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인간들의 법칙 (6/40)


6. 인간들의 법칙
2023.01.05.


‘너 늑대인간이라고 들어봤어?’

떠보듯, 아니 꼭 처음부터 파놓은 토끼굴로 먹잇감을 몰듯, 엔지는 모든 결말을 정해두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냥꾼이었다.

어디까지 확신하고 어디까지 의심하는가. 그저 그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이 영문 모르는 순진한 표정은 뭐지?

“늑대인간이라니. 지금 무슨 소릴…….”

대체 뭘 물어보냐는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칸의 얼굴을 엔지가 빤히 관찰하듯 탐색했다.

적어도 당황하는 기색 정도는 보일 줄 알았는데, 이건 너무도 예상 밖의 반응이라 어떻게 목을 틀어쥐어야 할지 모르겠다.

“엔지!”

관찰이 계속되는 와중에 그의 몸 뒤로 빠르게 그림자가 졌다.

이러려고 먼저 빠져나왔더니 용케도 금방 찾아낸다, 이 녀석은.

쳇. 결국 손바닥 안이다 이거지.

“도망 안 간다니까 뭘 또 그새 쫓아와.”

엔지가 싱긋 웃으며 심연처럼 가라앉은 눈빛을 한 나자크를 향해 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농담이 융통성 없는 나자크에게 통할 리가 없다.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

나자크가 답지 않게 으르렁거렸다.

-경솔한지 아닌지는 알아보면 될 일이지.

-그러니까. 그 알아보는 방식이 경솔하단 뜻이야.

나자크는 땅에 파묻힌 칸을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는 기색이었다. 꼭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처럼 그는 평온했으나, 엔지의 이런 돌발적인 행동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좋아. 그만할게, 됐지.

엔지가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나자크에게 항복을 표시했다.

기리조차도 말리지 못하는 엔지를 막을 수 있는 건 나자크가 유일했다. 그들은 서로를 불편해하고 때때로 미워하면서도 또 어쩌지 못하고 존재 자체를 동경했다.

엔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싹 바꾸고 돌아앉아 칸을 향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아, 방금 한 질문은 신경 쓰지 마. 내가 도시 괴담에 관심이 많거든.”

유리알 너머로 찰나에 청록색처럼 보였던 눈동자가 어느새 갈색으로 옅어졌다.

칸은 오랫동안 햇볕 아래 있는 탓에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꺼내줘?”

“……아니. 그냥 가줘.”

마른 모래 기침을 뱉으며 칸이 힘겹게 대답했다.

“그런 꼴로 말은 잘도 하네. 너 지금 되게 우스워. 진짜야.”

엔지가 이마를 긁적이며 칸을 향해 반쯤 놀리는 투로 말했다.

대체 저 큰 덩치로 반항도 안 해보고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도무지 엔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인간이면 다 이런 멍청한 선택들을 하고 사는 건가. 정말이지 귀찮고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나자크는 그저 모른 척해주길 바라는 칸을 가만 내려다보다 이내 몸을 돌렸다.

“가자, 엔지.”

“쟤 그냥 저렇게 두고? 악취미잖아, 나자크.”

엔지가 나자크를 놀리듯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떴다.

“도와줄 필요 없어.”

혼자서도 충분할 테니까.

굳이 뒷말을 보태지 않고 나자크가 칸에게서 완전히 돌아섰다.

칸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보통이 아닌 몸으로 왜 보통보다 못한 삶을 사는 걸 선택한 거지.

물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부적절할 것이다.

“크록, 그냥 저렇게 둘 거야?”

크록의 오른팔 격인 테오가 창밖으로 보이는 칸과 전학생들을 내려다보며 뒤틀린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외려 크록은 별것 아닌 듯 픽 웃으며 창가에 한쪽 팔을 툭 걸쳤다.

어차피 시간과 돈, 그리고 힘은 언제나 크록의 편이었으니 급할 건 없다.

“가만 보면 저 새낀 상처도 금방 낫는다니까. 웬만큼 해선 신음소리 한 번도 안 내. 독한 자식.”

흙에 파묻힌 채로도 살려달라 말 한번 하지 않던 칸을 떠올리며 분한 듯 테오가 말했다.

“요즘 심심한데 잘됐지 뭐. 점심시간에 애들 좀 모아봐.”

“좋아. 애들은 걱정 마. 안 그래도 좀이 쑤셔 죽을 판이거든.”

크록의 말에 테오가 개구지게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그 소문 사실인가? 칸이 전에 학교에서 사고 치고 왔단 얘기.”

“지라시보다 못한 얘기네. 그냥 무시해.”

“하긴. 저 주제에 무슨…….”

크록은 창가에 걸친 제 손을 톡, 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

칸은 그렇다 치고 전학생 셋이라.

꼭 새로운 놀잇감을 발견한 사람처럼 크록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어디서 굴러들어온 놈들이실까…….”

불현듯 크록은 제 몸에 검은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기이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어깨에 난 화상 자국이 다시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 ⁕

미카는 흙투성이로 저 멀리서 걸어오는 칸을 발견하곤 급하게 뛰어 그의 앞에 멈춰 섰다.

“너 꼴이 왜 이래? 설마 또……!”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화가 난 건지, 걱정이 되는 건지 미카가 잔뜩 힘을 실어 칸의 등짝을 훅 내리쳤다.

“우와. 너 진짜 손 매워.”

“칸!”

“목소리도 진짜 크고.”

미카는 속이 상해 숨만 겨우 들이켜는데 칸은 바보처럼 그녀의 앞에서 웃기만 한다. 이러니 모두가 덩치만 큰 바보라고 떠들어대는 거다.

“일단 양호실부터 가자.”

미카가 한숨을 푹 내쉬곤 칸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아무리 봐도 단단하고 크기만 한데 왜 매번 당하기만 하는 걸까. 미카는 이번에야말로 칸에게 운동을 배우게 할 참이었다.

“다친 데 없어. 양호실 안 가도 괜찮아.”

미카의 행동에 칸은 언제나 준비된 대답을 늘어놓았다.

“내가 안 괜찮아. 덩치만 크지 맨날 당하는 주제에.”

“정말이야. 봐, 상처도 없잖아.”

의심의 눈초리도 칸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나서야 미카가 안도했다.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그 모진 짓들을 겪으면서도 칸은 큰 상처가 나는 법이 없고, 난다고 해도 금방 아물어 흉터조차 남지 않았다.

그 점이 시몬과 요한나를 생각하면 다행이다 싶다가도 안타까운 거도 사실이었다.

아픈 건 늘 똑같은데 상처가 나지 않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미카는 그 마음이 쉽게 가늠되지 않아 칸을 섣불리 위로해줄 수가 없었다.

칸은 늘 한 발자국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소년이었다. 누군가를 쉽게 제 삶에 들이지도, 또 떠나보내지도 못했다.

그 거리를 쉽게 좁힐 수 없기에, 이런 순간마다 미카는 칸에게 위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쓸쓸하기만 했다.

“배고프다. 같이 점심 먹을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카의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속 깊은 칸이 먼저 제안했다.

16729029700237.jpg

 
⁕ ⁕ ⁕

B동 옥상은 쌓인 물건들이 많아 좀처럼 학생들이 나타나지 않는 장소이자 미카와 칸만의 비밀 공간이기도 했다.

그들은 종종 이곳에서 만들어 온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이걸 불청객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반가운 손님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칸과 미카가 눈치껏 시선을 주고받았다.

“어? 미카 누나! 칸 형!”

“타헬, 네가 어떻게 여길…….”

“나 지금 학교 탐색 중이야! 여기가 마지막이고.”

마지막이란 타헬의 말에 미카가 눈을 크게 떴다.

“벌써 학교를 다 돌아봤단 말이야?”

“응! 생각보다 작던데?”

생각보다 작다니, 그렇다고 오전 잠깐만에 돌아볼 수 있는 크기는 더더욱 아니다.

일반적인 인간과는 다른 속도와 움직임을 갖춘 타헬에게는 학교가 아니라, 도시 하나를 돌아보는 데도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미카는 타헬의 말이 반쯤은 거짓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여기서 뭐해?”

“아, 우린…….”

칸의 설명이 이어지기도 전에 그의 금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가 찰나에 어두워졌다.

타헬의 등 뒤로 우르르 몰려오는 건 다름 아닌 크록의 무리였다. 아침부터 칸을 뒤뜰에 묻어둔 테오까지 대동하고 나타난 이들에 미카의 표정도 확연히 구겨졌다.

불쑥 나타난 크록이 타헬의 등 뒤에서 그에게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했다.

“뭐냐 이 쬐끄만 놈은. 새로 데리고 다니는 애완견이냐?”

아직 키가 덜 자란 타헬은 제 힘을 과시하고 얕잡아보기에 아주 좋은 카드다.

하지만 이 상황이 어떤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은 듯 타헬은 그저 해맑게 제 옆에서 선 크록을 보며 태연자약하게 물었다.

“그거 나 귀엽단 뜻이야?”

“뜻이야? 그건 반말이고. 난 건방진 것들은 딱 질색인데, 응?”

“먼저 반말하면 같이해도 되는 거 아닌가? 아니야, 칸 형?”

타헬은 인간들 세계의 법칙이란 꽤 섬세하고 복잡하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모르겠단 얼굴로 칸을 향해 돌아보며 타헬이 천진하게 묻는 그때였다. 크록의 우악스러운 손이 타헬의 뒤통수를 한 번에 낚아채 앞으로 훅 끌어당겼다.

“아야! 놀랐잖아.”

타헬이 소리를 내며 크록이 끌면 끄는 대로 그 힘에 적당히 순종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입가에 띤 미소는 밝고 환하기만 했다.

“웃어? 그 입을 찢어줄까.”

커다란 강아지 같은 녀석이 크록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칸과 미카의 몸이 동시에 들썩했다.

칸은 주먹을 세게 말아쥐었다. 기어코 피해왔던 선택의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두 번 다시 주먹질을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레이빌로 오기 전 머물렀던 도시의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 속의 법칙이란 정글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약하면 짓밟았고, 강하면 고개 숙였다. 그 속에서 눈에 띄어 살아가는 칸의 존재란 언제나 고단하기만 했다.

지독하게 저를 괴롭혔던 무리에 처음으로 대항해 싸웠을 때 칸은 해방감을 느꼈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강함을 완벽하게 자각했다. 그러니 잘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내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중 어느 한마디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요한나, 그리고 자신 대신 고개를 숙여 사죄했던 시몬의 작고 늙어버린 등. 그것만으로도 칸이 말을 삼키고 숨을 죽이게 만들기엔 충분했으니까.

칸은 그때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두 번 다시는, 그 어떤 상황이라도 결코 제 힘을 쓰지 않으리라고.

하지만 지금은?

타헬처럼 작고 약한 아이가 저와 같은 괴롭힘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놔줘…….”

이를 꽉 문 칸이 낮게 읊조리자 크록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타헬을 놔줘. 부탁할게.”

칸의 팔에 형형하게 푸른 핏줄이 섰다.

그래, 한 번이면 돼. 딱 한 번만.

나 때문에 누군가가 다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가장 먼저 느낀 건 미카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칸이 더 이상 당하지 않길 바랐으면서, 미카는 반대로 그의 손을 꽉 잡고 칸의 분노를 억눌렀다.

크록과 칸 사이를 막아선 미카는, 제 작은 등 뒤로 억지로 칸을 숨겼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타헬을 놔줘. 전학생 건드려봤자 너만 피곤해져.”

“그래? 난 피곤해져도 상관없는데.”

크록이 치아를 보이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이 꼭 악마의 미소 같아 미카는 소름이 돋는 듯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미카의 입술을 보자 크록은 만족감에 젖어들었다.

그래, 그래야지.

내 앞에선 그렇게 두려워하고 떨어야 맞는 거지.

반면 타헬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계속 이렇게 잡혀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뿌리치면 무례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인간답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기요, 누나 형들…….”

여전히 목을 붙잡힌 채 얌전히 서 있던 타헬이 손을 뻗는 그때였다.

샤락-

별안간 열린 옥상문 틈새로 별안간 서늘한 바람이 날아들었다.

초여름의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혹독한 냉기였다.

“크록.”

그 부름은 너무나도 다정하고 따스해서, 꼭 살의를 띤 날카로운 눈빛을 하는 나자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자크?”

미카가 잇속에서 그 이름을 작게 중얼거렸다.

한 걸음, 두 걸음, 급하지 않게 천천히 크록의 앞에 부드럽게 다가선 나자크가 아주 약하고 부드럽게 타헬을 붙잡고 있는 크록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조금만 힘을 줬다간 크록의 팔목 뼈가 으스러질 것이다. 아니면 단번에 잘린 팔이 바닥을 나뒹굴 수도 있겠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형제들은 나자크의 차분한 움직임에도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엔지는 이 파란이 일어날 현장을 어떻게 수습할지 머릿속으로 계산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에서 모두가 걱정하는 건 나자크가 아니라 크록이었다.

나자크는 무엇 하나 급할 것 없는 말씨와 움직임이었으나, 꼭 조종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크록은 한 발자국도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 너, 지금 이게 무슨…….”

크록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해다. 나자크는 애초에 크록에게 무언가를 한 적이 없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늑대의 강렬한 살의의 본성이 그를 압도했을 뿐.

나자크는 그저 유연하고 느릿한 몸짓으로 크록의 귓가에 제 입술을 내렸다. 그러고는 아주 정중한 말씨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손 좀 치워줬음 좋겠는데.”

크록은 심해 속에서 포식자를 마주한 것처럼 경직된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는 제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짐을 느끼며 발끝을 움찔했다. 그러면서도 크록은 끝끝내 눈빛에 띤 광기를 감추지 않는다.

역시, 인간들이란 직접 경험해야만 알아듣는 건가.

그래. 인간의 법칙이 그렇다면 기꺼이 따라야지.

그저 가볍게 잡혀 있었으나 여전히 힘을 빼지 않는 크록의 손을 나자크가 고요히 내려다봤다.

“내가 치울까?”

곧이어 권유인지 협박인지 모를 것이 날아들었다.

16729029700243.jpg


0