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 나의 이름은 (35/40)


35. 나의 이름은
2023.07.27.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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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주친 테오는 피폐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칸을 지독한 괴물이라도 보듯 공포에 떤 눈빛을 했고, 그레이빌 세컨더리의 학생들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리감으로 대했으며, 학교에는 연일 칸을 전학시켜 달라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지금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그러니 이 뻔뻔스럽고도 평온한 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엔지뿐만이 아니다.

“너흰 안 먹어?”

칸은 점점 미각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학생 식당 한쪽에 자리를 잡고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골고루 젓가락질을 했다.

그 맞은편으로 엔지를 포함해 타헬과 나자크가 앉아 있었고, 소년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칸의 주변에 앉거나 그의 눈에 띄기를 바라지 않았다.

“너 지금 완전 잠재적 범죄자야. 애들 눈 안 보이냐.”

“그렇다고 안 먹을 순 없잖아. 엄마가 힘들게 번 돈으로 낸 등록금인데.”

허. 이걸 효자라고 해야 하나.

이 상황과는 어느 것 하나 맞지 않게 행동하고 있는 칸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겪지 않은 사람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잔잔했고, 그것이 애써서 겨우 해내는 노력인지 아니면 정말 괜찮은 것인지 판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타헬은 눈치껏 반찬 하나를 집어 먹으며 자신들을 향해 수군거리기 바쁜 학생들을 힐끔 둘러보았다.

‘정말일까? 칸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게.’

‘유력하다잖아. 크록하고 사이 안 좋은 녀석이 쟤 말고 더 있었어?’

‘아, 찝찝해 정말. 몸에 피가 하나도 없었다면서? 끔찍해 죽겠어. 학교에선 뭐 하는 거야. 강제로 전학이라도 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까 뭐 저런…….’

형제들의 귀에는 너무도 잘 들리는 인간들의 목소리는 때때로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이런 순간에는 정말이지 지옥 같을 정도로 거슬렸다.

“다들 너무하는 거 아냐? 경찰 조사에서도 아무 문제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의심하다니…….”

“형! 신경 쓰지 마. 원래 인간들이란…… 아! 음, 그러니까 사람들이란 남의 말 하기를 다들 좋아하잖아?”

배운 대로 들은 대로 타헬이 정직하게 말하자 칸은 그저 희미하게 웃어줄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식사를 마친 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꼭 경호원이라도 되는 듯 그의 뒤를 엔지와 나자크, 그리고 타헬이 일렬로 뒤따라 붙었다.

“그만 좀 따라다녀.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칸이 아침부터 내내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형제들 때문에 피곤했는지 가라는 듯 눈치까지 줬지만, 셋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다시 칸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아리들도 아니고…….”

“세상에 이렇게 큰 병아리는 없어.”

나자크가 단호하게 정정했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

칸이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타헬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의 의심과 눈초리를 받으면서 식당 한복판에서 이런 대화라니. 누군가가 가까이에서 들었다면 정말 미쳤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어쩌지 못하고 한숨만 뱉던 칸이 다시 앞서나가는 그때였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칸에게로 다가와 어깨를 부딪친 한 무리는, 평소에도 존재감 없이 몰려다니던 무리 중 하나였다.

“아이 씨, 더럽게.”

가슴팍으로 식판을 쏟은 칸을 바라보며 무리 중 한 명이 음식물이 튀지도 않은 교복 어깨선을 털어내며 거칠게 말했다.

무덤덤하게 음식물을 닦는 칸과 달리, 보다 먼저 흥분한 타헬이 달려들려고 하자 엔지가 그 목덜미를 빠르게 낚아채곤 남학생을 향해 말했다.

“이야, 눈이 뒤통수에 달렸나 봐?”

“그러게 누가 한복판에 그렇게 서 있으랬냐. 다들 불편해하는 거 안 보여?”

“보여. 앉아서 불편해하는 거.”

“말장난하지 마.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상관없긴 왜 없어. 내 동거인인데.”

엔지가 가볍게 관계를 정의했다.

친구와 형제와 피를 나눈 가족. 그 언저리 근처에 가지 못하고 늘 맴돌았는데, 동거인이라는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정리되는 듯했다. 형제처럼 가깝지 않아도 함께 살기에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는 것이 동거인 아니겠나.

“됐어. 괜찮으니까 가자, 엔지.”

칸이 더 몰아세우려 작정하는 엔지를 알아차리고 그의 어깨를 살짝 뒤로 당겼다.

이후로 비슷한 일들을 계속해서 반복됐다.

멀쩡하게 축구하던 녀석들의 공이 칸의 머리통으로 날아오질 않나, 3층 창가에서 가만히 있던 화분이 떨어지질 않나, 무엇보다 가장 어이없는 건 이 모든 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칸의 태도였다.

복도를 지나는 길에 누군가의 발이 툭 튀어나오자, 칸은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빤히 그 발을 보고서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신음 한번 흘리질 않고 무릎을 털고 일어난 칸을 보며 엔지가 눈을 찌푸렸다.

“와, 이젠 웃음도 안 나와. 너 바보냐?”

“실수로 못 봤을 뿐이야.”

“네가? 실수를 했다고?”

그럴 리 없다. 엔지가 본 칸은 인간들 중에서도 이성적으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이 엄청나게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남의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제 실수라니. 어린애라도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루 종일 이게 뭐 하는 짓인데. 발에 걸려 넘어지고, 식판 쏟고, 화분은 떨어지고. 이거 뭐 엑소시스트냐? 보이지 않는 손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막 괴롭히고 그런 거냐고.”

“두려워서 그럴 테니까.”

“……뭐?”

생각지 못한 칸의 대답에 엔지가 앞서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사람의 마음은 약해. 쉽게 어둠으로 빠져버려. 두려움이 커지면 적대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뭐라도 하려고 하지. 그게 생존본능이고.”

“허. 그러니 네가 하지도 않은 짓 때문에 이 모든 걸 달게 다 받으시겠다?”

“별거 아닌 일이니까. 언젠가 밝혀질 일이고.”

“누가 밝혀진대.”

엔지와의 논쟁에 불쑥 끼어든 건, 오늘 내내 가만 듣고만 있던 나자크였다.

“소리소문없이 이대로 덮일 수도 있고,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럼 넌 해명할 기회도 없이 그냥 잡지 못한 살인자가 될 뿐이야. 그러니 네 양부모님과 더는 이 도시에서 살 수도 없겠지. 정말 그걸 원해?”

나자크는 일말의 과장됨 없이 사실만을 얘기했고, 그렇기에 아플 수밖에 없는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자크의 날이 선 지적에도 칸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여전히 동요 없이 곧은 눈을 하고선 나자크의 앞에 차분히 마주 섰다. 그러고는 조금의 의심조차 하지 않는 단단한 눈빛으로 짧게 단언했다.

“밝힐 거야.”

“……!”

“너희들이 이 일을 해내야 할 삶의 몫으로 여기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할 거야. 넌 내가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다고 했었지.”

나자크는 부정하지 않았다. 처음 칸을 만났을 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견디기만 하는 그를 못마땅해했으니까.

“하지만 아니야, 나자크. 난 언제나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야. 난 그놈들이 누구든 너희들과 함께 찾아내기로 결심했고, 이 일을 선택함으로써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오롯이 다 책임질 거야.”

칸은 차분히 형제들과 눈을 맞추고, 숨소리를 낮추고, 제법 오랫동안 형제들이 듣고 싶어 했을지 모르는 그 문장을 천천히 나열했다.

칸이 말을 끝내고 나서 다시 돌아섰을 땐, 형제들 모두 넓은 등을 하고서 복도 끝까지 사라지는 그를 묵묵히 바라볼 뿐 누구도 그의 뒤를 쫓지 않았다.

* *

누워 있던 귀가 뾰족한 칼날처럼 높이 솟았다.

기리의 적개심은 연일 최대치로 고조되고 있었다.

까만 밤. 늑대로 변신한 기리는 그레이 여관과 거리를 둔 채 도심의 숲 안을 질주하고 또 질주했다.

크록이 죽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 그의 피 냄새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냄새로 단서를 좇다 보면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길이 끊어졌다.

기리의 심장은 인간의 그것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박동하면서도 숨소리조차 틀어지지 않았고, 돌부리와 엉킨 나뭇가지들을 뚫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폐공장 바깥쪽엔 여전히 늑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깊게 파인 흔적이나 오래도록 메워지지 않는 크기를 보면 분명 범상치 않은 존재임은 확실했다.

-칸이 다른 말은 없었어?

칸과 순찰을 함께하고 돌아왔던 나자크의 첫마디는 그것이 전부였다. 나자크 본인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을 기리에게는 말했는지 확인하는 모양새였다.

아무런 물증도 없었지만 형제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보름밤에 사라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밀을 품고 있는 소년. 어쩌면 칸이……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상상.

기리는 그런 생각들을 애써 떨쳐내며, 숲을 빠져나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쳐버린 시몬과 요안나는 노쇠해져 가는 육신만큼 감당할 수 없는 피곤으로 며칠째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모두가 잠들었는지 고요한 밤이었다.

기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형제들이야 직감적으로 자신이 여관으로 들어왔음을 알고 있었겠지만, 안쪽에서 칸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그는 또 형제들을 두고서 혼자 어디로 사라진 걸까.

기리가 이번엔 노크 없이 칸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달에 비쳐 반짝이는 무언가로 향했다.

칸의 책상 한구석에서 홀연히 빛나는 무언가.

“……실버팽?”

늑대인간들은 대대로 이름을 물려받아 지위와 부족의 전통을 계승해왔다. 그중, 가장 강한 전사만을 추앙하는 라이칸스로프가 대대로 단 한 명의 주인에게만 전사의 이름과 함께 부여한다는 전설의 귀물 실버팽.

루가루인 기리는 어릴 적부터 라이칸스로프에 대한 수많은 전설적인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으며 자랐다. 어쩌면 상상 속에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 실물조차 본 적이 없었지만 기리의 몸 세포 하나하나는 그것이 실버팽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걸 왜 칸이 가지고 있는 거지? 실버팽을 가진 전사의 이름이 설마 ‘칸’이었던가.

만약 칸이 라이칸스로프의 계승자라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형. 여기서 뭐해.”

홱!

기척을 읽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빠져 있던 기리가 솜털을 세웠다. 밤의 그림자에 가려져 표정을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칸?”

어둠 속에서도 언뜻 금빛으로 빛나는 칸의 시선은 기리의 손에 쥐어진 실버팽으로 향했다.

허락도 없이 그의 방에 들어온 것에 대한 사과도 잊을 정도로 기리는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당장 기리가 원하는 건 칸에게서 대답을 듣는 것이었다.

“네가 어째서, 이걸 왜……?”

“이게 뭔지 알아?”

“뭐?”

“가르쳐줘. 이게 뭔지.”

기리는 이 순간 도박을 해야만 했다. 어디까지 이해받을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칸은 정말이지 알고 싶다는 눈으로, 간절하게 기리를 바라보았다.

“넌 너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칸?”

그래. 소년의 이름은 칸.

모든 것을 기억하기 훨씬 전부터 그의 이름은 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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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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