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 실종 (25/40)


25. 실종
2023.05.18.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미카의 손을 낚아챈 건 엔지가 먼저였다.

엉망이 된 상점 거리에 덩그러니 무방비하게 선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엔지의 손은 상상 이상으로 불에 덴 듯 뜨겁기만 했다.

“엔지, 지금 이게 다 무슨……!”

“그건 이쪽에서 묻고 싶은 말이야.”

미카는 정돈되지 않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는 중이었지만,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투성이였다.

“절대 나오지 마. 이건 부탁이야.”

엔지가 어울리지 않게 한풀 꺾인 목소리를 냈다. 그가 곧 상점 안으로 미카를 밀어 넣고 문을 닫으려 하는 그때였다. 다급히 닫히는 문을 잡으며 그녀가 말없이 그저 눈빛으로 엔지에게 답을 요구했다.

엔지가 잠시 긴 숨을 흘렸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어차피 우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기억해.”

“그러니까 이해하려고 할 필요 없어.”

설명 아닌 설명의 끝은 그것이 전부였다. 불친절하다 비난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긴말을 해봤자 무엇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자신조차 이 상황을 완벽하게 계산하지 못했으니 미카의 입장이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테니까.

단지 엔지는 미카에게 더는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했을 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순간에 또 의지와 상관없이 휘말리게 두고 싶진 않았다.

“안에서 나오지 마, 절대.”

돌아서는 엔지의 팔을 미카가 다급히 붙잡았다.

“칸한테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지금 네가 걱정해야 될 건 칸이 아니라 나거든?”

“……뭐?”

말을 제멋대로 뱉어놓고 엔지는 곧바로 후회하면서도, 한 번쯤은 미카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음을 인정했다.

차라리 죽도록 패서 저 모든 걸 멈추게 하라면 하겠는데, 어디 하나 다치는 구석 없이 얌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 힘의 정교함과 늑대인간들의 협력심이 빛을 발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더 보는 눈들이 많아지기 전에 칸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가 얌전해져야 자신들 또한 안전해지니까.

상점 밖으로 나온 엔지는 돌아가는 상황을 다시 파악했다.

크록이 데려온 용역 사내들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축 처진 빨래처럼 늘어져 있었고, 공포에 짓눌린 크록은 구석에서 제 몸을 웅크린 채 간신히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이어 크록이 틈을 타 차를 향해 달려가는 그때였다.

분이 풀리지 않는 건지, 아예 자신의 힘을 제어할 의지를 잃어버린 것인지 칸이 몸을 돌려 크록을 쫓았다. 그것은 맹수가 사냥감을 몰듯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한 움직임이었다.

“젠장! 저 새끼 잡아!”

나자크가 소리쳤다.

동시에 타헬과 엔지가 칸의 양옆으로 달려들어 그의 양팔을 잡아 그대로 내리눌렀다.

“무슨 힘이……!”

타헬이 이를 꽉 물며 경악했다.

굳이 또 한 번 확인받지 않아도 됐지만 이것은 인간의 힘이라 결코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형! 어디까지 힘 써야 해?”

타헬이 다급하게 나자크를 향해 소리쳤다. 늑대인간의 능력을 이용하면 좀 더 눌러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자신의 완력을 완벽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타헬의 입장에선 이 순간이 충분히 버거웠다.

타헬의 외침에 나자크가 그대로 달려와 칸의 허리를 무릎으로 누르고는,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최대한 압박해 지면에 바짝 붙였다.

“놔. 제발 놔!”

칸이 소리쳤다. 동시에 그의 몸이 한 번 도약하듯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콰직!

여전히 힘을 억누르지 못하는 칸의 뒤통수를 잡아 엔지가 그대로 땅바닥에 그의 얼굴을 깔아뭉갰다.

“까불지 마, 애송아. 이게 어디서 폭주하고 있어.”

엔지가 서늘한 목소리로 칸의 귀에 읊조렸다. 욕만 안 섞었다뿐이지 반쯤은 칸을 죽여놓을 태세였다.

“형! 너무 심하잖아!”

칸의 팔을 여전히 꽉 붙잡은 채로 타헬이 소리쳤다. 동생의 놀란 반응에도 엔지는 칸의 머리를 잡은 제 손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심하긴 뭐가 심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얼굴을!”

“그럼, 계속 날뛰게 내버려 두리? 박수 치면서 응원이라도 해?”

“칸 형, 형! 괜찮아? 많이 아파? 그러니까 제발 얌전히 좀 있어 줘. 엔지 형은 진짜 피도 눈물도 없단 말이야.”

“지금 면전에서 내 욕하냐?”

엔지가 어이가 없는지 허, 숨을 뱉으며 타헬을 까칠하게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타헬은 결박된 칸을 잔뜩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역시나, 타헬이 걱정한 것과 달리 칸의 몸엔 생채기 하나 없었다. 그는 그저 거칠어진 숨을 반복적으로 내쉬고 들이마실 뿐이었다.

반쯤 깔린 얼굴로 희미하게 보이는 바깥 풍경은 엉망이었다.

크록은 자신의 운전기사와 함께 도망치듯 거리를 빠져나가고 있었고, 건물 유리창은 여기저기가 파손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용역 사내들은 저마다 부러지고 다친 몸을 겨우 일으켜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걸 지금 내가 다 한 거야?

“이제 좀 진정이 되냐.”

나자크의 잔잔한 목소리가 그제야 제대로 들려왔다.

여전히 세 사람은 칸의 몸 위에 올라타다시피 해 그를 억누르고 있었고, 제대로 그들의 말소리와 숨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칸의 몸이 눈 녹듯 순식간에 풀어졌다.

더 이상 자신들이 잡고 있는 칸의 몸에서 힘이 느껴지지 않자, 엔지가 먼저 그의 머리를 누르고 있던 제 손을 천천히 떼어내었다. 그 뒤로 여전히 긴장한 얼굴을 한 타헬이 손을 떼고, 마지막으로 나자크의 무릎과 손이 칸의 상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주르륵-

칸의 눈에서 눈물도 땀도 아닌 것이 흘러내렸다.

알고 싶다.

더는 이 무지의 괴로움 속에서 하루도 살 수가 없어.

나는 왜 이런 힘을 가진 거야. 나는 왜 괴물 취급받으며 살아야 했던 거야.

“난…… 난 대체 누구야?”

칸의 중얼거림에 대답해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향한 궁극적인 의문.

알아야겠다. 내가 누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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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리는 동생들이 이유 없이 인간들과 싸우지 않으리라 언제나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 못 한 사건으로 늑대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같은 공동체 일원들과 갈등이 극도로 심해지자 그는 난처해졌다.

그건 비단 기리뿐만이 아니었다.

요한나와 시몬, 그 두 사람이 생활을 위해 연명하고 있는 이 그레이빌 여관 또한 그랬다. 도시엔 화려한 고급 호텔과, 그 중심지를 주변으로 아주 값싼 캡슐 호텔까지 있는 상황에서 부부가 운영하는 오래된 여관은 지역 사회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칸에 대한 일이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위화감, 늑대의 냄새와 비슷한 ‘무엇’. 의문을 품었고, 끝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음에도 또다시 그는 칸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칸을 보았던 동생들의 말이 그러했고, 며칠째 방에서 나오지 않는 칸의 반응 또한 그랬다.

“분명해. 뱀파이어 놈들이 우릴 노리고 있어.”

나자크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냉정하게 판단했다.

이번 일로 더더욱 분명해졌다. 크록은 포섭된 인간이자 하인일 뿐, 그 뒤의 진짜 정체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을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뱀파이어가 있음을.

“애초에 우릴 노렸던 거야.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 곧바로.”

엔지가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칸은 왜?”

기리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짚고 올라갔다.

“개인적인 원한과 뒤섞인 거겠지. 게다가 우리가 칸의 여관에 머물고 있으니까. 어차피 뱀파이어 쪽에선 우리가 늑대인간인지 아닌지만 확인하면 그뿐이었을 거야. 그런데 칸이 저렇게 날뛰었으니 꼼짝없이 쥐덫에 걸려버렸어. 우리랑 상관없이 칸이 먼저 늑대인간으로 의심받을 거야.”

“하지만 칸 형은 인간이잖아.”

타헬의 지적에 좌중은 침묵했다.

더 이상은 그렇게 확언할 수 없는 모든 정황이 드러난 상황이었다. 칸은 확실히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진 소년이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느꼈던 모든 것이, 어쩌면 자신들과 동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까지 번지고 있었다.

“차라리 칸이 먼저 무슨 말이라도 해준다면 좋을 텐데.”

기리가 곤란한지 마른 얼굴을 쓸었다. 저렇게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면 지금으로선 그의 입을 억지로 열게 할 방법이 없다.

“누군지 알고 싶다고 했어.”

나자크가 나지막이 입을 떼자, 그 말을 함께 들었던 엔지와 타헬은 침묵을 택했다.

그 어떤 말보다도 아픈 말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 이지러진 얼굴이 형제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자기가 누군지. 알고 싶어 했다고.”

나자크의 음성에 어쩐지 칸을 옹호하는 마음이 섞여 있음을 기리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무엇이 사실이든 그건 결코 칸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그는 대신해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지켜보자. 쉽게 내리는 판단만큼 위험한 건 없으니까.”

누구보다 동생들의 마음을 잘 아는 기리가 끄덕이며 나자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단순한 접촉일지 모르겠으나 그들에게는 믿음을 내어준다는 마음 그 자체였기에 나자크는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칸에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선대의 이름을 물려받아 늑대인간의 정통성을 이어 다음 대의 알파가 되기 위해? 그러려면 공동체의 모두를 포용해야 하니까?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보아도 나자크는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일단 들어가서 좀 쉬어. 요 며칠 너무 무리했어, 다들.”

기리가 자리를 먼저 털고 일어나며 형제들에게 당부했다.

지금부터는 체력도 정신력도 제대로 길러놔야 한다. 잠깐 한눈을 팔았다간 꼼짝없이 뱀파이어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기리는 제 동생들을 그렇게 만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차라리 제 목숨을 내놓는다고 해도.

애써 형제들을 다독이곤 1층으로 내려온 기리가 침울하게 앉아 있는 요한나와 시몬의 곁에 가 앉았다. 그들 마음 또한 칸만큼이나 지옥일 것이다.

“요즘 칸한테서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다짜고짜 칸에 대한 신상을 캐물을 수 없어 기리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침울한 두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아인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에요.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처음 데려왔던 그때부터 그랬어요. 아이답지 못한 게 언제나 가슴 아팠죠. 우리가 의지가 되지 못하는 걸까.”

요한나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레이빌 사람들 모두가 입 모아 칸을 비난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동네를 또 떠나야 하는 걸까.

어두워진 얼굴을 한 시몬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제 아들을 위해 이곳을 떠날 준비를 마친 사람처럼 의연하게 침묵했다. 하지만 기리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부턴 이사하거나, 이 도시를 떠나는 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살아남는 것이 문제일 뿐.

그때였다.

똑똑똑.

자정이 다 된 시각, 그레이빌 여관에 다시 불이 켜졌다.

요한나가 문을 열자, 검은 밤을 불빛으로 수놓은 건 경찰차였다.

“리암? 이 늦은 시간엔 무슨 일로…….”

“아, 저 그게.”

리암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곁눈질로 안의 사람들을 파악했다.

“크록이 실종됐습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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