디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였던 형제들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여긴 클럽활동을 해야 졸업할 수 있다며? 난 미술부로 신청했어.”
고작 이 클럽 신청서 하나를 받아내기 위해 얼마나 엔지를 쫓아다녔던가. 그다지 멀지 않은 자신의 과거가 스쳐 지나가자 미카는 어쩐지 지금 이 순간이 몹시도 감격스러웠다.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
“좋아한다기보단 잘하지. 뭐랄까. 천재랄까?”
루카에게선 엔지에게 느꼈던 분위기와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그저 부풀린 장난 같은 거라 믿고 싶었지만, 왠지 그렇게 여기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랄까.
하지만 재수 없는 건 똑같아. 아주 판박이야.
“하하. 뭐야. 안 믿는 얼굴이잖아.”
“이 얼굴이? 나 굉장히 믿고 있는 중인데.”
미카가 억울하단 듯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가리켰다. 하지만 루카는 속지 않겠다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역시 안 믿는 것 같은데. 난 애초에 여기 미술 특기생으로 전학 온 거야. 물론 소묘니, 유화니 나한텐 다 따분하지만. 난 그래피티처럼 자유롭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들을 좋아하거든.”
“그래…… 아주 그래 보여.”
처음 본 자신에게 스스로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을 마구 늘어놓는 걸 보면…… 루카, 저 녀석은 의심할 여지 없는 외향형 인간임이 틀림없다.
“근데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쟤들 혹시 네 보디가드들?”
루카가 검지 끝으로 꼭 놀리는 것처럼 미카의 등 뒤를 톡 가리키자 그녀가 이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서서 꼭 감시라도 하듯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건 나자크와 엔지, 그리고 칸이었다. 미카는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불편하게 그들을 잠시 보는가 싶더니 루카의 클럽신청서를 챙겨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쟤들 취미야, 취미.”
“널 감시하는 게?”
“감시라기보단 뭐…… 주변 시찰 정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너도 맘 편할 거야.”
크록의 사건을 포함해 흉흉하게 벌어지고 있는 그레이빌의 범죄는 형제들을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고, 미카는 그 범인이 뱀파이어일 거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저런 취급쯤이야 그들에겐 아무 일도 아니다.
미카가 익숙한 얼굴로 형제들을 한 번 노려봐주고는 교무실로 사라지자, 루카는 그제야 여유롭게 형제들에게 다가와서더니 꽤나 반갑단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 이웃사촌? 여기서 또 만날 줄이야.”
“여기서 또 만날 줄 너무 알았단 표정인데?”
평소 같았다면 엔지가 했을 까칠한 말이 어울리지 않게 나자크의 입에서 빠르게 튀어나오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칸과 엔지 쪽이었다.
좀처럼 먼저 공격적인 성향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 나자크였기에 엔지는 상체를 세우고 긴장했다. 나자크와 성향이 맞지 않는 건 사실이었으나, 녀석이 이렇게 예민하게 군다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그 정도의 믿음쯤은 둘 사이에 얼마든지 존재했다.
어쩐지 공기가 무거워지자 루카가 자신의 머리칼을 대충 한 손으로 쓸더니, 창가에 물들어가는 나뭇잎의 색을 잠시 관찰하며 느긋하게 말했다.
“뭘 그렇게 다들 경계하고 그래.”
곧이어 루카가 성큼 다가와 나자크의 귓가에 느릿하게 입술을 대곤,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같은 늑대인간끼리 서운하게-”
미세하게 흩어지는 웃음소리가 동시에 들려오자 나자크가 뭉쳐 있던 손의 근육을 느슨하게 풀었다. 경계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으나 먼저 같은 종족임을 밝히고 들어왔으니 무작정 공격을 시도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넌 어디서 왔지?”
나자크는 루카와 루이 쌍둥이 형제에 대해 알고 싶었다. 같은 늑대인간이자 루가루임은 분명한데, 루카가 풍기는 여러 가지 행동 양식이나 분위기는 분명 다른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글쎄. 듣는다고 알까 모르겠네. 우린 워낙 소수종족이라. 애초에 마하바 초원에서 나고 자란 너희들과는 다르거든.”
그건 꼭 성골과 진골을 나누는 듯 우위를 점하는 자의 오만한 말씨였다. 같은 늑대인간이라고는 하나 명백히 그들과는 다른 피를 가졌다는 우월감.
나자크는 짙어지는 회색 눈동자 안으로 루카를 가두기라도 하듯 집요하게 좇았다. 루카는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나자크의 송곳 같은 눈빛을 장난스럽게 피해냈다. 그는 그저 쾌활했고, 비밀을 숨기는 것에 능숙했다.
루카는 형제들의 머리 위, 교실에 걸린 모네의 모조품 그림을 바라봤다.
고독도 예술도 결국 다 한길이다. 뿌리 깊도록 제 마음에 자리 잡은 어둠의 무게 같은 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뭐지? 나보다 더 재수 없는 캐릭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네.”
엔지가 머리 위로 향해 있던 루카의 시선을 제게 끌어오며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그때였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루카의 눈이, 엔지를 향하는가 싶더니 이내 칸에게로 비스듬히 옮겨갔다.
루카는 잠시 칸을 기이하단 듯 은회색 눈동자로 깊이 주시했다. 방금 전까지 모조품을 바라보던 가짜의 눈과는 사뭇 다른 눈이었다.
“그나저나, 아주 특이한 냄새를 풍기는 녀석이 있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